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교실/사람의 등급

[스크랩] 사랑하는 단(亶)에게 (사람의 등급①)

도덕쌤 2017. 2. 7. 05:22

사랑하는 단(亶)에게


좋아하는 음악만 나오면 몸을 흔들며 뱅글뱅글 돌며 얼굴에는 가득 웃음을 머금은 네 모습이 생각난다. 사랑스럽고 귀여운 단.


단에게 할애비가 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베드로가 말하기를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내게 있는 것을 그대에게 주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시오" 하고” (행 3:6)라는 성경 말씀처럼 ‘내게 있는 것’ 밖에 줄 수 없음을 안타깝게 여기며, 이 할애비에게 있는 것이 무엇일까 되돌아보았다. 

부디 할애비에게 없는 것일지라도 단이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하느님께서 채워주시기를!!! 아멘!!!


할아버지가 돌아보니 할애비로서 단에게 줄 수 있는 ‘할아버지에게 있는 것’은 50년 넘게 생각의 바다 속에서 건져 올린 몇 가지 깨달음뿐이란 걸 알았다. 네가 이 글을 읽을 수 있는 날은 먼 훗날이 되겠지만 할아버지로서 네게 줄 수 있는 것은 이것 뿐이니, 지금 미리 준비할 수밖에!

다만 걱정이 되는 것은 무릇 공부란 물음표에서 출발하는 것인데, 네게도 할애비와 같은 물음표가 생긴 상태에서 이 글을 읽고 있을까 하는 것이다. 만일 읽어나가다 재미없고 어렵게 생각되면 잠시 접어두었다가, 네 안에 어떤 물음표가 생기기를 기다려 다시 읽어나가길 바란다. 무엇보다도 우선 네가 이 할애비의 글을 읽을 때쯤에는 네가 할아버지의 편지에서 사용한 낱말들을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어휘력을 갖추었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깨달음이 너도 공감할 수 있고, 또 네게 필요한 깨달음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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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오늘의 첫 편지는 인격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하려 한다. 인격에 관한 이야기는 할애비의 깨달음 중에 가장 근본적인 바탕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격(人格)!

인격이라는 말도 모든 말이 그렇듯이 사전을 찾아보거나 그 용례(用例:실제 사용된 사례)를 살펴보면 여러 가지 뜻을 가지고 있는 말이다. ‘격(格)’이라는 글자는 ‘가격(價格)’, ‘자격(資格)’, ‘품격(品格)’이라는 단어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글자로, 이 뜻글자가 무슨 뜻을 가진 말인지 묵상해볼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할애비가 말하려는 인격(人格)은 가장 쉽게 말해서 ‘사람의 등급’을 뜻하는 말이다.

네 시절에도 이런 격언을 들려주는 사람들이 있는지 모르겠구나.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라든지,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다워야 사람이지!” 같은 말들. 첫 번째 격언은 사람의 평등을 강조하는 말이고, 두 번째 격언은 인격을 갖춰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지. (그러고 보니 격언(格言)이란 말에도 ‘격(格)’자가 들어 있구나.) 

두 가지 격언 모두 인격이란 말과 관련 있는 말이지만, 인격을 ‘사람의 등급’과 관련해서 해석할 수 있는 것은 두 번째 격언이란다.

오늘부터 긴 편지를 통해 할아버지가 네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첫째, “사람다운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자”는 것이다. 인격자가 되도록 노력하자는 말이지. “인격을 갈고 닦으라”는 충고인 셈이다.


우선 첫 번째 떠오르는 물음표는 “아니, 사람에게도 등급이 있어요?”라는 것일 게다. “사람에게 등급을 매길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먼저 해결되어야 할 질문인 셈이지.

할아버지의 대답은 “그렇다! 사람에게는 등급이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란 단어도 각각 다른 뉘앙스로 사용되는 말이라서 그저 사람의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나면 모두 사람으로 불릴 수도 있단다. 그저 사람의 모습을 찍어낸 사진을 보고도 “이게 사람 사진이구나”라고 말하지 않고 “이게 사람이구나”라고 말할 수도 있지. 

그런데 할아버지가 인격에 대해 생각하면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사람답다’라고 말할 때의 ‘사람’, ‘사람다운 사람’, 바로 이 ‘사람’이란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게 참 알쏭달쏭한 이야기지. 이미 사람의 자식으로 태어나 사람으로서 살아가고 있는데, 짐승처럼 산다는 둥, 짐승같다는 둥, 사람답지 못하다고 말하다니! 웬만큼 생각의 수준이 높아지지 않으면 이해되지 않는 얘기들일 것이다. 우리 단이가 할애비의 얘기를 알아들으려면 그러니까 어느 정도 생각의 수준이 높아졌어야 한다는 얘기지.

