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23

얼레빗, made in USA

[얼레빗, made in USA] 평화봉사단으로 온 원어민 영어강사가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를 하더니 그 영어 철자를 가지고 가장 많은 단어를 생각해 낸 학생에게 선물을 준다며 게임을 시작했네.나는 7개의 단어를 생각해내서 선물을 받았지. 얼레빗이었어. made in USA ! 파란색 투명한 플라스틱 얼레빗이었네.머리카락을 빗어 넘기는데 특별한 게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다만 빗살을 손가락으로 훑어낼 때 띠리리링 소리가 청명했었지.빗이 아니라 장난감 악기였다고 할까? 집으로 돌아와 특별한 상을 받았다고 자랑을 했네.가족들이 그 빗을 누구에게 줄라고? 내게 물었네.왜? 내 머리는 까까머리, 중학생이었으니까.내 머리카락은 빗을 것이 없었어.누구에게 줄라고? 나중에 장가가서 신부에게 줄 거다! 가족들이 모두 ..

낙서장/습작시 2024.12.29

안경 낀 이들에 대한 나의 편견

이른 아침 골목길을 이주민 소녀가 지나갔네 동남아 어디쯤에서 온 소녀일까 말을 걸지 못했지만, 걸고 싶었네 어디서 왔니? 무슨 일을 하고 있니? 이 땅에 와서 무엇을 깨달았니? 차별이 배어 있는 이 땅에 와서 무엇을 얻었을까? 평소엔 그냥 지나쳐 넘길 일상인데 순간, 이게 무슨 감정인가 내 안을 들여다 보았다네 그때서야 소녀의 안경이 보였지안경 낀 소녀의 모습에말이 통할 것 같다 생각했나봐세상 윤곽이 흐릿해지고 상대방의 얼굴이 몇 겹으로 보이기 시작했을 때 나도 안경을 쓰기 시작했었네안경을 낀다는 것 세상을 명확하게 보고 싶다는 얘기 아닌가?세상을 바로보고 싶다는 것진실을 추구하는 선한 본성 아닌가? 그래  나는 안경을 낀 이들에게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거야 안경 쓴 내 모습에 만족했던 이유도 그랬..

낙서장/습작시 2024.12.26

싸우다가 닮아가다니 ㅠㅠ

큰바위 얼굴 얘기를 국민학교에서 들었다. 호손이라는 사람의 동화같은 얘기였지. 그 얼굴을 닮은 사람이 나타나 세상을 인자하게 감싸주기를 기다리며 날마다 그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했지. 바라보고 또 바라다 보는 중에 그 얼굴을 닮은 사람이 되었다 했어. 그러나  바라보고 바라다 보는 대상이 큰바위 얼굴만 있는 게 아니었구나. 미워하고 또 미워하며 사라져라 사라져라 죽도록 싸워 온 대상 그 악귀 같은 얼굴들을  지겹도록 바라보며 싸워 왔구나. 어느 새 그 악귀 같은 모습이 나에게도 새겨져 있었구나.어느 새 그 짐승 같은 모습이나에게도 새겨져 있었구나. 흐르는 피눈물을 닦아내면서 기도하노라.싸우다가 닮아간 악귀같은 모습 벗어던지고성현들의 모습만 닮아가기를.

낙서장/습작시 2024.12.25

똥 묻은 개

[똥 묻은 개] 똥 묻은 개가 걸어간다.떨구어 내지 못한 똥이 말라 붙어서하얗게 바래지도록비바람이 씻어내지 못한 흔적들이 속으로 스며들어그 이름을 완성한다."똥강아지!""똥강아지! 이 똥강아지 같은 것들아!"얼마나 짖어댔던가수많은 똥강아지들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며 그렇게 짖어댔지만따라 짖는 개들은 찾아볼 수 없구나 한 놈 짖으면 온동네가 따라 짖는다더니 헛소리였나?헛소리?  무엇이? 따라짖는 게 유구한 전통이란 얘기가? 아니면 나의 부르짖음이?도축업자의 눈빛은 - - -똥강아지들의 입을 닥치게 하는 특별한 힘을 갖고 있지.무엇이든 헛소리로 만들어 버리는 힘을 갖고 있지.새로운 품종의 개들을 창조해 내는 신비의 힘을 갖고 있지.이름하여 "겨묻은 개"오늘도 나의 부르짖음은 똥묻은 개, 겨묻은 개 나무라는 ..

낙서장/습작시 2024.12.09

‘테무진 to the 칸’ 완독 - fielddog님 팬이 되기로 하였다

이 역작은 무협지가 아니라 역사서이다. 필독님도 중간에 논문의 각주처럼 참고자료들을 소개하고 있는 바, 이 글을 역사소설로 착각하는 이들은 필독님을 모독하는 '나아쁜 놈'들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협지독후감]이라는 카테고리에 독후감을 남기는 것은 무협지보다도 훨씬 흥미진진하게 읽었기 때문이다. [낙서장이란 카테고리를 개설하며]에서 밝혔듯이 홍대선(필독님의 진명인 듯)님이 쓴 이란 책을 소개하는 글에서 " ‘테무진 to the 칸’에서 보여줬던 재기 넘치는 분석과 입담"이란 표현에 낚여서(?) 읽기 시작했다. 글을 읽는 동안 그 동안 빠져 있던 무협만화, 무협소설에서 벗어나올 수 있었고, 이제는 딴지일보에서 필독님이 썼던 글들로 시간을 보내려 하고 있다. (기사 검색에서 fielddog이란 이름으로 찾아..

