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습작시

얼레빗, made in USA

도덕쌤 2024. 12. 29. 01:23

[얼레빗, made in USA]

평화봉사단으로 온 원어민 영어강사가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를 하더니
그 영어 철자 가지고 가장 많은 단어를 생각해 낸 학생에게
선물을 준다며 게임을 시작했네.

나는 7개의 단어를 생각해내서
선물을 받았지.
얼레빗이었어.
made in USA !

파란색 투명한 플라스틱 얼레빗이었네.
머리카락 빗어 넘기는데 특별한 뭐가 있는 건 아니었어.
다만 빗살을 손가락으로 훑어낼 때
소리가 청명했었지. 띠리리링!
빗이 아니라 장난감 악기였다고 할까?

집으로 돌아와 특별한 상 받았다고 자랑을 했네.
가족들이 내게 물었네.
그 빗, 누구에게 줄라고?

나는야  까까머리,
빗을 머리카락 하나 없는 중학생.

누구에게 줄라고?
나중에 장가가서 신부에게 줄 거다!
가족들이 모두 폭소를 터뜨렸지.

그러나 그 중에 서운한 사람 있지 않았을까?
그려 자식농사 지어봐야 다 헛거랑께,
울엄니 속으로 그렇게 한숨쉬지 않았을까?
어차피 엄니에게 차례 밀릴 누이들도 
그려유 엄니, 아들농사 지어봐야 다 헛거랑께,
혀를 차지 않았을까?

대답하기 무섭게 후회가 밀려왔네.
그 대답안에 감춰진 나만의 것으로 삼고 싶은 그 무엇
먼저 축하받지 못한 서운함인가
진정 나의 이기심인가
남들이 모르기를 바라는 나의 부끄러움인가

애꿋게 띠리리링 
소리를 즐기다
선물받은 그날 저녁 
빗살이 부러졌네.
띠리리링 띠리리링 띠리리똑!

까까머리 중학생에게 
얼레빗을 선물한 
평화봉사단원 미국 청년이 
공연히 미워졌네.

메리 크리스마스 !
성탄선물로 스피드
경쟁 시킨 그 미국 청년이 미워졌네.

경쟁에서 이겼다! 상 받았다 우쭐했던 어린 마음이 부끄러웠네.
자랑하고픈 마음 몰라주고 누구 줄건데 묻기부터 했던
누이들에 대한 서운함이 부끄러웠네.

made in USA, 푸른 얼레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