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개똥철학/메멘토모리

구구팔팔이삼사가 웰다잉?

도덕쌤 2024. 11. 26. 19:47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고 싶은가?

막내가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미련 없이 언제든 죽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평생 중학교 도덕 선생으로 살겠다던 결심이 무너지고 실패자로 학교를 떠난 뒤에 방황하던 시절이었다.

처음엔 일단 사직서를 던졌는데 아내가 혼비백산하고 주변에서 뜯어말렸다. 누님이 겨우 중재안을 제시했는데, 어머니 간병휴직을 신청해서 1년을 쉬었다가 다시 교단에 서거나 그래도 못 견디겠으면 그때 명예퇴직을 신청하는 방향으로 하자는 것이었다. 사직서가 처리되기 직전에 철회하여 간신히 모친 간병휴직으로 돌려놓았다.
그런데 그해 여름 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될 무렵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휴직 사유 소멸로 곧바로 복직하고 더 없이 고통스러운 날들을 보냈다. 결국 명퇴를 신청했다. 정년이 아직도 10년여 남은 때라서 명퇴가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없었는데, 운명을 하늘에 맡기는 심정으로 신청했다. 뜻밖에도 그해 교원인사를 담당하는 부서에선 교단에 뜻을 잃은 사람들을 붙들지 말자는 생각들이었는지, 명예퇴직에 예산이 얼마나 들어가든지 신청자들은 모두 명퇴시키자는 방향으로 정책이 결정되었다. 
그렇게 학교를 떠난 뒤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공상에 자주 빠져들었다.

싯달타 왕자의 전기를 그린 어느 만화에서 싯달타가 전생에 죽기 전에 밀림속으로 걸어들어가 호랑이에게 자신의 몸을 공양한 수도자였다는 이야기를 읽었던 기억이 났다. 몽골족의 풍장, 조장의 풍습도 떠올렸다. 뱃사람들의 수장이란 풍속도 생각나고, 성경의 요나이야기나 심청이야기도 생각났다.
나는 바닷속에 들어가 내 몸을 바다 생물들에게 공양하는 죽음을 꿈꿨다.
20리터들이 생수병들을 뗏목으로 엮어 바다로 나가자. [라이브오브파이]라는 영화처럼 태평양을 항해하면서 절대고독을 경험하며, 내 무의식 속의 생존본능이 얼마나 강렬한지 시험해보다가, 마지막 순간에는 나를 먹여 살려온 바다 생물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내 몸을 공양하자. 그렇게 하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하지? 항해술을 배우기 위해 요트 타는 법을 배우고, 바다에서의 생존을 위해 스쿠버다이빙도 배워야 하나? 

결국 공상으로 그쳤다. 
그 무렵 누님이 호스피스 봉사를 권유하였다. 어떻게 죽을까 공상에 빠져있는 내가 죽어가는 환자들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단 말인가? 역으로 죽어가는 그분들을 통해 내가 새롭게 배워야 할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누님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각당복지재단에서 주관하는 무지개호스피스에 회원등록을 하고 교육을 받았다.

호스피스 교육 중에 '웰다잉'이란 단어를 처음 접했다. 
연명치료거부에 대한 얘기도 들었고 장기기증에 관한 얘기도 들었다. 모두 공감이 가는 이야기였지만, 오직 하나 "어떻게 죽는 것이 잘 죽는 것인가? 웰다잉?" 이에 관한 얘기는 무언가 미진한 구석이 많았다. 
대체로 사람들이 공감하는 웰다잉은 결국 '구구팔팔이삼사'였다. 구십구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일 앓고 죽자는 것이다. 예로부터 5복 중의 하나로 고종명 (考終命)을 이야기 해왔는데, 과연 오늘날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질문을 던졌다. 세계 4대 성현이라 알려진 분들 가운데 살해되신 분들이 있다. 살해될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피하지 않고 그 길을 걸어간 분들이 있다. 독배를 마시고 죽었다는 소크라테스,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예수.
그분들의 죽음은 훌륭한 죽음이라고 할 수 없는가? 그렇게 죽음의 길을 걸어간 때문에 그분들이 성현으로 추앙받는 게 사실이라면, 그 죽음은 '웰다잉'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은가?
전태일 열사를 비롯한 우리가 빚진 수많은 의로운 죽음들을 기억하며, 타다 만 장작개비같은 삶을 부끄러워하는 나는 구구팔팔이삼사를 결코 웰다잉이라 말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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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썼던 웰다잉과 관련된 두 편의 글을 소개한다.
오늘의 글도 여전히 그 두 편의 글에서 한 걸음도 더 나아기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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