단이도 친구들과 놀 때에 욕설을 들어봤나 모르겠다. 할애비 시절에는 흔히 하는 욕설들이 성(性, sex)과 관련된 표현이거나 아니면 ‘개새끼’라는 욕이었다. 성과 관련된 욕설은 여기서는 생각지 말고 ‘개새끼’라는 욕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이게 왜 욕설이 되었을까? ‘개’ 대신에 ‘하느님’이란 말을 넣는다면 욕이 될까? 

사람들은 사람중심적인 생각 속에서 사람이 아닌 동물들에 대해서 무시하는 생각을 가졌었단다. 동물들에 대해서 벌레, 물고기, 파충류, 새와 짐승, 그리고 사람까지. 각각 등급을 매겨 두고, 사람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말하면서 자부심을 느껴왔지. 그래서 ‘벌레만도 못한 놈’, ‘벌레같은 놈’, ‘짐승같은 놈’이란 표현을 해왔고, 이런 표현은 상대방의 인격을 멸시하는 욕설이 되어 왔던 거야.

사실은 이런 사람 중심의 사고방식도 반성해봐야 할 사고방식이긴 하단다. 외계인들이 등장하는 영화 - 할애비 시절에는 스타워즈같은 영화가 유명했지 - 들에 등장하는 외계인들의 모습은 파충류와 같은 모습, 심지어 ‘맨인블랙’이라는 영화에서는 벌레같은 모습으로 외계인을 그리고 있단다. 벌레같다고 해서 파충류같다고 해서 무시해서는(그 격을 낮게 평가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

그러나 할아버지는 인격에 대한 생각을 말하면서, 그 옛날부터 사람들이 흔히 가져왔던 생각의 전통을 이어받아서, 일단 사람의 등급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벌레’나 ‘짐승’을 사람보다 못한 등급에 대한 ‘비유적 표현’으로 사용하려 한다. 사람들의 욕설 속에 ‘벌레같은 놈’, ‘짐승같은 놈’ 같은 표현은 인격과 관련된 것이란 이야기다.

사람들은 은연중에 사람들에게 ‘인품(人品)’, ‘품격(品格)’이란 것이 있다고 믿어왔고, 더 수준 높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거나 최소한 ‘짐승같은 놈’ 이하의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왔는데, 바로 이런 생각이 욕설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우리 단이도 할아버지가 가르쳤던 ‘도덕(道德)’이라는 교과목을 배웠는지 모르겠구나. 할아버지는 중학생들에게 도덕이라는 과목을 가르치던 선생님이었는데, 도덕이란 게 무엇인 줄 아니? 도덕이란 말도 사전에서 찾아보기 바란다.

할애비 시절의 국어사전에는 도덕이란 말을 ‘인륜지대도(人倫之大道)’라고 설명했었는데, 네 애비 시절의 사전에는 좀 더 현대적으로 설명해 놓았구나. NAVER 사전에는 “사회의 구성원들이 양심, 사회적 여론, 관습 따위에 비추어 스스로 마땅히 지켜야 할 행동 준칙이나 규범의 총체. 외적 강제력을 갖는 법률과 달리 각자의 내면적 원리로서 작용하며, 또 종교와 달리 초월자와의 관계가 아닌 인간 상호 관계를 규정한다.”라고 되어 있고, DAUM사전에는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나 바람직한 행동 규범”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쉽게 설명하면, “네가 사람이라면 이렇게 살아야 해”라고 말해지는 모든 것들이 ‘도덕’이라고 할 수 있는 거란다. 짐승이라면 똥오줌이 마려우면 어디서든 쌀 수 있을 텐데, 네가 사람이라면 똥오줌은 화장실에 가서 싸야 한다는 식의 얘기지. 가까운 곳에 화장실은 없고 급한 상태라면? 최선을 다해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 배설물이 그래도 빨리 씻겨지거나 할 수 있는 곳을 찾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그런 얘기야. 더 나아가서 좀 더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사람은 자신의 욕구를 최대한 충족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구를 조절하거나 억제할 줄 아는 존재라는 얘기란다. 왜 욕구를 조절하거나 억제해야 하는가?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라는 얘기인 것이야.

