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에서/관심가는 소식들

둥글이가 모두에게 작별을 고했다

도덕쌤 2022. 1. 15. 10:20

* 소성리에서 경찰들에게 다구리 당하던 둥글이를 기억한다.
오랫동안 볼 수 없어 궁금했는데, 오늘 페북에서 "모두에게 작별 인사드립니다" 마치 유서를 암시하는 듯한 말로 시작하는 글을 만났다.
아무리 긴 글이라도 읽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페북에 공유해두고 천천히 읽어보려 했다.

그런데 페북 공유 기능을 작동 중지 시켰나보다.

공유가 되지 않아 이렇게 블로그에 옮겨두는 방법을 사용해 본다.

** 정말 너무 긴 글이었다. 작은 제목을 달아 많은 단락을 나누어 주었지만 반복되는 얘기들도 많았다.

그러나 다 읽고 나니 둥글이가 겪었을 고통에 공감이 간다.

안타깝다. 유능한 투사가 이렇게 떠나는 게 슬프다.
변절하는 것도 아닌데 극복되지 않는 마음의 상처로 투쟁의 대오를 떠나는 이들이 왜 이리 많은가. ㅠㅠ

https://www.facebook.com/100001699902774/videos/47711092043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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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 작별 인사드립니다. 
어제 형사보상금 기부하며 쓴 글에 낌새를 눈치 채신 분도 있으실 듯 합니다. 오늘 부로 제 모든 활동은 끝을 맺습니다. 부족한 인간임에도 늘상 응원해 주시고 격려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그간 함께 했던 분들과 일일이 인사 못 드리는 점 양해 바랍니다. 
지금껏 인연을 맺어왔던 모든 분들에게 인사드립니다. SNS 마지막 글입니다. 제가 사는 고향분들과의 교류마저도 끊길 겁니다. 그러니 연락 안 된다고 섭섭해 하시거나 안부 물어오지 않으시기를 당부 드립니다. 언제 온 줄 모르게 왔다가 가는 것이 인생이니까요. 휘리릭~.   
저는 이미 6년 전에 더 이상 시민운동을 하기 어려워 마무리 하고 사라지려 했습니다. 경찰에게 체포, 구속되고, 재판받고 일베들에게 두들겨 맞고 하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라 문제없었습니다. 어떤 다른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사건으로 공황상태에 빠졌습니다. 
극도의 스트레스와 자괴감으로 정신과 치료까지 받고 수면제 없으면 잠을 자기 힘든 처지에까지 다다랐습니다. 그 사건은 지난 6년 동안 계속 이어졌는데, 스트레스가 심해지자 몸에 이상이 생겨 현재는 두 세 시간 이상 걸으면 극도의 피로가 몰려와 쓰러지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엄중한 시기, 해야 할 일들을 방기할 수 없어서 견뎌 왔습니다. 더군다나 2015년 당시 제가 만들어 뿌린 전단지 사건 때문에 함께 재판을 받는 분들이 있었고, 책임을 져야할 입장이었기에 재판 끝날 때까지 버텨왔습니다. 이제 그 재판 다 끝나고 손해배상 소송까지 끝나서 이렇게 훌훌 털고 떠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많은 이야기들 다 할 수도 없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질까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간 함께 해주셨던 분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당부드릴 말씀도 있기에 이렇게 마지막 글로 인사를 대신합니다. 
하지만, 이 장황한 글을 다 읽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첨부된 영상 음악에 제가 드리고자 하는 내용이 다 함축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굳이 이 잡글을 뒤져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읽히시는 분만 읽으시면 됩니다. 
바이올린은 1년 반전에 시골의 버려진 농가에 가서 살면서 독학했습니다. 생판 처음 만져보는 악기라 유튜브 보고 감으로 배우느라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교습을 받아 본적이 없어서 음정도 엉망입니다. 괴롭고 힘들 때마다 켰습니다. 그래서 소리는 형편없지만 표정만 전문가입니다.ㅠㅜ 마지막 떠나는 마당에 어설프지만 여러분들을 위해 한곡 바칩니다. 
■ 마지막으로 올리는 부탁 말씀 
저는 정형화된, 틀에 얽매인 활동이 아닌 새로운 방식의 활동을 개척하고자 했습니다. 새로운 이해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제 생존의 기반부터 처절히 파괴해야한다고 생각했고 30대에는 의식주가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홀로 노숙에 걸식하며 생쌀 씹어 먹으며 2주에 한번씩 씻으며, 10년간 200개 지역을 걸어 다니며 환경 캠페인 했던 것도 그 때문입니다. 
40대 중반까지도 월세집도 없이 아는 분 가게, 지인 사무실 등을 오가며 그 한쪽 구석에서 생활했습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저의 전 재산은 박스 세 개였습니다. 항시 떠날 준비를 해야 했기에 짐이 꾸려진 상태로 생활했습니다. 
그러다 박근혜 정권 규탄하며 전단지 뿌리다 구속 되었다가 8개월 후 출소 하고 나서, 제가 얹혀 사는 분 사무실이 압수수색 당할 것이 걱정되어 어쩔 수 없이 무주택 주의를 포기하고, 비로소 화장실이 딸리고 필요할 때 씻을 수 있는 수도가 나오는 집에 들어가 살기 시작했습니다. 
최대한 간소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냉장고, 세탁기, TV, 에어컨, 전자렌지, 자동차 없이 살아갑니다. 3년 전 부터는 퀵보드를 하나 사서 타고 다니는데, 이것을 사기까지도 1년간 제 양심과 타협하며 고뇌해야 했습니다. 지구자원이 한계가 있기에, 내가 풍요와 편리를 누리는 만큼 환경이 파괴되고, 다른 인류가 신음하며, 후손들의 존립 터전이 망가지기 때문입니다. 없이 삶면서도 끊임없이 양심의 가책에 억눌려 살고 있습니다.   
하여간, 젊은 시절 이런 삶을 기획하고 실행하기 시작 할 때, 저는 더 이상 일상으로 되돌아 갈 수 없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그리고 두려움이 밀려오더군요.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처럼 평범하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자식 키우며 오순도순 살고도 싶었지만,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선택의 기로에서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인데, 먹고 살기 위해 아둥버둥 거리며 사는 것 보다, 내가 내 소명을 실천하기 위해서 인생을 건다면 나중에 늙어서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 선택대로 지금껏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그 때는 몰랐던 것을 40대 후반이 되어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 때는 소명을 따라 산다면 나이 먹어 빈곤하기는 할망정, 보람은 가질 수 있을 것이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지금 저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가난에 쪄들어 살면서, 마음의 상처와 트라우마로 휘청거리면서 하루하루 견디기 힘든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가 이 시간 부로 사라지는 이유는 단순히 심신이 힘들기 때문이 아닙니다. 몸이 부서지더라도 이전처럼 투쟁 현장에 나서서 활동하고 싶은 것이 제 심정입니다. 경찰의 체포를 각오하고 재판을 감수하며 계속 활동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 자신을 헌신한 선조-선배들에 대한 부채감과 죄책감이 여전히 저의 숨통을 조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투쟁 현장에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를 싫어하시는 분들의 결의가 여전히 강해 더 이상 어찌 할 수도 없는 처지입니다. 번번이 견디며 활동해보려 했지만, 더 이상은 어려운 상황입니다. 오랜 기간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보니 저와 친한 사람들을 마주하는 것마저 힘든 지경이 되었습니다. 단지 그뿐입니다. 그래서 떠나는 것입니다. 
난데없이 무슨 일인가 걱정하실 분들이 있겠지만, 저는 지난 몇 년간 계속 이 상태였고 그간 아무 일 없었으니 딱히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단지 지금껏 적응해 있던 제 삶의 공간으로부터 떠나고 싶은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 눈에 안 띄는 곳에서 앞으로도 제 활동을 홀로 해 나갈 것입니다. 80세까지 전단지 뿌리며 다니다가 객사하는 것이 제 소명이니까요.   
하여간, 떠나면서 평생의 소명이 되었던 생각을 마지막으로 드리고자 합니다. 이는 제가 보는 시민사회 운동이 정체된 이유에 대한 진단이고, 우리가 자학과 분노, 증오에 휩쓸리지 않고 주체적으로 부조리에 맞서 싸우며 희망을 찾아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에 대한 방법론이기도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저의 잘 못 살아온 삶에 대한 진지한 참회입니다.
이 글은 한권의 책입니다. A4 - 40여장에 이릅니다. 
마지막 떠나는 길에 시민사회의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을 위한 원리를 설명하는 시도이기에 내용이 방대합니다. 민주-진보진영 내에서 서로 끊임없이 반목-갈등하는 문제의 원인과 해법을 사회심리학적으로 분석했습니다. 과거에도 페북에 23장짜리 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 의외로 잃고 공유하신 분들이 많아 마지막 가는 길에 이렇게 글폭탄을 남깁니다. 이러한 원리에 관심 있는 분들 서너분만 잘 읽고 소화하셔서 주변에 전파해 주시면 됩니다. 
그간 저는 이 원리를 전파하는데 혼신의 노력을 쏟았지만 실패했습니다. 전적으로 제 능력부족입니다. 하지만, 누군가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 약간의 힌트를 얻고 그 길을 열어내실 수 있는 탁월한 분이 나타나기를 기원합니다. 
그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우선 저의 개인사를 먼저 말씀 드리겠습니다. 제가 그간 숨겨왔던 사실을 말씀드리면 제가 왜 그 많은 상처에 몸부림 쳐야 했는지, 그리고 이런 글을 남기고 사라져야 하는지도 이해하실 겁니다. 
■ 가면을 쓰고 살아왔던 삶 
이야기의 시작은 제가 그간 가면을 쓰고 있었던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듯 합니다.
많은 분들이 제가 활달하고, 사교성 좋고, 나서서 활동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정 반대입니다. 저는 사람만나는 것, 남 앞에 서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는 성격입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자체를 싫어합니다. 하여 어쩔 수 없이 여러 투쟁현장에서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는 상황이 그간 너무 힘들었습니다. 
이런 저런 사건 현장을 여러 곳 다녔지만, 낮 동안 공권력의 폭압에 맞서 함께 투쟁한 동료들과도 저녁에 술 한 잔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과 마주하고 밥먹는 것 마저도 불편했으니까요. 이렇게 반사회적 인물이 시민운동을 한다고 나서는 것도 참 미스테리지요.ㅎ
그러면 제가 어떻게 사람들 앞에 나서서 활동을 해왔을까요. 간단합니다. 술입니다. 지금껏 광장 앞에서 부조리를 성토했던, 새누리당 앞에 가서 깽판을 부렸던, 무대에 서서 사람들에게 얘기를 했던 대부분의 경우에 술의 힘을 빌어야 했습니다. 무대 공포증이 심해 맨정신으로는 얘기를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무대만이 아니라, 네 다섯명 이상인 자리에서 뭔가를 발표해야할 상황이면 술을 먹어야 했습니다. 심지어 단순히 여러사람이 모여 인사를 주고 받아야 할 상황이 예상되는 자리에서 미리 술을 먹지 않으면 그 불안감을 견디지 못해 늘상 가방 속 페트병에 술을 넣어가지고 다녔습니다. 제가 봐도 저처럼 불안공포증이 심한 사람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예전에 강정마을에 있을 때입니다. 마을 회관에서 제 영상 상영회를 했습니다. 남 앞에 설 때면 늘 그렇듯이 소주 한 병 마시고 무대에 섰습니다. 정신이 없다보니 사람들의 반응이 안보였습니다. 어느 분이 ‘영상 몇 개 남았냐’고 큰 소리로 물어 보셨습니다. ‘지루하니 빨리 끝내라’는 뜻이었습니다. 
하지만, 술 취한 정신이다 보니 왜 그렇게 물어보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다섯개 남았다’고 답변했습니다. 나중에 술이 깨고 나서 그 질문의 의미를 이해하고 홀로 제 흥에 겨웠던 것이 창피했습니다. 아직도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 거립니다. 술 먹고 남들 앞에 서는 활동의 한계인 것이지요.
재판 받기 위해 법정에 설 때도 말할 나위 없습니다. 조용한 분위기에서 사람들의 시선이 고정되는 공포감을 견디지 못합니다. 지금껏 열 몇 건의 기소된 사건에 대해 1심, 2심까지 합쳐 백 몇 십여 차례 법정에 섰는데, 단 한번도 빼놓지 않고 술 한 두병씩을 먹고 들어갔습니다. 술 취해 정신은 멍하지, 검사 판사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집중은 해야지 재판 때마다 곤욕스러웠습니다.  
이렇게 술 없이는 남 앞에 못 서는 성격이다 보니, 박근혜 정부 때, 전단지 뿌리다가 구속되었을 때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태양 빛도 한 줄기 안 들어오는 아파트형 교도소의 독방에 쑤셔 넣어져 흙 한번 밟지 못하고 8개월 격리 되었었던 것은 참을 만 했습니다.
하지만, 재판 받기 위해 포승줄에 묶여 법정에 설 때의 두려움은 말할 수 없었습니다. 심판 받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무대공포증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술을 구할 수 없으니 난감했습니다. 더군다나 대구에 구속 된 기간 동안, 군산과 제주도의 재판이 추가로 있었기에 특수 수갑에 묶여 공항 오가며 비행기에 실려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는 것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밤에 잠을 못 잔다고 의무대에서 졸피뎀을 처방 받아 뒀다가 재판 직전 그걸 먹고 몽롱한 정신으로 법정에 서곤 했습니다. 
처음 먹는 수면제다보니 잠이 쏟아지더군요. 마약성 수면제 먹고도 안 쓰러지는 정신력?으로 당당히 법정에 설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어렸을 때 만들어진 무대공포증의 벽은 참으로 높고 두터웠습니다. 
그런 긴장을 누그러트리기 위해서 현장에서는 싸움 잘하는 척 하면서 큰소리로 나섰습니다. 일부러 오버하고 자신감 있는 척 하며 나섰습니다. 힘없는 개인이 가공할 공권력과 맞서는 방법은 몸에 똥칠하고 나서는 방법 밖이 없음을 알고 옵션으로 게거품을 물기도 했죠. 
가끔 사람들은 이런 사정도 모르고 ‘어떻게 그렇게 용감하게 나서냐’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그럴 때 마다 속으로 웃곤 했습니다.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자신감이 없고, 수즙음 잘 타고, 용기 없고, 소심한 저는 다만 가면을 쓰고 용감한 체를 연기했을 뿐이니까요. 
하여간 이러한 소심함 때문에 매번 퍼포먼스, 기자회견, 항의활동 등을 한 번씩 기획할 때 마다 며칠 전부터 불안과 체한기분 속에서 한순간 한순간을 버텨 왔습니다. 활동이 끝나 사람들과 저녁을 하거나 술자리를 하지 않았던 것도 다음날 활동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이었었고요. 
그렇게, 엄청난 긴장과 불안을 극복하면서 해내는 활동들이었기에 저는 제 활동의 가치에 대해서 심사숙고 하게 되었습니다.
■ 활동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고민 
고등학교 때부터 전단지를 만들어 붙이고 다녔지만, 대학 졸업직후인 2000년대 초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외출할 때에는 항상 ‘결연하고 엄숙한 내용의 피켓’을 손에 들고 다녔고, 바지에는 아예 정치인을 비판하는 문구를 수로 새겨 입고 다녔을 정도였습니다. 
버스에 타서는 내릴 때까지 운전석 옆에서 승객들 보라며 피켓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 얼굴이 화끈 거리는 것을 견디면서 서 있었죠. 이렇게 사람들 앞에 나서는 활동이 제 적성과는 맞지 않는 활동이었지만, 선조-선배들에 대한 부채감과 죄책감을 감당하기 힘들어 꾸역꾸역 나섰습니다.   
20년 전 저의 구호와 문구는 하나같이 강렬한 투쟁 조였습니다. 숨 쉬기 힘든 의무감과 소명감이 저를 내리 눌렀고 얼굴은 항시 수심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당시 제가 만들었던 전단지에는 10포인트 작은 글씨가 앞뒷면 빼곡하게 들어 차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누가 그런 것들에 관심을 가질까 하는 답답함이 밀려오지만, 당시에 저를 짓누르던 사명감은 오직 결연하고 엄숙하며 여유 없는 활동으로만 저를 몰아붙였었습니다. 그 당시 일반인들은 저를 보면 질식했을 것입니다. 
그러다 어느 때, 문득 고뇌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름대로는 모든 걸 내걸고 돌아다니면서 활동을 하는데, 왜? 그 치열함 만큼의 효과가 없는지, 사람들이 왜 제 목소리에 관심이 없는지 심각히 고뇌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귀에 제가 외치는 소리를 들리게 할 수 있는지 이유를 밝히려 애썼습니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대중들의 마음상태를 먼저 들여다 봐야 했습니다. 
