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고백/고백 ; 기도 ; 선언 ; 설교 ; 묵상

누구를 마귀라고 생각하는가? (전쟁귀신 몰아내는 기도, 함께합시다)

도덕쌤 2022. 2. 23. 14:00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을 1주일 앞둔 오늘, 성서일과 복음서 말씀은 마가복음 938절부터 40절까지 말씀이었습니다.

요한이 예수께 “선생님, 어떤 사람이 선생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았는데 그는 우리와 함께 다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일을 못하게 막았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말리지 마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행한 사람이 그 자리에서 나를 욕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우리와 함께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예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사람'을 가로막은 요한에게, 예수님은 '그 사람은 우리편'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내 이름으로 기적을 행한 사람이 그 자리에서 나를 욕하지는 못할 것'이라며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와 함께 다닌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예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낸다'는 것은 또 어떤 일입니까? 예수의 일행이 아니면서도 예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일이 실제 가능한가요? 실제 가능하다면 어떤 전제가 필요할까요?

예수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한 사람이 '그 자리'가 아닌 곳에서 예수를 욕하는 일도 있을 수 있을까요?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것과 우리를 지지하는 것은 분명 같은 의미가 아닙니다. 지지하진 않으나 반대하지도 않겠다는 것도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지지하는 사람이라고 그렇게 확대해석하고 있습니다. 이런 확대해석이 가능한 근거는 '예수의 이름으로'에 있을까요, '기적을 행한(마귀를 쫓아낸)'에 있을까요, 아니면 둘 모두에 있을까요?

나는 오늘날 '예수의 이름으로 마귀에게 빌붙어 마귀같은 짓을 행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 왔기 때문에 아무래도 '예수의 이름'보다는 '마귀를 쫓아내는 기적'을 행한 사실에 더 초점을 맞추고 싶습니다.

누구를 마귀라고 생각하는가? 바로 이 문제에 있어서 예수님의 생각과 일치하는 어떤 이들이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소문난 이름 '예수의 이름'으로 그 마귀를 쫓아낸 것이지요.

문제의 핵심은 "누구를 마귀라고 생각하는가? 바로 이 문제에 있어서 예수님의 생각과 일치하는가?"였습니다.

오늘날 맘몬(돈귀신)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맘몬을 하느님이라고 예수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성공, 출세, 번영 - 곧 부귀와 권세를 쫓는 이들이 "하느님의 은혜, 예수의 축복으로 부귀와 권세를 누리노라" 자랑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지극히 애정을 가지고 귀기울이신 사람들이 바로 히브리 노예였다는 사실을 잊은 채, '지극히 작은 자'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향한 예수의 관심,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던 예수님의 가르침을 잊은 채, "굶주린 이나, 목마른이나, 나그네 된 이나, 헐벗은 이나, 병든 이나, 감옥에 갇힌 이들 -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잊은 채, 재벌과 권력자들에게 빌붙어 예수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이들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민중의 고통을 치유하고자 애쓰는 이들'을 마귀라고 핍박하고 있습니다. 적반하장이지요.

예로부터 종교권력을 틀어쥔 자들은 이렇게 적반하장을 일삼아 왔습니다. 마녀사냥, 종교개혁가들을 향한 핍박 등이 대표적인 사례들이었습니다.

오늘날에는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 '초대교회공동체가 실현했던 삶의 방식을 꿈꾸는 이들'을 향한 매카시즘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누가, 어떤 이들이 진정 마귀일까요?

당신의 대답은 예수님의 생각과 일치합니까?

잊지 맙시다. 예수님은 당신의 수제자 베드로에게조차 "사탄아 물러가라"고 소리친 적이 있습니다. 베드로의 어떤 모습이 사탄의 모습이었을까요? 십자가 수난을 예고하는 자리에서마저 출세와 성공만 고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던 제자들을 향한 일갈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마귀는 누구일까요?

 

주한미군-미군-미국의 군산복합체,  세계를 지배하고자 하는 미국을 생각하면 바로 이런 질문들과 맞닥뜨립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이 가장 대표적인 나라였습니다. 카이로 회담에서 조선의 즉각 독립을 주장한 것은 중국뿐이었습니다. 얄타회담에서 미국은 50년 신탁통치를 주장했고, 중국 대신 참여한 소련은 즉각 독립을 주장했습니다. 해방 후에 열린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도 소련의 즉시 독립 주장과 미국의 신탁통치 30년 안이 부딪쳤습니다. 결국 신탁통치 5년으로 합의하였지요.

우리에게 천사의 나라는 어느 나라고 악마의 나라는 누구였을까요? 미국과 소련 둘 다 일본을 패배시켜 한반도에서 일본이라는 악령을 쫓아낸 천사(퇴마사)의 역할을 했지만, 신탁통치 결사반대를 외치던 우리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누가 악마의 나라였습니까?

