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에서/어떤 분의 깨달음을 고마워하며

생활비 전부를 털었다 (백창욱목사님 설교 2018.11.11)

도덕쌤 2018. 11. 11. 17:04

주일설교문(18. 11. 14) 성령강림 후 스물다섯 번째 주일


마가 12:38-44 “생활비 전부를 털었다”


지난주에 『82년생 김지영』을 읽었습니다. 책 제목은 들어봤을 것입니다. 2017년 9월에 33쇄를 찍었으니 대박친 책입니다. 아들이 읽으라고 준 책인데, 그럴 만 했습니다. 남성이 알기 힘든, 여성이야기입니다. 실제로 1982년에 태어난 여성들의 이름 중 가장 많은 이름이 김지영이라고 합니다. 책 제목인 ‘82년생 김지영’은 현재를 살고 있는 모든 여성의 보편적인 삶을 말합니다. 김지영씨는 세 살 많은 남편과 돌 지난 딸과 함께 서울 변두리 대단지 아파트에 전세로 삽니다. 남편은 IT 계열 회사를 다니고 김지영씨는 작은 홍보대행사에 다니다 출산과 동시에 퇴사했습니다. 겉보기에 매우 평범한 가정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은 김지영씨가 이상한 행동을 하는 걸 발견합니다. 아내가 장모와 똑같은 말투와 표정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홑잠바 하나씩 들고 다녀. 정 서바앙. 아침저녁으로 쌀쌀해.” 자신을 부를 때 정 서바앙, 하고 방 자를 길게 늘이는 것이 정말 비슷했습니다. 남편은 처음에는 아내가 장난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며칠 후, 딸을 재워놓고 오랜만에 마주앉아 맥주 한 잔을 하는데, 김지영씨가 갑자기 남편의 어깨를 툭 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현아, 요즘 지영이 많이 힘들 거야. 저 때가 몸은 조금씩 편해지는데 마음이 많이 조급해지는 때거든. 잘한다. 고생한다. 고맙다. 자주 말해 줘.” 아내가 작년에 죽은 동아리 선배의 말투로 말하는 것입니다. 남편은 장난치지 말라고 김지영씨 볼을 살짝 잡았더니, 김지영씨가 정색하며 손을 탁 쳐 냈습니다. “너, 아직도 내가 한여름에 덜덜 떨면서 고백하던 스무 살 차승연으로 보이는 거야?” 무려 20년 전, 남편과 차승연, 두 사람만 아는 이야기를 김지영씨가 말하자, 남편은 머리칼이 쭈뼛 서고, 더 이상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진짜 일은 추석 때 시댁에서 터졌습니다. 시댁에 온 시누이가 시어머니에게 제사도 지내지 않으니 음식장만하는데 너무 힘들이지 말고 시장에서 사라고 말하자, 시어머니가 서운해서 김지영씨에게 묻습니다. “얘, 너 힘들었니?” 순간 김지영 씨의 두 볼에 홍조가 돌더니 표정이 부드러워지고 눈빛은 따뜻해졌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아이고 사부인, 사실 우리 지영이 명절마다 몸살이에요.” 남편은 급히 아내의 손을 잡아끌었지만 김지영 씨는 그 손을 찰싹 쳐 떼 냈습니다. “정 서바앙! 자네도 그래. 매번 명절 연휴 내내 부산에만 있다가 처가에는 엉덩이 한 번 붙였다 그냥 가고. 이번에는 좀 일찍 와.” 모두 입을 떡 벌리고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데, 시아버지가 호통을 쳤습니다. “지원 에미, 지금 이게 무슨 짓이냐? 어른들 앞에서 뭐하는 짓이야? 대현이랑 수현이랑 우리 가족 다 같이 얼굴 보는 게 1년에 몇 번이나 된다고. 명절에 가족들하고 시간 보내는 게 그렇게 불만이냐? 그랬어?” 남편은 “아버지, 그런 거 아니에요.” 변명하는데, 그 때 김지영 씨가 정대현 씨를 밀어내며 차분히 말합니다. “사돈어른, 외람되지만 제가 한 말씀 올릴게요. 그 집만 가족인가요? 저희도 가족이에요. 저희 집 삼 남매도 명절 아니면 다 같이 얼굴 볼 시간 없어요. 요즘 젊은 애들 사는 게 다 그렇죠. 그 댁 따님이 집에 오면, 저희 딸은 저희 집으로 보내 주셔야죠.” 결국 남편은 아내의 입을 틀어막아 끌고 나갔습니다. 세 식구는 옷도 안 갈아입고 그대로 차에 올랐습니다. 남편은 핸들에 얼굴을 묻고 괴로워하는 동안 김지영 씨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딸에게 노래를 불러 주었습니다. 남편은 화도 나지 않았습니다. 막막했고, 착잡했고, 두려웠습니다. 이후 소설은 남편이 정신과를 찾아가서 아내 상담을 의뢰하고, 정신과 의사가 김지영씨로 부터 들은, 그녀가 살아온 인생을 서술합니다.


