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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목자? 선한 집사? 하느님 한분 밖에 선한 분이 없다

도덕쌤 2021. 4. 26. 23:33

【선한 목자? 선한 집사? 하느님 한분 밖에 선한 분이 없다】

 

요한복음 10:11~18〔선한 목자〕

11   나는 선한 목자이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다.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들도 자기의 것이 아니므로,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면 이리가 양들을 물어가고, 양떼를 흩어 버린다. -
13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14   나는 선한 목자이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15   그것은 마치,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린다.
16   나에게는 이 우리에 속하지 않은 다른 양들이 있다. 나는 그 양들도 이끌어 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들을 것이며, 한 목자 아래에서 한 무리 양떼가 될 것이다.
17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다. 그것은 내가 목숨을 다시 얻으려고 내 목숨을 기꺼이 버리기 때문이다.
18   아무도 내게서 내 목숨을 빼앗아 가지 못한다. 나는 스스로 원해서 내 목숨을 버린다. 나는 목숨을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다. 이것은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명령이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나는 ~이다"라는 방식으로 당신을 드러내신 여러가지 말씀 중 하나, 선한 목자의 비유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하신 말씀의 원형은 출애굽기 3장 14절에서 이름을 묻는 모세에게 하느님께서 주신 "나는 곧 나다"라는 대답이랍니다.
  하느님의 이 대답은 노자의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와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을 말로 설명하자니 예수님은 "나는 ~이다"라는 이야기를 여러가지로 남겼습니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세상의 빛이다, 양의 문이다, 부활이요 생명이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참 포도나무다... 오늘 말씀은 나는 선한 목자다.

  말씀을 읽으며 불쑥 대들듯 따져 묻고 싶은 얘기들이 많습니다.
  17절,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이유가 내 목숨을 기꺼이 버리기 때문이라고요? 그게 아비의 사랑입니까? 
  11절 양을 지키려고 목숨을 버려요? 목자가 양을 키우는 이유가 젖을 얻고, 털을 얻고, 결국엔 가죽과 고기를 얻기 위함 아닙니까?
  18절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목숨을 스스로 원해서 버린다고요? 그래서 십자가형을 받고 있는 당신의 죽음은 자살이란 겁니까?

  오늘날 많은 동물들이 멸종되어 가는데 멸종을 걱정하지 않는 동물들이 있습니다. 얼마전 들은 먹거리 관련 강의에서 한 해에 도축되는 동물 수가 소는 3억 400만, 닭은 665억 마리나 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이 잡아먹고 있으니 현재 축산농가에서 키우는 소와 닭은 그 몇 배나 되겠습니까? 누군가의 먹이가 되어 오히려 번성하는 무리들. 
  창세기 1장 28절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말씀이 하느님의 먹이가 되라는 말씀은 아닐까, 자꾸 의심하게 됩니다.

  '까망이'라고 이름붙여준 고양이가 있습니다. 생후 4개월쯤 되어보일 무렵 만났습니다. 길냥이들 서열에서 가장 끝에 있던 이 녀석은 자신의 생존존략을 사람들에게 몸을 부벼대는 것으로 택했습니다. 녀석이 불쌍하여 사료를 사다 먹이를 주었습니다. 나는 고양이를 잡아먹지 않습니다. 지금 까망이는 기도소 컨테이너 안으로 쳐들어와서 꾹꾹이를 할 정도로 친해졌지요. 그 새끼들 깜순이 깜돌이까지 나를 따라 다닙니다. 
  '선한 목자'보다는 차라리 '선한 집사'가 예수를 설명하는 더 나은 비유가 아닐까요?

  오늘 말씀의 초점은 사실 '목자'에 있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선한'에 맞추어져야 옳습니다. '선하다'는 게 무슨 말입니까? 
  마가복음 10장 17절 18절 말씀에 한 사람이 달려와 예수님께 "선한 선생님(Good teacher)"이라고 부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어찌하여 너는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느님 한 분 밖에는 선한 분이 없다."고 말씀하시지요.
  그렇습니다. 목자들은 많고 많지만 선한 목자, 선생님도 많고 많지만 선한 선생님, 부모님도 많고 많지만 선한 부모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선하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탐구해야 합니다. 목자가 선한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선한 것이 아닙니다. 부모님이 선한 것이 아닙니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어버이의 날 노래를 부르는 순간에 친부모에게 학대를 당하고 있는 아이들을 생각합니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 ~" 스승의 날 노래를 들으며, '주영형 사건'을 떠올립니다. 

