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개똥철학/메멘토모리 8

나의 죽음에 대하여 (1)

이제 내가 목도한 '나 아닌 이'들의 죽음이 아니라 나의 죽음에 대한 얘기를 하고자 한다.내가 죽고 싶었다거나, 죽을 뻔 했다거나, 죽음을 각오하고 죽기살기로 덤벼들었다거나, ... 아무튼 나의 죽음에 관한 얘기를 하고자 한다.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또는 기억하더라도 그때가 내가 죽을 뻔했던 때였다고 자각하지 못하는, 그런 얘기부터 시작하자.아들 아들 딸 딸 아들 아들 딸 딸, 팔남매의 여섯째, 아들로 막내였던 나는 갓난아기 시절부터 별로 잘 먹지 못했다 한다. 엄마가 젖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었을 거라 생각하는데, 젖을 잘 먹지 못해서 미음이나 수박물같은 거로 겨우겨우 살았다고 한다. 2년 뒤에 태어난 동생 수혜(은총)는 엄마가 가장 영양부족이었던 상태여서 아예 젖이 부족했다고 들었는데, 나는 엄마젖이 ..

"죽어가고 있어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노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엉덩이가 살이 빠져 방석없이는 앉기 힘들고, 허벅지를 만지면 뼈가 그대로 느껴지며 백골단에게 걷어채인 듯한 통증도 시시때때로 찾아온다. 모처럼 만나 앞으로 어떻게 살면 좋을지 얘기하던 아내가 정말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엉덩이와 양쪽 허벅지를 만져보고는 걱정이 되는 듯, 근손실을 예방하고 근력을 키우는 운동이라며 유투브와 블로그들을 찾아 소개해 준다. 다시 금산으로 내려오는데 무슨 반찬거리를 더해줄까 챙기는 아내 얼굴에 안타까움이 더욱 진하게 느껴진다.후원의 밤 행사에서 만난 동지들이 요즘 어떻게 지내냐며 안부를 물어오는데, 내가 진정으로 존경하는 동지들에게 건성으로 답하는게 미안해서 무어라고 답해야 할지 망설여진다.[메멘토모리]라는 제목으로 카테고리를 열고 글을 써나가며 ..

구구팔팔이삼사가 웰다잉?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고 싶은가?막내가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미련 없이 언제든 죽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평생 중학교 도덕 선생으로 살겠다던 결심이 무너지고 실패자로 학교를 떠난 뒤에 방황하던 시절이었다.처음엔 일단 사직서를 던졌는데 아내가 혼비백산하고 주변에서 뜯어말렸다. 누님이 겨우 중재안을 제시했는데, 어머니 간병휴직을 신청해서 1년을 쉬었다가 다시 교단에 서거나 그래도 못 견디겠으면 그때 명예퇴직을 신청하는 방향으로 하자는 것이었다. 사직서가 처리되기 직전에 철회하여 간신히 모친 간병휴직으로 돌려놓았다. 그런데 그해 여름 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될 무렵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휴직 사유 소멸로 곧바로 복직하고 더 없이 고통스러운 날들을 보냈다. 결국 명퇴를 신청했다. 정년이 아직도 1..

가던 길을 멈추고...

같은 그림을 보고 서로 다른 것을 느낄 수 있듯이 같은 사건을 경험한다고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더라도 그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누군가의 죽음을 함께 목도했다고 우리가 모두 한마음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말자.그러나 저마다 다른 생각, 다른 태도를 보여준다고 해서 어떤 생각 어떤 태도든 모두가 좋은 생각, 좋은 태도라고 볼 수는 없다. 바로 이 것을 이해해야 한다. 어떤 생각 어떤 태도가 좋은가? 어떤 생각은 왜 나쁜가? 자신이 늘 가던 길대로 가고 마는 것이 아니라 가던 길을 멈추고 어느 길로 가는 게 좋을지 생각하는 그것이 중요하다.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너도 죽는다는 것을 아느냐? 이 질문은 가던 길을 멈추고 어느 길로..