이 책을 다 읽고 짧은 소감을 썼습니다. “남성이어서 참 알기 어려운, 여성만이 겪는 정서가 차분하게, 아프게 다가온다. 여기서 말하는 여성의 정서는 구조적이고 사회적인 게 종합적으로 묶여서 여성 한 개인을 덮치는 또는 몰려드는 정서이다. 앞으로 여성을 대할 때는 그냥 말없이 동의하는 태도만 취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중고학생시절, 대학동아리, 회사생활, 결혼과 출산, 양육에 이르기까지 여성만이 절대적으로 짊어져야 하는 의무, 성차이의 불합리함은 고스란히 여성에게 다 돌아옵니다. 82년생 김지영은 한 개인이 아니고 모든 여성을 대표하는 이름입니다. 남성여러분, 우선 제일 가까이에 있는 여성에게 사랑과 존중과 우정을 표하십시오. 지나간 과거야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반성하는 마음으로 지금부터 더 충실히 아내를 위하십시오.


오늘 복음말씀은 율법학자 곧 서기관의 명예욕과 위선, 탐욕을 고발하는 내용입니다. 예수는 그들이 얼마나 명예욕이 강한지, 얼마나 위선적인지를 일상 모습으로 고발합니다. 그들의 명예욕과 위선은 익히 아는 바입니다. 그런데 한 대목에 눈이 갔습니다.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고”입니다. 율법학자들이 과부의 가산을 삼키다니! 그들이 어떻게 과부의 가산을 삼켰다는 말인가? 하는 의문입니다. 그래서 예수살기 카톡에 질문했습니다. “복음말씀에 율법학자들이 과부의 가산을 삼킨다고 했는데, 어떻게 과부의 가산을 삼켰을까 잘 모르겠습니다. 아시는 분 좀 알려주십시오.”라고. 그랬더니 한 분이 바로 답이 왔습니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서기관들은 재산신탁의 업무도 했다고 하네요. 움직이는 은행이었던 거죠.”라고. 서기관이 재산신탁의 업무도 했으면 과부 가산을 삼키는 일은 식은 죽 먹기입니다.


과부 입장에서 보자면, 과부는 의지할 데가 없습니다. 남편은 일치감치 세상 떠났고, 자식은 아직 어려서 물어볼 대상이 못 되고, 세상에 이보다 더 답답한 일은 없습니다. 그럴 때 의지처가 되는 건 서기관입니다. 요즘으로 하면, 교회 목사고 성당의 신부입니다. 그런데 목사나 신부가 탐욕을 품고 있으면, 과부의 가산은 먼저 차지하는 놈이 임자입니다.