[낙서장]이란 카테고리를 개설하며

불현듯, 수없이 떠오르는 물음표들을, 완성되지 못한 느낌표들을, 그대로 저장해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내게 만만한 대화상대가 생겼다는 듯이 다가오는 꼬마들이 쉼없이 물어오는 질문들, 이게 모야? 그건 왜 그래? 그래서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는데? 일일이 답해주기 귀찮고 버거운, 나의 무지를 드러내야 하는 상황에 대한 분노까지 느껴지는 그런 질문들 속에 진흙속에 감춰진 사금들처럼 몇몇 빛나는 씨앗들이 들어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돌아보면 나의 어린 시절에도 그랬다.지금 생각해보면 어처구니 없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어릴 적 출판사 서적 외판원이었던 아버지가 공주시 유구읍의 어느 학교로 선생님들에게 선생님들에게 책 사라고 영업하러 가는 길에 나를 데리고 갔었다. 대여섯살 무렵이었겠다..

낙서장 2024.11.30

나의 글쓰기에 대한 반성 (오블완 완주 후에)

고등학교 때 도서관을 관리하는 도서위원으로 도서관에서 기숙하면서 부터 서고를 채운 책들의 무게에 짓눌려 책 읽는 것을 포기하고 살아온 것 같다. 도대체 그 많은 책들을 어떻게 다 소화할 수 있을까, 지레 겁먹었던 게지. 저마다 다른 관심, 한 때의 유행에 함께 휩쓸린 부박한 수다, 쓸데없는 얘기들...이겠거니 하면서 그 많은 책들을 포기했다. 더구나 세상엔 얼마나 가짜 뉴스들이 많은가? 가짜 뉴스들에 근거한 거짓된 가르침들은 오죽 많은가?  나는 나만의 관심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귀 기울여야 할 이야기를 쓰고 싶었나 보다. 그것도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놓친 이야기, 더 높이 올라가야 보이는 세상의 모습들, 나는 진실, 진리로만 가득한 글을, 쓸데 많은 글들을 쓰고 싶었나 보다..

낙서장 2024.11.30

그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밥을 안 먹는다고약을 안 먹는다고변의를 고집스레 참는다고엉덩이를 꼬집어 주었어요.엄마를 아프게 꼬집어 주었어요.그러지 않아도 괜찮았는데....어차피 이렇게 훌쩍 가실 줄 알았다면차라리 그냥 편하게 가시게 놓아드렸어야 했는데...눈에는 가득 눈물을 담은 채로맑은 눈빛으로 회한을 쏟아내던 그녀는이내'꼭꼭'이란 단어를 몇 번이나 반복하며 당부하고 있었다.아저씨! 제가 씩씩하게 열씸히 살아가는 모습 보이지 않으면 다그쳐 주세요.십년이나 제 모습 보아왔으니제가 다른 모습 보이면 아실 거잖아요.그녀의 등을 두드리는 '아저씨'의 손길에 무거운 사명감이 십자가처럼 얹혀 있었다.당신도 감당하지 못할 당신의 삶의 무게에 언제나 응원하고 싶었을 모녀의 애절한 이별이 얹혀 있었다.

낙서장/습작시 2024.11.23

차마 말할 수 없는 이유

그제는 어린 시절, 그러니까 반세기 전의 추억을 돌아보는 여행을 하고 어제 사진과 글을 남겼다.그러다 보니 지금까지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사건들 가운데 가장 어린 날의 사건이 자연스레 떠올랐다.가끔은 누군가와 상담하는 과정에서 고백한 이야기이고 형제들은 너무나 잘 아는 사건인데, 그 이야기를 [사진으로 엮는 자서전]이란 카테고리에 글로 남겨야 하겠지만, 차마 그 이야기는 글로 쓰지 못하여 더 이상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왜 나는 그 이야기를 글로 남기지 못하는가?뼈를 묻겠다고 집까지 새로 지어가며 머물고자 했던 마을을 떠나면서, 그에 관한 일들이나 나의 입장을 명백하게 설명하고 싶었지만, 관련되어 떠오른 나의 감상이나 추상적인 화두들만 늘어놓고 있었던 것도 비슷한 경우이다.왜 나는 글을 쓰지 못하는가..

낙서장 2024.11.12

우각의 화산권마

만화에 빠져 있다가 시간죽이는 데는 소설이 더 낫다는 걸 알고나서 많은 무협소설을 읽었다. 너무 긴 대하소설류(수십권 짜리 소설은 완독하는데 많은 돈을 쓰게 된다)는 피해가고 있었는데 작가별로 검색하는데 늘 상위에 자리잡은 작가들의 작품은 대부분 너무 길었다. 그래서 주로 100~300코인 정도로 소화할 수 있는 작품들을 찾아 읽었다. 그러나 이런 작품은 많지 않아서 문제였지.어느날 큰맘먹고 작가별 검색에서 가장 첫번째 이름으로 등재된 우각이란 작가의 소설을 읽어보기로 했다. 그의 작품은 불과 네 개였는데 첫 작품이 바로 이 소설 화산권마였다. 1권에 25코인 총 20권(첫권은 늘 무료) 475코인을 써야했다. 무료로 제공되는 첫권을 대충 읽다가 흥미를 잃으면 그만두는 게 보통인데 결국 끝까지 읽어내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