메멘토 모리? 내가 죽는다는 것을 명심하면?

우리가 경험하고 얘기할 수 있는 죽음은 오직 타인의 죽음이다. 자신의 죽음은 얘기할 수 없는 경험이다. 어쩌다 임사체험이 회자되기도 하지만 그런 종류의 이야기는 대체로 믿음의 대상이 될 이야기지 사실로 증명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닌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우리는 타인의 죽음을 보면서 어떤 감정을 갖게 되는가? 무엇을 이해하게 되는가? 그 죽음이 우리의 삶에 끼치는 변화가 있는가? 우리는 누구나 결국 죽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그러한 깨달음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대학교 1,2학년 쯤이었나? 만나는 친구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다닌 적이 있었다."의사가 말하기를 앞으로 석 달 밖에 못 살 거래. 가장 뛰어난 의사를 찾아서 진단을 받았지만, 모두 너는 앞으로 석 달 밖에 못 살 거래. 너..

내가 목도한 누군가의 죽음이 ...(3)

눈 앞에서 누군가의 죽음을 목격하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너무나 끔직해서 우리의 뇌는 그 기억을 삭제하려 애쓴다. 뇌수가 터져나간 모습으로 죽은 친구, 그 사건의 기억이 사라진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죽음도 있다. 사랑하는 아들이 죽어가던 모습. 백혈병 진단을 받고 항암제를 혈관주사로 받아들이던 아들은 약 4개월만에 죽음에 이르렀다. 그 고통이 얼마나 심했던지 아들은 주사바늘을 뽑아내려 했고, 주사바늘이 꽂힌 주변은 검붉게 괴사해 가는 중이었다. 그 녀석에게 의사가 시키는 대로 순종할 것을 강요했던 내 모습을 뒤늦게 후회하고 있다. "그러면 오줌 쌀 거야!"라고 반항하며 환자복을 오줌으로 흥건히 적셔대던 아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내는 임신중이었다. 아들의 병간호와 출산..

내가 목도한 누군가의 죽음이 ...(2)

눈 앞에서 누군가가 죽어가는 장면을 목격하는 것이 매우 드문 일이 된 세상을 살고 있다. 함께 살 맞대고 살아가던 가족들마저 사망 선고가 내려지고 나서 주검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차디찬 시신으로 만나는 정도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나보다 한 세대 전만 하더라도 그렇지 않았다. 1920년생이셨던 아버님은 식민지 시절 지원병이라는 이름으로 끌려가 남태평양으로 향하다가 오끼나와 근처 어디쯤에서 배가 침몰당하는 일을 겪고 바다위에서 수십 시간을  떠돌아야 했다고 한다. 일본이 패망한 후 돌아와 경찰이 된 아버님은 빨치산 토벌대로 차출되어 남원 어디쯤 지리산 자락에서 전투를 치렀다고 한다. 바로 옆에서 철모에 구멍이 뚫린 채 죽어가던 동료를 추억하며 당신이 지금까지 살고 있는 건 기적이라고 말씀하셨었다. 역사를 돌아..

내가 목도한 누군가의 죽음이 ...(1)

나의 기억이 왜곡되어 있거나 허구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뒤 이런저런 사실 관계를 조사하고 그에 대해 설명하느라 정작 하고픈 얘기는 꺼내지도 못하고 대화가 중단되는 경험을 자주 한다. 누군가가 눈앞에서 죽는 모습을 처음 보았던 기억에 대해서 얘기해 보려고 하는데, 막상 얘기를 꺼내려고 하니 또 이러한 결말로 치닫는 게 아닐까 걱정된다. 트럭에 부딪쳐 나가떨어졌던 친구. 그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니 친구라고 부르는 것도 어색하다. 당시 같은 학교를 다녔던 것과 함께 놀았던 기억이 없을 만큼 상당히 떨어진 윗동네에 살았다고 기억한다.  그 사고가 언제 벌어졌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학교 가는 길이었고 아직 그 길 주변이 황량했던(개발이 진행되지 않았던) 시절이란 것 뿐, 계절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