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에서/어떤 분의 깨달음을 고마워하며

[스크랩] 12월 17일(대림 제3주간 월요일)

도덕쌤 2018. 12. 16. 23:27

<12월 17일(대림 제3주간 월요일)>(2018. 12. 17. 월)(마태 1,1-17)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1) 마태오복음서 저자가 예수님의 족보를 기록한 것은,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약속하신 메시아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세상의 모든 종족들이

너를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창세 12,3).” 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또 하느님께서는 다윗에게, “네 몸에서 나와 네 뒤를 이을 후손을

내가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그는 나의 이름을 위하여 집을 짓고, 나는 그 나라의 왕좌를

영원히 튼튼하게 할 것이다.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2사무 7,12-14).” 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일은 이 약속들이 실현된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어느 날 갑자기 우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잘 모르지만, 그러나 하느님께서 미리 계획하신 대로 이루어집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에 ‘우연’은 없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일도 우연히 생긴 일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어떤 계획에 의해서 ‘나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나는’ 한처음부터 하느님의 계획 속에서 창조되었고,

하느님께서 정하신 시간에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 다 소중한 존재입니다.

만일에 자신은 우연히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대단히 불쌍한 사람입니다.

자기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에페 1,3-5).”

아무런 의미 없이 태어난 사람도 없고, 쓸모없는 존재로 태어난 사람도 없습니다.

(하느님의 창조물 가운데에서 쓸모없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쓸모 있는 인간으로 살 것인가, 쓸모없는 인간으로 살 것인가는

각자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함부로 낭비하면서 자신을 쓸모없는 사람으로 만들면 안 됩니다.

하느님에게, 또 모든 사람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은 사실 자기 자신을 위한 일입니다.

 

2) 예수님의 족보에 나오는 이름들은,

몇 명 외에는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그다지 중요한 이름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구원 사업이 인간의 역사 안에서 실현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그 이름들은 그 자체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이름들입니다.

누구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살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무시해도 되는 하찮은 사람들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족보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제각각

연결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고,

하느님 나라의 작은 벽돌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합니다.

(작은 벽돌 하나하나가 모여서 큰 성전이 됩니다.)

하느님 나라에서는 중요하지 않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무슨 역할을 하든지, 어떤 위치에 있든지 모두가 다 중요합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하찮게 여기면 안 됩니다.

꼭 높은 직책을 맡아야만, 또는 중요한 직무를 수행해야만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또 남들보다 뛰어난 재능과 실력이 있어야만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느님은 겨자씨처럼 작은 씨앗을 큰 나무로 키우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지금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세속의 기준으로만 판단해서

‘하찮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그 일이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일이고, 신앙인으로서 하는 일이라면,

어떤 일이든지 간에 그 일은 ‘하찮은 일’이 아닙니다.

작은 일들이 모여서 하느님 나라 건설이라는 큰 일이 이루어집니다.

 

3) 예수님의 족보는 하느님의 구원 역사를 압축해서 보여주기도 하지만,

인간들의 나약함과 실수와 죄와 숱한 고난들도 보여줍니다.

사실 구약시대는 완벽한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완벽하기는커녕 죄가 더 많았던 시대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인류 구원 계획을 차질 없이 실현시키셨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 8,28).”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하느님의 계획을 방해하지 못합니다.

하느님의 계획이 심각하게 방해받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고,

아예 좌초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일일 뿐이고,

그런 일들도 역시 하느님의 섭리 안에 있습니다.

하느님은 악에서도 선을 끌어내시는 분입니다.

(악을 극복하고 선을 실현시키시는 분입니다.)

인간의 범죄나 사탄의 장난은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의 계획을 방해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신앙 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향해서 가는 이 여행길을 방해하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세속과 사탄의 유혹도 있고, 내 안에서 나오는 갈등, 유혹, 고민들도 많고,

뜻하지 않은 사건이나 사고들도 많습니다.

그런 것들이 신앙생활을 방해하거나, 또는 하지 못하게 압박합니다.

신앙 여정은 결코 순탄하고 편안한 꽃길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주님께서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또 고난의 가시밭길은 잠깐이고,

그 길 끝에 있는 승리와 영광과 평화는 영원하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믿는다면 참고 견뎌야 하고, 끝까지 끈질기게 노력해야 합니다.

 

4)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의 족보는 예수님에서 끝나지만,

진정한 족보는, 즉 하느님 나라의 영적인 족보는 예수님에서 새롭게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족보에서 예수님의 이름 다음에 기록되는 이름은,

사도들과 순교자들과 성인 성녀들의 이름들,

그리고 끝까지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한 모든 신앙인들의 이름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이름도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하고,

그렇게 되기를 희망해야 하고, 또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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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Rev.S.Moy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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