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고백/어쩌다 쓰는 일기

'마음이 가난한 사람 상' 을 받았습니다. / 새마갈노 소성리편지 07 (2019.12.28)

도덕쌤 2020. 1. 20. 13:31

성탄절에 대구마가교회가 주는 '마가사람상'을 받았습니다.


17일에 수상자로 결정되었다는 연락을 받고는 이 상이 어떤 상인지, 내게 상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떤 칭찬과 기대가 주는 부담감 때문에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어느 정도 극복했다고 생각한 무대공포증이 다시 고개를 쳐들고, 수상소식이 전해지면 쏟아질 축하인사를 어떻게 감당해야할지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시간만 보냈습니다.


22일 주일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성탄예배에 수상식이 있으니 가능하면 참석해달라는, 참석이 어려우면 추후에 출장시상할 수도 있다는 연락이었습니다. "출장시상? 소성리에 와서 수요집회나 토요문화제 도중에 상을 전달하겠다는 얘기잖아?" 수요집회와 겹친 성탄절. "백목사님도 대구교회와 청도 삼평리 두 곳에서 성탄예배를 드리느라 수요집회에 참석할 수 없을 게 뻔한데, 기독교현장기도소라는 간판을 달고 성탄절 수요집회에 아무도 참석하지 않는다는 게 말이 돼?" 고민하면서도, 무대공포증이 더 컸기 때문에 마가교회의 성탄예배에 참석하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24일 다시 참석이 어려운 경우 고백과 결단문을 짧게라도 보내주면 함께 나누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고백과 결단문이라니?" 나중에야 그게 성탄예배 때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새해를 맞이하는 고백과 결단의 생활나눔이란 걸, 작년에도 그런 시간을 가졌었다는 걸 기억해냈지만(작년 성탄예배도 마가교회에서 드렸었지요), 목사님의 문자를 읽는 순간 "아차! 수상소감도 준비해야 하는구나!" 생각이 들어 더욱 마음이 무거워졌답니다.


마가교회 홈페이지 카페에 들어가 '마가사람상'에 관한 자료들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마가교회는 자신을 이렇게 고백하고 있더군요. "우리는 '소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주님께 한 것이라'고 증언하는 교회 공동체이다. 우리교회는 이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의 공동체라는 표현으로 고백하고 있다." 이 고백을 읽으며 짜릿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마가교회가 마가복음의 저자 마가의 이름을 따온 것이 아니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의 공동체였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게되었습니다.


마가교회는 "가난한 사람은 하찮은 것도 귀하게 여겨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아주 작은 것으로도 천국을 경험할 수 있다. 마치 어린아이와 같이." 라고 고백하며 팔복의 처음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주님의 가르침을 소화해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가교회는 "작은 소자를 볼 수 있는 눈과 소자 하나를 위하는 일이 갖는 엄청난 가치와 그 일을 행하는 손길이 얼마나 귀한지, 그리고 이를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이 살아있는 공동체를 지향"하면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마가사람상"을 기획했습니다.


그리고 마가교회 교우들의 생활주변에서 찾아낸 교우들만 추천할 수 있는 분들을 통하여 "오랜 시간이 지나 그 상을 받은 사람들이 누구인지, 왜 그에게 마가가 격려하며 상을 주게 됐는지 '수상 이유서'를 보면 우리들이 주목했던 가장 낮은 곳이 어디였으며 가장 작은 소자는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그리고 그런 소자들을 보살피고 돌보았던 사람들은 누구였는지 알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첫 시상은 이주민선교센터 통역간사 쩐티빅한님과 한의사 신정훈님, 조손가정 윤차순님에게 드렸고, 이후 7회까지 수상자들 중에는 제가 아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윤일규목사님(2회), 백창욱목사님(3회), 박수규님(5회), 유영대님과 김효남님(6회), 박철주님(7회). 


5회부터 8회까지 수상자들은 모두 사드반대 투쟁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는 분들이었고, 백목사님은 당시 송전탑 반대운동 중이었지요. 교우들의 생활주변에서 찾아내 상을 주자고 했으니만큼 마가교회가 그 투쟁현장에 함께하고 있었다는 것을 거꾸로 증명해 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기회에 마가교회와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 받았던 감동을 몇 가지 소개할까 합니다.

향린공동체가 발간한 국악찬양을 사용하는 마가교회는 스스로도 시작과 마지막 찬양을 작사작곡하여 부르고 있습니다. 그 가사가 부를 때마다 감동을 줍니다.


"마음이 가난하면 누구나 가족이라. 마가의 목자 되신 예수님 삶이노라. 이곳이 예수예수 우리의 천국이라." (시작찬양)

"앞선 님들의 헌신과 희생이 흙이 되고 거름이 되어, 산에 들에 골짜기에 생명이 새록새록 피어나네. 하나님 숨결담은 작은 씨앗들 뿌리내린 들풀과 들꽃들이 너와 나의 생명이라. 내 삶이 영글면 모두의 양식되리. 밥이 되고 꿈이 되는 생명의 징검다리." (마무리 찬양)


특히 마무리 찬양의 후반부는 제 마음에 왜 그렇게 꼭 와닿는지 예배를 드릴 때마다 다시 한번 곱씹게 됩니다. "내 삶이 영글면 모두의 양식되리. 밥이 되고 꿈이 되는 생명의 징검다리."