마침 비슷한 사례가 있습니다. 지난 주에 민영환이 순국하고 나서 친일매국노 송병준이 민영환 모친을 속여서 목양사라고 지금의 부평땅을 가로챘다고 했습니다. 송병준이 어떻게 과부의 가산을 삼켰는지 보겠습니다. 바람잡이를 내세워서 민영환 부인과 어머니, 두 과부의 마음을 혼란시킵니다. 왕실이 재정난 때문에 땅을 상납하라는 하명이 있을 거라고 운을 뗍니다. 거짓말로 호리는 겁니다. 민영환의 부인 박씨는 긴가민가합니다. “내탕고가 비었다더니, 이제 사인의 재산까지 상납하라는 것인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로다.” 그러다가 “아니다. 아무리 힘이 없는 왕실이라지만, 세상에 왕실 이름을 팔아 거짓 이야기를 꾸며낼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감히 그것은 대역죄가 아닌가.” “그렇다면 이제 어쩌나. 이대로 앉아서 당해야 하나? 집안에 어디 사람이 있어야 뭘 알아보기라도 할 텐데. 시동생은 외국에 있고. 믿을 만한 사람이 있어야 말이지...” 심난해 합니다.


그리고 이틀 뒤 송병준이 찾아와서 바람잡이가 한 말을 똑같이 합니다. 명성황후가 민태호대감(민영환 부친)에게 하사하신 땅이라 왕실이 다시 상납하랍시는 게 아닐까 한다는. 왕실이 상납하란다는 소문을 기정사실화합니다. 어머니와 부인을 만나온 온 송병준은 저절로 웃음이 납니다. “아녀자들이란 아둔해서... 어디 세상 돌아가는 걸 알아야지? 그 집 땅들은 이제 무주공산이로다!”


그리고는 며칠 후 송병준이 시어머니 서씨를 찾아갑니다. “상납을 하라고 하면 피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니 궁내부에서 일을 진행하기 전에 먼저 손을 쓰는 게 상책입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제가 얼마 전에 만든 일진회가 그 땅을 산 것처럼 해두는 것입니다. 지금 일진회라고 하면 감히 아무도 이래라 저래라 소리를 못하는 형편입죠. 그러니 왕실도 더는 어쩌지 못할 것입니다.” “마님께서 목양사를 일진회에 판다는 가장 매매계약서에 도장만 찍어주시면 됩니다. 제가 책임지고 잘 지키고 있다가 장손 범식이 십오 세가 되면 돌려주겠습니다. 그때 가서 다시 일진회로부터 그 땅을 매수하시는 것처럼 재차 서류만 꾸미면 됩니다.”


“그렇다면, 송대감 말처럼 해봅시다.” 기뻐 손뼉이라도 치고 싶은 마음을 숨긴 송병준과 오신묵(바람잡이) 두 사람은 가져온 서류를 서씨 앞에 내밉니다. 일본말과 한문을 섞어 쓴 서류는 간단했습니다. 눈이 어두워 잘 보이지도 않고 읽어봐야 일본말이 섞여 있으니 알아보기도 힘듭니다. 서씨가 아들 영환의 도장을 찍었습니다. 서씨가 찍은 도장을 확인한 오가가 말합니다. “도장 쓰신 옆에다 수결로 마님 성함을 한 번 써 주십시오.” 서씨는 그가 내미는 이상하게 생긴 물건을 받아 서툴게 자신의 이름을 썼습니다. 일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두 사람은 배웅하는 서씨에게 공손이 허리 굽혀 인사를 했습니다. 허리는 굽혔으나 가슴은 터질 것만 같습니다. 나중에 민영환의 동생이 반환소송을 하지만 되레 재판은 목양사 땅은 송병준 것이라는 절차가 되고 맙니다. 마치 삼성의 비리와 불법을 밝혀냈는데 정작 재판에서는 삼성의 손을 들어주는 것과 같습니다.


