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교실/사람의 등급

사랑하는 단(亶)에게(사람의 등급⑤) / 존경한다는 것)

도덕쌤 2017. 2. 9. 07:37

사랑하는 단(亶)에게


어제 오늘은 새로운 네 사진을 보지 못했다. 지난 사진들을 보며 그리움을 달랠 수밖에. 지난 사진들 중에도 할머니에게 귤을 까서 입에 넣어드리는 네 모습을 보며 참 감탄하게 된다. 우리 단이가 어느새 이렇게 성장했단 말인가! 우리 단이의 인격이 한 단계 도약했음을 느끼며 칭찬을 아끼지 못하겠다. 대단한 단이!

 

드디어 인격의 구체적인 판단기준을 얘기했는데, 이제 그 결론이 나오기까지의 자세한 과정을 설명해 줄게.

 

우선 먼저 ‘존경(尊敬)’이란 말에 대해 생각해 볼까?

단(亶)아, 너는 어떤 사람을 존경하니?

어떤 이들은 자기에게 큰 사랑을 보여준 고마운 이들을 존경한다고 말하고, 어떤 이들은 자기가 닮고 싶은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를 존경한다고 말하지. 어떤 이들은 단지 유명하거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을 부러워하며 그들에게 존경을 바치기도 한다. 때로는 실제로는 존경하는 마음이 없으면서 겉치레로 아부하듯이 존경한다는 말을 쓰기도 한다. 예의상 ‘존경하는’이라는 말을 상대방 호칭 앞에 덧붙이기도 하는 거지.

그런데 단(亶)아, 좀 더 깊이 생각해보자. ‘존경한다’는 말은 ‘어떤 태도’에 관한 얘기다. 우리의 마음가짐, 감정, 몸가짐, 자세, 행동방식 등등에 관한 얘기다. 우리는 어떤 이유로 어떤 사람에게는 특별히 어떤 태도를 갖게 되는데, 바로 이때 ‘존경한다’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다. 할아버지 시대의 국어사전을 살펴보면 “남의 인격, 사상, 행위 따위를 받들어 공경하다.” 또는 “우러러 받들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이 가운데 ‘받들어 공경하다’나 ‘우러러 받들다’라는 것은 곧 우리의 마음가짐, 감정, 몸가짐, 자세, 행동방식 등등에 관한 얘기이고, ‘남의 인격, 사상, 행위 따위’는 존경하는 태도를 갖게 된 상대에 대한 설명이다. 어떤 이유로 어떤 사람을 존경하는가? 어떤 사람의 인격, 사상, 행위 등이 훌륭하다고 판단해서 그 사람을 존경하는 것이지.

사람의 인격을 판단하는 근거는 그 사람의 사상과 행동, 곧 그 사람의 생각과 실천이다. 존경이라는 말은 그러니까 한마디로 인격이 훌륭한 사람을 대상으로 써야 하는 말인 것이지, 어떤 능력이나 사회적 지위를 대상으로 쓰게 되면 ‘난센스 (nonsense)’가 되는 것이다.

혹시 누군가의 뛰어난 재능이 부러워, 그것을 닮고 싶어 하다가 그를 존경한다고 고백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 만일 그랬다면 이는 마치 수영선수가 물개를 존경한다거나 육상선수가 치타를 존경한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게 없는 고백이다. 너는 수영선수라면 당연히 물개를 존경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할아버지가 먼저 ‘존경(尊敬)’이란 말에 대해 생각해보자고 한 이유는 ‘존경’이라는 단어에는 우리가 닮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들어 있기 때문이란다. 존경이란 말은 우리의 어떤 태도, ‘마음가짐, 감정, 몸가짐, 자세, 행동방식 등등’에 관한 얘기라고 했지?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 ‘닮고 싶은 마음, 의지’인 거야.

앞서 살펴본 국어사전의 설명에는 이 부분이 생략되어 있지. ‘우러르다’, ‘받들다’, ‘공경하다’라는 단어들은 상대방을 높이고 자신을 낮추는 마음, 곧 겸손한 마음가짐과, 또 하나 상대방 앞에서 함부로 행동하지 않는 조심하는 마음가짐, 곧 예의바른 태도만을 나타낸다. 더 나아가면 상대방의 가르침에 고분고분 순종하는 태도까지 포함한다고 할 수 있지. 국어사전의 ‘존경(尊敬)’이란 단어의 설명은 겸손과 예의바름과 순종, 이 세 가지 태도로 요약할 수 있어.

그러나 존경하게 된 이유를 생각해보렴. 어떤 사람의 무엇이 훌륭하다고 판단되어 갖게 된 태도인데, 너라면 어떤 자세를 갖게 되겠니? 당연히 닮고 싶어 하는 마음이 첫째 아닐까? 그분처럼 되고 싶다는 소망이 생기는 게 당연한 일 아니냐고.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란다. 잘 난 사람만 보면 시기와 질투가 생겨서 헐뜯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도 있고, 그분처럼 훌륭하게 되는 것은 보통사람은 꿈도 못 꿀 일이라며 지레 포기하는 사람도 있지.

그러나 할아버지는 그분처럼 되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가장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마음이라고 여긴단다. 갓난아이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은 바로 이 마음 때문에 생기는 것이거든.

 

이렇게 누군가를 닮고 싶어졌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그 사람의 인격이 훌륭해서! 그렇다면 훌륭하다는 뜻은 무엇이니? “썩 좋아서 나무랄 곳이 없다”라고 사전에 나와 있구나. ‘나무랄 곳이 없다’는 말은 ‘흠을 찾을 수 없다’는 말과 비슷한 말이지. ‘칭찬을 할 만큼 대단히 뛰어나다’, ‘수준이 매우 높다’ 이런 설명도 있지.