대중의 입장에서 들여다보려고 생각의 전환을 하니 문제가 단박에 풀렸습니다. 그리고 과거의 제 활동이 제 나르시즘만 채우기 위한 수준 낮은 활동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경제발전을 이룬 나라치고 대한민국 사회처럼 살기 뻑뻑한 사회가 없습니다. 삶의 질이 전 세계 100위권 밖이라는 답변이 나오고,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이기도 합니다. 문화적 다양성이 부족하고 획일화된 학벌주의와 황금만능주의가 횡행합니다. 이 속에서 하나라도 더 갖고 높아지기 위해서 인생 올인하며 빚어내는 조바심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다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닙니다. 
이런 대중의 귀에 대고 “여러분, 이제 정신 차립시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됩니다. 나서서 함께 정의로운 투쟁을 합시다!” 하는 주장을 해봤자 대중들의 피로함만 더했던 것입니다. 저의 결연한 사명감과 절규만 가득한 저의 전단지, 피켓, 구호는 대중의 짓눌린 삶에 오히려 시름을 더하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저 자신의 ‘엘리트주의’가 오히려 사람들을 막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대중을 향해 다가가고 대중을 끌어들이는 활동’은 아녔습니다. 하여 저는 그간의 제 활동에 통렬한 반성을 하고 활동 방법을 바꾸기 시작합니다.
대중운동은 내 정의로운 생각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강요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사회 문제에 무관심한 사람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며 참여시키는 사려 깊은 노력의 여부에서 갈린다고 여겨집니다. 그런 면에서 카멜레온처럼 환경에 맞게 사람에 맞게 끊임없이 변화·갱신하고, 대중 속에 파고들어 눈높이를 맞추며, 웃게 만들고, 감동을 심어주고, 눈물을 만들어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집요하게 달라붙어 어쩔 수 없이 물건을 사게끔 만드는 보험설계사나 외판원처럼, 미묘하고도 집중력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중의 욕구가 사회 문제와 연결되는 지점을 포착해 대중의 마음속에 ‘참여 욕구’를 자극 할 수 있는 직관과 감수성을 심어줘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 엘리트주의의 문제
하여, 무엇보다 엘리트주의를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강단위에서서 아래 있는 사람을 내리 깔다시피 하면서 ‘넌 그것 틀렸어. 너 잘 못되었어. 너 고쳐야해!’라고 타인의 삶을 무턱대고 지적하고 비판하고, 교정하려는 태도 말입니다. ‘대중들을 무지 몽매한 계몽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내리 깔 듯이 보고, 꼰대질을 일삼는 엄숙주의, 형식주의, 문자주의, 엘리트주의 말입니다. 이는 정의의 가면을 뒤집어 쓴 또 하나의 권위주의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보니 시민 사회 운동한다는 분들이 엄숙주의, 형식주의, 문자주의, 엘리트주의적 견지로 대중을 ‘수준 떨어지는 인간’들고 규정하는 것에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끄떡만 하면 시민을 내리 깔면서 계도하려는 모습에 심한 문제의식을 느꼈습니다. 제안하고, 알리고, 권장할 수는 있습니다. 그건 올바른 진보운동입니다. 하지만, 대중들을 ‘계도의 대상’으로 규정해 조금만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폭력’ 운운하며 타인을 ‘가르쳐야할 존재’, ‘한심한 존재’ ‘타도해야할 존재’로 규정해 자신의 주의주장을 강압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입니다. 
실지로 환경 레디컬니즘(근본주의)자들과 러다이스트(기계 파괴운동가)들의 주장이 그렇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냉장고, 세탁기, TV, 에어컨, 전자렌지, 자동차를 ‘지구와 동식물과 인간을 파괴하는 적’으로 규정합니다. 하여 다른 분야의 시민 사회운동을 하는 이들을 이런 식으로 규탄합니다. 
‘당신들이 인권운동이나 사회 개혁 운동 해봤자 아무 소용없다. 당신 자신이 냉장고, 세탁기, TV, 에어컨, 전자렌지, 자동차를 자연스럽게 여기는 것 자체가 폭력 인줄 모르는가?! 당신의 삶 자체가 폭력이고 혐오인 주제에 무슨 인권과 소수자 찾는 위선적인 활동을 하고 있냐!’라고 말입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다른 부류의 인권/민주/노동운동은 ‘개발론’과 ‘물질주의’에 기반해 있기에 그 자체가 악이라는 것입니다. 인류가 물질주의와 개발론에 빠진 결과 빈부의 양극화가 생기고 아프리카에서 매일 하루 2만 명의 인류가 물 부족 식량부족으로 죽어가는 등의 일이 빚어지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한 고민은 뒷전으로 하고서 시시껄렁한 문제를 트집 잡으며 정의로운 체 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라는 것입니다. 하여 물신화에 안주한 체로 노동자, 장애인, 노인, 여성 등의 약자와 소수자의 권리 찾기 운동에만 나서는 것은 ‘위선적 사회운동’이라며 비난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식의 근본주의-엘리트주의는 절대로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들이 그러한 이해와 실천을 한다는 이유로, 자신이 불편함을 느낀다는 이유로, 타인을 무턱대고 혐오자로 규정하고 인간성을 함부로 재단하는 것은 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안’하고 ‘알리고’ ‘설득’해야지. 무턱대고 상대방을 수준 낮은 인간으로 규정하고 타도의 기치를 높이는 것 자체가 폭력이라는 것입니다. 왜 맥없는 타인이 난데없이 폭력배가 되어야 합니까. 
그렇기에 저는 현재의 시민 운동을 보면 우려가 심해집니다. 앞서 논한 것과 같은 방식의 근본주의 운동이 팽배해 있기 때문입니다. 뭔가 조금만 기분 나쁘면 상대방을 혐오자로 규정해 타도의 깃발을 높입니다. 
이와 같은 지적에 그 분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반발합니다. ‘우리는 힘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대응해서 싸울 수 밖에 없다. 우리의 처절함을 아냐!’고 말입니다. 정말 답답한 소리입니다. 저는 그분들에게 투쟁하지 말고, 싸우지 말고, 사회 개혁을 하지 말라고 그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방식으로 활동 자체가 결국 스스로의 발목을 잡고, 자기 자신이 다른 사람에 의해 또 다른 혐오자로 규정될 빌미가 된다는 것입니다. 앞선 사례처럼 말입니다.  
치열하게 투쟁해야하지만, 획일적이고, 배타적이고, 주변을 돌아보지 않는 일방주의는 자제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그 자체가 스스로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그 자체가 우리가 서로를 불신하고, 사회를 오히려 혼탁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러한 문제의식을 갖고 살아왔습니다. 그 때문에 어떻게든 시민들에게 다가가고 눈높이를 낮춰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활동을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거창한 사명감, 결연함, 엄숙함’을 강요하는 ‘문자주의, 형식주의, 엄숙주의, 엘리트주의’에 저항하고자 했습니다. 
일정한 규칙과 질서 속에 인간을 밀어 넣으려는 아카데미즘과 무겁고 딱딱한 말에 이 세계를 가두려고 하는 형식주의의 오만이 싫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렇게 경도된 주의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차고 넘쳐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대중들이 짜증을 내고 진보 운동을 멀리하고 있기에 더더욱 저에게는 문제로 보였습니다.
따라서 저는 대중들을 겨냥해 엄숙-형식주의를 버리고, 즐겁게, 재미있게, 웃을 수 있게 제 활동을 ‘광대짓’화해서 구성했습니다. 그렇게 문턱을 낮춰서 관심을 끌게 하다 보면 언젠가 그들에게 깊은 얘기도 건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민운동을 광대짓 하듯 했던 것입니다. 20년 전에는 찌르면 피도 안 나올 정도로 시종일관 결연하고, 딱딱하고, 여유없는 활동을 하고 다녔지만, 제 과거 활동에 대한 반성으로 광대짓을 하고 다니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 광대짓의 후유증 
스스로를 심판자의 자리에 위치시킨 후에, 맘에 안 드는 상대를 타겟으로 잡아 타도의 기치를 높이는 것 만큼 쉬운 활동을 없습니다. 간편하게 도덕적 허기를 채우고 나르시즘을 높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중을 상대로 할 때는 나를 먼저 낮춘 후에, 그들에게 다가가서 관심 갖게 만들고, 웃게 만들어서, 먼저 설득하고 끌어들여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제가 광대짓을 해온 이유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 저는 오히려 일부 활동가들로부터 문제적 인간이 되었습니다. 제가 ‘장렬해야할 시민운동을 웃음꺼리로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수준 낮은 운동’을 하고 있다고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2014년부터 박근혜 정권의 폭정을 규탄하기 위해 다양한 퍼포먼스를 하고 다녔습니다. ‘결연하고’ ‘엄숙하기만’한 운동을 해서는 우리끼리의 전유물이 될 수 있어서 어떻게든 대중들이 보고 관심 갖게 하기 위해 재미있고, 재기발랄한 방법을 끊임없이 개발했습니다. 폭압 앞에서도 기죽지 말고 웃으며 싸우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정부에서 금지하는 전단지를 만들어 뿌리다 보니 공안당국의 표적이 되었고, 통장, 이메일, 전화기, 거주지, 우체국 등의 곳곳의 불법적 압수수색이 이뤄졌습니다. 심지어 제 주변사람들 수십명의 신상조사마저 이뤄졌습니다. 소환장이 발부되고, 긴장은 점점 고조되었습니다. 속이 타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저들이 주는 폭압에 두려움으로 반응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은 저들의 전략에 말려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여 그들의 폭압을 조롱하는 방식으로 활동을 했습니다. 가스통을 껴안고 압수수색에 대비하는 모습이나, 냄비그릇을 머리에 쓰고 전투 준비를 하는 모습이나, ‘제발 좀 체포해서 제 주가 좀 올려 달라’고 애원하는 모습 등등, 결연한 투쟁가의 모습이 아닌, 히히덕 거리는 광대의 모습으로 상황에 대면했었습니다. 
그런데, 진보운동을 한다는 분들의 일부가 거부 반응을 하는 것입니다. ‘장렬해야할 시민운동을 웃음꺼리로 만들고 있다’고 말이죠. ‘관심병’에 걸렸다고 조롱하시는 분들도 있더군요. 그분들이 보기에 제 활동은 시민 운동의 품격을 떨어트리는 활동이었습니다. 비유, 반어, 은유 등을 이용한 표현과 퍼포먼스가 질이 떨어져 보인 듯 했습니다. 
잘 알고 지내던 활동가들로 부터도 대뜸 비난 댓글이 달립니다. 그렇게 설렁설렁 장난하는 식으로 활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좀 차분히 얘기해줬으면 싶은데, 이유도 설명도 없습니다. 밑도 끝도 없이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며 불쾌해 하는 댓글을 남기고 사라집니다. 
알고 지내던 활동가들로부터 몇번을 이런 일을 겼었습니다. 엄숙하고, 형식을 갖춰야하고, 결연해야 하는 투쟁의 이미지를 더럽히는, 저처럼 수준 떨어지는 사람과는 더 이상 상종해서는 안 되겠다는 경멸감이 섞여 있었습니다. ‘당신 활동은 틀렸고, 악이다’는 식입니다. 
어떤 표현된 말을 ‘음가’로만 해석하고, ‘맥락’은 따져보지 않는지 우려해 봅니다. 제 나름대로는 이를 ‘문자주의, 형식주의, 엄숙주의’라고 여깁니다. ‘은유’ ‘비유’ ‘반어’ 같은 것을 부정됩니다. 하여 누군가 ‘너 죽을래’라는 장난의 말을 하면 ‘아니 어떻게 그렇게 살인을 한다는 폭력적인 말을 할 수 있냐’며 발끈하는 식입니다. 
공권력의 폭압과 싸우며 ‘개ㅅㄲ’라는 욕을 하면 일부 동물운동가들은 ‘명백한 개혐오’라고 규정 하며 그 욕을 쓰는 사람을 동물 혐오자로 규정합니다. 어떤 동물운동가는 저에게 ‘개사료 그만 뿌리고 다니라’며 충고하셨습니다. 개에 대한 이미지를 안 좋게 만들어 개에 대한 학대를 부추기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애교표현으로 ‘바보’라는 표현을 쓰는 것 역시 ‘명백한 장애인 혐오 표현’가 됩니다. ‘딸바보’라는 표현 역시 장애인 혐오 표현이 됩니다. ‘미치도록 사랑하고 싶다’ ‘정신 나갔냐’는 표현 역시 ‘정신질환 환자 혐오 발언’으로 규정합니다. ‘무식하다’, ‘멍청하다’ 모두 ‘저학력자 비하발언’이 됩니다. 가짜로 때리는 척 장난하면 ‘폭력을 정당화 한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과 행동에 말꼬투리 잡아 트집 잡아 대는 것이, 무슨 진보의 표상이 되어 유행처럼 번져있는 상황입니다. 진보가 갈등하는 현장에는 꼭 이런 모습이 보입니다. 트집 꺼리를 찾아내는 것을 서로 시합하듯 합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고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인데, 어떤 언어의 의미를 끊임없이 미분하고, 지적하며, 규탄의 목소리만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세상 쉬운 것이 정의와 진리를 입으로 외치는 것입니다.
인권,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들이대며, 상대를 혐오자 취급을 하는 것을 예삿일로 여깁니다. 그 자체가 하나의 심각한 이념적 폭력이 아닌지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약자와 소수자는 무슨 주장이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그 자체가 변형된 권위주의입니다. 
제가 사회복지를 전공하다보니 일부 장애인의 경우에는 자기보다 힘없는 장애인을 노예처럼 부리는 경우도 많이 보았습니다. 약자가 자기보다 약한 자를 노예 부리듯 하는 경우는 부지기수로 일어납니다. 그렇게 남을 착취하는 장애인은 언 듯 보면 장애인 권익을 위한 듯 주장을 하지만, 그 이면에는 실로 추잡한 권위와 억압의 논리가 숨겨져 있음을 보게 됩니다. 하여 제가 ‘장애인이 하는 주장이 다 옳은 것이 아니다’는 말을 했더니, 앞뒤 맥락은 사라지고 ‘둥글이는 장애인 혐오자다’라면서 비난을 하고 다닙니다. 저는 졸지에 약자인 장애인을 억압하는 강자가 된 것입니다. 
일본의 어떤 평화운동가는 트럼프가 분발해서 전쟁을 일으키자며 ‘3차 대전을 일으키자’라는 제목의 뮤직비디오를 만들어 히트를 친 바 있습니다. 말 그대로 시종 일관 ‘전쟁하자’는 내용입니다. 가사 중에 어느 한 곳에서도 ‘평화를 위해 노력하자’고 거론하지 않습니다. 시종일관 트럼프의 발언을 인용하고, 트럼프를 찬양하면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방법만 나열합니다. 하지만 느낌적으로 그게 ‘반어법’인 것을 다 압니다. 하여 ‘반전 음악’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일본인이 한국에서 그 노래를 불렀으면 한국의 진보들로부터 전쟁을 찬양하는 ‘전쟁광’으로 규정되어 비난 받았을 것입니다. 그 정도로 현재 한국 사회의 진보의 사고가 획일적인 방식으로 규율되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서로 상대 활동의 시비꺼리만 찾아 비판하는 세태 - 모난 돌이 정 맞는 세태 속에서 새로운 시도 조차 할 수 없는 답답하고 정체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시민사회에서 보이는 이러한 경향성 - 패턴들을 우리가 전반적으로 파악해야 문제를 진단할 수 있기에 사례를 나열하는 것입니다.
몇 년 전 검찰 개혁 집회 할 때는, ‘10만원 짜리 검찰 개혁 화폐’를 만들어 ‘일당 받아 가세요’라며 나눠줬습니다. 즐겁게 투쟁하자는 취지였습니다. 대부분 좋아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받은 극히 일부 사람들이 ‘발끈’화를 내십니다. ‘왜! 우리를 일당 받아가는 사람으로 만들어 우리의 선의를 더럽히냐’고 말입니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이해를 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게 그 의미가 아니라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납득시킬 수 없었습니다. 풍자를 직설법으로 받아들이는 분들에게 이를 해명할 길은 없습니다. 함께 화폐를 나눠주던 분은 멱살잡이까지 당했습니다. 결국 몇몇 분들의 시비로 활동을 중간에서 끝내야 했습니다. 
상대가 쓰는 ‘은유’ ‘비유’ ‘반어’ ‘풍자’ 같은 것을 아예 경멸하고, 그것들을 ‘문자 그대로만’ 해석해 준엄한 심판의 자를 들이대는 세태에 숨을 못 쉴 정도입니다. ‘소설 쓰지 말라’는 관용 표현에 대해서마저 소설가 협회에서 ‘소설가들에 대한 명예훼손이다’며 들고 일어날 정도의 세상인데 오죽하겠습니까.  
‘국회에서 양복만 입어야 한다’는 ‘복장 엄숙주의’에 대해서는 목소리 높이시면서 싸웁니다. 잘 하십니다. 그렇게 엄숙주의, 형식주의, 엘리트주의를 타파해야 합니다. 그런데 왜, ‘문자’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지 못하시는지 아쉽습니다. 왜? 그러한 ‘문자 양복주의’ ‘문자 엄숙주의’ ‘문자 형식주의’ ‘문자 엘리트주의’가 우리 존재를 얽어매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복장’보다 훨씬 우리를 존재를 얽어매는 것이 바로 ‘관념’임을 알고 탈피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진보진영에서는 아예 이러한 논의가 시도 되지 조차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엄숙주의, 형식주의, 문자주의’의 극단으로 몰고 가는 것을 진보의 표상인 마냥 여기는 이상한 시류가 퍼져 있습니다. 
