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습작시 12

똥 묻은 개

[똥 묻은 개] 똥 묻은 개가 걸어간다.떨구어 내지 못한 똥이 말라 붙어서하얗게 바래지도록비바람이 씻어내지 못한 흔적들이 속으로 스며들어그 이름을 완성한다."똥강아지!""똥강아지! 이 똥강아지 같은 것들아!"얼마나 짖어댔던가수많은 똥강아지들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며 그렇게 짖어댔지만따라 짖는 개들은 찾아볼 수 없구나 한 놈 짖으면 온동네가 따라 짖는다더니 헛소리였나?헛소리?  무엇이? 따라짖는 게 유구한 전통이란 얘기가? 아니면 나의 부르짖음이?도축업자의 눈빛은 - - -똥강아지들의 입을 닥치게 하는 특별한 힘을 갖고 있지.무엇이든 헛소리로 만들어 버리는 힘을 갖고 있지.새로운 품종의 개들을 창조해 내는 신비의 힘을 갖고 있지.이름하여 "겨묻은 개"오늘도 나의 부르짖음은 똥묻은 개, 겨묻은 개 나무라는 ..

낙서장/습작시 2024.12.09

그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밥을 안 먹는다고약을 안 먹는다고변의를 고집스레 참는다고엉덩이를 꼬집어 주었어요.엄마를 아프게 꼬집어 주었어요.그러지 않아도 괜찮았는데....어차피 이렇게 훌쩍 가실 줄 알았다면차라리 그냥 편하게 가시게 놓아드렸어야 했는데...눈에는 가득 눈물을 담은 채로맑은 눈빛으로 회한을 쏟아내던 그녀는이내'꼭꼭'이란 단어를 몇 번이나 반복하며 당부하고 있었다.아저씨! 제가 씩씩하게 열씸히 살아가는 모습 보이지 않으면 다그쳐 주세요.십년이나 제 모습 보아왔으니제가 다른 모습 보이면 아실 거잖아요.그녀의 등을 두드리는 '아저씨'의 손길에 무거운 사명감이 십자가처럼 얹혀 있었다.당신도 감당하지 못할 당신의 삶의 무게에 언제나 응원하고 싶었을 모녀의 애절한 이별이 얹혀 있었다.

낙서장/습작시 2024.11.23

지킬 것이 있는 사람들은 악마가 된다

지킬 것이 있는 사람들은 악마가 된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지키고 싶기 때문이다지키고 싶은 것을 지킬 수 없는 연약함을 한탄하며 하늘에 드리는 간절한 기도 그러나 하늘은 아무런 응답이 없다 너의 일은 네가 하라?그 절망 속에서 깨달아라?하늘의 침묵을 알 길이 없으니 하늘은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골고루 햇빛을 비춘다는 그 사실이 더욱 마음 아프다 내가 지키고 싶어한  그것이 무엇일까?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지키고 싶다고? 내가 지키고 싶어한 그것은  내 안에 있는 것인가, 밖에 있는 것인가? 사랑하는 사람의 그 무엇인가? 내가 지키고 싶어한 그것들은  악마에게 영혼을 판 나를, 악마가 된 나를 자신의 수호천사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우우오오우우워어우

낙서장/습작시 2024.06.14

우리 삶을 달리기에 비유한다면 (송구영신 인사를 대신합니다.)

우리 삶을 달리기에 비유한다면 100미터든 마라톤이든 오직 선착순만 중요한 달리는 내내 오직 홀로 고통을 견뎌야 하는 그런 달리기가 아니라 모두 함께 즐기며 이어가는 이어달리기라 생각하고 싶다. 제각각 좌충우돌 미로 속을 달려나가는 대신 누군가 먼저 파들어간 터널 그 막장에서 이제 내 차례라고 잠시 숨을 멈추며 곡괭이를 들어올리는. 함께 가는 이 없는 외로운 길일지라도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또! 이제 내일의 나에게 바톤을 넘겨주는. +++++ 소성리기독교현장기도소를 응원해주시는 분을 만나고 싶어 목포산돌교회를 다녀왔습니다. 평소 아무런 교분도 없었지만 매월 소액 후원을 처음 시작해주신 분이었기에 감사드리고 싶었지요. 덕분에 내 또다른 인생의 계기가 된 세월호, 그 슬픔의 근원이 되어버린 배를 보고..

낙서장/습작시 2024.01.05

딱새와 거울

[딱새와 거울] 사람 냄새 솔솔 나는 산골마을 삼거리 둥근 볼록거울 앞에 딱새 한 마리 날아와 앉았다 앞뒤로 좌우로 부지런히 살펴보지만 볼록거울 속에만 나타나는 새로운 세계 미세먼지 하나 보이지 않는 맑고 맑은 세상 딱새가 거울속으로 일단 머리를 들이민다 두 개의 부리가 두 쌍의 발가락이 두 쌍의 날개가 두 세계의 경계에서 격렬하게 마주친다 몇 번이고 되풀이되는 투신과 반동 "넌 이 세계에 들어오기엔 너무 때가 많아!" 꼭 저 닮은 녀석이 날아와 밀어낸다

