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고백 75

자가격리위반으로 신고되어 조사를 받았다.ㅠㅠ

((블로그에 마지막으로 일기를 쓴 지 한 달 보름. 그 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다. 글로 남길 틈도 없이 계속 벌어지는 일들 때문에 많은 생각들이 속으로 삼켜지기만 했다. 그래도 습작시 한 편(딱새와 거울)과 현장기도소의 보고서로 쓴 [군용물 손괴 미수라고 징역 2년?]이란 글이 있긴 하지만, 날숨은 없이 들숨만 쉬고 살아온 셈. 대구마가교회 현장예배 설교를 부탁받았을 때 수락하지 못한 일이 못내 아쉬웠다. 오늘의 일기는 먼저 지난번에 일기를 썼던 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해 두는 데서부터 시작해야겠다. 사순절 시작과 함께 사드기지 철조망 둘레를 걷는 '여리고 기도'를 계획했었다. 홀로 실행하는 것이어서 계획이 몇 차례 수정되어 진행되었고, 마지막엔 코로나 확진자가 되면서 중단되었다. 여리고 기도를 구상하며..

군용물 손괴 미수라고 징역 2년?

지난 해 4월 28일, 사드기지 육로통행로 확보를 위해 매주 화, 목 두 차례 경찰을 동원하기 전에 전쟁을 겪듯이 격렬했던 날. 사드 레이더를 가동하기 위한 장비들 중 발전기를 신형으로 교체하려고 경찰 2000여 명을 동원하여 소성리를 짓밟았던 날이다. 당시에는 평균 한 두달에 한 번씩 격렬한 전쟁을 치렀었다. 난 이날 기도소 컨테이너 지붕 위에서 페북라이브로 현장 중계를 하다가 경찰이 주민들을 모두 들어내고 차량들을 기지 안으로 들여보낼 무렵, 선두에 선 군용트럭을 향해 나사못을 뿌리는 퍼포먼스를 실행했었다. ☞ 관련 글 : 국가가 버린 소성리 사람들, 어떤 퍼포먼스 (군용물 손괴 미수?) 어떤 퍼포먼스 (군용물 손괴 미수?) [군용물 손괴 미수?] 성주경찰서의 출석 요구를 받고 조사를 받고 왔다. 4..

달라진 경찰들 대응방식(2022.03.02)

지난 주부터 경찰들을 동원하여 길을 여는 날이 주 2회(화,목)에서 주 3회(화,수,목)로 늘어났다. 이와함께 도로에서 드리는 기도회도 원천봉쇄하겠단다. 특별한 무엇이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아무 마찰 없이 들어가던 차량들인데, 국가가 주민들을 폭력적으로 대하지만 않으면 평화로이 넘어갈 하루인데, 이 문재인 정부는 미국의 요구를 얼마나 잘 수용하고 있는지 보여주기 위해 소성리주민들과 연대자들을 짓밟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페북 라이브 영상을 참고.) https://www.facebook.com/HyungGoo.Kang/videos/325963796169694 오늘도 격렬하게 하루를 보냈습니다. 새벽부터 시작한 "병참선 저지 아침평화행동". 오늘은 평소에 건들지 않던 '카메라맨' 저까지도 마을회관 ..

누구를 마귀라고 생각하는가? (전쟁귀신 몰아내는 기도, 함께합시다)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을 1주일 앞둔 오늘, 성서일과 복음서 말씀은 마가복음 9장 38절부터 40절까지 말씀이었습니다. 요한이 예수께 “선생님, 어떤 사람이 선생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았는데 그는 우리와 함께 다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일을 못하게 막았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말리지 마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행한 사람이 그 자리에서 나를 욕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우리와 함께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예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사람'을 가로막은 요한에게, 예수님은 '그 사람은 우리편'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내 이름으로 기적을 행한 사람이 그 자리에서 나를 욕하지는 못할 것'이라며..

[미싱타는 여자들] 감상 후기(호경아 고마워)

36년전 가르쳤던 제자를 다시 만났다. 설 명절연휴를 보내고 소성리로 복귀하던 날 (2월 6일) 갑자기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 시작된 만남이었다. 중년의 여인이 되었지만 다시 학창시절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로 돌아가 "그래. 그랬니? 그랬구나..." "선생님은 너네들에게...." 편하게 말을 주고 받았다. 이렇게 편하게 얘기해도 되는 건가 싶었는데,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 소속된 단체에서 '감사'라는 직분을 맡고 있어서 총회를 앞두고 한 해 살림을 살펴보러 서울 다녀오는 길에 연락을 했다. 내려오기 전에 서울역에서 얼굴 한 번 보자고. 만사를 제껴두고 달려온 제자와 세 시간을 보냈는데 아직도 나누고 싶은, 또는 듣고 싶은 얘기가 끝나지 않았다. 마침 설 명절연휴가 끝난 2월 4일 [미싱타는 여자들]을 보았..