‘엄숙주의, 형식주의, 문자주의’는 엘리트주의의 일환으로 원래 보수적 사고의 전유물입니다. 그런데 진보가 보수와 오래 싸우다보니 상대를 닮게 되었나 봅니다. 외국의 인권 선진국에서 한국 진보의 사례를 보면 실소를 금치 못할 것입니다. 
(그나저나 혼신의 집중력으로 여기까지 읽어오셨으니 이제 고작 4분의 1 읽으셨습니다. 애초에 처음에 읽을 필요 없다고 말씀 드렸는데 뭐하러 노고를 자처하십니까.) 
■ 정의의 이름으로 서로를 심판하는 진보
이렇다보니 뭔가 조금이라도 기분이 상하면 말꼬투리를 잡아 다른 사람들에게 ‘폭력적이다’라며 ‘혐오자’ 굴레를 씌워 타도의 기치를 높입니다. 재미난 사실은 서로의 관심과 이해의 분야가 다르다보니 서로 상대방을 향해 ‘혐오자’로 규정해 비난의 손가락질을 하면서 진보진영이 사분오열되는 것입니다. 
물론 상대방의 말이 적절하지 않는 것 같이 보이면, 의견을 내고 제안을 해서 바꾸도록 유도를 할 수는 있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PC(정치적 올바름)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조금 기분 나쁘면 다짜고짜 ‘악이다’라면서 타도의 기치를 높입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 사건을, 자신들이 보고 싶은 방식으로만 (엄숙주의, 형식주의, 문자주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그것을 ‘악’으로 규정한 후에 그에 맞는 근거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벼라별 희한한 논리와 관점을 갖다 붙입니다. 
그에 동조하지 않는 이들 역시 ‘악의 동조자’로 규정해 타도의 기치를 높입니다. 그것은 PC가 아니라, PC의 외향을 뒤집어 쓴 증오심입니다. 또한 독단주의이고, 일방주의이며, 전체주의입니다. 그 결과 PC를 외치는 사람들 끼리 싸웁니다. 뭐가 이상하지 않나요. 왜? 정의를 외치는 이들끼리 싸워야 하는 일이 빚어지는 것일까요. 
내가 약자이고 내가 고통 받고 있는데, 모든 세상이 나에게 적대적이라 할라치면, 그 이미지가 얼마나 서사적이고 낭만적입니까. 나는 그 적들과 맞서서 장렬히 싸우면 됩니다. 나는 장렬한 투사가 되어 눈에 보이는 적들을 다 처치하고 홀로 정의를 이루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주지 못하는 한심한 종자들에게 조소를 쏟아내면서 말입니다. 이러한 관념론을 극대화 하는 요인 중의 하나가 맑시즘적 이분법입니다. 맑시즘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맑시즘적 이분법을 감상적으로 갖다 붙이는 것이 문제이겠지요. 
과거에는 이런식의 시뮬라시옹이 머릿속에 구축되더라도, 일상 속에서 사람들과 마주대하고 인간관계를 갖는 와중에 그것이 깨지고 오해가 불식되고, 관계가 회복되며,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서로 갈등했더라도 일터나 생활공간에서 지나치면서 눈인사하고 아는체 하다보면 어느새 관계가 회복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SNS와 무리집단에 매몰되어 현실적인 경험을 하지 않다보니 점점 그 관념화의 정도가 극심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보니 누군가와 감정이 상하고 패가 갈라지면 서로 죽을 때까지 ‘나만 옳다’면서 박터지게 싸우며 극단의 원한을 갖고 대립하는 현실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 자체가 시뮬라시옹의 가상현실입니다. 영화 메트릭스 속의 세계상은 가상 현실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정보통신 문화 자체입니다. 우리 시민사회가 풀어야할 중요한 숙제입니다. 문제는 그 사실 자체를 모릅니다. ‘문자 양복주의’ ‘문자 엄숙주의’ ‘문자 형식주의’에 한번 빠지면 그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이 때문에 SNS에 누군가가 자신과 다른 의견을 올려 놓을라 치면 견디지를 못합니다. 댓글 달아서 ‘틀렸다!’, ‘고쳐라!’ 하면서 허고 헌 날 지적하고 가르치려하고 지시합니다. 그 시간에 돌아다니면서 길거리에서 사람을 만나고 전단지를 뿌리면서 대중들을 끌어들일 생각을 했으면 싶은데, SNS만 찾아다니면서 나와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글에 댓글 다는 것에 혼신의 에너지를 쏟아 냅니다. 이걸 무슨 시민운동의 사명처럼 여기는 분들도 있습니다. 
언어라는 것이 단단히 굳은 콘코르트가 아닌 젤리의 형식을 취해 끊임없이 역동하고 있습니다. 문자는 목적이 아닌 방편인 것입니다. 본질이 아닌 현상입니다. 주체가 아닌 객체입니다. 이를 알고 조금 유연하게 살펴야 합니다. 그런데 자신들의 이해만을 고집하고 강요합니다. 각자 언어쓰임이 다르다 보니 결국은 그런 사람들 끼리는 파국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진보적 독단이 심해지면, 보수와 경계가 희미해지는 지경에 이르는 것입니다. 민주-진보진영 내의 거의 모든 분란과 갈등, 분열이 이로 인해 생겨나는 것이고, 대중들이 진저리를 치며  떠나나게 하는 동인이 바로 여기에서 발생되는 것입니다. 
■ 엄숙주의, 형식주의, 문자주의, 엘리트주의
이러한 엄숙주의, 형식주의, 문자주의, 엘리트주의의 종국은 [일방주의], [배타주의]로 귀착됩니다. 즉 ‘나만 옳고 너는 틀리다’는 독단의 늪입니다. 이는 [부분]이 아닌 [전체]에 침잠하고, [현상]이 아닌 [본질]에만 집착하며, [실존]이 아닌 [근본]에만 매달리는 사고 방식이 다다르는 종국입니다. 수구보수들이 빠져 있는 함정에 진보가 뛰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조그마한 갈등과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우울과 좌절과 절망에 빠지는 것도 바로 그 후유증입니다. 능히 극복할 수 있는 단순한 문제도 일단 ‘엄숙주의, 형식주의, 문자주의’에 빠지면 벗어나지 못합니다. 인간의 ‘자기 예언적 실현’ 능력 때문에 어떤 문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공고화 하면 그 인식의 덫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한 자기 내부의 불협화음을 주변에 쏟아내고, 남탓만 하고, 조직을 송두리체 분열로 몰고 가며 시민운동계의 지반을 무너트리는 것을 수도 없이 보아 왔습니다. 다만 거기에 ‘인권’과 ‘정의’의 이름을 포장합니다. 일부 진보 운동의 모습을 보고 있을라치면, 플라톤의 이데아를 현실세계에서 구현하려고 애쓰는 근본주의 철학자들의 각축장처럼 보입니다. 
플라톤 철학이 결국 기독교의 독단적 교리로 변형된 것처럼, 진보운동하는 일부 분들의 모습이 무슨 종교운동 하듯 하는 듯 자신의 도덕적 신념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행태가 유행처럼 번지는 것도 그런 맥락일 것입니다. 과거 7,80년대 검열의 시대에도 이러지 않은 현상이 지금 빚어지고 있습니다. 숨도 쉬기 힘든 도덕주의와 금욕주의가 인권의 허울을 쓰고, 개인의 자율을 억압하는 시대입니다.
이런 문제를 알기 때문에도 저는 더더욱 ‘엄숙주의, 형식주의, 문자주의’를 극복해야할 가장 큰 진보의 장벽으로 생각했습니다. 유연한 생각과 정신으로 세상을 항시 뒤틀기 하고, 유머와 긍정을 갖고 살아야 함을 끝없이 토로했습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도 끊임없이 그런 방식의 노력을 해왔습니다. 제가 쓴 두 권의 책의 내용도 내내 그런 내용입니다. 
하지만 번번이 큰 장벽에 좌절을 맛보게 되었는데, 그것은 ‘진보적 사명감’에 불타는 분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분들이 보기에는 제 활동이 ‘운동을 가볍게 만드는 싸구려 광대 놀이’로 밖에 안보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저는 더더욱 그 틀을 깨야겠다는 사명감으로 다양한 퍼포먼스를 이어왔습니다. 
■ 추락의 시작 - 이건희 페러디 사건
그러는 중 2016년 이건희 성매매 사건이 터졌습니다. 사건을 접하고 충격적였습니다. 돈 꽤나 있다고 나이 먹고 여성 네 명을 데려다가 성매매를 하는 일이 어찌 빚어질 수 있을까요. 
하여 이 황당한 사건을 어떻게 다룰까 해서 퍼포먼스 운동가로서 페러디를 했습니다. 단순히 ‘이건희 나뿐놈이다’는 식의 표현으로는 이건희의 죄악을 신랄하게 드러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론 ‘너 잘 못했다’는 직접적 비난의 표현보다 ‘그래 너 잘났다’는 반어적 표현이 더 신랄한 부정 표현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여, ‘이건희. 나이 살 먹고 젊은 사람들 보다 정력이 참 대단하다. 당신이 앞으로 내 체력운동의 지표다’라며, 제가 바벨 들고 근력운동하는 모습의 사진을 올렸습니다. 제가 흔히 하는 반어적 퍼포먼스 였습입니다. 하지만 혹시나 이런 얘기를 성매매를 권장하는 식으로 오해할 분들이 있기에 ‘성매매를 한 것은 잘 못되었음’을 분명히 명시하는 문장도 곁들였습니다. 
과거로 부터 강정, 용산, 세월호, 핵폐기장, 송전선, 4대강, 새만금 투쟁 현장 등에서 경찰들의 진압이 시작될 때, 늘 하던 방식의 반어법적 표현이었습니다. ‘그래. 노동자들 다 때려 죽여라’ ‘유가족들까지 다 짓밟아 죽여라’ ‘니들이 사람 때리는 폭력 정말 부럽다.’ ‘너희들 사람 죽이는 권력 참 대단하다’하고 말입니다. 
제가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실지로 마을 주민, 노동자, 유가족들을 죽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실지로 경찰의 폭력이 부러운 것이 아닙니다.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공권력의 폭압 앞에서 흔히 사용하는 반어법입니다. 
그런데 이런 반어법을 쓸 때, 갑자기 누군가가 정색을 한다고 해보십시오. ‘아니 어떻게 사회적 약자인 사람들을 죽이라고 경찰에게 주문 할 수 있냐’ ‘나는 사회적 약자인데 너의 그 표현은 사회적 약자 혐오 표현이다’ ‘어떻게 폭력을 부러워 할 수 있냐’라고 말이죠. 제가 투쟁 현장에서 사용한 표현들을 음가로만 해석한다면 저는 아마 투쟁현장에서 진즉에 퇴출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이건희 페러디 사건 때 빚어졌습니다. 제 이후의 미래가 그 사건으로 결정되었습니다. 
그 글을 올리고 난 후 1주 일 째 까지는 많은 이들이 글을 공유해 가서 이건희의 ‘나이값 하지 못함’을 비난 했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제가 쓴 내용 자체가 이건희를 돌려까기 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주일이 지난 후 어떤 분이 ‘둥글이가 성매매를 부러워한다’는 해석을 붙여 그 글을 퍼트렸습니다. 
맥락은 상관없이, 글의 쓰임의 외연과 내포와는 상관없이, 음가만 가지고 문제 삼은 것입니다. 저는 이건희를 조롱하기 위해 반어법으로 표현을 한 건데, 성매매를 부러워하고, 권장하기 위한 직설법으로 둔갑 되었던 것입니다.
왜. 지난 6년 전 이야기를 이렇게 구구절절이 이야기를 하냐고 이해 안 되실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껏 이 사건 때문에 저와 등지고 저와 인관관계를 끊은 분들도 있기 때문에 마지막 가는 길에 해명 드리는 것입니다. 제가 그렇게 쓰레기 같은 인간 아니니 마지막 가는 길에 나쁜 기억을 잊어주시고 좋게 기억해 주십사 해명 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퍼포먼스 활동가입니다. 언론 등에 소개 될 때 ‘퍼포먼스 활동가’로 소개 됩니다. 모든 표현을 ‘직설적’, ‘정언명법’으로 쓰이는 것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풍자는 분노와 고통을 표현하는 또 다른 투쟁 방식’이이라고 생각하기 더더욱 그렇습니다. 저는 뉴욕타임즈에까지 ‘퍼포먼스 활동가’로까지 기사가 오른 사람입니다. 현실을 비틀어서 표현하는 역량이 있다보니 외국 언론까지 관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예술단체로부터 초청받아서 작품도 퍼포먼스 작품도 전시한 나름대로의 퍼포먼스 예술가입니다. 그게 제 활동의 전문 분야입니다. 그런 활동 저의 적성에 맞지 않아서 하고 싶지 않지만, 대중들을 어떻게든 끌어들이기 위해 해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저의 이건희 퍼포먼스가 퍼포먼스가 아닌 문자 그대로 해석되어, 성매매에 대한 부러움을 드러낸 여성혐오행위의 딱지가 붙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이건희 페러디와 관련해서 반어법, 역설 표현에 대한 문제를 설명을 하고 이해를 시키려고 해도, 그러면 그럴수록 제가 한 얘기를 또 맥락없이 재단하셨습니다. 왜? 제가 표현한 텍스트를 그분들만 해석하고 심판할 수 있는 것인지 저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해명 하려 하면 할수록 더더욱 깊은 늪으로 빠져들 뿐이었습니다. 
저는 평생을 죄책감으로 시달려왔습니다. 제가 하나 더 가지면 타인이 못 가지는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자동차, 전자렌지도 없이 생활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살아온 제가, 여성들을 짓밟기 위해서, 여성들의 권리를 착취하기 위해서, 이건희 정력이 부러워서 그런 페러디를 했을까요. 여성들을 많이 거느린 이건희에 대한 부러움을 제가 그렇게 드러냈을까요. 설령, 만에 하나 제가 정말로 이건희가 부러웠다면 그런 내용을 올렸을까요. 제가 머리에 총 맞은 사람이 아닌 이상 진심으로 그것이 부러워서 그런 포스팅을 했을까요. 
차라리 제가 사건현장에서 ‘유가족 잡아가, 죽여라.’ ‘쌍용 노동자들 다 잡아가라’는 표현을 쓴 것에 대해서 저를 ‘인권 혐오자다!’라면서 타도의 목소리를 높였다면 백배 인정했을 것입니다. 제가 반어법으로 표현하는 대상의 실체가 눈앞에 있기라도 하니까요. 
저는 박근혜 정부 당시의 국가폭력의 희생자입니다. 공안탄압을 극대화 하는 박근혜 정부에 대해 ‘박근혜도 국가보안법으로 수사해라’라는 내용의 전단지를 만들어 뿌리고 다니며 퍼포먼스를 했었습니다. 이에 청와대 수석회의에서 ‘전단지 살포 행위 엄중하게 처벌하라’는 지시를 했고, 대검찰청에서 수사지휘가 떨어져 저의 통장, 이메일, 전화기, 거주지, 우체국 등의 곳곳의 불법적 압수수색이 이뤄졌습니다. 
심지어 제 주변사람들 백여명 되는 사람들의 신상조사, 계좌조사 마저 이뤄졌습니다. 소환장이 발부되고, 결국 8개월 구속까지 되었던 것이죠. 박근혜 정궈 내내 제 삶은 그야말로 국가 짓밟혔습니다. 그런데 이 당시 제가 체포 구속된 이유가 바로 검경이 전단지 문구를 ‘직설법’으로 받아들인 결과였습니다. 앞선 이건희 페러디 사건과 똑같습니다. 
그나마 문체부블랙리스트 위원회에서 제 사건에 대해 조사를 해서 ‘청와대 지시에 의한 국가폭력사건’으로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무죄 판결이 나왔습니다. 그 사건은 야만적인 국가폭력 사건이지만 그래도 검찰이나 법원에서 형식적으로라도 제 말을 들어 주는 체라도 해준 것이고 결국 저의 무고함이 밝혀져 손해배상금이 나왔고, 페미니즘 단체에 기부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건희 페러디 사건에 대해서는 아예 그러한 것이 없었습니다. ‘너는 여성혐오자니까 너는 어떠한 변명도 할 자격도 없고, 너는 타도되어야 한다.’가 그분들의 주장이었습니다. ‘재기하라’(자살해라)는 표현도 서슴없이 하실 정도였습니다. 제 입장을 설명할 기회라도 한번 주셨으면 했습니다. 하지만 혐오자로 규정해서 타도의 기치만 높이니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물론 모든 페미니스트분들이 그리한 것은 아니고, 어떤 페미니스트분들은 오히려 저를 두둔해해 주신 분들이 있었지만, 좌우지간 어떤 페미니스트 분들이 불편해 하셨기에 해명하려 애를 썼습지만 들어주지 않으시니 난처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지난 6년간 저를 비난해 오신 그 많은 분들 중에 단 한분도 제 얘기를 들어보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압니다. 그간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너무 짓밟혀 왔기에 그러시는 것이지요.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평소 얼마나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하셨으면 제 모습에서 여성혐오 행위만 보여지셨겠습니까. 그 점 죄송하고 사죄합니다. 남자로서의 원죄에 대해서는 뭐라 할말 없습니다.  
