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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도덕쌤 2018. 12. 27. 23:07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2018. 12. 28. 금)(마태 2,13-18)

 

<헤로데가 아기들을 학살하다.>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이라는 축일 이름은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억울하게 죽은 베들레헴의 아기들이

‘죄 없는 아기들’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아기들을 ‘죄’와 연결해서 표현하는 것은 많이 이상하고,

무엇을 강조하기 위한 명칭인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사실 모든 아기들은 ‘죄 없는 아기들’입니다.

그래서 베들레헴의 아기들에게 죄가 없었다는 것을

특별히 더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순교자들의 죽음은, 즉 순교는,

자신들의 죄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 때문에 당하는 죽음입니다.

그냥 ‘베들레헴의 아기 순교자들 축일’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당하지 않을까?)

 

베들레헴의 아기들이 죽은 것과 같은 사건은 인류 역사에서 자주 일어났고,

오늘날에도 자주 일어나는 일이고, 이해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현실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건들에 대해서 말할 때,

‘하느님의 뜻’이라는 말을 함부로 사용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억울하게 죽는 것이 ‘하느님의 뜻’일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의 뜻은 우리가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런 사건은 하느님의 뜻을 방해하는 인간의 범죄입니다.

 

“박사들이 돌아간 뒤, 꿈에 주님의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너에게 일러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없애 버리려고 한다.’

요셉은 일어나 밤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서,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내가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마태 2,13-15).”

 

천사는 헤로데의 위협을 요셉에게만 알려 주었을까? 다른 집에도 알려 주었을까?

아니면 요셉은 다가오는 위험을 혼자서만 알고 떠났을까?

떠나기 전에 다른 집에 말해 주었을까?

우리는 당시 상황을 모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성가정만 보호해 주시고,

다른 집은 외면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또 요셉이 그렇게 이기적인 사람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다른 집에도 똑같은 경고를 했지만, 사람들이 그 경고를 무시한 것은 아닐까?)

 

마태오복음서 저자는 구약성경에 있는 예언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 설명은 이미 일어난 사건에 대한 해석일 뿐이고,

하느님께서 구약성경의 예언을 실현시키려고

베들레헴의 아기들이 죽게 내버려 두셨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설명은 성가정이 이집트로 피난 갔다가 되돌아온 일에 대한 설명일 뿐이고,

베들레헴의 아기들이 죽은 사건에 대한 설명은 아닙니다.)

만일에 아기들이 있는 베들레헴의 가정들이 모두 함께 이집트로 피난을 갔다면?

그랬어도 구약성경의 예언대로 이루어진 일이 될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구약성경의 예언은 호세아서 11장 1절입니다.

“이스라엘이 아이였을 때에 나는 그를 사랑하여,

나의 그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호세 11,1).”

마태오복음서 저자가 성가정의 이집트 피난을 호세아서의 예언과 연결한 것은,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의 이집트 탈출을 몸소 겪으셨다고 말하기 위해서인데,

이것은 “예수님은 해방자” 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크게 화를 내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보내어, 박사들에게서 정확히 알아낸 시간을 기준으로,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그리하여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라마에서 소리가 들린다. 울음소리와 애끊는 통곡 소리.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운다. 자식들이 없으니 위로도 마다한다.’(마태 2,16-18)”

 

헤로데는 동방박사들에게 아기를 찾거든 알려 달라고 부탁했었습니다(마태 2,8).

동방박사들은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 경배한 뒤에, 꿈에 지시를 받고 헤로데에게 가지 않고

다른 길로 해서 자기 고장으로 돌아갔습니다(마태 2,12).

여기서 “헤로데는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라고 표현되어 있는데,

동방박사들은 헤로데를 속인 것이 아니라 약속을 안 지킨 것이고,

그들이 그렇게 한 것은 천사의 지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헤로데는 왜 처음부터 군인들을 동방박사들과 함께 보내지 않았을까?

어떻든 그는 자기의 왕권에 위협이 되는 아기 하나를 죽이려고

베들레헴 일대의 모든 사내아이들을 죽였습니다.

 

여기에 인용되어 있는 예레미야의 예언은,

인용된 부분만 보면,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슬픔을 말하는 예언,

즉 이스라엘의 멸망을 슬퍼하는 예언이지만,

예레미야 예언서를 보면 위로와 희망의 예언이 바로 뒤에 이어져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라마에서 소리가 들린다. 비통한 울음소리와

통곡 소리가 들려온다.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운다. 자식들이 없으니 위로도

마다한다. -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 네 울음소리를 그치고 네 눈에서

눈물을 거두어라. 네 노고가 보상을 받아, 그들이 원수의 땅에서 돌아올 것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네 앞날은 희망이 있다. 주님의 말씀이다. 네 자녀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리라.’(예레 31,15-17)”

(마태오복음서 저자가 이 예언을 인용한 것은,

단순히 아기들이 죽은 사건만을 설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위로와 보상을 말하면서 위로하기 위해서라고 해석됩니다.

인간 세상에는 참으로 억울한 죽음이 많은데,

하느님은 그런 희생자들을 외면하거나 그런 일에 무관심한 분이 아니라,

그런 일들을  가슴 아파하시고, 안타까워하시고,

어떻게든 위로와 힘과 구원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우리 교회가 베들레헴의 아기들을 순교자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 아기들이 예수님 때문에 죽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아기들은 예수님을 몰랐고, 자기들이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몰랐고,

예수님을 살리려고 죽은 것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예수님 때문에’ 죽은 것은 사실이고, 그래서 그들의 죽음은 순교입니다.

지금 그 아기들은 하늘나라에서 다른 순교자들과 함께

순교자의 영예와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행복을 누리고 있을 것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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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Rev.S.Moy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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