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내가 목도한 '나 아닌 이'들의 죽음이 아니라 나의 죽음에 대한 얘기를 하고자 한다.
내가 죽고 싶었다거나, 죽을 뻔 했다거나, 죽음을 각오하고 죽기살기로 덤벼들었다거나, ... 아무튼 나의 죽음에 관한 얘기를 하고자 한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또는 기억하더라도 그때가 내가 죽을 뻔했던 때였다고 자각하지 못하는, 그런 얘기부터 시작하자.
아들 아들 딸 딸 아들 아들 딸 딸, 팔남매의 여섯째, 아들로 막내였던 나는 갓난아기 시절부터 별로 잘 먹지 못했다 한다. 엄마가 젖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었을 거라 생각하는데, 젖을 잘 먹지 못해서 미음이나 수박물같은 거로 겨우겨우 살았다고 한다. 2년 뒤에 태어난 동생 수혜(은총)는 엄마가 가장 영양부족이었던 상태여서 아예 젖이 부족했다고 들었는데, 나는 엄마젖이 입맛에 맞지 않아 잘 먹지 않았을까? 나는 아무튼 발육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던 아이였다고 한다.
자식들이 많다 보니 형이 동생을 키우는 일이 자연스러워서, 나를 돌보는 일은 형이나 누나들이 주로 맡고 엄마는 젖을 먹이거나 내가 아플 때라야 품에 안아주셨나 보다. 기억력이 비상한 작은 누님만이 나를 업어키운 이야기를 한두 번 들려주었는데...
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죽을 뻔했던 일을 작은 누나가 들려주었다. 나를 업고 고무줄 놀이를 했는데, 그만 나를 등에서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누나도 엄청 놀랐겠지. 누나가 그 일을 어떻게 감당했는지, 엄마에게 얼마나 혼났는지 모르겠다. 나는 전혀 모르는 이야기다.
기억하고 있지만 내가 죽을 뻔했다고 까지는 생각하지 못하는 일은 국민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홍역을 앓았던 경험이다.
그전에 엄마의 목탁 소리에 반해서 목탁을 가지고 놀다가 바로 위, 셋째 형과 서로 목탁을 차지하겠다고 밀고당기던 중에 넘어져서 목탁에 얼굴을 부딪혀 입술이 찢어졌던 일이 있었는데, 병원으로 달려가 입술을 꿰매야 했었다. 나에게는 홍역을 앓고 있었을 때의 아픔이나 입술을 꿰맬 때의 아픔이나 별로 다를 게 없는 아픔이었으나 (물론 고열로 인한 혼수상태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있고, 아픈 시간이 홍역 때가 말도 못하게 긴 차이는 있다.) 부모님에게는 내가 입술을 꿰맬 때의 안타까움은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간절했던 시간이 내가 홍역을 앓고 있을 때였을 것이다. 홍역이란 질병이 간단히 예방주사로 해결되던 시기는 좀 더 나중이었다고 알고 있다. 부모님 세대 이전에는 얼마나 많은 아기들이 질병으로 죽어갔나? 우리 형제들도 사실은 아들 아들 사이에 딸이 하나 더 있었다고 한다. 살았으면 제일 큰누님이 되었을 그 아기는 두 돌이 안 되어 병사했다는데 무슨 병이었는지는 모른다. 어쩌다 그런 일이 있었다고만 알고 있을 뿐, 부모님 가슴에 묻어둔 그 슬픔은 누구도 파헤치지 못했다.
아무튼 입학하자마자 홍역을 앓느라 대략 한 달 가까이 결석했다. 고열로 인한 혼수상태를 경험했던 나는 그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 느낌으로라도 남아 있는 게 없다. 정신을 차리고 있을 때 엄마가 흘려넣어주던 달콤한 시럽같은 약이었을지, 비타민C였는지, 달콤했던 기억뿐이다. 아, 그리고 한 동안 에비오제라는 영양제를 형제들과 경쟁없이 독점적으로 먹을 수 있었다는 기억. 아마 그래서 뭔가 슬프고 외로우면 아프다고 엄살을 부리는 경향이 생겼을 것 같다.
학교생활은 이미 낯을 다 익히고 있던 친구들과 달리 홀로 낯선 정글을 탐험하는 입장이었을 것이다. 선생님만 의지하고 지냈을 거라 생각한다. 친구들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다. 한달 가까운 학습결손에도 불구하고 성적이 매우 뛰어나 선생님의 칭찬을 들었다는 정도.
나도 모르게 넘어간 죽을 뻔한 순간들에 대한 얘기는 여기까지다.
죽을 뻔한 나를 보며 당황하고 살려내려 간절히 알고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며 곁을 지켜준 사람들, 누나나 부모님이나, 긍휼히 여겨 준 선생님이나, 그 모든 이들의 사랑을 기억하고 되새기려 애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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