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레빗, made in USA]
평화봉사단으로 온 원어민 영어강사가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를 하더니
그 영어 철자를 가지고 가장 많은 단어를 생각해 낸 학생에게
선물을 준다며 게임을 시작했네.
나는 7개의 단어를 생각해내서
선물을 받았지.
얼레빗이었어.
made in USA !
파란색 투명한 플라스틱 얼레빗이었네.
머리카락을 빗어 넘기는데 특별한 게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
다만 빗살을 손가락으로 훑어낼 때
띠리리링 소리가 청명했었지.
빗이 아니라 장난감 악기였다고 할까?
집으로 돌아와 특별한 상을 받았다고 자랑을 했네.
가족들이 그 빗을 누구에게 줄라고?
내게 물었네.
왜?
내 머리는 까까머리, 중학생이었으니까.
내 머리카락은 빗을 것이 없었어.
누구에게 줄라고?
나중에 장가가서 신부에게 줄 거다!
가족들이 모두 폭소를 터뜨렸지.
그러나 그 중에 서운한 사람이 있지 않았을까?
그려 자식농사 지어봐야 다 헛거랑께,
울엄니 속으로 그렇게 한숨쉬지 않았을까?
어차피 엄니에게 차례가 밀릴 누이들도
그려유 엄니, 아들농사 지어봐야 다 헛거랑께,
혀를 차지 않았을까?
대답하기 무섭게 후회가 밀려왔네.
그 대답안에 감춰진 나만의 것으로 삼고 싶은 그 무엇
먼저 축하받지 못한 서운함인가
진정 나의 이기심인가
남들이 모르기를 바라는 나의 부끄러움인가
애꿋게 띠리리링
소리를 즐기다가
선물받은 그날 저녁
빗살이 부러졌네.
띠리리링 띠리리링 띠리리똑!
까까머리 중학생에게
얼레빗을 선물해준 평화봉사단원
그 미국 청년이
공연히 미워졌네.
메리 크리스마스
성탄선물로
스피드 경쟁을 시켰던 그 미국 청년이 미워졌네.
그 경쟁에서 이겼다고
상 받았다고 우쭐했던 어린 마음이 부끄러웠네.
그 자랑하고픈 마음 몰라주고 누구 줄건데 묻기부터 했던
누이들에 대한 서운함이 부끄러웠네.
made in USA, 푸른 얼레빗.
'낙서장 > 습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경 낀 이들에 대한 나의 편견 (0) | 2024.12.26 |
---|---|
싸우다가 닮아가다니 ㅠㅠ (0) | 2024.12.25 |
똥 묻은 개 (1) | 2024.12.09 |
그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0) | 2024.11.23 |
지킬 것이 있는 사람들은 악마가 된다 (0) | 2024.06.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