삶의 고백/어쩌다 쓰는 일기

슬픈 성탄절 - 김희용님의 詩

도덕쌤 2020. 12. 25. 09:46

[슬픈 성탄절]

by 김희용

왜 아기로 왔는가

말구유가 첫울음 땅인가

산모는 젖이나 제대로 나왔을까?

무능함에 가슴 무너져내린 남편

학살을 피해 이집트로 도망가는

눈엔 무서움이

등엔 고단함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하나의 경우라도 힘겨울텐데

네다섯 일을 어찌 감당했을꼬

하나님이 인간으로 왔다는

화육(化肉)의 시작이

메시야(구세주)의 출현이 이렇다

 

보살피지 않으면 죽는 여린 생명들

집 없어 떠도는 이들

부자가 던져주는 부스러기가 밥이 되는

슬픔이 같은 하늘 아래에 있고

폭력과 지배에 저항하는 자들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는 억압의 질서

통곡은 산천을 울리고

이주민이어서 서럽고

난민이라 공포인 세상

삶이 죽음의 세계와 다르지 않는

절망의 땅

여기에

이곳으로 오셨다.

밝고 맑게 오셨다.

 

아, 대한민국

부러지고 찔리고 짤려 죽어나가는 나라

비닐하우스에서 이주노동자가 죽는 나라

법복으로 촛불을 꺼버리신 고귀하신 님들의 나라

 

그날 동방박사들은 좋았겠다.

그날 목자들은 좋았겠다.

오늘 나는 슬프다

성탄절이 슬프다.

 

하늘이여

검찰의 나라에서 살 이들을 위로해 주소서

슬픈 성탄절인 사람들을 위로해 주소서.

 

+++

 

오늘 아침 첫인사로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외치고 나서 곧바로 '메리'라는 단어가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톡방에서 만난 김희용 목사님의 시 "슬픈 성탄절"을 읽었다.

'검찰의 나라'보다는 '자본의 나라'가 더 어울리겠지만, 어쨌든 '부자가 던져주는 부스러기가 밥이 되는 슬픔'에 깊이 공감한다.

"믿습니다. 아멘!" 이 한 마디로 구원을 얻는다고 뻥을 치는 사람들의 잔치에 끼어들지 않고 싶어서 몇 년째 성탄장식을 하지 않고 철조망 앞에 서 왔는데ㅡ

원불교 교무님이 대신해서 몇 년째 장식을 해 주고 있다.

얼마전 다녀간 진보당원들이 사람들 눈에 잘 띄는 곳에 붙여놓고 가겠다고 붙여 놓은 '이석기 석방' 구호가 성탄장식 밑에서 쓸쓸하다.


코로나19가 산타클로스의 발걸음도 돌려보내는 2020년 성탄절. 
정말 오랜만에 고교후배가 톡으로 연말인사를 보내왔다. "새해에는 소망하시는 모든 일이 성취되기를 바랍니다." 
"덕분에 새해에는 사드배치가 철회되기를!" 내가 보낸 답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