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교실/사람의 등급

[스크랩] 사랑하는 단(亶)에게 (사람의 등급②)

도덕쌤 2017. 2. 7. 05:23

사랑하는 단(亶)에게

 


네 시대에도 여전히 카톡이라는 게 쓰이고 있을까 몰라. 

네가 카톡을 알까?

얼마 전에 하님이 고모가 카톡으로 네 사진을 보내줬다. “이 난장판을 만들며 까준 귤 / 할머니와 고모에게” 라고 덧붙였는데, 자세히 보니 귤껍질을 까던져서 난장판을 만들었네. 그래도 네 엄마 아빠는 귀엽다고 말하고, 할머니는 매우 흐뭇해 하는 표정이다. 고모도 단이가 매우 대견했겠지?


네 엄마는 네가 생일축 노래를 즐거워해서 30번이나 부르고 잠재웠다며 동영상과 함께 책을 보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사진 찍어 보내주었구나. 할아버지는 이 사진을 보면서 “공부가 즐거운 단이!!!”라고 감탄을 하였지. 글을 쓴다고 멀리 떨어져 있던 할아버지는 네가 많이 보고 싶었단다.

부디 단이가 이 할애비의 편지를 읽을 때도 이렇게 즐겁고 대견한 모습이기를 기도한다.

 

지난 편지에서 할아버진 할아버지의 깨달음을 전해주고 싶다면서 인격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사람에겐 등급이란 게 있고 그 등급을 나타내는 여섯 단계 표현이 있음을 얘기했지. 그러나 사람에게 등급을 매겨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비록 우리의 전통 가운데 사람의 등급을 매겨 온 생활관습이 있었다고 해도 그건 낡은 사고방식이라고 믿고 싶은 사람들이지.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하는 얘기란다. 

오늘의 제목은 [사람에게 등급을 매기다니?!!]

 

사람들이 사람에게 등급을 매기는 것을 거부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등급’이라는 표현이 사람을 상품처럼 취급하는 기분을 느껴서이다. 우리는 물건을 사고팔 때 질을 따지지. 질에 따라 특급 또는 A급 혹은 상품(上品)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등급을 매긴다. 우리는 상품에 대해서는 품질(品質)을 따지고 사람에 대해서는 품격(品格)을 따지기 마련인데, 등급이라는 표현은 품격보다는 품질을 따지는 느낌이기 때문에 사람에게 등급을 매긴다는 사고방식을 거부하는 거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신념이 “존엄한 인간을 어떻게 등급을 매길 수 있단 말이냐?”고 반발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할애비가 인격을 ‘사람의 등급’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인격을 갈고닦는다고 말할 때,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 되었는가를 좀 더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표현해 보자는 생각 때문이다. 너무 막연하게 인격을 얘기하다보니 사람들은 인격이란 것에 대해 무관심해지지 않았나 생각해서지. 사실 인격이 부족해서 우리가 비인격자(非人格者)라거나 너무 비인간적이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들에게는 ‘등급’으로 인격을 분명히 드러내주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에게 등급을 매기는 것을 거부하는 또 다른 이유를 찾자면 그 등급을 고정불변의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태어나면서부터든 일정한 나이에 이르러서든 사람의 등급은 고정되어 더 이상의 수준으로 올라가지 못한다고 착각하는 거지. 만일 이러한 의미로 등급을 말한다면 낮은 등급의 사람으로 평가하는 것은 곧 그 사람을 정죄하는 것이 된다. 누군가에게 정죄 당한다고 느낄 때, 사람은 당연히 그 정죄를 거부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 마련이지.

그러나 할애비는 사람은 되어가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완성되어가는 존재, 신에게 가까워져 가는 존재가 사람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등급을 매겨본다는 것은 “너는 기껏해야 이 정도 인간일 수밖에 없어!”가 아니고, “네 자신의 수준을 알고 더 높은 수준의 인격자가 되도록 노력해!”라는 충고에 가깝다. 스스로 반성해보는 기준인 것이지.

 

민주주의의 기본이념인 자유와 평등에 관한 오해 때문에 사람에게 등급을 매기는 것을 거부할 수도 있다.

먼저 자유에 대해서 말하자면, “사상과 양심의 자유가 있고 특별히 법으로 금지하지 않은 행위에 대해서는 처벌할 수 없는 게 상식인데, 무엇을 가지고 등급을 매기겠다고 하느냐?”고 반발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1+1은 2라는 정답이 있어도, 1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2하고 생각할 수도 있고, 3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지. 무슨 말이냐면 자유가 진리를 확증해 주지 않는다는 얘기다. 사람마다 인격의 성숙한 정도가 차이가 있다는 게 사실인데, 그 차이를 어떤 기준을 가지고 등급을 매겨볼 수 있다는 게 사실인데, 자유를 핑계로 이를 부정하는 것이다.