그런데 이 말의 핵심은 무엇일까? 바로 ‘좋다’라는 말이다. ‘선(善)’이란 이야기다. ‘착하다’라는 뜻을 가진 ‘선(善)’이라는 글자는 영어로 말하면 ‘goodness’라고 번역할 수 있단다. ‘착하다’라는 말은 주로 마음씨와 관련해서 쓰는 말로 “마음이 너그럽다. 곱다.”는 뜻이다. “자기자신의 이익에만 집착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있음”을 뜻하는 말이지. 때때로 ‘반항하지 않고 순종적인’ 어찌 보면 ‘바보처럼 느껴지는’ 사람에게 착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선(善)’의 근본적인 의미를 생각하면 영어번역처럼 ‘좋다’는 말이다. ‘훌륭하다’는 말은 바로 ‘좋다’는 뜻이지.

그러므로 훌륭하다는 평가는 선(善)과 악(惡)을 판단하는 기준이 있어야 가능하다. 인격판단기준은 선악판단기준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 우리가 이제 더 살펴볼 것은 <선(善)과 악(惡)의 판단 기준>이지. 다음 편지는 여기서 시작할게.

 

오늘 얘기에서 네가 기억해 주었으면 하는 것, 네게 바라는 것이 있다. 부디 뛰어난 수영선수가 되고 싶다고 물개를 존경한다거나, 뛰어난 육상선수가 되고 싶다고 치타를 존경한다는 말은 뱉어내지 않기를!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겠다고 말할 때, 어떤 기계나 짐승이 되겠다는 얘기가 아니잖니? 능력만 뛰어난 짐승이나 기계가 되면 곤란하지.

또한 ‘존경(尊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김에 덧붙여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누군가를 닮고 싶어졌을 때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거든. 거기가지만 얘기하고 오늘 이야기를 마칠게.

누군가를 존경하는 마음은 우리로 하여금 ‘겸손’과 ‘예의바름’과 ‘순종’하는 태도를 갖게 만들지. 바로 이점에서 주의해야할 게 있다.

첫째는 겸손이 지나쳐 상대방을 우상화, 신격화하지 말아야 한다. ‘과공비례(過恭非禮)’라는 말도 있는데, 지나치게 떠받드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우상화, 신격화라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예의도 아닌 셈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우상화, 신격화는 스스로 상대방을 닮아가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그렇게 훌륭해서 닮고 싶어서, 그분은 어떻게 그렇게 훌륭하게 되었나 생각해보니 “그분은 처음부터 신이었어!”라고 결론을 내린 셈이 된 거지. 그러니 그분처럼 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지. 할아버지가 매우 어릴 때까지 위인전들은 대체로 우상화, 신격화의 오류에 빠져 있었단다. 할아버지 시대에 기독교인들은 ‘개독교인’이라고 비난을 받는 일이 많았는데 그 이유가 뭔지 아니? 그건 그들이 예수님을 신으로만 섬기고 예수님처럼 사는 일을 포기했기 때문이란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으면서도 예수를 믿는다는 고백만으로 구원받았다고 착각했던 거지.

둘째는 ‘순종’하지 말라는 것이다. 고분고분 그분의 말씀을 따르지 말라는 얘기지. 사실은 그분의 말씀이 어떤 상황, 어떤 맥락에서 하신 말씀인지를 모르면 그분의 말씀을 제대로 따르지 못하게 된단다. 어떤 분도 ‘모든 상황에서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 행동지침’을 얘기해주지 않는단다. 성경의 예를 들면,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는데 또 다른 곳에선 “불화를 일으키러 왔다”고 말하고 있지. “불화를 일으키러 왔으니 서로 싸우라”는 얘기고, 더구나 부모와 자식 간에, 형제자매 사이에,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원수가 될 것이라고 까지 말하면서 가족 간에 싸우라고 말한다. 우리는 ‘순종’이 아니라 ‘비판적인 대화’를 해야 하는 거야. 닮고자 하는 그분께 “진정 그런 말씀을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따져 물어봐야 해. 그렇다고 예의를 잃지는 말고, 예의바르게 그분에게 묻고 그분의 대답을 들어야 한단다. 이미 돌아가신 분일지라도 그분과 대화하듯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는 얘기야.

셋째는 닮는 데서 그치지 말고 그분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거야. 물론 그분이 너무 훌륭하셔서 신과 같은 존재라고 여겨진다면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그분처럼 되는 것만 목표로 삼아야겠지만, 그러나 우리가 ‘신격화, 우상화의 오류’에 빠져있는 게 틀림없다면, 우리는 ‘청출어람(靑出於藍)’이란 말을 기억해야 한다. 인류의 모든 스승은 제자들에게 ‘청출어람(靑出於藍)’을 기대하셨단다. 그게 스승의 마음이요, 부모의 마음이지. 장사꾼에 불과한 가짜 선생들만이 제자가 자기보다 더 훌륭해지는 것을 시기 질투해 왔단다. 인류의 역사는 ‘청출어람(靑出於藍)’에 의해서 발전해 온 것이야.

 

덧붙여 하는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구나. 단(亶)아! 사랑한다. 부디 사람다운 사람을 닮아가려고 노력하기 바란다. 그 과정에서 닮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우상화의 오류에 빠져들지 않기를! 그분과의 비판적인 대화를 즐기기를! 더 나아가 그분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