따라서 자기 멋대로 하고 싶은데, “욕구를 조절하라! 참아라!”라고 하니까, 사람들은 “왜 그래야 하는데?”라고 따져 묻겠지? 도덕이라는 것을 굴레처럼 여기고 굴레에서 벗어나고픈 충동이 생길 거야. 바로 여기에서 사람들은 도덕적인 원리를 얼마나 존중하며 살아가는지 각자 차이가 생기기 마련이고, 사람들은 그 차이를 사람들의 인품, 품격 운운하면서 사람들의 등급을 매겨 왔던 거야. 누군가 남의 사정을 배려하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해서 내게 큰 피해를 주었다면, 우리는 그 사람에게 욕을 하는 거지. “야, 개새끼야! 네가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어?”라고.

옛날부터 사람들에게 이렇게 살라, 저렇게 살라고 가르쳐 왔던 사람들 중에 그 가르침이 훌륭하다고 인정받아 성인(聖人)으로 추앙받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동양의 공자나 맹자같은 분들은 사람들에게 군자(君子)의 삶을 살라고 얘기해 왔단다. 우리나라가 오래전부터 유학의 영향을 깊이 받았기 때문에 우리조상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가르침이었지. 그분들은 군자와 반대로 속이 좁은 사람들을 일컬어 ‘소인(小人)’이라고 불렀단다. 

그러니까 사람들의 등급을 표현하는 말로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용어들을 살펴보면, ‘벌레같은 놈(식충:食蟲)’에서부터 ‘짐승같은 놈(금수:禽獸, 속칭 개새끼), 소인(小人), 군자(君子), 성인(聖人) 같은 낱말들을 찾아볼 수 있단다. 우리는 이미 사람의 등급을 매길 수 있다고 믿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었던 것이지. 

할아버지가 가르쳤던 도덕이란 과목은 바로 이와 같이 “사람의 등급을 매길 수 있다면 무엇을 기준으로 등급을 매길 수 있고, 더 높은 수준의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가르치는 과목이었던 거야. (물론 처음부터 도덕이란 과목을 개설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니야. 할아버지는 도덕이란 과목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얘기지. 공식적으로 교육부에서 만들어 낸 [도덕과 교육과정 해설서]를 살펴보면 이렇게 두루뭉술한 얘기는 하지 않고 있단다. 위의 NAVER사전 설명처럼 어렵고 딱딱한 설명으로 가득차 있지.)


아무튼 단아, 지금까지 얘기는 “사람들에게 등급을 매길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우리가 평소 욕설을 할 때, 또는 도덕적인 가르침을 전해 준 성인들의 가르침 속에, 사람들의 등급을 매기고 있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는 정도의 대답을 한 셈이다. 이 정도의 대답으로 충분하니? “그럼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격언은 뭐야?”라고 묻고 싶지 않니?

사실 사람들은 사람에게 등급을 매기는 일에 대해서 상당히 불쾌해하고, 이런 생각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더 많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생각해 봐야 할 것들이 더 많이 남아 있어. 다음 편지에서는 이에 대해 더 살펴볼 생각인데ㅡ

우선 다음 편지로 넘어가기 전에 사람의 등급을 나타내는 전통적인 표현들에 대해 하나만 더 보충하고 넘어가려 한다. 식충에서 성인까지 다섯 개의 표현을 소개했지? 그런데 소인과 군자 사이에는 아주 많은 부류의 사람들이 있단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사이에 있던 거였어. 그 사람들을 나타내는 표현이 뭐가 있을까? 

할아버지는 ‘범인(凡人)’과 ‘위인(偉人)’이라는 표현을 찾아냈었는데, ‘범인(凡人)’이란 표현은 ‘범인(犯人)’이라는 단어와 같은 발음이라 마음에 들지 않았고, ‘위인(偉人)’이라는 표현은 수많은 사람들을 나타내는 표현도 아니고 인격을 평가하는 표현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생각에 다른 표현을 찾아내려고 노력했지. 그래서 찾아낸 표현이 ‘선린(善隣)’이라는 표현이었단다. ‘착한 이웃’이란 뜻인데, 성경 누가복음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안의 비유’를 찾아보렴.

오늘은 사람의 등급을 매겨 왔던 전통이 있었다는 것, 그런 전통이 오늘날 실제 생활에서도 욕설 속에 남아 있다는 것, 그 전통적인 등급 분류에 따르면 여섯 단계의 표현을 찾을 수 있다는 것 정도로 글을 마치마. 할아버지가 전하고자 하는 할아버지의 깨달음에 대해 계속 호기심을 갖고 읽어주길 바란다. 

그리고 네가 이글을 읽을 때까지 할아버지가 살아 있다면 읽으면서 생긴 물음표들을 할애비에게 마음껏 쏟아놓기를ㅡ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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