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고백/소성리 사드저지기독교현장기도소

진밭교 토요평화모임 이야기 / 새마갈노 소성리편지 05(2019.12.16)

도덕쌤 2020. 1. 20. 06:21

소식을 전하지 못한 게 벌써 3주나 되었네요.

그 동안 개인적으로는 여러가지 일이 있었지만 자세한 얘기는 부록으로 전할게요.

오늘은 진밭교 토요평화모임에서 만난 두 분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기독교현장기도소가 주관하던 아침기도회가 사드투쟁에 참여하는 다양한 그룹들이 함께 진행해보자면서 지난해 9월부터 달라졌었습니다. 기독교, 원불교, 주역이야기, 토요평화모임 등 요일별로 나누어 맡아 진행하게 되었지요.

토요평화모임은 이야기 손님을 초대하여 주로 그분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데 특별한 시기에는 주제강연이나 토론 등을 하기도 했습니다.

손님으로 초대하는 분들은 사드투쟁 과정에서 만나는 분들 가운데 토요일 아침 일찍 진밭교로 모실 수 있는 분들로 자주 오기 어려운 분들도 시간이 맞으면 적극적으로 찾아 모십니다.

그동안 참 많은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지요.)


지난 주에는 노곡리의 박태정 이장님을 초대했었고, 오늘 아침에는 마을회관 광장에 나오는 최고령 할머니 이호기 할머님을 모셨습니다. 




18대 대선 때 박근혜를 지지하고 박근혜가 안 되면 어쩌나 하면서 조바심을 낼 정도로 수구보수였다고 고백하는 박태정 이장님. 지금은 "미국놈은 폭삭 망해라" 반미구호가 입에 붙은 분이십니다. 사드기지에서 김천방향으로 불과 500m 앞에서 사과농사를 짓는 이장님은 사드반대투쟁과정에서 한미동맹의 허구성을 깨닫고 당신이 평생 믿고 따르던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생각들이 국민학교 시절 조회 때마다 낭독하던 혁명공약으로부터  청년시절 새마을교육에 이르기까지, 학교 선생님들을 비롯하여 시장 군수 지서장 등 관리들이 총동원된 세뇌교육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었음을, 그것이 세상을 바로보지 못하게 했음을 알게 된 것이지요.

제게는 이장님과 비슷한 연배의 형님이 있습니다. 얼마전에 제가 ["사드가고 평화오라" 노래를 부릅시다] 새마갈노 기사를 페북에 올렸더니  거기에 댓글을 달았습니다. " 동생이라는 천륜이 있기에 치미는 분을 삭히고 만다만 그만 해라." 

예전에는 여야 어느 한쪽에 치우친 모습을 보기 어려웠는데, 아니 야당쪽에 더 가까운 모습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 변했는지 궁금합니다. 지난 해는 뜬금없이 '태극기부대' 집회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오기까지 했답니다. 

무엇이 사람을 변하게 만들까요?

더 많은 사람들이 이장님과 같은 변화를 겪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만, 그렇다고 사드배치 과정에서 보았던 폭탄돌리기를 전국적으로 계속해갈 수도 없고... 비극을 겪어봐야 각성한다는 결론은 사람을 바꾸지 못하는 나의 무능함에 대한 변명, 책임회피 아닌가 반성하게 됩니다. 

형님의 변화에는 '가족을 포기한 싸가지 없는 동생'의 책임도 있지 않을까 반성하면서, 더 세밀하지 못한 더 친절하지 못한 더 인내하지 못한 지난 날을 후회하게 됩지다. 

아무튼 지난 주 토요일에는 치밀한 공작을 통해 대중을 조작해내는 저 악마의 무리에 맞설 수 있는 하늘의 방식을 찾아 침묵으로 들어갔습니다. 




이호기 할머님은 지금도 어린 시절 외웠던 황국신민서사와 기미가요를 기억할만큼 총기가 남다른 분입니다. 할머님이 직접 겪은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에 대한 질문에 3주전 초대소님이었던 장경순 할머님의 말씀과 일치하는 답변이 있었습니다. 낙동강 전투가 치열했던 시기에 소성리에는 인민군야전병원과 빵공장이 있었습니다. 스무살 안팎의 처녀나 새댁들은 전쟁중에 겪을 몹쓸 짓을 걱정하여 산속에 숨어 인민군들의 행태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일제시대 강제징용이나 정신대 끌려가는 것을 걱정해야 했던 사람들이 다시 전쟁의 와중에 인민군들의 치하에서 어떤 일을 겪게될까 두려웠던 것이겠지요. 그런데 "빨갱이도 우리랑 같은 사람이더라"고 안심하며 동네로 나오게 되었답니다. 인민군들이 북한에 두고온 부모형제를 생각하며 동네사람들을 대했다는 얘기, 인민군들이 후퇴한 후 부역자로 처벌받을 것이 두려워 몇 년간을 숨어지내던 사람이 결국 자수하여 감옥에 갔다가 돈을 써서 살아나왔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여성과 어린이라는 얘기를 떠올리며 우리민족이 현대사에서 겪은 일제와 미군정 그리고 인민군 치하, 그 중에서 여성과 어린이들이 가장 모진 경험을 해야 했던 시절은 언제일까 궁금해졌습니다.