하여간 위와 같은 설명을 아무리 해도 소용없었습니다. 하여 그 사건 며칠 후 공개 사과를 했습니다. 땅바닥에 넙죽 엎드려서 사죄하는 사진과 함께 사과의 말을 올렸습니다. 이후 예정되어 있던 여러 일정을 취소하며 자숙할 것을 공지했습니다. 
또한, 제가 무지한 사람이고, 앞으로 페미니즘 공부를 할 테니, 페미니즘 서적을 추천해 달라고 하여 책을 다섯권 구입해서 공부했습니다. 그 내용을 페이스북에도 공지했습니다. 저도 나름대로 억울함은 있었지만, 그렇게 까지 사죄하고 무릎까지 꿇고 했으면 어느 정도 문제가 정리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큰 오산였습니다.
이후 페미니즘 활동 열심히 하시는 어떤 분들이 ‘둥글이가 쓰레기인 이유’라는 제목으로 저를 시민운동계에서 퇴출 시켜야 할 이유를 정리해 전파하셨습니다. 앞선 이건희 페러디 내용만을 가지고 여성혐오자로 규정하기에는 조금 애매했는지 제가 페북에 올렸던 글들을 몇 개 찾아서 공지하셨습니다. 압니다. 얼마나 여성 혐오사회에서 살기 힘드시니까. 그렇게 하실 수 밖에 없으셨겠습니까. 남자로서 참회합니다. 
제가 지난 일을 다시 거론하는 것은 이 때의 사건이 여전히 지금 이순 간까지 강력한 영향력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그분들의 주장이 그대로 일부 여성계에 전해서 제가 회복하기 힘든 사건으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분들께서 뒤늦게라도 이해해주시고 분노를 거둬 주십사 하는 뜻으로 다시 한번 해명드립니다.  
우선 그분들은 제가 [후원금 받아서 선데이 서울을 사겠다.]라고 명시한 것은 성착취 잡지를 살 것을 명시한 여성혐오라고 문제 삼으셨습니다. 그런데, 선데이 서울은 이미 1990년대에 절판된 잡지입니다. 제가 만약 당시에 판매되는 ‘맥심’이나 ‘플레이보이지’ 같은 잡지를 사겠다고 했다면 ‘성착취 잡지를 사도록 부추긴다’라는 비난 받아도 뭐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90년대에 절판된 썬데이 서울입니다.  
더군다나 제가 ‘후원금을 선데이 서울이라는 잡지를 사겠다’라고 명시한 이유는, ‘후원금을 시민운동에 쓰겠다’라고 걷어서 착복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제가 ‘후원금을 시민운동에 쓰겠다’라고 거창한 명분을 들이대서 돈을 걷었으면 더 많은 후원금을 걷을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저는 ‘저렇게 쓸데없는 잡지 산다고 해도 도와주고 싶은 사람만 후원하세요’라는 취지로 그런 문구를 올린 것입니다.
저보다 더 중요한 다른 사람들 활동 후원 먼저 하시고, 그래도 돈이 남으면 저에게 후원해 달라는 취지의 표현이었습니다. 나름대로 양보하고 배려하기 위한 표현이었습니다. 그런데 ‘선데이서울’이라는 문자만 떼어다가 맥락과 상관없이, 성착취 잡지 구입하게 해서 여성억압의 사회를 만들 도록 부추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제 의도와는 다름을 혜량해 주십시오. 다시한번 부탁드립니다. 
또한 그분들은 [둥글이가 참기 힘들면 자위행위 하세요. 라는 스티커를 만들어 뿌림으로 근본적인 문제가 이 사회의 남성 권력임을 은폐했다.]고 주장하십니다. 
당시 자기 성욕을 주체 못해 밤에 유흥가를 돌아다니다가 여성을 사냥감 삼는 범죄청소년들에 대한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었습니다. 그리고, 국회의원들 성폭력 사건이 많았죠. 하여, ‘여성의 삶을 망치지 말고, 너 혼자 자위행위 해서 해소하라’는 스티커를 만들어 뿌리자고 시안을 만들어 올린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들은 ‘중요한 것은 성욕의 배출이 아니고, 여성 억압사회구조인데 둥글이는 그 구조를 바꾸려하지 않고 미봉책을 권장함으로 여성혐오로 일조 했다.’는 것입니다.
이 앞에 폭력배가 있습니다. 열 받아서 그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을 때리려 합니다. 그래서 제가 ‘야 주변사람들 때리지 말고, 샌드백이나 쳐라’고 조언합니다. 그런데 옆에서 보고 있던 누군가가 ‘인간의 근원적 폭력성을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은폐하는 역할을 함으로 사회의 폭력성이 유지되게 기여했다’는 지적을 합니다. 똑같은 사례 아닌지요. 저 처럼 수준 떨어지는 사람이 성폭력 사건을 줄이기 위한 선의를 보이려고 자기돈 들여서 뭔가 노력하는 모습을 굳이 그렇게 악의로 해석해야하는지 안타깝습니다.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그분들은 또한 [둥글이가, 엄마부대 주**을 비판함으로 여성혐오를 가중시켰다]고 합니다. 엄마부대 주**은 세월호 유가족들 단식하는 자리에 찾아가서 피자파티를 주최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하여 저는 어느 날 올라온 주** 기사를 캡쳐 해서 ‘이 인간 참 한심하다’는 글을 남겼습니다. 딱 그 표현이었습니다. ‘한심한 인간’  
그런데, 제가 포스팅한 글을 보고 어떤 분이 주**을 향해 ‘년’이라고 욕설 댓글들 달았나 봅니다. 제가 한 것이 아니라, 어떤 분들이 그런 댓글을 달았나 봅니다. 누군지도 모릅니다. 제 페북 자체가 페친 아닌 사람들에게도 열려 있어 아무나 댓글을 달 수 있는 상황입니다. 하여, 제 페북에 페미니스트분들이 몰려와서 ‘둥글이 재기해라(자살해라)’는 글까지 쓰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제가 체포 구속될 위기에서 하루에 포스팅을 몇 개씩 올리고 수십, 수백개의 댓글이 붙는데 어떻게 그 댓글을 다 확인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쓴 댓글의 책임을 뒤집어 씌워 ‘명백한 여성혐오 행위’, ‘여성혐오 사회를 만드는 대표적 인물’로 규정하는 것은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미 6년이 지난 내용에 대해서 일일이 해명을 하고 있는 제 자신이 초라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이 사건관련해서 저를 벌레 보듯 하는 분들이 있어서 마지막 가는 길에 굳이 이렇게 해명을 드립니다. 물론 그분들이 보지 않을 것도 알지만, 그분들 중에 단 한분이라도 다시 보시고 뒤늦게라도 이해를 해 달라는 뜻으로 이 장황한 글들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이 문제는 제 삶에 큰 트라우마가 되었고 한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또 그분들은 제가 ’워마드는 되지만 메갈은 안돼‘라는 글을 써서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만 하게 하여 여성혐오를 했다.’고 하십니다. 
저는 7년 전에 [여성차별과 억압의 사회]라는 글을 썼습니다. 여성이 얼마나 한국사회에서 고통을 받고 있고, 한국 남성들의 찌질함이 어떻게 여성을 짓밟고 있는지를 묘사하며, 남성들의 도둑놈 심보를 구구절절히 썼습니다. 우리 남성의 삶을 반성하자는 주장입니다. 바로 그 글의 말미에 한국 남성들 자체가 찌질한 특성이 있기 때문에 반감을 심하게 주는 방식의 페미니즘은 남성들의 찌질한 보복이 있을 수 있다는 글을 정리했습니다.
가령 남자들이 용광로에 빠져 산업재해 당하면 ‘쭈꾸미’라고 조롱하고, ‘남아 태아를 요절내서 여자 피부미용에 써야 한다’며 남아 태어를 칼로 자른 사진 올리는 것을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행하는 것은 반감만 불러일으킨다는 것입니다. 미러링도 수위가 있고 그런식의 미러링은 찌질한 남성의 특성상 페미니즘 운동에 역효과가 난다는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여성분들이 한이 많으니 ‘그렇게 남자의 죽음을 조롱할 수도 있다’는 말씀까지 드렸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여성운동의 방법으로 공식화 되어 권장 하면 역효과가 빚어짐’을 우려 드린 것입니다. 그 글 [여성차별과 억압의 사회]에 명시된 글입니다. 
그런데 그 글의 앞뒤 맥락을 다 자르시고는 제가 ‘여성운동을 반대한다.’며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만 하도록 강요 하는 여성 혐오를 자행 했다] 라고 여성혐오자로 규정합니다. 저는 페미니즘을 못하게 강요한 것이 아니라, 맥없는 사람의 죽음을 조롱하는 활동은 좀 자제해 주십사 부탁드린 것입니다. 
죄송합니다. 저 같은 남성이 저지른 원죄가 많다보니, 저의 말들이 온통 여성혐오 행위로 보이신 것이지요. 남자로서 참회 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주장의 맥락을 살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물론 이미 제 사건은 지나갔습니다. 이미 끝난 사건이고 되돌릴 수 없습니다. 제 사건을 살펴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앞으로 다른 비슷한 경우가 반복되지 않도록 조금만 배려해주시기를 부탁드리며 이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여간 그 페미니스트 분들은 그러한 내용으로 진보운동계에서 저 같은 남자 때문에 여성혐오가 가중됨을 공표 하셨습니다. 이해합니다. 얼마나 남성억압사회에 괴로우시면 그러셨겠습니까. 그리고 얼마나 저의 덕이 부족하면 그런 결과를 불러일으 켰겠나요. 자업자득입니다. 제 잘 못입니다. 하여간 그렇게 저는 100% 명확한 여성혐오자로 규정되었고, 진보운동계에서 퇴출시켜야할 대표적 남성 활동가로 규정되다시피 했습니다. 그 후 제 인생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2016년에는 어느 지역 박근혜 규탄 집회에서 연사로 초청되었는데, 여성단체에서 거부해서 무산되기도 했습니다. 나름대로 박근혜 정권에 맞서 목숨 걸고 싸웠던 사람이고 박근혜 정권의 인권탄압을 받아 억울하게 감옥살이까지 하고 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너는 박근혜 규탄집회에 발언할 자격도 안 되는 여성혐오자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심정이 참담했습니다. 이후, 페미니스트분들이 있는 전국의 그 어떤 집회나 행사에도 나설 수 없었습니다. 
어느 지역에서는 시민사회 단체들이 모여, 제가 당했던 경찰폭력 사건을 경찰청 인권위에 진정하려고 안건을 상정했습니다. 경찰이 17분 넘게 저를 쓰러트리고 무릎으로 목을 내리눌러 숨을 못 쉬게 해서 제가 기절까지 했었던 사건입니다. 
그런데 그 사건을 안건 상정 하는 것을 어떤 인권단체에서 반대 했습니다. 저 같은 여성혐오자는 경찰폭력으로부터 구제 받을 자격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박탈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결정이었습니다. 오래전 일도 아닙니다. 불과 제 작년에 있었던 일입니다. 
제가 구체적으로 어떤 여성혐오를 저질렀는지 단 한명이라도 설명이라도 해 주고 그런 결정을  내리셨으면 마음이라도 편했을 것입니다. 6년 전 여성혐오자로 낙인찍힌 그 사건은 그렇게 현재까지도 계속 강력한 영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시민운동가들이 모여 있는 현장에서 누군가 ‘둥글이는 여성혐오자니까 퇴출해야해!’라고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그 나머지 사람들은 일언 반구의 반론도 제기 못한다는 것입니다. 소수자의 인권을 찾기 위해 나서는 페미니스트분들의 주장인데 이에 이의를 제기했다가는 철퇴를 맞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시민운동가들 사이에는 ‘둥글이가 무슨 성폭력을 저질렀나보다’는 암묵적인 경계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데면데면 합니다.  
이런 문제들은 저에게 큰 충격과 고립을 가져왔습니다. 시민운동가의 자질의 가장 첫째는 양심과 도덕성인데, 저는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짓밟는 파렴치한’으로 낙인찍혀 설자리가 점차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학창시절부터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을 위해 싸워오려 노력했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전단지, 벽보 만들어 붙이고 다녔습니다. 사회적으로 고통 받는 분들이 있는 현장에 달려가 갖은 불이익을 감수하고 몸을 사리지 않고 싸웠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권력에 맞서 싸워왔습니다. 법원 주변 100m 내에서 집회를 못하게 막았던 악법에 대해서는 제 이름으로 헌법 소원을 내서 바꿔놓기도 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시민들이 서초역 사거리에서 집회를 할 수 있는 것도 그렇게 법을 바꾼 결과입니다. 
네. 잘난체 하기 위해 하는 말씀입니다. 저는 밥먹고 사는 일보다 그런 문제에 자긍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피땀 흘려서 그런 하나하나의 성과를 만들어내면서 기뻣습니다. 선조-선배들로부의 부채감을 덜 수 있는 것은 덤이었고요. 그렇게 나름대로 약자와 소수자를 위해, 인간의 존엄을 위해, 표현의 자유를 위해 평생 가난과 굶주림과 폭압을 감수하며 싸워왔는데, 경찰폭력을 당해도 구제 받을 자격조차 없는 한심한 여성혐오자라는 낙인은 저를 회생 불능하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여성계 분들은 그간 남자들로부터 고통을 많이 받았기에 시범케이스로 그런 조치를 내려야 한다고 판단 하셨을 것입니다. 충분히 이해하고 그 점 남자로서 죄송하고 드릴 말씀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겪은 일들도 문제 제기하지 않고 다 제 가슴에 묻고 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문제에 대한 문책은 정도가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어차피 저의 경우는 지난 일입니다. 그러니 부디 다음에 비슷한 경우가 있으면 신중히 고려하고 판단하고 결정해 주십사 이런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부탁드립니다.  
하여간 시민운동계에서 저에 대한 경찰 폭력에 대한 구제조차 거부할 지경인데, 이런 저런 현장에서 가해지는 압박과 배척은 상상을 불허하는 것이었습니다. 수많은 곳에서 ‘여성혐오자’라는 더러운 이미지가 씌워져 있는 역겨운 인간과 상종하는 것 자체가 싫다는 노골적인 반응을 접했습니다. 제 활동이 인터넷 언론에라도 실릴라 치면 제 기사를 쓴 기자에게 왜 여성혐오자 기사를 쓰냐고 항의 합니다. 
끊임없는 경멸과 혐오의 손가락질을 받았고, 고립되고, 추락했습니다. 해명할 수 있는 길도 없고, 해명도 안 되고, 해명하면 할수록 제 문장을 왜곡해 더더욱 극심한 여성혐오자의 굴레를 뒤집어 씌우니 빠져 나올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남성 우월주의적 사고방식으로 여성을 고통으로 몰아가는 대표적인 인물인 것처럼 규정하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저는 왜 그분들이 실체도 없는 문제로 저를 여성혐오자로 규정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페미니스트분들이 저에게 왜 화가 났는지 이해하려 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마 제가 큰 힘을 소유한 권력자처럼 보였기 때문인 듯 했습니다. 
실지로 어떤 분이 ‘둥글이 처럼 약자를 위해 싸운다고 나서는 영향력 있는 활동가도, 알고 보니 여성혐오자였다. 역시나 여성들은 이러한 척박한 환경 속에서 활동하고 있다. 여성들 힘을 내자’라는 식으로 독려하더군요. 제가 무슨 큰 힘을 가진 사람으로 보였기에 더 저를 용서할 수 없으셨던 듯 합니다. 
■ 오해.
그것부터가 큰 오해셨습니다. 제가 무슨 힘을 가졌는지요. 저는 공무원이 아닙니다. 정치인도 아닙니다. 시민단체에 소속된 사람도 아닙니다. 흔히 말하는 ‘공인’이 아닙니다. 물론 누군가는 말씀하십니다. 네가 유명하기 때문에 공인으로서의 책임을 저야 한다고 말이죠. 
그런데 제가 유명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것은 제가 특별한 힘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아무 힘도 없는 일 개인이 국가폭력에 맞서서 체포와 구속을 각오하고 싸우다가 열댓번 체포되고 구속영장 네 번을 받고 교도소를 네 번을 갔다왔기 때문입니다. 
제가 가진 힘은, 저를 미끼로 만들어 경찰, 검찰, 정치인 앞에서 깝죽거리다가 스스로 체포 구속 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언론과 방송에 소개되어 정권의 폭력성을 드러내게 하는 능력입니다. 
세상을 바꾸게 하려면 사람들에게 어떤 문제를 알려야하는데, ‘정상적’인 활동을 해서는 언론과 방송에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체포, 구속되는 사건은 언론의 기사꺼리가 되지요. 그래서 저는 스스로를 미끼로 삼았을 뿐입니다. 