평등에 대해서 말하자면, 지난 편지에 소개한 격언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라는 격언을 들이대며 모든 사람의 인격이 똑같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인격의 의미를 신분 또는 사회적 지위나 계급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지. 이 격언에서 ‘위아래’가 뜻하는 것은 옛날 신분제 사회에서 신분의 높고 낮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사회에서는 신분에 따라 사회적 지위와 계급이 달라졌다. 사실 인격이 훌륭한 사람이 그 사회의 높은 지위에 있는 것이 여러 가지 이유로 바람직한 법이지만 엄밀하게 따지자면 인격이란 개념은 사회적 지위나 계급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자유와 관련해서 우리가 고민해야 할 문제는 “인격을 판단하는 기준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이제껏 은연중에 사람들이 공감해 오는 인격판단이 있어서 성인군자라고 소문난 사람들이 있지만, 구체적으로 무얼 기준으로 사람의 등급을 매겨볼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사람들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 은연중에 공감할 수 있는 기준을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내서 구체적으로 기준을 제시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각자의 자유로운 생각에 맡겨버리면서 아예 객관적인 인격평가를 ‘할 수 없는 것’, ‘시도해선 안 되는 것’으로 치부하기에 이른 것이다. 할아버지는 도덕교사로서, 훌륭한 인격자가 되라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바로 여기에 도전해 온 것이었다. 그 도전의 결과가 지금 할아버지의 깨달음으로 너에게도 전해주고자 하는 것이지.

평등과 관련해서도 우리는 명확하게 해두어야 할 문제가 있다. 평등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똑같은 상태에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평등은 저마다 개성이 다르고 인격이 다른 사람들을 똑같이 대우해주라는 말이다.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났건, 어떤 피부색을 가졌건, 나이, 성별, ..... 우리가 어떤 점에서 다른 게 분명하지만 서로 똑같이 대우하라는 가르침이 평등이라는 가르침이지.

이를 인격과 관련해서 말하자면 오히려 우리를 당황하게 만들 수 있다. 사람들은 ‘짐승같은 놈’에게는 짐승 취급을 벌레같은 놈에게는 벌레 취급을 하고 싶어 한다. 성인군자라고 알려진 분들에게는 당연히 존경을 하지. 우러러 뵈는 분들에게는 온갖 것을 갖다 바치고 싶어 한다. 그런데 평등의 가르침은 ‘짐승같은 놈’과 ‘벌레같은 놈’과 ‘성인군자’를 똑같이 대우하라는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짐승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되고, 벌레 또한 마찬가지지. 벌레를 밟아 죽일까봐 성긴 빗자루로 발 디딜 곳을 쓸며 다니는 인도 자이나교 승려들이야말로 얼마나 멋있는 사람들인가! 할아버지는 감탄을 한단다.

 

할아버지는 사람을 평등하게 대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한다. ‘짐승같은 놈’이라고 해서 ‘짐승 취급’을 하는 것이나 ‘거룩하신 분’이라고 해서 특권을 주는 일은 모두 잘못이다. 그러나 어떤 분은 거룩하신 분처럼 보이고 어떤 놈은 짐승과 다를 바 없다고 느껴지는 것을 부인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노력해야 할 지점은 바로 여기다. 어떤 분을 거룩하게 보고 어떤 놈을 짐승처럼 느끼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 판단기준을 합리적으로 세울 수 있는가?

 

사실 할아버지가 논쟁해 본 결과 인격의 수준이 낮은 사람들일수록 생각의 수준이 낮은 사람들일수록 세상 모든 다른 사람들을 마치 자기와 동일한 수준의 인격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보다 더 인격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세계적으로 성인(聖人)으로 인정받는 예수, 석가, 공자, 소크라테스 이런 분들에 대해서도 깎아내려서 자기와 동일한 수준의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도 보았다.

어쩌면 사람에게 등급을 매기는 일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알량한 자존심에 상처를 받을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지도 모른다.

 

인격판단기준을 세우고 사람의 등급을 매겨보자는 할아버지에게 가장 힘겨운 상대는 인생무상을 설파하는 사람들이었다. 짧은 삶을 살다가 결국 죽어갈 사람들인데, 성인군자도 다 죽고, 개같은 놈도 죽고, 모두가 죽으면 그만인데 길고 짧은 걸 재서 뭐하겠느냐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드넓은 우주 공간에 작은 점 하나에 불과한 인간이 도토리 키재기 하는 것에 불과한 일 아니겠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음 편지에선 이 이야기를 해줄게. 사람의 등급을 매겨보는 일이 왜 중요한 일인가? 끈기 있게 읽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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