꼴통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역사 (조선 독립을 지지한 나라는? )

2년전, 태극기부대가 퍼뜨리는 유투브 영상들과 카톡메시지에 현혹된 형님에게 쓴 글을 다시 읽었다. 긴 글을 소화해내지 못하는지, 글쓴 보람을 느끼지 못했다. 오늘은 좀더 짤막하게 그 글의 주요 부분을 옮겨 본다. 붉은 글씨에 주목해 주길 바란다. 우리가 우방이라 믿는 영국이나 미국의 입장이 지금은 달라졌을까? 우리의 즉각 독립을 지지해 준 나라들은 어떤 나라들이었나? 세계 6위의 군사력을 가졌다는데도 "아직 전시작전지휘권을 행사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말하는 자들. 그들이 지금도 이 나라를 신탁통치하고 있지 않은가? 일본이 패망한지 넉 달도 더 지나서야 한반도의 운명을 어떻게 결정지을 것인지 연합국이 모스크바에 모여 의논을 하였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우리는 해방이다, 독립이다, 광복절이라고 기념하..

주현절 - 소성리를 기억하는 절기를 꿈꾸다

[마태 2:7-12] 7 그 때에 헤로데가 동방에서 온 박사들을 몰래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정확히 알아 보고 8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가서 그 아기를 잘 찾아 보시오. 나도 가서 경배할 터이니 찾거든 알려 주시오" 하고 부탁하였다. 9 왕의 부탁을 듣고 박사들은 길을 떠났다. 그 때 동방에서 본 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 마침내 그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10 이를 보고 그들은 대단히 기뻐하면서 11 그 집에 들어 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리고 보물 상자를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12 박사들은 꿈에 헤로데에게로 돌아 가지 말라는 하느님의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나라에 돌아 갔다. 교회절기로 1월 6일은 주현절이고..

무엇을 보러 나갔느냐? - 달마산 해맞이 기원 (2022.01.01)

[무엇을 보러 나갔느냐] (누가복음 7:24-26) 24 예수께서는 요한의 제자들이 떠나 간 뒤에 요한을 두고 군중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었느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25 아니면 무엇을 보러 나갔었느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냐? 화려한 옷을 입고 사치스럽게 사는 사람들은 왕궁에 있다. 26 그렇다면 너희는 무엇을 보러 나갔었느냐? 예언자냐? 그렇다. 그러나 사실은 예언자보다 더 훌륭한 사람을 보았다. +++ 새해, 2022년 해맞이를 하러 달마산에 올랐습니다. 그믐달이 걸린 하늘. 모처럼 눈썹 모양 그대로 달을 사진에 담을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지만, 어제 몸살을 앓던 여파가 있어서 산길이 힘들었습니다. 소성리 마을의 사진전문가 다정표고농장 형님은 카메라를 ..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키우기

2021년 12월 26일 주일 마가교회 소성리현장예배 설교문 [루가 2:41-52] 41 해마다 과월절이 되면 예수의 부모는 명절을 지내러 예루살렘으로 가곤 하였는데 42 예수가 열두 살이 되던 해에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43 그런데 명절의 기간이 다 끝나 집으로 돌아올 때에 어린 예수는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그의 부모는 44 아들이 일행 중에 끼여 있으려니 하고 하룻길을 갔다. 그제야 생각이 나서 친척들과 친지들 가운데서 찾아보았으나 45 보이지 않으므로 줄곧 찾아 헤매면서 예루살렘까지 되돌아갔다. 46 사흘 만에 성전에서 그를 찾아냈는데 거기서 예수는 학자들과 한자리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는 중이었다. 47 그리고 듣고 있..

제 상담자가 되어 주십시오.(마가교회현장예배 설교문 211031)

마가교회 소성리 현장 예배 설교문(2021.10.31) (오늘의 성서일과 = 시편 146편 , 룻기 1:1-18, 히브리서 9:11-14 , 마가복음 12:28-34) 장로 직분을 받고난 뒤, 목사님을 대신해서 설교(說敎)를 하게 되는 때가 가끔 생깁니다. 그러나 따로 신학을 공부한 적이 없어서 설교가 뭔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자신이 없습니다. 설교가 하느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거라면 성령의 감동으로 그저 입술만 빌려드리면 될 일이니, 성령의 감동을 구하기만 하면 되겠지요? 옛날 제가 써나갔던 글들을 다시 읽다보면 과연 성령의 감동을 받았었나 싶은 글들도 꽤 있어서 다행입니다. 특히 2014년 블로그에 오늘의 묵상이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어 썼던 글들은 내가 성령의 감동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런 얘기들을 써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