혹자는 제가 언론에 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유명세 타는구나’라고 생각하셨을 줄 모르지만, 그 기사들은 죄다 국가폭력에 맞서는 내용들이었고 저는 제가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체포와 구속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에 피가 말라갔었습니다. 그러니 저를 향해 유명세를 탄 공인이라고 규정해서 저로부터 공인으로서의 책임감을 물으셨던 것은 좀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넌 유명세 타는 공인임에도 여성혐오를 저질렀으니 용서할 수 없다.’보다는 ‘넌 국가폭력의 피해를 받고도 계속 스스로를 미끼로 삼아 싸운 사람이니까 이번 논란에 대해서 한번 용서해 준다.’는 식의 아량을 보여주셨을 수 없는지 좀 안타깝습니다. 뭐 지난일이니 어쩔 수 없지요. 앞으로 다른 사람의 경우에 그리 해주십사 부탁드립니다.  
■ 후유증
어쨋튼 이로 인해 지난 6년간 수 많은 사건들을 겪으면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갔습니다. 제가 제 삶의 모든 것을 걸고 싸우며 이뤄냈던 일들이, 추잡하고 더러운 것의 낙인이 찍혀서 걷어 내지고 부정되었습니다. 경멸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그런 일이 주로 뒤에서 이뤄지고, 저에게는 항변의 기회도 안주어진다는 사실은 참으로 견딜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제 존재의 기반이 흔들리자 제정신 일 수 없었습니다. 
제가 과거의 사건으로 현재까지 그 트라우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저를 퇴출시키고자하는 그분들의 의지가 현재 이 순간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 그분들이 보기에 저라는 존재는 ‘성평등 세상을 이루는데 방해가 되는 장애물’ 쯤으로 여기시는 듯 합니다. 그렇기에 기필코 처단해야하는 구태로 여기시는 듯 합니다. 이해합니다. 얼마나 여성억압의 세상에서 고통을 받으셨으면 그러시겠습니까. 그 모든 것이 남자로서의 저의 원죄가 있는 것이지요. 
그렇게 저는 이런저런 투쟁 현장으로부터 배척되고, 고립되었습니다. 팔다리가 잘리고 아무것도 못할 지경입니다. 지난 시간 아무리 벗어나려고 시도를 해봤지만 늪을 헤메는 기분이었습니다. 제가 뭔가 활동하면서 저를 드러내면 낼 나설수록 오히려 손가락질과 경멸의 반응이 돌아옵니다. 반성과 화해의 제스취어를 아무리 취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투쟁 현장에 나가는 것이 무섭기까지 했습니다. 경찰에게 체포 구속되는 것은 안무서운데, 그분들에게 손가락질 받을 것이 무서웠습니다. 
활동을 나갔다가 그분들로부터 계속 안 좋은 일을 경험하고 나니 점차 외부 활동을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물론 페미니스트분들이 다 저를 안 좋게 보는 것은 아니지만 언제 어느 때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어떤 일을 겪을지 알 수 없다보니 그 자체가 두려워서 아예 그분들이 올만한 장소는 가지를 못했습니다. 
반대로 그분들 입장에는 저 같은 여성혐오자가 버젓이 시민운동한다고 나대는 모습이 얼마나 역겨웠겠습니까. 그것을 잘 알다 보니 더는 투쟁 현장을 더 이상 나갈 수 없었습니다. 
차라리 여성계에서 회의를 해서 ‘둥글이는 여성혐오자니까 앞으로 5년간 시민권을 자격정지를 시키자!’고 결의를 해주신다면 감사한 마음으로 받을 것입니다. 그 시간이 지난 후에는 다시 제 삶의 터전 같은 곳에 다시 얼굴을 비출 수 있을 것이니까요. 
하지만, 페미니스트분들 끼리 입에서 입으로 ‘둥글이는 여성 혐오자니까 가만 놔둬서는 안돼’라며 이야기가 계속 전해지고, ‘진보 진영 내의 남성 성폭력 척결을 위한 본보기’가 되다시피 하니 빠져나갈 길 자체가 없었습니다. 
6년 전 그 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단 하루도 그 생각이 머리에 떠오르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뭔가를 하고 있다보면 머릿속에 그 생각에 매달리는 저 자신을 발견합니다. 아무리 생각을 털려고 해도 안됩니다. 과거의 사건이 아니고, 현재 빚어지는 일이며, 해결의 가능성 자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정신과 치료를 받고 수면제를 먹어야 잘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간 현장에서 일베와 경찰들로부터 얻어맞고, 체포되고 재판받고 구속되고, 죽이겠다는 협박 전화, 협박 메일, 협박 우편물에 시달렸습니다. 보수 언론에도 제 얘기가 많이 소개되었기에 일베들의 표적이 되어 공개수배 당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을 다합 친 것보다 열배는 더 힘들었습니다. 
하여간, 그런 일을 겪으면서 한국에서 시민활동을 더 이상 할 수 없음을 직감했습니다. 그래서 2년 전에 중국에 가서 장애인시설과 유기견 시설을 둘러보고 온 것도 그 때문입니다. 한국에는 더 이상 제가 설 공간이 없음을 알았으니까요.  
제 활동의 수준이 낮은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가벼운 활동이다.’ ‘운동의 품격을 떨어트린다’는 소리를 누누이 들어오면서도 일부러 그러한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가볍고 운동의 품격을 떨어트린 점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가 목표하는 타겟은 똑똑하시고 훌륭한 활동하시는 분들이 아니고 일반 대중들입니다. 그렇기에 손가락질 받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리 수준 낮은 활동을 해왔던 것입니다.  
그분들에게 거듭 부탁드립니다. 어차피 제 활동은 여기서 끝나니 생관 없습니다. 부디 다른 사람들 대상으로해서는 조금 더 유연한 시야로 대해해주시고 포용해 주시기를 당부 드립니다. 부디 그 무거운 짐을 내려 놓으시고 유연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서로 화해하고 손잡고 갈 수 있는 사람들 끼리 끊임없이 싸우게 되는 악순환에 빠지니 말입니다. 부탁드립니다. 
페미니즘을 비판하고 원망하기 위해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형사배상금으로 나온  노후자금을 전액 기부하면서 그런 푸념을 할 일이 있겠습니까. 저는 지금껏 유일하게 여성단체에만 정기 후원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저의 바람은 남자와 여자가 철천지 원수가 되는 적대적인 관계를 청산하고 서로 손 잡을 수 있는 부분은 손잡고 소통하는 관계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저는 페미니즘의 세력이 굳건해 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때로는 문제를 유연히 보시는 것이 필요하지 않냐는 제안을 드리는 것입니다.
[ 그리고 혹여나 제 페친 중에 이 글을 보고 페미니스트분들에게 비난성 글을 다시는 분들은 없으셨으면 합니다. 이미 위에서도 정리했듯이 저를 두둔한답시고 그런 댓글을 달면 제가 여성혐오자가 됩니다. 이 글은 페미니스트분들을 비난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마지막으로 그분들께 드리는 해명과 부탁 말씀입니다. 물론 그분들이 이런 글을 보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압니다. 하지만 그래도 떠나는 마당에 그 분들 중 누군가는 볼 것이라는 희망이라도 가지면 좋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어느 분이 제 편을 든다고 페미니스트분들 비난하는 댓글을 쓰시면 제가 쓰는 이 모든 글이 물거품이 됩니다. ]
하여간, 이 문제로 인해 저는 2016년에 이미 모든 활동을 중단하려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지날수록 오히려 점점 더 많은 문제를 겪게 되어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단지 살포 사건과 관련해 함께 재판 받는 분들이 계셨기에 잠수 탈 수 없었고, 촛불 정국으로 들어서면서 어쩔 수 없이 현장 활동에 또 뛰어들었고 다시 체포되고 구속영장을 받는 일들이 반복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진보진영 내의 안타까운 장면을 목격합니다.  
■ 진보진영의 배타주의 
진보 운동하시는 시민들끼리 서로 ‘정의’를 외치며, 자기가 지지하는 정치인을 지지할 것을 강요하며 박 터지게 싸우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왜? 시민들끼리 싸우는 걸까요.
정치인과 공무원, 기업인들 등의 책임 있는 공인들을 비판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이 다른 시민들을 무턱대고 비판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이 이명박을 지지하거나, 박근혜를 지지하거나, 특정 정책을 지지하는 것에 우리는 ‘절대로’ 가치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다른 사람이 누구를 지지하든 말든, 뭘 지지하든 말든 그것은 그들 개인의 자유입니다. 그게 민주주의입니다. 
그들의 자유를 불허하며, 비난하는 순간. 바로 그 순간. 우리 자신이 이 부조리한 사회를 만들어내는 주역이 되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부정하고 억압하는 것 자체가 폭력입니다. 
우리사회 모든 문제의 시작은 서로 불신하고 인간의 자율성을 억압하는 사고방식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에 빠져 있는 한, 아무리 위대한 진보적 논리와 이상을 설법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구태일 뿐입니다. 지금 진보가 그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물론, 우리가 다른 시민을 비판할 수 있는 때가 있습니다. 그 때는 바로 상대 시민이 우리의 자유를 억압했을 때입니다. 가령 상대방이 ‘너희들 빨갱이지’라는 등으로 우리의 정치적 자유, 양심의 자유를 비난 했을 때 말입니다. 하지만 그 외의 문제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들을 비판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시민이 누구를 지지하든 그걸 왜 참견합니까. 이를 무시하고 ‘나는 정의롭고 나는 선하니까 상대방의 잘 못된 선택을 지적하고, 교정하고, 강요해도 된다’며 상대를 핫바지 취급 했을 때, 우리는 ‘정의의 덫’에 걸려듭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민주-진보들이 스스로 ‘정의의 덫’에 빠진 사실을 모릅니다. 무지몽매한 대중들을 하찮게 여겨 계도와 세뇌의 대상 쯤으로 규정하는 ‘오만한 엘리트주의’ ‘꼰대문화’가 만연해 있습니다. 조금만 비위가 거슬리면 대중을 혐오자로 규정해서 짓밟는 행태가 유행입니다. 문주자의, 형식주의, 엄숙주의, 맑시즘으로 스스로의 과오를 합리화 합니다. 
상대를 이해하고, 소통하고, 내편으로 만들어 내려는 노력이 없습니다. 내가 ‘사회적 약자’이고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자’라고 여기면, 자신의 믿음에 절대성을 부여합니다. 하여 상대를 마음껏 규탄하고 짓밟아도 된다라고 하는 극단적 이분법적 권위주의 - 흑백논리가 팽배해 있습니다. 
그렇게 서로 자신의 어깨에 ‘정의의 견장’을 차고 ‘나만 진리와 선이고, 너는 거짓이며 악이다’며 외쳐대는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민주-진보들 내부에서 서로 끊임없이 갈등–분열이 빚어지는 것도 바로 이 덫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이런 분들 활동은 획일적인 ‘이슈 투쟁’, ‘가치 투쟁’입니다. 선언성 발언만 합니다. 절대로 거리로 나가 대중들을 만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상가를 돌아다니면서, 혹은 길거리에서 대중들에게 다가가 말을 청해 이야기를 하고 소통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대중들의 생각을 들여다보고 이해시키고, 설득시켜서 시민운동의 기반을 넓히려는 고민을 하지 않습니다. 
‘왜 사람들이 저런 생각을 할까’, ‘어떻게 하면 저 사람들의 생각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과 연구를 하지 않습니다. 반면 ‘당신의 생각은 나와 다르니 당신 생각은 바꿔져야 한다. 당신은 적폐이다’라고 낙인찍고 타도의 기치를 높일 따름입니다. 
생각이 같은 이들끼리 어울려서 ‘어떻게 하면 저 한심한 사람들에게 우리 생각을 주입할까’ ‘어떻게 저 몽매한 자들을 짓밟고 올라설 수 있을까’라는 생각만 들어차 있습니다. 남이 한 얘기의 말 꼬투리만 잡고 늘어질 연구만 합니다. 
정신은 현실로부터 붕 떠서 이념과 주의의 몽환 속을 오갑니다. SNS에는 온통 불평과 불만, 남 탓만 쏟아 냅니다. 오만한 엘리트주의와 꼰데주의의 극치입니다. 문제는 그러한 이들 사이에 의견 충돌이 생길 때입니다. 이게 참 아이러니한 사실입니다. 서로 정의의 깃발을 휘둘러대며 서로를 손가락질하며 타도의 기치를 높이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러한 레디컬(근본주의)운동이 모든 분야에 퍼져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일군의 채식주의자들이 돼지고기 먹는 음식점에 들어가 ‘음식은 폭력이다’라며 고기 먹는 사람들을 혐오자로 규정하기 까지 하는 내용이 소개되었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밥 먹고 있던 사람들은 졸지에 ‘혐오자’의 낙인이 찍혔습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이념과 가치, 취향이 다른 사람들에게 다짜고짜 ‘혐오자’ 딱지를 붙이는 일이 큰 잘 못인 것은 그것은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고기 먹는다고 혐오자 취급하는 이들도 스스로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데로, 세상의 문제가 ‘물신화’에 있다고 여기는 극단적 러다이스트들은 고기를 먹고 안 먹고의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냉장고, 세탁기, 자동차’ 등을 사용하는 것 자체를 범죄로 여깁니다. 하여 ‘음식은 폭력이다’라고 외치는 분들의 집에 냉장고, 세탁기가 있으면 타도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레디컬주의(근본주의)가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각자 자신의 관심-이해분야에만 극단적으로 중요성을 부여해고, 그러한 관심-이해에 다다르지 못하는 사람을 ‘혐오자’로 규정하기 시작하면 서로 끊임없이 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서로의 이해와 관심 분야가 다르기에 모든 사람들은 결국 싸우고 짓밟히게 되는 말로를 저러한 방식의 레디컬주의(근본주의)는 잉태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금만 주의를 하고, 조금만 배려를 하면 자기 주장을 하면서도 서로 싸우지 않고, 협력할 수 있습니다. 듣는 사람들 입장에서도 손가락질 받는 것 보다는 이해를 시키기 위해 차분히 다가오는 모습이 더욱 설득력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신들의 주의 주장 이념 가치만 중요하고 남들의 것은 하찮습니다. 하여 막 질러봅니다. ‘그것은 폭력이다’ ‘혐오자다’하고 말입니다. 
그러한 공격적인 활동은 일시적으로, 한정적 분야에서 소귀의 성과를 일궈내는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착시현상입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세상을 더 깊은 분열과 갈등, 불신의 수렁으로 밀어 넣습니다. 
물론, 때로는 이분법화해서 나눠야 될 상황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부정과 불의 불법, 약자에 대한 폭력 상황에 대해서는 나서서 박 터지게 싸워야 합니다. 하지만, 전혀 그런 상황이 아닌데, 문제를 극렬히 과장해서 ‘불의한 상황’이라고 규정을 합니다. 무분별하게 모든 사례를 극단적으로 이분법화하고, 상대의 인권 감수성 없음을 지적하고, 자신들의 이념을 교조화 합니다. 
오직 자기만이 세상의 문제를 해석할 권능이 있다며 스스로에게만 그 자격을 부여하고, 타인의 주의 주장은 일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스스로 상황을 마음데로 해석해 타인의 생사여탈권을 휘두릅니다. 이는 극단의 엘리트주의, 독단주의입니다. 신종 권위주의의 입니다. 종교적 맹신과 다름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폭력적 전체주의로 나아가는데는 불과 한 걸음만 보태면 됩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정의’를 구한답시고 앞서 나아가는 이러한 ‘엘리트주의’ ‘권위주의’ ‘일방주의’ ‘독단주의’는 결국 사회적 약자가 발디딜 기반을 파괴할 것이 자명합니다. 따라서 무엇보다 이 ‘정의의 덫’으로부터 빠져나와야 합니다.  
주변을 보십시오. 서로 약자라고 자처하며 정의를 추구한답시고 나서는 이들 끼리 지금 얼마나 치고 패고 서로 싸우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폭력에 저항해서 싸운답시고 나서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 폭력을 만들어 내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 민주-진보진영의 내분
이러한 이분법과 흑백논리를 보수들보다 ‘민주-진보’들이 더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지 못해 안달이 나 있습니다. 
누가 문재인을 지지하든 반대하든, 누가 이재명을 지지하든 반대하든, 누가 심상정을 지지하든 반대하든 그걸 왜 자기 입장에서 심판하고 비난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시민들 끼리 서로 내가 잘났네 못났네 하면서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상대에게 강요하며 싸워대는 모습을 볼라치면 가관입니다. 
문재인과 이재명, 심상정이 정치를 잘 못하고 있거나 잘하고 있다면, 그 정치인을 비판하거나 지지하면 됩니다. 그런데 왜? 다른 시민이 어떤 정치인을 지지하건 비판하건 그에 왈가왈부하면서 정의의 심판을 내릴까요. 