사드가 소성리로 들어오던 날에도, 발사대가 추가배치 되던 날에도 소성리 할매들은 길바닥에서 혹은 조금 멀리 떨어져서 현장을 겪었습니다. 할매들은 그 경험이 일제나 6.25때보다 잔인했던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지난 겨울 강추위가 몰아닥친 아침에 대구의 병원으로 진료받으러 나가시느라 버스를 기다리던 할머님에게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와 몸을 녹이도록 권했던 일을 기억하시며, 그때 덕분에 얼어죽지 않았다고 새삼스레 제 손을 꼭 감싸주시며 인사를 하십니다. 평화백배 시간이면 광장에 나와 의자에서 허리숙여 함께 기도하시는데, 당신이 사드반대하면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하십니다.

기력이 딸리시는 몸으로 오늘 아침에는 불법사드기지 정문앞까지 함께 올라가 "사드빼라! 미군 빼라!" 구호도 외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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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지 못한 3주 소식을 부록으로 전합니다.

11월 24일 주일에는 대구마가교회 소성리현장예배가 있었습니다. 대구마가교회는 2017년 6월 첫 소성리현장예배를 드린 후 꾸준히 현장예배로 사드투쟁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매월 마지막주에 예배를 드립니다.

11월 25일부터 30일까지 서울에 다녀왔습니다. 예수살기 후원의 날 행사가 25일 월요일에 있었고, 29일과 30일 금토에는 저의 환갑연을 가족들과 치렀습니다.

30일 밤에 다시 소성리로 내려오는 중에 차가 고장나서 충주쯤부터 초전면까지 견인차로 내려왔습니다. 냉각수가 엔진속으로 새어들어가 바닥나면서 엔진온도가 최고로 치솟았는데 마침 졸음쉼터가 가까이 있어 무사히 대처할 수 있었습니다. 견인비 26만원, 엔진수리비용 150만원. 다시 중고차를 구하느니 그냥 수리해서 쓰기로 했지요.

12월 1일 주일에는 소성리에서 사드반대투쟁을 함께해온 분들과 다시 한번 잔치를 했습니다. 제 평생에 가장 성대한 생일잔치였던 것같습니다. [사드철회평화회의]에서 주는 감사패를 받았습니다.


12월 5일은 원불교진밭교당의 기도가 1000일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박근혜 탄핵이 확정되던 날 진밭교에서는 롯데골프장이 국방부로 넘어가서 철조망을 둘러치고 주민들의 통행이 금지되었습니다. 원불교교무님들이 이에 항의하여 진밭교에 연좌하였고 철야기도로 이어졌지요. 주민들이 전해준 비닐을 뒤집어쓰고 며칠을 대치하다가 첫번째 범국민평화행동을 하던 날 예수살기와 향린공동체가 마지막까지 남아 천막을 세우면서 진밭교당이 되었습니다. 4일부터 1박2일로 진행된 "천일의 적공" 기념행사에 한상열목사님, 최헌국목사님, 백창욱목사님 함께하셔서 기도와 말씀 전해주셨습니다. 



12월 11일에는 수요집회를 마을회관앞이 아니라 불법사드기지 정문앞에서 치렀습니다. 이제 송년분위기로 넘어가기 전에 투쟁결의를 높이며 진밭교에서 정문앞까지 행진하여 집회를 진행했는데 평소보다 두 배 정도의 인원이 참여하였습니다. 발사대 추가배치가 이뤄지던 날 기지안으로 진격해 들어갔던 청년들이 함께하면서 무죄판결받은 일을 보고해주었습니다.



12월 13일 토요문화제를 치르기 전에 성탄장식을 했습니다. 저는 성주지역운동사답사모임에 다녀왔는데, 그 사이에 원불교 강현욱교무님이 컨테이너마다 문앞에 성탄장식을 붙여놓았네요. 광장 무대에도 반짝반짝. 3년째 원불교교무님이 꾸며주는 성탄장식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제 부족함을 이렇게 메워주시네요.


사드기지 관련 기사가 그동안 별로 없다가 최근에 환경영향평가를 시작도 못했다는 둥, 여전히 내년에도 임시배치로 갈 것 가타는 둥, 잠깐 보도를 탔습니다. 여지껏 육로로는 미군들의 통행이 막혀 있고, 유류반입은 물론 공사자재 반입도 저지하고 있는 모습으로 사드반대투쟁이 얼마나 강인하고 치열하게 진행되어 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헬기까지 막을 수 있는 능력은 없습니다. 현재 헬기로 공사자재와 임시숙소용 컨테이너가 골프장 안으로 상당히 많이 반입되어 있습니다. 다만 공사 개시는 내년 봄으로 미루어 둔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따라 매주 세 차례에 걸쳐 미군숙소앞 철조망까지 올라가던 '둘레길 평화행동'을 당분간 매주1회로 줄이기로 했습니다. 다음 주부터 미군숙소 앞 평화행동은 매주 월요일 오후 1시 소성리 마을회관 앞에서 출발합니다.


출처 : 새마갈노(http://www.esw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