낙서장/습작시 2022.03.28

안전지대

[안전지대] "에그, 저 지지리도 못난 녀석, 데모 한 번 못 해보고..." "엄니, 여태 데모하는 덴 쳐다보지도 말라시더니?" "인석아 대한민국 대학생들 다들 하는데 넌 끼지도 못하누?" "엄니, 그럼 나 데모해도 괜찮아유?" "그려그려 남들 다 하는 데 끼지 못하면 그것도 빙충이지 빙신 취급 받는 거여 다만 이것을 명심해라 맨 앞에도 서지 말고 맨 뒤에도 서지 마라 한 가운데도 서지 마라 그니까 1/4선이나 3/4선쯤, 꼭 여기쯤 있어야 한다." 1980년 서울의 봄 어디쯤에서 어머니 하신 말씀이었네 마파람에 실려온 광주의 피냄새가 섬뜩해 계절이 거꾸로 흐르던 날 얼어붙은 여름 한 낮에 어머닌 다시 말씀하셨네 "막내야 서울 가거든 데모하는데는 쳐다보지도 마라 잉!" "전에는 끼어도 된다고 하셔놓군....

낙서장/습작시 2021.05.02

까망이

【 까망이 】 아직 태어나서 두 계절도 겪지 못한 고양이가 길고양이가 봉정할배 발걸음을 쫓아다니며 몸을 부비고 있었다 옛끼놈! 어따 대고 와서 몸을 부비노! 연신 휘둘러 쫓아내는 할배의 지팡이는 호통소리와 달리 살기를 품진 않았다 오히려 측은지심 가득 담긴 삿대질 그러나 너를 품을 순 없어 너에게 길들여지진 않을 거야 팔십 평생 깨달은 지혜가 보여주는 단호함 뿐이었지 까만 털, 흰 구두 온전히 나를 바라보는 눈 할배에게 쫓겨나 내 발치로 다가온 녀석에게 '까망이'란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름을 지어주는 순간부터 서로 길들이기, 길들기가 시작되는 것 길고양이 세계에도 서열이 있어 자기 위해 진설된 밥상에서도 가장 나중으로 밀려난 녀석 서열에 쫓겨, 가냘픈 나뭇가지 하늘 위로 쫓겨 네가 택한 생존전략이 집냥이가..

낙서장/습작시 2021.05.01

너는 그렇게 그 사내를 사랑했느니

[너는 그렇게 그 사내를 사랑했느니] 한 때 소월의 사랑노래는 우리 민요 사랑가 보다 우리 마음을 더 울렸었지 나의 누이야, 꼬메리칸 똥별들아 너도 그렇게 사랑했구나 "나 보기가 역겨워 / 가실 때에는 /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 진달래 꽃 /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 놓인 그 꽃을 /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 가실 때에는 /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매부리코 팔뚝 굵은 노랑머리든지 부리부리한 눈에 비단결 같은 검은 피부 곱슬머리든지 곰같이 미련한 순정보다는 황금빛 찬란한 욕망을 사랑한 나의 누이야 꼬메리칸 샛노란 똥별들아 그래 너는 그렇게 그 사내를 사랑했구나 컴온 베이비, 나를 마음껏 유린해주세요.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낙서장/습작시 2021.04.21

몽돌해변에서

[몽돌해변에서] 첫 교실, 첫 수업 130개의 눈동자가 모두 나를 바라보고 있던 그날의 감격은 오래가지 못했다.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 차라리 배부른 돼지가 되겠다고 모두가 꿀꿀 거리는 교실에서 '쇠 귀에 경읽기'로 지쳐가다가 끝내 나는 돌멩이가 되었다. 사람이 되자고 사람답게 살자고 사람이라고 다 사람이냐 사람다워야 사람이지 라고 말할 때 10개의 눈동자는 본드에 취해 눈이 풀려버렸고 20개의 눈동자는 가수들의 뒷모습을 쫓아가고 있었지. 40개의 눈동자는 사다리 디딜 자리 찾느라 분주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떨어질 사다리. 50개의 눈동자가 내게 물었지 사람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나면 사람인 게지 사람답다는 게 뭔 얘기여? 당신은 독재자라 소리치며 귀를 닫았다. 모든 욕망이 똘똘 뭉쳐 바위가 되고 바위..

낙서장/습작시 2021.04.20

인민재판

[인민재판] 억지로 끌려나온 듯, 광장 무대에 오른 너는 불만으로 가득찬 표정을 감추고 있다 오만한 너의 눈빛을 들킬세라 먼 하늘을 보고 있다 죄없는 자 먼저 돌로 쳐라 예수를 흉내낸 판검사가 변호사처럼 나발 부는데 다윗의 물맷돌을 닮은 새총 솜씨로 나는 너의 콧잔등을 정확히 겨누고 있다. 너의 이마 한 가운데를 노리고 있다. 군중들이 돌을 버리고 돌아서기 전에 너를 치는 자가 되려고 콩알을 재어 새총을 들어 네 얼굴을 정조준하고 있다. 새총에서 날아간 콩알이 네 콧잔등을 때릴 때 넌 시큰해진 눈물을 참을 수 없어 통곡하리라. 새총에서 날아간 콩알이 너의 이마를 때릴 때 너는 스님의 죽비를 맞은 듯 소스라칠 것이다. 머릿속에 굉음이 울리리라. 팔려오지 않은 무리들 다시 일어나 떨구려던 돌 다시 치켜들고 ..

낙서장/습작시 2021.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