그러나 누가 조작한 것인지 모스크바 삼상회의의 논의 과정에서 미국과 소련의 입장은 정반대로 알려졌고 미국은 천사의 가면을 얻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역사는 신탁통치 5년이 아니라 3년만의 분단과 70년이 넘는 기나긴 시간 동안 남한은 미국의 신탁통치나 다름없는 지배를 받아 왔습니다. 지금도 세계 6위의 군사력을 가지고도 독립하지 못한 군대가 스스로 영원히 군사적으로 예속되는 길을 걷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켜 전쟁으로 먹고 살아온 나라 미국. 베트남에서, 중동에서, 아프간에서, 지금은 우크라이나까지, 세계 곳곳에서 자기 이익을 지켜줄 친미정권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그들이 저질러 온 짓들을 보면, 그들이야 말로 전쟁 귀신 분단 귀신이라 할 만하지 않습니까?

해방 이후 한국전쟁, 6.25의 전개과정이나 그동안 보여준 미군의 행태를 보더라도 누가 진정한 마귀였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전쟁기간 우리의 어머니 할머니들이 가장 무서워 한 이들이 누구였습니까? 지금도 한반도를 전쟁의 위기로 몰아가며 세균 전쟁, 핵전쟁을 준비하고, 실험하고 실행능력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 자들이 누굽니까? 누가 작전계획에 선제타격을 분명히 담아두고 연습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미국은 즉시 독립을 주장했다'는 조작된 거짓 뉴스를 통해 천사의 탈을 쓰는 데 성공했던 미국은 이후 수많은 민족지도자들을 암살하고 수백만의 민중을 학살하면서, 전쟁을 일으켜 압도적인 무력을 과시하면서, 우리의 농업기반을 파괴하는 경제원조를 통해 여전히 수호천사로서의 이미지를 세뇌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한미동맹을 강화하자는 주장은 '하느님을 굳세게 붙들라'는 설교와 같은 말이 되었습니다. 맘몬을 하느님이라고 예수라고 부르게 만든 이들이 바로 그렇게 설교하고 있었습니다.

 

마귀를 쫓아냅시다. 전쟁귀신 분단 귀신 주한미군을 몰아냅시다. 한반도를 전쟁터로 만들려 하는, 자신들의 전쟁에 우리 피를 대신 흘리게 만들려는 악마의 무리들을 몰아냅시다.

사드기지 정문 앞에서 외치는 기도입니다.

# 사람죽여 돈 버는 악마들아! 전쟁으로 먹고 사는 악마들아!
   지옥으로 돌아가라! 네 고향으로 돌아가라!
   Yankee Go Home! Yankee Go to Hell!!!

지난 월요일 성서 일과 복음서는 [악령에게 사로잡힌 아이] (마가 9:14-29) 이야기였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악령이 들려 발작하는 아이를 두고 제자들과 율법학자들이 다투고 있었다고 시작하는 얘기입니다.

예수님은 ", 이 세대가 왜 이다지도 믿음이 없을까!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살며 이 성화를 받아야 한단 말이냐?" 한탄을 하며 "그 아이를 나에게 데려 오너라" 말씀하십니다.

믿음의 부족에 대한 예수님의 지적은 아이의 부모에게도 이어집니다. "'할 수만 있다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사람에게는 안 되는 일이 없다"

아이의 아버지는 "저는 믿습니다. 그러나 제 믿음이 부족하다면 도와주십시오" 큰소리로 청하지요.

예수님은 성공적으로 악령을 쫓아내고 죽은 것같이 된 아이를 잡아 일으켜 세우시지요. 악령을 꾸짖고 호령하여 쫓아내십니다.

제자들이 묻습니다. "왜 저희는 악령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제자들과 율법학자들의 다툼은 바로 이 때문에 시작된 것이었을 겁니다. 무능한 제자들이 사이비로 몰렸겠지요.

예수님의 대답은 "기도하지 않고서는 그런 것을 쫓아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소성리에 들어와 사드저지기독교현장기도소를 세우고 기도해 온지 5년이 지나고 있습니다.

불법적으로 진행되는 공사를 저지하겠다고 대규모 경찰들과 맞서 싸운 횟수가 오늘까지 이제 93번이라고 하고 육로통행을 하겠다고 저들이 병참선 확보 작전을 시작한 뒤로만 따져도 79회째입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길 위에서 기도회를 열고 기도하며 맞섰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악마들아 물러가라고 천 번은 넘게 기도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사드를 몰아내긴커녕 사드를 추가 배치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대선후보가 있습니다.

소성리 사드는 점점 더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통행로를 확보하겠다며 경찰이라는 국가폭력을 동원하는 짓을 이제 주 2회가 부족해서 3회로 늘리겠답니다.

오늘이 바로 그 첫날이지요.

오늘 그렇게 국가폭력을 휘둘러 경찰의 비호 아래 들어가는 차들이 어떤 차들인지 살펴보기 바랍니다. 몇 대의 차량이 드나드는지 살펴보기 바랍니다.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321187680055905&id=100001101635931)

띄엄띄엄 약 5분에서 10분 간격으로 720분부터 755분 정도까지 여섯 대의 공사 노동자들 차량이 들어갔습니다. 경찰기동대가 동원되지 않는 날에는 7시가 되기 전에 들어가던 차량들이었고, 주민들과 마찰없이 들어가던 차량들이었습니다.