더군다나 ‘의회민주주의’에 의해 세상이 변할 것이라고 믿는 계량주의자들일수록 그런 목소리를 가열 차게 내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할 따름입니다. 극단적인 생태주의의 삶면서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사는 사람일지라도 다른 사람의 삶을 심판할 자격이 없습니다. 하물며, 계량적 의회민주주의자들이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을 상대방이 지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난을 하는 모습은 참으로 실소를 금치 못하게 만듭니다. 한국이 모든 분야에서 이분법화가 된 사회다보니 다양성에 대한 이해가 없기에 빚어지는 문제로 보입니다. 
누차 논하듯 박근혜를 지지하던 이명박을 지지하던 다른 보수 시민들의 정치의 자유, 양심의 자유를 비판할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그 가장 기본적인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에서 민주-진보의 비극이 있습니다. 개인의 자율과 자유를 침해하고 심판하는 행태에 어떻게 민주-진보의 뿌리가 내릴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독단과 전체주의적 발상이 19대 대선 직전부터 과열되었기에 우려를 표했었습니다.
문재인 정권이 잘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잘 하는 것은 독려해서 더 잘 하게끔 해줘야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정권 역시 ‘민주당’이라는 그나물의 그밥에서 나온 정권이기에 잘 다듬어서 더 나은 정권을 이뤄내기 위한 발판으로 쓰면 된다는 얘기를 수없이 했습니다. 
그래서 문재인 정권이 잘 못하는 활동에 대해 청와대 앞에 가서 피켓팅을 했고, 더민주 앞에게서는 혈서 피켓까지 써서 들었습니다. 문재인 정권 들어 선 이후 문정권의 사드정책에 항의하며 소성리에서 집회하다 체포되어 구속영장까지 받았습니다. 반면,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이나 검찰 개혁 의지는 밀어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면, 한쪽에서 ‘문재인 정권이 뭘 잘 못하냐’고 저를 향해 비난하고 다른 쪽에서는 ‘문재인 정권이 뭘 잘하냐’고 비난합니다. 제가 그런 생각을 하는데 도대체 왜 그걸 자신들이 신경 쓰고 저에게 지적을 할까요. 제 주장이 왜 그들에 의해서 심판을 받아야 할까요. 자신들의 믿음과 가치를 저에게 강요하는 그 앞뒤 꽉꽉 막힌 행태를 참을 수 없어 차단해 버릴라 치면, 마녀 사냥을 하다시피 하는 글을 올려 모욕을 줍니다. 
극렬한 문재인 지지자들과 극렬한 문재인 비판자들 양쪽으로부터 이런 일을 지겹도록 당했습니다. 이런분들은 예외없이 상대방을 ‘절대악’으로 규정하면서 서로 박터지게 싸웁니다. 한번 감정 싸움이 시작되면 서로 물어 뜯기에 정신없습니다. 
일단 이렇게 감정싸움이 시작되면 사실관계를 따지고 합리적 대안을 찾는 일은 뒷전이 됩니다. 서로 상대방을 모욕하고 비방하는 것이 지상 과업의 전부가 되어 버리지요.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일들을 ‘시민운동의 책무’인냥, ‘진보적 사명감’을 가지고 하고 있습니다. 한번 휘말리면 결국 서로 철천지 원수가 되는 지경에 이르릅니다. 그게 바로 ‘증오’의 무서움입니다. 더더욱 무서운 사실은 스스로가 그 함정에 빠져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정의의 깃발’을 휘날리며 지금 이 순간에도 열심히 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들을 구분하는 대표적인 사고 방식은 ‘이분법’입니다. 나만 옳고 너는 틀리다는 사고방식 말입니다. 소통과 조율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는 정치적 신념이라기 보다는 ‘종교적 믿음’에 가까운 행동입니다. 변형된 맑스주의가 교조화 되어서 모든 운동진영에 퍼져 있다시피 합니다. 모 아니면 도라는 발상 속에서는 끊임없는 대립과 갈등밖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조금만 신중하다면 서로 조율하고 소통을 하면서 조금씩 변해 갈 수 있습니다. 상대방을 ‘주체적 개인’으로 인정하면 서로 대화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변화를 이끌어갈 ‘최소한의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습니다. 분노와 증오, 혐오와 멸시의 덫에만 빠지지 않으면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를 ‘말도 안통하는 인간 말종’ ‘개 돼지’ ‘미친 인간’ ‘혐오자’ 취급 하면, 그 때는 그야말로 원한이 생겨납니다. 전쟁이 빚어집니다. 하여 제 생각으로 지금 이 시대 진보 운동하는 사람들의 책무는 이 갈등과 분열 속에서 민주-진보의 기반이 무너지는 일이 없도록 어떻게든 양자 사이의 중제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도 나도 자기만의 성을 쌓고 벽을 쌓아 반목하는 것을 진보운동이라고 여기는 현실에 그 벽을 무너트릴 방법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 싸움 말리다가 당한 화
그래서 사람들이 반목하는 모습이 심각해서, 벽을 무너트리고 다리를 놓고자 19대 대선 때부터 백방으로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데로 양쪽에서 두들겨 맞게 되었습니다. 그 양쪽 분들은 제가 자기편 안 들고 ‘중재를 가장해 부조리와 타협한다’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비난하셨습니다. 
지난일 한풀이 하려고 이런 얘기 끄집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하나하나의 개별적 사례를 통해 진보진영의 보편적 사고의 특성을 읽어내야 그 해법을 찾아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사회심리학이라고 합니다. (전체 글의 3분의 2를 읽으셨는데 이렇게 재미없는 얘기가 나오니 그만 읽기에는 본전생각이 나고 다 읽자니 짜증나시죠. 그러니 애초에 영상만 보시라고 말씀 드렸쟎습니까.)
하여간, 그렇게 정의로운 분들이 무서워서 결국 둥글교도 해체했습니다. 둥글교는 ‘화장실’을 성전으로 여기면서, 세상의 가장 낮은 밑바닥에서 살며 ‘각자의 개사료’를 짊어지고 살아가자는 ‘권력 풍자’ 놀이 였습니다. 공안 탄압 시절. 국가폭력에 기죽지 말고 웃으며 싸우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자뻑 개그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둥글교 교주 행세를 하며 권위롭게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면서 자만심을 키운다는 것입니다. 관심병에 걸렸다고 노골적으로 조롱하십니다. 단순한 비꼼 정도가 아니라 시기 질투인지 뭐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여러분들이 집요히 문제를 걸어오셨습니다. 잘 모르는 분들이면 모르겠는데, 투쟁현장에서 열심히 활동하시는 분들이니 참 곤욕스러웠습니다.  
그 등살에 못 이겨 그렇게 둥글교도 해체 시켰습니다. 보수들의 조롱과 협박은 신경도 안쓰지만 진보운동하시는 분들의 집요함은 어찌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 때 거듭 느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 풍자놀이도 어려운 상황임을 말입니다. 
후원 받던 것을 중단한 것도 그런 맥락입니다. 평생 아나키스트로 시민운동을 하면서 기본적인 생활은커녕 제대로 끼니를 못 떼우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인생에서 유일하게 2년간 전단지, 팜플렛, 소품 제작과 차비 걱정 하지 않고 활동을 했었습니다. 2016년 체포구속 각오하고 전단지 뿌리고 다니 후원금이 좀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이 저에게 손가락질을 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절대악 문재인 타도를 위해서 나서지 않는다며 배신자라고 말이죠. 뭔가 저를 트집 잡아 비난할 것이 없을까 찾아보다 후원금 받는 것을 꼬투리 잡아 ‘앵벌이 운운’하며 조롱까지 하십니다. 
하여 후원금 중단 결정을 내렸습니다. 차라리 굶어죽으면 죽었지 왜 제가 그분들에게 그런 조롱을 받아야 합니까. 자신들이 진보이고 정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이니까. 자신들의 신념과 일치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안가리고 공격하고, 증오하는 특성을 그 때 다시 한번 체험했습니다. 그간 일베들에게 당했던 똑같은 일을, 그간 동료로 여기고 있었던 분들로부터 겪으니 정말 참혹했습니다. 
지금껏 저는 책 내서 인세 나온 것, 구속되어 영치금 받은 것, 각종 후원금이 남을 때 마다 다 기부했습니다. 그래서 검찰청에 개똥 뿌린 사건 등등에 나온 벌금 낼 백 몇십만원이 없어서 세 번을 교도소로 찾아가 노역을 살고 나왔습니다. 
제 평생의 소원이 전단지 만들 비용, 우편비용, 차비, 하루 한끼 식사비용만 누군가 지원해 주면 목숨 바쳐 평생 활동하겠다는 것입니다. 월급 같은 것은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처자를 갖고 가정꾸리고 살기에는 늦은 나이이고, 노후준비도 못하고 지금껏 살아왔기에 혼자 살다 돈 없고 병들면 조용히 산속으로 들어가 마무리하면 그만이니까요. 
평생 굶주리며 생활하다가 40대 중반이 되어서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2년간 그렇게 후원금을 받아 차비, 전단지비, 우편비 걱정 안하며 활동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조롱과 경멸을 받으면서 후원금 받아야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후원중지 공지를 올렸습니다. 
이건희 페러디건으로 해서 계속 힘든 상황였는데, 똑같은 고통이 또 하나 겹으로 얹혀지자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습니다. 뭔 글만 올리면 맥락에 상관없이 자기들 맘대로 편집해서 트집을 잡고, 타도할 꺼리가 됩니다. 일베들에게도 그렇게 동네북이 되어서 몇 년을 시달렸는데, 왜 진보진영의 동네북까지 되어야 했는지 도무지 모를 일입니다. 
하기야 저의 경우는 대수롭지 않은 것일 것입니다. 심지어 어떤 진보운동가들은 세월호 유가족들을 향해 [당신들은 문정권의 권력의 맛에 취해 아이들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를 포기한 배신자다]면서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 상황이니까 말입니다. 
그 누구보다도 아이들의 죽음에 고통스러워 하며 진실 규명을 바라는 사람이 세월호 유가족들일 텐데,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데로 유가족들이 따라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유가족 가슴에 또 하나의 못을 박는 것이 현재 진보진영의 풍토인 것입니다. 주변 돌아볼 생각은 않고 오직 자신의 신념만을 줄기차게 밀고 나가는 것이 작금의 ‘진보됨’의 의미인 듯 합니다. 세태가 그럴진데 저 같은 하찮은 이유로 속 타 하는 것은 호사일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자유를 강제하고, 다른 사람의 가치와 기호를 강요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각자가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각자의 그릇만큼 나서서 참여 활동을 하면 됩니다. 시민운동하는 사람들이 할 일은 대중들의 그릇의 크기를 넓혀주는 것이지 대중의 그릇을 뺏어서 깨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남의 생각과 사상과 기호를 강제해서는 안됩니다.  
이 바닥에서 몇 십년 굴러먹은 저도 이렇게 처참한 느낌입니다. 하물며 대중들은 그 모습을 보고 오죽 하겠습니까. 그 모습에 질력을 느껴서 대중들이 떠나가면서 속상해 하는 경우를 한두번 본 것이 아닙니다. 저 같은 사람들이 길바닥 돌아다니면서 어렵사리 대중들을 끌어들이면 그분들이 쫓아내는 식입니다. 일명 진보운동이 계속 자신들의 팔다리를 잘라내고, 대중들을 쫓아내며 고립의 길을 가는 것이 바로 그렇게 빚어집니다. 문제는 당사자들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상가나 골목을 돌아다니면서 전단지를 뿌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떻게 해야 대중들을 내편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 보다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은 나의 적이다’라는 기준을 만들어 놓은 후에 SNS에서 심판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활동으로 여기니 빚어지는 문제입니다. 아래에서의 변화를 이끌어 내려는 노력 보다는 위에서 내려다보며 지적하고, 심판하는 활동에 몰입해 있기에 빚어지는 문제입니다. 진보진영에 만연한 엘리트 주의의 문제입니다. 
물론 ‘상대방의 같음’에 비중을 두고 상호 화합을 위해 노력을 해야 할 것인가? ‘상대방의 차이’에 비중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야 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해석의 문제이고, 조율의 문제입니다. 절대적 기준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엘리트주의는 그러한 상대성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절대주의로 치닫고 자기만 옳고 타인은 그르다는 주장을 공고히 하고 있으니  그 모습은 쉽게 구분이 됩니다.   
■ 시대 착오적 맑시즘 
이렇게 대중 위에 서서 사람들을 심판하고, 대중들 사이를 갈라놓고, 대중들을 쫓아내는 엘리트주의의 기반은 다름아닌 맑스주의 입니다. 맑스주의는 이분법과 흑백논리, 타협없는 배타주의를 정당화 시키는 논리로 이용됩니다. 단순한 이념을 넘어 예수천국 불신지옥의 종교적 믿음이 되어 진보진영을 좌지우지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이는 맑스주의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여서 교조화 하는 이들의 문제일 것입니다. 모든 것을 [지배-피지배], [아군-적군], [선-악]으로 구분하고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 타도의 기치를 높입니다. 매사 쓸데없이 진지해지는 엄숙주의, 형식주의, 문자주의는 자연스럽게 동반됩니다. 
이렇다보니 ‘기분이 나쁘게 하는 것도 폭력이다.’라는 ‘감정적 절대주의’까지 합리화 됩니다. 기분이 나쁘면 그게 기분이 나빠야 할 일인지 아닌지 먼저 숙고한 후에 상황에 따라 수위에 맞게 대응을 해야 하는데, 자기 기분이 나쁘면 무조건 상대방을 혐오자로 규정하고 타도의 기치를 높입니다. 이 때문에 사소한 문제로 인해 인간관계가 파탄납니다. 근본주의 맑시즘은 이렇게 주관적 절대주의까지 합리화 시키는 사상적 기반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어떻게 맑스주의를 반대하냐? 너는 강자의 편이냐? 자본주의자냐? 반민중적이냐?’ 하고 발끈 하실 분들이 있으실 것입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저는 맑스주의의 가죽을 뒤짚어 쓴 파시즘을 반대할 뿐입니다. 앞서도 얘기했지요. 탈물질주의 운동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서 이런 얘기를 하면 동의할 수 있냐는 말입니다. 
“이 한심한 진보들아. 당신들이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냉장고, 세탁기, 자동차, 에어컨이 물질만능주의를 고조시키고, 인류와 환경을 파괴하는 근본이다. 그런데, 그것은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면서 무슨 약자와 소수자를 대변한다는 진보 운동 하고 있냐. 그 자체가 위선이다. 모든 것을 물적 대상화 하다보니 인권 감수성이 떨어진 것이다. 너희들의 그러한 위선이 오히려 진실을 가리게 하면서 세상을 더 깊은 늪에 빠지게 만든다. 니들이야 말로 오히려 지능적인 인간-지구 혐오자다.” 
여러분은 이런 식의 맑스주의에 동의하실수 있냐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제안하고 설득해야지, 극렬한 지배-피지배의 구조로 나눠서 상대방에 대한 타도의 기치를 높임으로서는 문제를 해결은커녕 대중들 끼리의 갈등만 악화된다고 생각 됩니다. 
사람이 바뀌어야 세상이 바뀝니다. 따라서 시민운동하는 사람들의 책무는 대중들을 강제로 개조하기 위해 비판하고 심판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이 바뀔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서 스스로 바뀌게끔 유도해야한다고 여깁니다. 그렇지 않고 저런 근본주의적 표현은 반감만 고조하고 관심 있는 대중들도 쫓아내냅니다.
근본주의 맑스주의에 기반한 흑인 인권운동(내셔널리스트)가 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백인과 황인종 남녀들은 총으로 쏴 죽여야 하고 여성들은 강ㄱ해서 죽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근본주의 맑스주의에 기반한 동물운동가들은 돼지, 소, 닭을 먹는 행위를 ‘명백한 폭력’으로 규정하며, 생명 감수성이 없는 대중들을 타도의 대상으로 규정합니다. 근본주의 맑시즘에 기반한 민족주의자들은 커피를 ‘외제의 꾸정물’이라고 규정하며 커피마시는 사람들의 한심함을 꾸짓습니다. 여러분들은 동조하실 수 있습니까. 그러한 근본주의 맑시즘이 적용된 운동 사례는 끝도 없이 나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보 운동하는 많은 이들이 무분별하게 이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남들이 빠진 함정은 보여도 스스로 빠진 함정은 안보이기 때문입니다. 늘 자신의 발끝에서 정의가 멈추는 것입니다. 결국 각각의 분야에서 근본주의 맑시즘 운동을 하는 이들 끼리는 서로 박터지게 싸우게 되어 있습니다. 근본주의 맑시즘의 한계는 바로 그것입니다. 남 탓 하며 상대방에게 손가락질을 하기 좋은 이론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뒤통수를 향해 손가락질 하는 것과 동시적 사건으로 묶여 있음을 말입니다. 
그 자체가 교조주의입니다. 꼰데주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극단적인 엘리트주의, 약자 제일주의, 주관적 절대주의로 무장한 이들이 그렇게 쉴새없이 불화와 갈등을 만들어내고 시민사회의 토대마저 뒤흔들고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사회적 약자를 대변한다’는 한마디로 이 모든 일이 허용되는 세태입니다. 시민사회는 진지하게 자숙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구에서는 심도 깊은 성찰 끝에 7,80년대 이 맑스주의의 모순이 어느 정도 정리되었습니다. 그 전까지 서구에서도 사회적 약자들이 각기 맑스주의에 무장해서 자기 목소리만 높이면서 서로 싸웠습니다. ‘무식한 대중들’을 타도의 대상으로 규정하면서 그 결과로 대중들의 불신을 만들어내고 운동이 고립되었습니다. 하지만 자성했고, 서구의 맑스주의는 새로운 차원으로 성장했습니다. 
