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엉덩이가 살이 빠져 방석없이는 앉기 힘들고, 허벅지를 만지면 뼈가 그대로 느껴지며 백골단에게 걷어채인 듯한 통증도 시시때때로 찾아온다. 모처럼 만나 앞으로 어떻게 살면 좋을지 얘기하던 아내가 정말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엉덩이와 양쪽 허벅지를 만져보고는 걱정이 되는 듯, 근손실을 예방하고 근력을 키우는 운동이라며 유투브와 블로그들을 찾아 소개해 준다. 다시 금산으로 내려오는데 무슨 반찬거리를 더해줄까 챙기는 아내 얼굴에 안타까움이 더욱 진하게 느껴진다.
후원의 밤 행사에서 만난 동지들이 요즘 어떻게 지내냐며 안부를 물어오는데, 내가 진정으로 존경하는 동지들에게 건성으로 답하는게 미안해서 무어라고 답해야 할지 망설여진다.
[메멘토모리]라는 제목으로 카테고리를 열고 글을 써나가며 페북에도 소개했더니, 글을 읽어본 누님이 댓글로 "그래,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왔다. 티스토리에 계속 쓰는 글로 답하겠다고 했더니 또 다시 다음 글 [가던 길을 멈추고...]에 댓글을 보내왔다.
그저 시간을 죽이듯이 보냈던 대학시절, 차라리 죽고 싶다는 내 마음을 엿본 누님이 "그래 죽고 싶으면 죽어라. 그러나 내일 아침 다시 부활하여 새롭게 살기 바란다."고 격려해주었었다. 이번에도 누님은 염려가 가득한 마음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어떻게 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고뇌하는 내 모습이 자못 걱정스러운 건 나를 지켜 본 사람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소성리에서 뼈를 묻겠다는 오빠를 염려하며 그 곁을 지키겠다고 따라와서 함께 집을 지은 동생 은총도 그 중에 한 사람이다.
후원의 밤 행사에서 만난 예수살기 동지 목사님의 안부를 묻는 물음에 "죽어가고 있어요."라고 대답했다. 앞으로는 나의 안부를 묻는 말에 그렇게 대답할 작정이다. "메멘토 모리!"를 실천하는 대답이다. 척하고 알아듣는 동지들이 고마웠다. 척하고 알아들으면서도 미련처럼 따라붙는 염려의 눈길에 이렇게 덧붙여준다. "죽어가고 있어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걱정이 되는데 하지마란다고 걱정이 안 되남?
그래서 덧붙여 둔다. 여전히 마음속에 주문처럼 외우고 싶은 나의 기도. 어제 누군가 "충만한 데까지 이르도록"이라는 말로 검색하여 나의 글을 읽고 갔다기에 다시 읽어본 기도문이다. 2014년 3월 25일, 세월호 참사 3주 전에 주일예배 대표기도 순서를 맡아 드렸던 기도라고 기억하는데, 지금도 이 기도를 되풀이하며 살아가고 있다.
2014.03.25 - [삶의 고백/고백 ; 기도 ; 선언 ; 설교 ; 묵상] -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도록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아들을 믿는 일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고, 온전한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경지에까지 이르기를 원하셔서, 날마다 가르치기를 쉬지 않으시는 하느님, 또 한 계절을 지나면서 우리들의 모습을 되돌아봅니다.
여전히 어린아이같이 있으려는 우리들의 마음을 되돌아봅니다.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하여 주옵소서.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고 있는, 우리들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오직 주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몸과 마음을 다하도록 가르치셨지만, 우리는 때때로 ‘우리의 본성이 오직 자신만 사랑하도록 되어 있는 존재’라는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삶은 생존경쟁을 해야만 하는 사회’라는 엉뚱한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우리의 이웃을 벼랑 끝으로 밀어 넣고 있으면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우리 죄를 감추고 있었습니다. 하느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여전히 세상은 전쟁의 소문이 그치지 않고, 우리 주위엔 세 모녀와 같이 벼랑 끝에 몰려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하는 이웃들이 방치되어 있습니다. 하느님, 평화를 만들라는 사명을 받은 우리들이 이런 세상의 모습을 바꾸는 일에 사용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가르치시고 능력 주시옵소서.
우리를 묶어놓은 사랑의 줄이 더욱 단단해져왔음을 돌아보며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제 그 사랑이 ‘우리끼리’에 그치지 않도록, 우리가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들을 향한 하느님의 관심’을 기억하고, 하느님의 도구가 되어가는 일에 두려움 없이 기쁨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하느님, 우리에게 심어 주신 하느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인도하옵소서. 새봄, 움트는 새싹 안에서 미리 그 열매를 바라보지 못했음을 반성합니다. 싹 안에서 열매를 보지도 못하면서, 열매를 맺는 그날까지 거름을 주고 북돋우며 기다릴 수 있는 인내심도 부족했습니다. 하느님, 우리에게 인내의 능력과 서로의 모습 안에서 하느님의 형상을 발견해 낼 수 있는 눈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새봄, 움트는 새싹 안에서 열매를 미리 볼 수 있는 눈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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