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나의 글쓰기에 대한 반성 (오블완 완주 후에)

도덕쌤 2024. 11. 30. 10:08

고등학교 때 도서관을 관리하는 도서위원으로 도서관에서 기숙하면서 부터 서고를 채운 책들의 무게에 짓눌려 책 읽는 것을 포기하고 살아온 것 같다. 도대체 그 많은 책들을 어떻게 다 소화할 수 있을까, 지레 겁먹었던 게지.
저마다 다른 관심, 한 때의 유행에 함께 휩쓸린 부박한 수다, 쓸데없는 얘기들...이겠거니 하면서 그 많은 책들을 포기했다. 더구나 세상엔 얼마나 가짜 뉴스들이 많은가? 가짜 뉴스들에 근거한 거짓된 가르침들은 오죽 많은가? 
나는 나만의 관심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귀 기울여야 할 이야기를 쓰고 싶었나 보다. 그것도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놓친 이야기, 더 높이 올라가야 보이는 세상의 모습들, 나는 진실, 진리로만 가득한 글을, 쓸데 많은 글들을 쓰고 싶었나 보다.
그러나 이 얼마나 교만한 생각인가? 나는 얼마나 독선적인 인간인가?
쓰고 난 후 되돌아보면 --- 나의 경험, 내가 듣고 본 것만이 사실이요 진실인 것처럼 착각하며 장님 코끼리 만지는 얘기들을 늘어놓았구나, 부끄러울 때도 많았다. 나 역시 나만의 관심에만 몰두하여 혼잣말을 늘어놓고 있구나, 외로울 때가 많았다. 논리적 비약과 모순으로 가득 찬 혀 꼬인 이야기들이란 걸 깨달을 때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글을 쓰지 못했다. 아니 쓰레기통으로 처박히거나 손끝에서만 맴돌다가 사라지거나 한 얘기들이 더 많았다. 독백처럼 일기나 편지글, 기도문, 신앙고백으로 머물렀는데 그것마저도 돌아보면 부끄러웠다. 나는 나의 말들을 얼마나 실천으로 증명해 왔는가? 쓰고 싶은 얘기가 있고, 써야 한다, 숙제가 된 것들이 쌓여 있는데, 오랫동안 나는 침묵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나의 글을 모아 놓는 창고 [티스토리]에서 [오블완]이란 이름의 이벤트를 제안해 왔다. 어쩌다 마주친 유혹, 그냥 아무 글이나 써 봐! 일단 글쓰기에 중독이 되어 보시지! 필력부터 길러야 하지 않겠어? 

도전해 보기로 했다. 좌충우돌하는 심정으로 무협지 독후감부터 어릴 적 추억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완성되지 못한 죽음에 관한 얘기마저도, 계속해서 글을 썼다.
글을 매일 쓴다는 게 참 힘들었다. 덕분에 부르면 달려나가던 친구의 부름을 사양해야 할 때도 있었고, 시간 죽이느라 빠져들었던 당구와 바둑, 장기 등의 오락도 적당히 멈춰야 했다. 무엇보다도 장시간 운전한 후 쉬어야 하는 시간들, 여행 중에도 나의 글쓰기 도구인 컴퓨터를 들고 다녀야 한다는 것이 오블완 도전에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도전을 끝내고, 오블완을 완주하고 며칠을 쉬었다. 오랜만에 소성리에서 1박을 하고 왔다. 
도전을 마친 소감은 우선 이런 이벤트를 기획한 분들에게 고맙다는 것이다. 마치 어린 시절 경험했던 어느 백일장, 생각을 넓혀준 글쓰기 주제도 고마운데 참가한 이들에게 참가비를 받는 게 아니라 교통비까지 쥐어줬던 어떤 단체(기억 못해서 미안한 그 단체 ㅠㅠ)의 사람들에게 느끼는 고마움이었다.
(참고: 2023.12.09 - [삶의 고백/사진으로 엮는 자서전] - 어쩌다 떠오른 어린 시절 - 딸의 도둑질을 알게 된 아빠 도둑이라는 화두 )

 

어쩌다 떠오른 어린 시절 - 딸의 도둑질을 알게 된 아빠 도둑이라는 화두

[어쩌다 떠오른 어린 시절] 초등학교(당시엔 국민학교라고 불리웠다) 6학년 시절이었는데, 밀가루 수제비로 연명하던 우리집 형편이 더욱 나빠져서 밀가루를 아끼느라 밀가루에 두

ask2me2.tistory.com

그리고 이제 글을 써나갈 힘이 생겼다. 나에겐 어느 시간에 글을 쓰는 게 가장 좋은지 알게 되었고, 내가 하고픈 얘기들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날마다 묵상글을 써 보았던 경험을 되돌아 볼 기회가 되었다. 이제 손주들에게 두런두런 글을 써나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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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심삼주 오블완 챌린지가 종료됐어요]라고 오블완 기획팀이 안내를 하면서 선물을 보내주었다. (내게만 주는 선물은 아니지만 ^^) 이벤트가 종료된 다음날부터 내년 1월 1일까지 글쓰기 주제를 담은 달력이었다. [34개의 질문으로 돌아보는 나의 2024년 – 티스토리 연말결산 캘린더]


선물이 참신했다. 공부란 ‘물음표에서 느낌표까지 가는 여행, 그 길을 눈을 감고도 다닐 수 있을 만큼 익숙해지도록 하는 일’이라고 가르쳐 왔었는데... 이 얼마나 반갑고 매력적인 모습의 선물인지!
하지만 34개의 물음표들이 모두 마음에 든 것은 아니었다. 그야말로 시간 죽이기 위한 수다를 떨어보라는 듯한 질문들도 여럿 보였다. 하긴 티스토리의 글쓰기 홈주제 분류부터 나는 불만이다. 왜 [인생철학]이나 하다못해 [개똥철학]이라는 이름의 '홈주제 분류'는 안 만들어주는 것인지, 정치, 사회, 교육, 국제, 경제는 있으면서 역사는 왜 빠트리며, 심리, 철학이란 주제는 왜 없냐는 것이다. [메멘토 모리]라는 카테고리를 개설하며 주제를 설정하는데 ‘일상다반사’라는 분류의 홈주제에 배속해야 하는 안타까움? 슬픔?을 티스토리 기획팀들이 알아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