하여 현대의 서구 맑시스트들은 과거처럼 타인의 자율과 주체를 억압하면서 자기 주장만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매사 꼬투리 잡듯이 ‘지배-피지배’의 공식을 함부로 남발해서 대중들에게 혐오감을 주고 대중들이 떨어져 나가게 하는 행태를 상당부분 중단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서구에서 7,80년대 유행이 끝났던 근본주의 맑시즘이 현재 한국의 진보를 잠식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근본주의 맑시즘을 경전을 대하듯 추종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보게 됩니다. 그 투철한 사명감과 신념을 옆에서 보고 있으면 숨이 멋을 정도입니다. 
문제는 맑시즘은 흑백이 분명하고, 주장이 강렬하고, ‘너는 악 나는 선’이라는 서사구조가 분명하며, 사회적 약자의 억압을 당장이라도 해방시켜 줄 것이라는 환영을 보여주기에 무분별하게 빠져 듭니다. 흡입력이 있습니다. 
그 맑시즘의 이분법이, 타협없는 배타주의와 문자주의, 형식주의, 엄숙주의, 결핍감, 열등감, 상처, 불안, 공포에 맞물립니다. 스스로를 약자로 규정한 이들은 이를 무기로 휘두릅니다. 사회적 약자는 무조건 선이고, 무슨 주장을 해도 되고 정의라고 여깁니다. 이 자체가 스스로의 자존을 갉아먹는 덫인 것을 모릅니다. 
절제되지 않는 욕망과 히스테리, 증오심이 맑시즘을 도구로 이용해 분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간 인생을 살면서 당해왔던 설움을 남탓하며 세상에 한풀이 하기에 딱 좋은 이론이 맑시즘이기 때문입니다. 다듬어지지 않은 인성을 폭력적으로 분출하기 위한 도덕적 정당성을 맑시즘으로부터 얻습니다. 약자들 끼리 서로 자기 권리만 주장 하면서 싸우게 됩니다. 자기 문제만 중요하고 자기가 보고 느끼는 것만 중요하다보니 타인의 그것은 되돌아볼 여유가 없습니다. 근본주의 맑시즘이 처한 함정은 그것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렇게 흑백-이분법을 나누는 사고방식이 근본주의 맑시즘의 함정인 것 자체를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조금만 무슨 뭐가 ‘불편하게 보이면’ 폭력 – 혐오 – 불의 – 악 이라고 규정한 후에 무분별하게 상대방을 비난하고 타도의 기치를 높이는 것도 그 이유입니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집단에 걸림돌이 되면, 걸리적거리는 개인들을 억압하고 짓밟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우리사회 만연한 ‘주관적 절대주의’ ‘감정적 절대주의’입니다. 
근본주의 맑시즘의 필터를 낀 상태로는 자연스레 그러한 반응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결국 바꿔야 할 것은 세상이라기 보다는 우리 자신인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세상을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상한 선민주의와 교조주의, 사이비 종교 같은 풍토가 시민운동계에 만연해 있습니다. 이미 한국의 보수 운동은 보수 기독교와 연합해서 사이비 종교화 된지 오래입니다. 진보도 보수와 어우러져 싸우다 보니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그 영향을 받았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 봐야할 것입니다. 
한국인들이 어떤 이론과 이념에 종교적인 열정을 갖고 깊이 침잠하는 것은 어쩌면 한국인들의 선천적 심성일 수도 있습니다. 한국에 그토록 많은 사이비 종교가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정신을 휘감고 있는 것은 단순히 사이비 종교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인 자체가 사이비 종교에 잘 빠지는 심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심성이 시민운동을 만났을 때 똑같은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신채호 선생이 말했듯이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오면 한국인의 기독교가 아닌 기독교의 한국인이 되고, 한국에 사회주의가 들어오면 한국인의 사회주의가 아닌 사회주의의 한국인이 되는 것”처럼, 우리가 관심을 갖는 어떤 이념과 주의를 성찰없이 무분별히 받아들이는 습성이 이런 문제를 계속 파생시킨 것이 아닌지 되돌아 봐야할 것입니다. 
■ 탈 이념화 이후의 사회
서구에서 탈 맑스, 탈 이념, 포스트모던이 논의된 것이 수십년 전입니다. 세계의 집단 지성은 ‘동일성’을 추구하던 경향에서 ‘차이’를 추구하는 경향으로 바뀌어갔습니다. 과거에는 나와 다른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에 맞춰 ‘동일화’시키는데에 혈안이 되었다면, 지금은 ‘차이’를 이해하고 각각의 상대성을 존중하는 경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근본’보다 ‘실존’이 강조되고, ‘집단적 이상’보다 ‘개인의 주체’를 강조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의 시민운동은 이러한 이해에 다다르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심지어 ‘차이를 인정하라’고 격렬히 주장하는 이들일수록, 자신들의 차이를 인정하라고 남에게 강요할 뿐,  상대방의 차이를 무시하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많습니다. 여전히 타인을 자신의 규격에 맞춰 구겨 넣으려는 ‘동일성의 사고’가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시대와 장소의 한계일 것입니다. 본인들이 하는 운동이 시대착오적인 근본주의 운동인 것을 모르거나, 근본주의 운동을 하고 있다며 자랑스럽게 여기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이제 우리도 그 독단의 잠으로부터 깨어나야 합니다. 이 시대를 그 잠에서 깨어나게 못하게 한 것은 저를 비롯한 기성세대의 가장 큰 과오일 것입니다.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만 옳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던 세태를 바꿔내지 못한 우리의 과오가 있습니다. 
군부독재를 비롯한 수구적폐 세력의 직접적 폭력과 맞서 싸우며 그러한 이분법의 논리로 무장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그 모습을 변화시켰어야 했습니다. 힘겹더라도 껍질을 깨고 나아가야 했습니다. 문자주의, 형식주의, 엄숙주의, 엘리트주의, 배타주의, 근본주의의 틀을 깨고 나아가야 했습니다. 
우리는 그런 노력을 등한시 했습니다. 그간 익숙했던 인식의 편리함에 안주했습니다. 엄숙주의, 형식주의, 문자주의, 맑시즘의 이분법에 안주했습니다. 그렇다보니 그 구습의 가장 큰 해악을 젊은 세대가 그대로 본받은 것이 아닌가 합니다. 결국 우리는 뿌린데로 거두고 있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해법 없이, 아무리 열심히 투쟁의 기치를 높여봤자 더더욱 깊은 늪으로 뛰어드는 격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금의 진보 운동의 처지라고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스스로의 ‘욕심’에 패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 가장 피해야할 욕심 
결국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살아오는 과정의 결핍과 상실, 불안과 공포를 다루는 것에 실패하고, 그 보상을 위해서 잘 못된 욕망에 집착한 결과 인 듯 합니다. 스스로의 욕망을 다스리지 못해서 이 모든 불이익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핍을 채우고 불안과 공포에 맞서기 위해 [돈과 권력]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그 [돈과 권력]에 대한 욕심 때문에 인생을 망치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는 남의 돈과 권력을 탐하는 것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돈과 권력은 내 손에 쥐어졌다고 해도 결코 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연과 이웃과 후손들의 힘을 끌어다 쓰는 것일 뿐입니다. 하나라도 더 갖고 높아지기 위해 아등바등 거리는 우리의 삶은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심지어 자본주의 – 물질만능주의와 맞서 싸운다고 하는 분들의 경우에도 돈과 권력의 욕심을 극복하지 못하고 무너지는 모습을 종종 봅니다. 돈과 권력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암투를 벌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자기 가진 것을 나누지 못하고 주변을 돌아보는데 소홀한 모습까지도 포함됩니다. 자기 손에 쥐어진 것은 절대로 나누지 않으려고 합니다.  
‘나는 아직 먹고 살기 힘든데 내 형편에 누구를 도와 주냐?’고 하겠지만.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누구든 자기가 도울 수 있는 더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나 부처께서 말씀 하셨던 바대로 세상에서 가난한 사람으로 살면서 세상을 위해 헌신하지는 못할지언정, 각자 가진 것을 조금이라도 나눠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살다가 나중에 정 먹고살기 힘들면 마지막 한 끼 식사를 들고 조용히 홀로 산으로 올라가면 됩니다. 꼭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 아니라 서로 나누며 살아가자는 취지로 드리는 말슴입니다.  
하지만 정의의 목소리만 소리 높여 외칠 뿐, 나누지 못하고 움켜 쥐려는 모습만 많이 봤습니다. 작금의 지구기후변화 문제까지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이 분야의 사고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외에는 지구적 위기를 벗어날 어떠한 방법도 없습니다. 돈과 권력이 내 것이 아니라 주변으로부터 끌어온 것이고 그 욕심이 세상을 이렇게 망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하고 서로 나눠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돈과 권력]의 욕심에 휘말려 대의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각자 판단할 문제입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돈과 권력]에 대한 욕심과는 비교 할 수 없는 ‘가장 나쁜 욕심’은 [이념에 대한 욕심]입니다. 자신의 사상, 가치, 주의, 주장에 경도되어 타인에게 그것을 강요하고, 타인의 인간성을 마음껏 재단하고 심판하는 것입니다. 일단 이러한 이념에 대한 욕심에 한번 빠지면 자기 자신은 물론 주변사람들마저 불태웁니다.
[돈과 권력]에 대한 욕심에 빠지면 그 당사자들의 삶이 망가지고 맙니다. 주변사람들이 좀 힘들고 맙니다. 하지만, [이념에 대한 욕심]에 한번 빠지면, 자기 자신은 물론 주변사람들까지 철저히 파괴시키고 우리의 존재의 지반까지 무너트립니다. 미래가 회색빛으로 변합니다. 끝없는 갈등과 분열, 아비규환의 지옥은 바로 ‘이념의 욕심’에서 빚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저런 투쟁현장을 돌아다니면서 경험한 바로는 그렇게 자신의 ‘이념’을 목소리 높여 주장하는 이들이 많을수록 공동체가 파괴되고, 조직이 와해됩니다. 오직 자기의 이념을 남에게 전할 생각에만 꽉 차서, 정의의 깃발을 흔들며 남 탓만 하는 이들은 어떤 현장에서든 불화의 씨앗이 됩니다. 서로 제 목소리만 높이고 제 주장만 하다가 분열과 갈등을 고조합니다. 열 명 중에 한명만 그런 이들이 있어도 공동체가 깨집니다. 
오히려 자신의 이념 욕심을 내려놓고, 동료들 일 도와주고,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이 공동체와 조직에 훨씬 득이 됩니다. 내가 몸을 숙이면 나를 밟은 사람이 더 높은 곳으로 오르고, 내 손 쥐어진 것을 내려놓으면 세상을 다 가질 수 있는 이치와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이념의 욕심에 들어차 있는 분들은 높은 곳으로 오르기에 혈안이 되고, 손에 뭔가를 쥐려고만 합니다. 자신이 집단을 주도하고 집단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끌고 가려고 혈안이 됩니다. 이들은 언 듯 보기에 추진력 있고, 뭔가 하는 것 같이 보입니다. 한국 사회는 목소리 큰 사람이 장땡인 사회이니까요. 
이념의 욕심에 의한 활동은 평화의 시대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해 관계가 상충하고 갈등이 시작 할 때는 큰 난리가 납니다. 서로 자기 주장만 하기 때문이죠. 그것이 근본적으로 [손에 있는 것을 내려놓는 운동을 하는 사람]과 [손에 뭔가를 쥐는 운동을 하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이념의 욕심을 버리고 내면을 바라보는 문제에 관심이 없다보니 ‘자율’, ‘주체’, ‘실존’의 문제에 대한 이해도 부족합니다. 모든 것이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극단적 배타주의와 이분법의 상대방 심판 논리에만 집약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사소한 ‘의견의 차이’와 ‘기호의 차이’ 마저 ‘진리의 차이’, ‘정의의 차이’로 탈바꿈 시키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념의 욕심에 빠진 이들은 그 작은 갈등을 해결할 능력은커녕 그 작은 갈등을 증폭시켜서 공동체와 조직을 파괴시는 역할을 하다시피 합니다.  
일단 그렇게 다양한 해석이 필요한 문제를 그렇게 이념화 해서 해석하고 ‘진리와 정의’에 관한 문제로 환원시켜 놓으면 이를 수용하지 않는 상대방을 규탄하고 타도의 기치를 높일 수 있는 명분이 만들어집니다. 그 독단의 메커니즘은 전체주의와 완벽한 판박이입니다. 
이는 자율과 주체, 실존에 대한 고민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민운동이 이뤄지니 빚어지는 문제입니다. 이를 철학적으로는 ‘유아론’이라고 합니다. 유아들처럼 자기 방식 이외의 세상이 존재하는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어떤 특정한 분들을 지칭해서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시민사회 진영에 이러한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지적하는 저 자신 역시 그 분위기에 젖어 있을 것이고 말입니다. 
이렇게 이념의 욕심에 빠진 분들이, 보이는 문자의 음가에만 집착하고 ‘이미지’, ‘상징’에만 빠져 자신 방식 대로만 세상을 해석하고 그 해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이 유행이 되어 있습니다. 이는 동료집단과, SNS를 통해 더욱 극단화 되면서 시뮬라시옹의 가상적 세계의 구축을 공고히 합니다. 
인간에 대한 불신과 경멸에 맞서 싸운다고 나선 이들이 어느새 타인을 불신하고 경멸하는 것에 사명감을 갖다 시피 합니다. 더욱 큰 문제는 그러한 문제를 구분 조차 하지 못합니다. 스스로가 어디에 서 있는 지 모르다보니 결국 갈 곳을 찾지 못하고, 갈팡질팡 하면서 남탓만 하고, 소리만 질러대고 있는 것입니다. 내면의 불안과 공포, 증오를 이겨 내지 못하고 실존을 찾는데 실패한 이들이 다다르는 종착지입니다.
물론 박 터지게 싸워야 할 때가 있고, 목소리를 높여야 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상황’ ‘매사’를 그러한 투쟁상황, 억압상황으로 규정하는 것은 욕심에 정신이 잠식되었음을 말해 줄 따름입니다. 그리고 마음 속에 작은 여유도 없이 주변에 자신의 거창한 이상을 강요하며, 쉴새없이 심판의 칼날을 휘두르는 ‘여유없는 정의’는 또 다른 폭력과 억압의 씨앗일 뿐임을 우리는 뒤돌아 봐야 합니다. 
그 욕심을 극복하지 못하니, 남이 하지 않은 잘 못까지 덤터기 씌우고, 자기 안의 화를 타인에게 전가시키는 것입니다. 나중에 그 과오를 알게 되더라도 반성과 사과를 하지 않습니다. 흐지부지 넘어갑니다. ‘내가 정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인데’라고 합리화 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불신이 가중됩니다. 상대방과 원한이 생깁니다. 결국 어느 때부터 자신이 지금껏 손가락질을 하던 사람이 되어갑니다. 자기의 내면과는 싸우지 않고 외부의 대상에만 손가락질을 하는 편향적 투쟁은 필연적으로 우리 사는 세계를 나락으로 끌어내리게 됩니다. 이념의 욕심에 빠진 정신의 말로입니다. 그 욕심을 내려 놔야 합니다. 
■ 이념의 욕심을 극복하고 문제를 해결할 키.
우리는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외부의 적과 싸웁니다. 그 와중에 우리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무장을 합니다. 그런데 그 단단한 껍질이 오히려 스스로의 성장을 방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위와 소통을 할 수 없게 차단합니다. 그러한 경향이 마치 ‘자유를 위한 투쟁가의 자세’인 것으로 묘사되고, 그 분위기속에 침잠됩니다. 
이 때문에 많은 이들이 시련을 겪을수록 자아가 성장하고 사랑이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 분노와 증오를 누적하고, 주변과의 소통이 끊기고 불화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그 자체가 자기 욕심에 패했다는 증거입니다. 언 듯 보기에 그러한 모습에 ‘정의와 진리’라는 대의가 포장되어 있기에 그 속의 절망과 증오가 찌들어 있는 것이 안보입니다.  
시민사회에 이런 분야의 문제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도 없고, 관련한 이론도 없기에 이런 문제를 들여다보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이정표가 세워져 있지 않다보니, 절망과 증오의 나락으로 빠져들면서도 스스로 ‘정의로운 투쟁’을 하고 있다며 확신을 하고 있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까지 그 우울한 내리막길로 끌어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주체와 실존]은 이 문제를 해결할 키입니다. 이를 찾기 위한 노력에 힘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집단과 조직’에 침잠하고, 본질과 근본’을 추구하는 사고방식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여깁니다. 한국에서는 어떤 트렌드가 만들어지면 단기간에 집단적으로 급속히 퍼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한국인 특유의 예민한 감각과 감정에 편승에 눈에 보이고 귀로 느껴지는 자극에 침잠합니다. 스스로도 모르게 그 분위기에 물듭니다. 
