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에서/어떤 분의 깨달음을 고마워하며

[스크랩] 연중 제34주간 화요일

도덕쌤 2018. 11. 27. 23:42

<연중 제34주간 화요일>(2018. 11. 27. 화)(루카 21,5-11)

 

<성전의 파괴를 예고하시다. 재난의 시작>

 

우리는 큰 재난이나 대규모 전쟁이 일어나면,

“혹시 종말이 온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하면서 불안해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런 일들이 종말의 표징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전쟁이나 재난들은 인류 역사에서 늘 있었던 일입니다.

그리고 종말의 날은 미리 예고되지 않고 갑자기 올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재난들은 종말의 표징이 아니라고 강조하시는 것은,

사람들이 그런 일이 생기면 두려워하면서 회개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다가,

그런 일이 지나가면 마음이 풀어지고 방심하게 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재난이 일어날 때에만 긴장할 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늘 깨어 있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회개는 평소에, 즉 ‘지금’ 해야 할 일입니다.

진짜 종말이 닥치면, 그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회개할 틈도 없이 모든 것이 끝나버릴 것입니다.

 

“몇몇 사람이 성전을 두고, 그것이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졌다고

이야기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루카 21,5-6)”

 

1) 예수님의 ‘예루살렘 성전 파괴 예고 말씀’은,

‘회개하지 않으면’ 파괴될 것이라는 경고 말씀입니다.

앞의 19장에, 예수님의 ‘예루살렘 멸망 예고 말씀’이 나오는데(루카 19,41-44),

예루살렘 멸망과 예루살렘 성전 파괴는 하나의 사건이고,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한 일입니다.

2) 이 말씀을, 인간들이 자랑하는 현세적인 것들은 모두, 하느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라는 말씀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사람들이 성전을 두고 그것이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졌다고

이야기했다는 것은, 그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보면서, 즉 성전의 겉모습만 보면서

아름답고 훌륭하다고 감탄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언젠가는 성전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묵시록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나는 그곳에서 성전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과 어린양이

도성의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묵시 21,22).”

종말 후의 새 예루살렘에 성전이 없다는 것은, 종교라는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회개하지 않아서 없어지든지, 아니면 임무를 완수했기 때문에 없어지든지 간에,

종교, 성전, 사제직 등은 모두 종말 전까지만 존재하게 됩니다.

(영원하지 않은 것들을 붙잡고서 집착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스승님, 그러면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그 일이 벌어지려고 할 때에 어떤 표징이 나타나겠습니까?’(루카 21,7)”

 

여기서 ‘그런 일’이라는 말은 성전 파괴를 가리키는데,

당시 사람들은 성전이 파괴되는 날을 종말의 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라는 질문은,

“종말의 날은 언제입니까?” 라는 뜻이고,

“그 일이 벌어지려고 할 때에 어떤 표징이 나타나겠습니까?” 라는 질문은,

“종말의 표징은 무엇입니까?” 라는 뜻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종말의 날과 표징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궁금증은 단순한 호기심일 수도 있지만,

종말을 미리 알고서 대비하려는 심리, 그러나 회개와는 거리가 먼 궁금증입니다.

(회개는 자신의 삶을 하느님 뜻에 합당하게 바로잡는 일이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일입니다.

그러나 종말의 날이 언제인지 미리 알아내서 대비하려는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이 아니라 육신의 생명을 보존하려는 생각만 합니다.

그것은 회개하는 모습이 아닙니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그리고 너희는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 그러한 일이 반드시 먼저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바로 끝은 아니다(루카 21,8-9).”

 

그동안 가짜 재림 예수, 또는 가짜 예언자들이 나타나서

종말에 대해서 말하는 일들이 많았고, 지금도 많습니다.

그런 자들에게 속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또 그동안 전쟁도 많이 있었습니다.

(종말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큰 전쟁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일들은 종말의 표징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반드시 먼저 벌어지겠지만”이라는 말씀은,

종말 전에 반드시 전쟁이 일어나야 한다는 뜻은 아니고,

“인류 역사에서 늘 있었던 일이다.” 라는 뜻일 수도 있고,

“하느님의 어떤 섭리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라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어떻든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무서워하지 말라는 말씀은,

종말이 그런 식으로 오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고,

무서워하지만 말고 회개하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먼저’ 라는 말은, ‘종말이 오기 전’을 가리키는 말일 뿐이고,

어떤 시간표가 있어서 그 표에 있는 순서대로 진행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것이 바로 끝은 아니다.” 라는 말씀은, 가짜 재림 예수, 거짓 예언자,

전쟁, 반란 등이 종말의 표징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나며,

큰 지진이 발생하고 곳곳에 기근과 전염병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과 큰 표징들이 일어날 것이다(루카 21,10-11).”

 

이 말씀도 앞의 말씀과 같습니다.

전쟁, 반란, 지진, 기근, 전염병, 어떤 천문학적 현상들이 생기겠지만,

그런 일들이 종말의 표징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종말이 오기 전에 빨리 회개하라는 경고로 생각할 수는 있습니다.)

우리가 무서워해야 할 일은,

그런 일들 때문에 육신의 목숨을 잃게 되는 일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고 있다가 영혼을 잃게 되는 일입니다.

“나의 벗인 너희에게 말한다.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누구를 두려워해야 할지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육신을 죽인

다음 지옥에 던지는 권한을 가지신 분을 두려워하여라.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바로 그분을 두려워하여라(루카 12,4-5).”

여기서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이라는 말씀을,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건들지 못하는 재난들”로 바꿔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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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Rev.S.Moy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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