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 수없이 떠오르는 물음표들을, 완성되지 못한 느낌표들을, 그대로 저장해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내게 만만한 대화상대가 생겼다는 듯이 다가오는 꼬마들이 쉼없이 물어오는 질문들, 이게 모야? 그건 왜 그래? 그래서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는데? 일일이 답해주기 귀찮고 버거운, 나의 무지를 드러내야 하는 상황에 대한 분노까지 느껴지는 그런 질문들 속에 진흙속에 감춰진 사금들처럼 몇몇 빛나는 씨앗들이 들어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돌아보면 나의 어린 시절에도 그랬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처구니 없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어릴 적 출판사 서적 외판원이었던 아버지가 공주시 유구읍의 어느 학교로 선생님들에게 선생님들에게 책 사라고 영업하러 가는 길에 나를 데리고 갔었다. 대여섯살 무렵이었겠다. 타고가던 버스앞으로 다른 차들이 오고 있는데 불쑥 "저 차랑 이 버스랑 박치기하면 누가 이길까?" 그런 상상을 하게 되었고, 아버지한테 물었다. 아버진 "박치기하면 큰일 나지! 그런 상상은 말도 꺼내지 마라! 기사 아저씨가 버스밖으로 쫓아낸다." 그러셨다. 철모르는 어린 머릿속에는 얼마나 끔직하고 잔인한 상상들이 들어 있는가? 얼마나 유치하고 졸렬하고 드러내기 부끄러운 상상들이 숨어 있는가?
하지만 그 어린 날에 나는 낯선 학교 선생님들에게나 조금 뒤에 국민학교에 입학해서 만난 선생님들에게나 늘 귀엽고 똘망똘망한 착한 어린이로 칭찬을 받았다고 기억한다. 언제나 선생님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고 어른들이 나누는 얘기에 불쑥 끼어들어 질문을 해대며 크게 확대된 눈망울로 말하는 이들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거라 짐작한다. 어쨌든 나의 질문이 그분들에도 '일일이 답해주기 귀찮고 버거운, 나의 무지를 드러내야 하는 상황에 대한 분노까지 느껴지는 그런 질문들'이었겠지만, 그분들도 나의 물음표들 속에 '진흙속에 감춰진 사금들처럼 몇몇 빛나는 씨앗들'을 발견했던 것이리라.
하여 사금을 채취하는 진흙더미가 쌓여 있는 곳을 만들어두겠다는 생각을 했다. 진흙이라도 모아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상에서 부딪친 나의 감상들을, 물믕표가 되었든 미완성의 느낌표가 되었든, 한 줄의 짧은 문장이든, 긴 넋두리든 이곳에적어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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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스토리 블로그 중 처음 구독 버튼을 눌렀던 [자작나무 통신]에서 새글이 올라왔다고 알림이 왔다. [이토록 명랑하게 분석한 '한국인은 누구인가']
그 글에서 이런 대목을 읽고
작가 홍대선이 쓴 <한국인의 탄생>은 여러모로 독특한 한국인론이다. ‘딴지일보’에 연재되어 장안의 화제가 됐던 ‘테무진 to the 칸’에서 보여줬던 재기 넘치는 분석과 입담을 한국이라는 특이한 집단에 적용했다. 저자는 단군, 고려 현종, 정도전을 한국인의 원형을 만든 주인공을 지목하는데, ‘단군’이 한반도라는 자연조건을 결정지었고, 현종이 거란에 맞서 싸우며 민족의 탄생을 이끌었고, 정도전이 한민족의 민족성을 탄생시킨 상징이기 때문이다.
출처: https://betulo.tistory.com/3315 [자작나무통신:티스토리]
곧 ‘테무진 to the 칸’ (https://www.ddanzi.com/ddanziNews/791623)을 찾아 읽었다.
그리고 유쾌한 문장을 만났다.
"경제는 가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정교한 시스템에 의해 돌아가지, 가카가 가끔 시장에 출현해 군것질한다고 돌아가지 않는다. 외교는 ‘두 사람이 척 보는 순간 서로의 마음을 알아서’ 해결되지 않는다. 국민은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한다고 해서 그의 말을 따르지 않는다. // 대중은 특정한 인간을 지지하는 듯 하지만, 결국은 그를 통해서 대변되는 ‘시스템’ 즉 체제를 지지하거나 반대한다(물론 자신에게 적대적인 시스템인데도 속아서 지지하는 경우도 있고, 자신에게 유리한 시스템이지만 정의롭지 못하다고 믿기에 반대할 수도 있다.). 테무진이 만든 시스템은 몽골인들을 속일 필요가 없었다. 있는 그대로 누구에게나 공정한, 충성을 바칠 가치가 충분한 시스템이었다. 덧붙여 테무진은 평생 동안 부하에게 한 번도 배신당하지 않았다. // 테무진은 의외로 부드러운 남자였다. 눈물도 많았고(별 것 아닌 일에도 잘 울었다.) 권위적이지도 않았다.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을 때에도 모르면 모른다고 했다. 그는 중국이나 페르시아의 학자들 앞에서 자신은 글도 못 읽는 무식쟁이라고 솔직히 말하고 조언을 구했다. 실수했을 때는 아랫사람에게도 즉시 미안하다고 했다. 이런 특징들이 누구와 닮았고 누구와 다른지, 가카는 함 생각해보기 바란다. "
이 문장속의 '가카'는 김영삼일까, 이명박일까? 박근혜일까? 김대중이나 노무현일 수도 있나? 나는 이 글이 이명박 시절에 딴지일보에 연재한 글이라는 걸 알지만 지금 윤석열을 향해 들이대는 얘기로 봐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유쾌한 문장 덕분에 ‘테무진 to the 칸’ 시리즈를 읽어보기로 했다. 무협지보다 흥미진진한 얘기가 될 거라 믿는다.
오늘 읽은 첫 글에서는 '결혼이라는 풍습'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이글에서는 데릴사위 제도에 대해서, 지참금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결혼을 생각한다면 아내와 나는 이에 대해 얼마나 일치된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특히 나는 반성할 거리가 많다.
오늘 이글의 홈주제를 결혼 연애로 분류한 까닭이다.
* 왼쪽 그림은 오늘 읽은 글 안에 포함되어 있는 그림인데, '몽골의 결혼 청첩장'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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