일단한번 그러한 분위기에 휩쓸리면 자기 주체는 증발해 버리고, ‘집단의 관성’만 작용됩니다. 진영논리에 빠지는 것도 매 한가지입니다. 이는 딱히 어떤 구체적인 조직과 단체의 이념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SNS 상의 페친까지를 포함한 무리집단까지를 포함하는 개념입입니다. 
이렇게 특정 무리에 공감을 하고 감정이입을 하는 것이 극화되면 ‘나만 선, 너는 악’의 이분법의 광신에 빠지게 됩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많은 변수를 일순간에 다 제껴 두고 ‘나만 선’이라는 기준으로 세상을 재단합니다. 그렇게 분위기에, 감정에, 무턱 된 자기 확신에, 정의감에 떠밀려가는 경우를 수도 없이 살폈습니다. 
각자 스스로가 홀로 우뚝 자립한 존재여야 이러한 휩쓸림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각자가 우뚝 자립한 존재여야 다른 쪽에 우뚝 선 존재에 올바로 대면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당당히 자립한 존재여야 다른 존재를 인정할 수 있습니다. 
각자가 자립한 존재가 되어야만, 결핍과 불안과 공포, 피해의식에 의해 무너지지 않고, 타인을 불신하지 않고, 증오의 덫에 빠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제가 그렇게 살았는데 여러분들이 그렇지 못하다고 지적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 자신이 그렇게 살지 못하다보니 제 삶이 실패한 이유를 더 명확히 아는 것입니다.
불안과 증오와 절망에 자아가 무너지면, 남 탓만 하고, 세상이 ㄱ같이만 느껴져서 전부 타도하고 싶은 욕망에 압도됩니다. 매사 부정적으로만 보이고, 트집잡을 꺼리만 눈에 띠며, 같은 것보다도 차이나는 것에 몰입합니다. 사람을 포용하기보다 배척하고 싶어집니다. 자신에 동조하지 않는 주변의 것들에 대한 맹목적 타도의 기치를 높입니다. 
바로 그 상태가 주체와 실존이 무너진 상태입니다. 자존 하지 못하고 분위기에 휩쓸리고, 피해의식에 시달리며 남 탓만 하게 되는 것입니다. 타인의 생각을 강제로 개조시켜야 한다는 강박적 욕구에 불타오릅니다. 선악의 이분법에 빠지고 타인에 대한 억압을 정당화 합니다. 
스스로가 제대로 서있지 못하니 다른 존재들의 발목을 잡아 넘어트리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다른 사람의 주의, 주장, 말투, 이념, 가치, 기호를 가지고 트집을 잡습니다. 그렇기에 세상과 싸우기 전부터 자기 자신과 먼저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스스로 먼저 이 황량한 대지에 굳건히 바로 서야 합니다. 주체-실존을 찾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진보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매진해 왔고, 그렇게 앞뒤 안 가리고 달려온 결과 수도 없는 부작용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보수들의 폭압보다는 진보 내부의 분열과 갈등으로 인해 사회의 진전이 발목 잡히는 경우를 살피게 됩니다. 하여 이제는 각자가 지향하는 진보적 이상을 추구하는 노력보다는 진보성에 대해 되돌아보고 우리 스스로를 점검하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정의와 진리의 미명하에 쉼없이 달려왔던 그 길을 한번 되돌아 봐야하지 않는가 합니다. 
강자들의 폭력에 맞서서 약자들을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했던 숭고한 이념의 혁명가들이 만들어낸 러시아와 중국, 북한이라는 나라를 보십시오. 강자의 폭력에 맞서 약자의 권익을 대변하기 위한 장렬한 투쟁 정신이 어느새 집단적이고 교조화 된 이념으로 경도되어 부패 한 것입니다. 
‘정의’만 부르짓을 뿐 스스로의 주체와 실존을 찾는 것에 실패한 결과입니다. 주체와 실존을 찾는데 실패하고 일단 그렇게 이념과 가치, 신념에 떠 밀려가면 인간은 필연적으로 타락하게 됩니다. 작금의 우리의 발이 놓인 늪이기도 합니다.
물론 ‘주체와 실존’은 우리가 추구해야할 최고의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중간 과정입니다. 주체와 실존 너머 우리가 추구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익숙한 자신의 믿음과 신념으로부터 탈피해 매순간 새롭게 태어나는 삶이 사실은 우리가 추구해야할 궁극의 자세일 것입니다. 
자유와 인권을 구하기 위해 만들어낸 질서와 권위마저 다시 무너트리고, 익숙해진 통념과 문자와 형식을 전복하고 끊임없이 새로 태어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반복되는 오늘 하루는 어제의 반복이 아닌 새로운 여정의 시작이듯이, 반복되는 경험 속에서 차이를 읽어내고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새롭게 창조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주체와 실존’마저 버리는 상태이빈다. 
바로 그런 상태가 되어야만이 우리는 인생에서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고,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렇게 했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규율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질서를 만들어내는 어린아이 같은 상태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개인들이 모인 사회여야만이 창조적 생명력이 역동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사회정의는커녕, 우리 자신의 존립 기반 마저 파괴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길까지는 넘어야할 벽이 너무 많습니다. 하여, 우선 주체와 실존의 의미를 이해하는 길목까지는 스스로의 발로 다다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강을 넘은 후에야 주체와 실존의 배를 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첫발을 내 디지지 못하고, 형식주의, 엄숙주의, 문자주의, 이상주의, 배타주의, 집단주의, 본질주의, 변형된 권위주의, 근본주의의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우리 안의 상실과 결핍을 부추기고, 욕망과 증오를 끌어당기는 중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자존을 집어 삼키는 블랙홀이기 때문입니다. 
자. 이 글을 여기까지 꾸역꾸역 읽으신 분은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이야기의 윤곽을 대충 이해하실 것이고 중요함도 파악하셨을 것입니다. 짧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이기에 이리 길고 장황하게 설명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간략한 말로 바꾸는 것이 관건입니다. 저는 아직껏 그 능력을 갖지 못했습니다. 이 문제를 장황하게 써내는데까지는 다다랐지만, 그것을 알기 쉽게 사람들에게 전하는데에는 실패 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 글을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의 몫일 것입니다.   
[싸움의 철학]이라는 책을 참조해주십시오. 우리 시대 진보가 빠져 있는 함정을 극복하고 주체와 실존을 찾는 길을 사회심리학적으로 분석해 놓은 책입니다. 제 책 팔려고 광고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차피 인세는 모두 기부합니다. 아무도 관심가지지 않는 우리 시대의 문제를 해결할 작은 힌트가 들어 있으니 관심부탁 드립니다. 
저는 이 문제를 알리는데 실패했지만, 이 글을 여기까지 읽으신 분이라면 어떤 힌트를 얻으실 수 있을 것이고, 여러분 방식으로 그 길을 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식스센스의 반전
민주-진보 진영에서 빚어지는 문제와 실망감을 저는 이렇듯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반전이 있습니다. 그 모든 실망 중에 가장 큰 실망은 제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나름대로 투쟁을 해 오면서 분노가 아닌 사랑이 모든 투쟁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소리쳐 왔던 사람입니다. 사회 정의를 바로 세운답시고 투쟁하시는 분들이 분노와 증오에 잠식되어 자기는 물론 자기 동료들까지 파괴시키는 경우를 수도 없이 보아 왔기 때문입니다.
하여 저는 이런 저런 투쟁 현장에서 박 터지게 싸울 때도 그 증오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한  노력들을 해왔습니다. 경찰서, 검찰청, 법원에 개사료 뿌리고 다니며, 경찰들과 싸웠을 지라도, 그 뿌린 개 사료 청소하고 치우고 왔고, 미친 듯이 싸워댄 경찰들에게 편지와 쪽지 보내서 한편으로는 미안하다. 죄송하다. 양해해 달라 하면서 얼르고 달래고 했습니다. 저랑 싸우던 공무원, 경찰들 앞에 무릎 꿇고 호소한 것도 너덧 차례 됩니다. 
혹여나 제가 했던 주장이 잘 못된 부분이 있거나 실수가 있으면 경찰들과 싸우다가도 정중히 사과합니다. 제가 사회적 약자라는 이유로 저의 무지가 면죄되는 것이 아닙니다. 잘 못된 것은 인정하고, 책임지고, 참회하고 되돌아보면서 끝없이 자신을 갱신하면서 시민운동을 해야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가 괴물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보수단체들 찾아가거나 접촉을 시도해서 그들이 무슨 생각으로 그런 활동을 하고 있는지 직접 대화하고 이야기 나눈 것도 이미 20년 전부터입니다. 일부 돈벌이를 위해 그런 짓을 하는 보수들 빼고 순수한 열정으로 활동을 하는 보수들이 많기에 얘기를 나누다 보면 이해의 간극을 좁히고 설득을 할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보수활동가와 대화를 시도해 일정부분 설득을 시켰다는 이야기도 페북에 여러 차례 썼었습니다. 
저는 사회적 약자들의 방패막이가 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얼굴에 똥칠 가면을 쓰고 과격히 나섰지만, 그 과격함의 일면에는 부족하나마 이해와 사랑의 힘이 있어야 한다고 늘 새겼습니다. 그것은 적이 될 수 있는 사람을 얼러서 아군으로 만들고, 아군을 원수로 만들지 않는 길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시민운동은 ‘정의감’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정교한 인간관계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분야로 여깁니다. ‘투쟁’은 급한 불끄기 위한 임시적인 조치일 뿐이고 ‘사랑’만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진정한 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문에 진보진영 내에서 저에게 벼라별 모함을 일삼으며 조롱을 하는 분들을 보고 버텼습니다. 저를 시민사회계에서 퇴출시키기 위해서 다방면의 집요한 노력을 하셨던 분들을 접하면서도 나름대로의 인내를 발휘했습니다. 누군가 다짜고짜 저에 대해 비난하고 조롱하며 일방 통행하는 이들이 보이면, 최대한 합리적인 방법으로 반박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죄송합니다. 제가 부족 했습니다’라는 글을 공개적으로 올리며 사과의 뜻을 비췄습니다. 비판으로 이길 수 없는 정신은 사랑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여겼으니까요. 큰 사랑의 마음이 큰 화를 덮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지난 6년의 시간, 제 마음속 깊은 곳을 들여다 보다보니, ‘깊은 분노’가 제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었음을 확인합니다. ‘분노는 방편이고 이해와 사랑이 기반 된 활동을 해야 한다’는 저의 평소의 주장이 무색하게 분노가 저의 무의식을 잠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먼저 양보하고 배려하고, 사랑의 마음으로 감싼다며 겉으로는 흉내를 냈지만, 그것은 가식이었고 제 마음 속에는 계속 울화가 쌓였던 듯 합니다. 
바로 그것을 안 순간 저는 더 이상 이 바닥에 남아 있어서는 안 될 사람임을 알았습니다. 저 역시 사랑과 이해가 아닌 분노의 마음이 무의식을 잠식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식스센스의 반전이지요. 
네. 마음 속에 깊은 분노가 잠재해 있었습니다. 저를 짓밟는 수구세력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저를 손가락질하고 비난하는 진보들에게까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 어떻게든 스스로 겸허한 척, 내려 놓는 척, 비우는 척 할 했지만, 그것은 가식이었습니다. 
그렇게 제 마음속 한 부분을 깊은 분노가 잠식하고 있는 한, 결국 제 활동은 세상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터입니다. 스스로의 앎도 실천 못하는 제가 시민운동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위선의 극치입니다.
결국 저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제 자신에 의해 퇴출되어야 할 운명이었나 봅니다. 앞서 얘기했던 긴 내용들은 사실 제 자신의 무지와 결핍을 도출해 내는 과정이었을 뿐입니다. 저 처럼 스스로의 아집의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사랑의 기반이 없는 투쟁은 쓸모없는 것이었음을 참회하는 과정이라 할 것입니다. 하여 이렇게 그간 제 모든 활동을 끝내고 안녕을 고합니다. 그간의 저의 실망스러운 활동을 이제 마무리 하겠습니다. 
돌아보니 아무런 의미 없었던 잡스러운 번잡함 뿐이었던 듯 합니다. 제 모습 좀 안 보게 해달라며 불편해 하시는 분들의 모습은 그 증거이기도 하죠. 이런 터에 제 잘난 맛에 시민운동계에 나서봤자 그분들의 불쾌함만 더 늘 듯 합니다. 더 열심히 하시고, 더 소중할 일을 하실 분들을 위해 자리를 비껴드리는 것도 인간된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여전히 저를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많이 있기에 그분들 바라보고 제 활동을 이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를 두둔하는 사람, 저와 같은 편, 익숙한 삶에 안주하는 것은 제 방식이 아닙니다. 
■ 미움으로부터 나를 구하기
우리는 인생살이의 와중에 타인으로부터 상처를 입고 불신의 벽에 갇힙니다. 그로인해 마음은 닫히고 세상은 온통 부정해야할 것 투성이로 변하고 타도의 대상이 됩니다. 우리 내면에는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지만, 미움은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걸림돌입니다. 
미움에는 관성이 있고, 누군가가 미워지면 계속 가속도가 붙어서 끌려 내려가게 되어있습니다. 상대방이 하는 것은 옳은 것도 그른 것이 되고, 좋은 것도 나쁜 것이 됩니다. 상대방이 콩으로 메주를 쓴다는 얘기를 해도 불신하고 부정합니다. 아무리 똑똑하고, 훌륭하다고 인정받던 사람들도 한번 이 미움에 빠지면 정신의 균형을 잃고 스스로를 파괴하고 주변사람들을 무너트립니다. 
미움을 극복할 내적 잠재력을 깨울 용기를 갖지 못하면 우리는 결국 증오의 수렁에 빠지게 됩니다. 그 내적투쟁에서 실패하면, 세상만사가 불신해야할 것이 되고 암흑으로 변합니다. 더군다나 스스로가 그 암흑에 빠진 것 자체를 알지 못합니다. 결국 구해야할 것은 세상 보다는 자기 자신인 것입니다. 
다른 사람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 자신의 얘기입니다. 저는 그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기를 써 왔습니다. 저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미워지는 그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 기를 썼습니다. 
그리고 그야말로 간신히 그 증오의 함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제 마음속에 미움이 들어차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 미움에 휘말리는 우를 피해갈 수 있었으니까요. 큰 사랑은 못했어도 미움에 빠지는 과오는 저지르지 않은 듯 합니다. 고작 저는 그것을 할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 미움으로부터 벗어나니 모든 것이 바로 보였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제가 부족한 인간이고 미숙한 인간이었기에 벌어진 일입니다. 다 제 탓인 것이죠. 앞서 장황하고 지리멸렬한 말씀을 드렸지만, 그것은 우리 시민사회에 어떤 일이 빚어지고 있는지를 살펴 주십사 하는 뜻으로 드린 것이고 실은 그 모든 것이 저의 부족한 일면이었던 것입니다. 오랜 기간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에 대해서 고민했지만, 결국 풀어낼 수 없었습니다. 이 또한 제 자신의 부족의 결과이죠. 
사람이 덕이 있고 품성이 갖춰졌다면 어떻게든 이 문제는 해결되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큰 죄를 저질렀어도 인덕이 있는 사람은 용서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간 제가 인생을 잘 못살아왔기에 그분들은 저를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그 문제를 해결할 길을 찾아낼 수 없었던 것이지요. 그러니 제가 더 이상 시민사회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족하고 미숙한 인간이 세상의 변화를 위해 나섰다는 것 자체가 안 쓰러운 일일 것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내 손에 쥐어지는 무언가는 내 이웃과 자연과 후손들의 미래로부터 빼앗아 오는 것임을 알아 죄책감에 시달렸었습니다. 그리고 그 죄책감을 해소할 방법으로 사회복지를 전공했고 시민운동에 나섰습니다. 조직과 단체가 만들어내는 규율과 엄숙과 형식이 싫어서 홀로 활동했습니다. 
그렇게 홀로 열심히 달려가다 보면 인간 보편에게 이로울 어떤 새로운 길을 열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러기는커녕 세상에 번잡함만 더 만들어 놓고 이렇게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다르게 보는 방법을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거창한 포부는 부질없는 것이었고, 고작 미움에 빠지지 않고 저 자신을 구했을 따름입니다. 
인생은 참 미묘합니다. 원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올라가려다보니 내려와 있고, 앞으로 가려다 보니 뒤에 와 있으니 말이지요. 그게 우리네 인생 아닌가 합니다. 
그간 본의 아니게 저와 마주쳐서 불편함을 느끼고 제 부족함의 피해를 받으셨을 분들께도 참회 드립니다. 이제 저는 그간 해 왔던 번거로운 짓거리에 대해 통렬히 자성을 하고 사라지려 합니다. 
그간 알았던 분들 모두와 인연을 끊을 것이니 연락 안된다고 섭섭해 하지 마십시오. 잘 못 살아온 삶에 대한 참회입니다. 모두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그리고 각자의 길을 덤덤히 가시길. 저도 사람들 눈에 안 띄는 곳에서 저만의 길을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