  선한 목자, 선한 선생님, 선한 부모, 선한 하느님. 선하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선하다'는 것도 역시 하느님의 성품이라서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말로 소통할 수밖에 없기에 각자가 이해하고 있는 방식으로 설명하려 합니다. 거기에 악마의 유혹이 끼어듭니다.
  "결국 너는 잡아먹기 위해 기르는 가축에 불과해!!!"
  예수님은 "나는 너희들의 먹거리다. 빵이다."라고 응수합니다.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고자 하는 핵심은 무엇일까요?
  약육강식의 원리가 지배하는 세상이라고 속삭이는 악마들의 속삭임에 맞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라는 말씀으로 나는 새겨 듣습니다. 그 사랑이라는 것이 어떻게 드러나는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예를들어 보여주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리떼들이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대며 달려드는 때, 이 투쟁의 현장에서, 목자를 자처하는 무리들에게 '사랑으로 충만한 목자들'은 어떻게 하는지 모범을 제시하는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양들을 향한 말씀이 아닌 것입니다.

  목자가 양을 키우는 이유를 아는 나는 스스로 누군가의 양이 되어 그 누군가를 목자로 따르기를 거부합니다. 나는 그저 어떤 일이 있어도 나를 불쌍히 여기고, 나를 지켜주며, 나를 지지해주는 그런 보호자를 찾습니다. 
  아니 누군가의 보호를 기대할 수 없다는 생각에 스스로 나를 지킬 수 있는 힘을 기르고자 애씁니다. 
  그러다가, 그러다가, 그러다가 ... 결국 나는 죽겠지요. 나는 왜 태어났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진정 행복하게 사는 것일까요? 어떻게 죽어야 할까요?

  이 사드저지투쟁의 길에 서 있는 우리는 양으로서 있습니까, 목자로서 있습니까? 이런 방식의 비유가 마음에 들지 않느다 해도 좋습니다. 우리의 의지는 선한 것입니까?
  "어찌하여 너는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느님 한 분 밖에는 선한 분이 없다."는 말씀과 "나는 선한 목자다"라는 말씀을 함께 묶어 묵상합시다.
  그 하느님 한 분이 바로 우리 안에 계십니다. 우리 안에 있는 하느님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그 선하심을 우리의 의지로 드러내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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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도대체 종잡을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 하느님이 나랑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데? 질문하고 싶은 때가 있습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진정으로 사랑하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때 나는 하느님을 향한 사랑을 노래한 CCM가수 소향의 '장미'를 거꾸로 하느님이 나를 향해 들려주는 노래로 듣습니다.
  그리고 그 노래로 다시 동지들에게 사랑을 고백합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 무슨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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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드기지 정문 앞에 올라가 아침평화행동을 하면서는 
#주한미군에_부역하는_똥별들을_숙청하자!
#주한미군의_나팔수가_된_매판언론_숙청하자!
  고 외쳤습니다. 
  4년전 4월 26일. 모든 법과 절차를 무시하고 강제 배치된 사드는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위기에 몰린 수구보수집단이 미국에 구걸하다시피 하여 끌어다 놓은 것입니다. 미국이라는 악마의 집단조차도 새로 들어설 정권과 협의해 나갈 예정이었는데, 위기에 몰린 수구보수집단은 자신들의 살 길을 찾아 적극적으로 사드를 불러들였습니다.
  그들은 북한이라는 환상속의 적을 내세우며, 우리를 지키는 방어용 무기라고 했지만, 사드가 이 나라에 무용지물이라는 것은 그들도 이전까지 미국과의 협상 과정에서 스스로 인정하고 있었던, 미국의 요구를 완곡하게 거절해 왔던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드를 불러들여 이 땅이 전쟁터가 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제 미국과 일본은 한국군 60만 병력을 대중국 봉쇄를 위한 전략에 사용하자고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주한미군이 어떤 이유로 있는가를 노골적으로 정체를 드러내었습니다.
  TV조선은 "동맹, 이대로 좋은가?"라는 탐사보도를 통해, 미국이 요구하는 대로 하지 않는 게 동맹이냐고, 미군의 입이 되어 우리를 다그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리떼들에게 자신들의 양떼를 던져주고 함께 이리떼가 되어버린 악한 목자들입니다. 
  그들 배후의 악마들보다도 더 먼저 때려잡고 싶은 무리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사드오적(박근혜,황교안,김관진,한민구,윤병세)을 비롯하여 그 일에 앞장 선 나팔수 기레기 언론들을 기억합니다. 
  그들은 우리를 악마들에게 인신공양 제물로 바쳤습니다.
  이제 또 며칠 후면 그런 제사의식을 치르게 될 것입니다. 
  코로나가 걱정된다며 모이지 말라고 강조하는 이 정부가 미국과 매판언론이 시키는 대로 사드기지로 향하는 길을 열어주기 위해, 우리를 제물로 바칠 것입니다. ㅠㅠ 

2021.04.25 소성리 아침평화기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