송병준이 민영환의 어머니와 부인, 두 과부를 속이고 목양사땅을 가로챈 이야기를 자세히 하는 이유는 서기관이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것도 이런 방법일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물어볼 데도 없고, 물정도 모르는 과부입니다. 이런 사람을 말로 호리는 건 식은 죽 먹기입니다. 매매계약이라고는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사람이 계약서 내용도 모른 채, 서기관을 믿고, 설마 서기관이 나를 속여 먹으랴 하면서, 찍으라는 데 찍고 쓰라는 데 씁니다. 그렇게 두 눈 멀쩡히 뜬 체, 가산을 털립니다. 과부가 뒤늦게 일이 잘 못 된 것을 알아차리고 서기관에게 항의해 봤자, 소용없는 일입니다. 이미 그런 때를 대비해서 서기관은 둘러댈 거짓말이 열 가지는 있습니다. 가로 채기로 마음먹은 이상, 과부 가산 삼키는 건 일도 아닙니다. 지금은 어떨까요? 신자를 잘 호리는 사람이 능력자로 인정받습니다. 신앙과 신학 양심상, 도저히 할 수 없는 말과 일을 하나님 이름으로 합니다. 과부의 재산을 빼먹으려고 궁리에 궁리를 합니다. 세상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다투는 교회 소송건은 거의 모두 돈문제 입니다.

 

복음서에서 예수가 말씀하는 사례들은 짐작이나 예측이나 가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모두 실제 일입니다. 예수가 실제 경험하거나 목격하거나 확인한 사실입니다. 예수는 최근에 서기관이 과부를 털어먹었다는 소문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율법학자들을 조심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특히 예수는 가산을 털린 과부의 안부가 매우 궁금했습니다. 그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나? 그런데 마침 성전을 둘러보다 한 과부를 봤습니다. 예수는 이 과부에게 특별한 애정을 쏟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헌금함 맞은쪽에 앉아서 사람들의 헌금을 관찰했습니다. 부자들은 제법 뭉태기 돈을 넣었습니다. 그런데 가난한 과부는 겨우 동전 한 닢을 넣었습니다.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예수는 제자들을 부릅니다. 그리고 과부의 헌금을 장엄하게 칭찬합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헌금함에 돈을 넣은 사람들 가운데, 이 가난한 과부가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이 넣었다.” 이 말씀에 대해 예수가 헌금의 양보다 질을 말한 것이라고 하는데, 좀 더 접근하자면, 예수는 헌금에 최선을 다하는 과부에게 따뜻한 용기를 불어넣어 주기 위해서입니다. 과부는 진짜 가진 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머니를 온통 뒤졌습니다. 다행히 동전 한 닢이 나왔습니다. 과부는 주머니를 털어서 그 돈을 헌금으로 바쳤습니다. 아마 이 돈은 쌀 한 줌 값일 것입니다. 그러나 과부는 하루 저녁 끼니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께 우선 자기 마음을 바치고 싶었습니다. 예수는 그 마음이 고마웠습니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헌금이지만, 예수님은 과부의 헌금을 최고로 인정했습니다. 성한 사람도 살기 힘든 세상에서 생존에 급급한 과부는 얼마나 고단할까. 그런 현실에서 성전에 올라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주머니를 뒤져서 생활비 전부를 털어 넣다니!


예수께 최상의 칭찬을 들은 과부는 완전히 새로운 삶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동안 생존에 눌린 삶의 정서를 완전히 벗어나고 새로운 영혼으로 존재가 변했다고 믿습니다. 과부는 이제부터 이전과 다른 삶을 살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 믿는 보람입니다. 영혼이 거듭나는 것. 존재가 변하는 것. 하나님 현존의 풍성함을 맛보면 우리는 진짜 예수의 사람이 됩니다.


힘들고 고단한 삶에서, 자신을 덮치는 고난과 위기 앞에서 과부의 헌신을 배우십시오. 과부는 자신이 겪은 아픔과 상처를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하나님께 헌금했습니다. 그 결과 주님께 보상받았습니다. 최고로 하나님 현존 안에 머무는 은총을 누렸습니다. 82년생 김지영을 비롯하여 대한민국 현대인의 생활 자체가 힘들고 고단합니다. 그 안에서 비즈니스가 된 종교업자에게 털리는 일도 있습니다. 얼마든지 신앙을 떠날 구실이 됩니다. 마음을 알아차리고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는 마음챙김이 절실합니다. 여러분, 지금 현재 여기에서 사랑하고 기뻐하고 평화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다같이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