공동체기도문에는 주보에 '주한미군 철수와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기도한다고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올해부터는 '전쟁의 단초가 되는 한반도 사드 철회'를 위한 기도도 주보에 싣고 있습니다.


참회의 기도문을 읽을 때는 전율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 기도가 나의 기도가 되도록 마음을 다잡습니다.


"누군가 굶어 죽어가는 이 순간 배부른 나는 죄인입니다. / 누군가 병들어 죽어가는 이 순간 내일을 대비하는 나는 죄인입니다. / 누군가 외로워 죽어가는 이 순간 중언부언 기도하는 나는 죄인입니다. / 주님! 배부른 나는, 내일을 대비하는 나는, 중언부언 기도하는 나는 / 용서하지 마시고 이 순간 죽어가는 그는 구원하옵소서."


미리 인쇄하여 나눠주고 조근조근 읽어나가는 목사님의 설교는 그 방식 자체가 특별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마음의 가난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에 관한 설교문들을 찾아 읽기도 하고 주석서도 보았습니다. 2014년 10월 예수살기 성서학당에서 들은 박득훈목사님의 강의가 가장 기억에 오래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음을 깨닫고 있는 사람", 바울처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탄식하면서 하느님의 은혜를 갈구하는 사람을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라고 하신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가교회는 "작은 것의 가치를 알고,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소통할 수 있는" 마음,  '소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주님께 한 것이라고 증언하는 것'과 '마음의 가난함'을 일치시키고 있네요. 덕분에 가난한 마음의 새로운 면을 들여다 보게 되었습니다.



[제8회 마가사람상. 마음이 가난한 사람 강형구]  상패를 바라보며 얄궂은 미소를 짓게 됩니다. 상패에 새겨진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태복음 25장 40절 말씀은 제가 예수살기 사무국장 시절 가지고 다니던 명함의 뒷면에 넣은 말씀이었거든요. 명함 아래에 후원계좌번호를 함께 인쇄하여, "이곳으로 후원금 좀 보내주십시오" 속마음을 주님 말씀으로 감추었던 것이지요. 제가 실제 그렇게 살고 있다고 생각해보진 않았습니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다시 생각해봅니다.

한상열목사님을 비롯하여 많은 분들이 "네가 한국교회의 대표선수다"라고 말씀하시지만, 저는 제 스스로 기독교인들을 대표하여 이곳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몸과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피정하려고 찾은 이곳이 나의 상황에 가장 적합한 현장이었을 뿐, 이 상황에 이곳에 지킴이로 있을 수 있는 한 사람이었을 뿐, 사드철회 투쟁에 함께하고 있는 동지들이나 주민들을 '내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로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내가 '작은 자'였겠지요. 그렇다고 스스로 '작은 자'라고 생각한 것도 아닙니다.


어쩌면 역설적인 생각입니다만 제가 하느님의 모습을 발견해 냈던 분들이 있는데, 그것이 제가 그분들을 지극히 작은 자로 생각한 것일까요?


아무튼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너무나 과분한 칭찬들을 받았습니다. 마을분들에게서나 다녀가시는 분들에게서나 과분한 칭찬을 듣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덕분에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만, 과도한 칭찬은 돼지목에 진주라는 것도 기억하시나요?


짧은 시간 다녀간다는 이유로 더 온전히 그 시간을 고스란히 바치려 애쓰는 분들을 보면서 깊은 사랑을 느낍니다. 아낌없이 내어놓고 가시는 그분들에 비해 나는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는지 부끄러워지지요.


그저 마가교회가 마가사람상을 기획하면서 제안서에 적어두었던 한 마디 "이 상은 타인에게 상을 주는 것 보다 우리 스스로 이웃에 대한 감수성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상은, 상을 받는 분은 우리들의 마음을 담는 거울이라 생각합니다." 이 말씀으로 함께 걸어가는 기쁨을 대신합니다.


* 이전까진 상패만 전달하던 시상이었는데 올해부터 부상도 준비했답니다. 상금으로 10만원을 받았습니다. 평화를만드는교회 재정부장으로 일했던 경험으로 교회의 살림살이가 얼마나 빠듯한지 잘 알고 있는데, 목사님 사례도 감당하지 못하는 교회살림살이에 10만원이 얼마나 큰 돈인지, 주님 말씀하신 과부의 두 렙돈처럼 귀하게 받습니다.


* 애써 몰래 다녀오려 한 수상식인데 박수규님이 이전 수상자로서 참여하여 사진을 찍어 소성리 평화마당 단톡방에 소식을 전했습니다. 덕분에 동네방네 소문이 다 나고, 어떻게 축하인사를 받아야할지 참 쑥스럽네요. 


* 마침 29일 올해의 마지막 주일이 마가교회 현장예배 드리는 날입니다. 시간을 낼 수 있는 분들은 오셔서 위에 말씀드린 그 감동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 새마갈노(http://www.esw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