결국 오늘의 경찰들의 움직임은 공사차량의 원활한 통행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주민들과 연대자들을 향한 선전포고였습니다.

도로 위의 종교집회도 원천봉쇄하겠다는 선전포고였고, 기지를 드나들 차가 있든 없든 앞으로 주 3회는 경찰들을 동원하여 주민들과 연대자들의 이동을 제한하겠다는 협박이었습니다.

재의 수요일을 1주일 앞두고, 저들은 스스로의 죄를 참회하려 하기보다 소성리 주민들과 연대자들의 일상생활 위에 재를 뿌리다 못해 퍼붓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더욱 극악해지는 저들의 횡포를 바라보며, 대선 이후 더욱 악랄해질 국가폭력을 예상하면서, 사이비로 몰리며 율법학자들과 다투던 무능한 제자의 심정으로 예수님께 묻습니다.
"기도하지 않고서는 그런 것을 쫓아낼 수 없다"고 말씀하신 예수님! 우리의 기도가 부족합니까? 우리의 믿음이 부족합니까? 우리의 기도가 잘못되었습니까?

이렇게 절망스러운 마음을 토로하며 하늘을 향해 외치던 중에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재의 수요일(자신의 죄를 참회하는 상징으로 머리에 재를 뿌리는 의식을 행하는 날)을 앞두고, 나의 죄를, 슬그머니 내 머릿속으로 기어들어온 악한 생각들을 돌이켜 보았습니다.

사드기지가 하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라는 걸 드러내 달라면서, 장마철에는 사드기지에 벼락이 떨어지기를 기도했습니다. 산사태가 일어나 사드기지로 통하는 길목을 막아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태풍으로 사드기지가 날아가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번 겨울엔 왜 눈도 내리지 않느냐고 투덜대었습니다. 폭설로 길을 막아주지 않는다고 투덜대었습니다.

하느님을 대신해서 다이너마이트로, 대전차지뢰로 그런 일들을 만들어 내는 상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시너를 부어 산불을 내거나, 들어오는 사드장비를 화장하는 상상도 했습니다. 이번 겨울엔 스키장 제설차를 끌어다 기지로 올라가는 길을 스키장으로 만들어내는 상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들의 폭력에 맞서 폭력으로 저들을 굴복시키려 했습니다.

무기로 평화를 이루어낼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너희들은 재앙을 부르는 악마들이라고 탄핵하면서, 더 강한 힘으로, 재앙으로 저들을 길들이려 했습니다.

물론 하느님도 가끔은 사용하셨던 방법이기는 합니다. 히브리 노예들을 해방시키는 과정에서 이집트에 퍼부어진 열 가지 재앙이 대표적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방된 히브리인들이 하느님을 배반하고 결국 제국의 포로로 끌려가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하느님의 뜻ㅡ평등과 평화의 공동체'를 꾸려가지 못하고 부귀와 권세를 꿈꾸며 맘몬을 섬긴 때문 아니었습니까? 스스로 평등과 평화를 통해 내실을 다지는 대신에 주변의 이민족들처럼 더 강한 힘ㅡ무력에 의지하여 부국강병을 추구한 결과 아니겠습니까?
전쟁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낸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오늘 더욱 극악해진 저들의 모습은 우리의 기도가 부족했음을 드러내는 증거가 아니라고 깨닫습니다. 악령이 아이에게서 떠나기 전 "아이가 죽었구나" 사람들이 생각할 정도로 초주검의 상태로 만들어간 마지막 악령의 발악, 더욱 악랄해질 저 국가폭력은 바로 그와 같은 발악이라고, 월요일 성서일과 말씀이 속삭여 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천사의 탈을 쓰고 있는 마귀를 드러내어, 그 정체를 분명하게 알게 하면 됩니다. 그 마귀를 대적하여 꾸짖고 호령하여 "나가라! 다시는 들어오지 마라!" 외치면 됩니다. 기도를 통하여, 우리의 마음을 하느님의 마음으로 채우고 하느님의 능력을 덧입어서, 맘몬이 사용하는 도구가 아니라 하느님처럼 그저 말씀으로, 마귀를 쫓아내면 됩니다.

한반도를 자신들의 대리전쟁터로 만들고 대한민국 군인들을 자신들의 총알받이로 앞장세우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인 사드, 대한민국을 완전히 군사적으로 예속시키고 자신들의 전쟁비용을 충당할 금고로 이용하는데 가장 좋은 핑계가 될 사드, 사드를 들여온 자들의 정체가 바로 마귀에 사로잡힌 자들입니다. 전쟁귀신 분단귀신 미국에 사로잡힌 자들입니다.

오늘도 그래서 예수의 이름으로 외칩니다.

# 사람죽여 돈버는 악마들아! 전쟁으로 먹고 사는 악마들아!
   지옥으로 돌아가라! 네 고향으로 돌아가라!

   Yankee Go Home! Yankee Go to Hell !!!

# 출세와 성공에 눈이 멀어 열심으로 부역하는 경찰들아!

   회개하라! 역사의 죄인 되지말고 불의한 명령 거부하라!
   태업으로 파업으로, 사드기지 고착화하는 병참선 확보 작전 거부하라!!!

# 사드기지 공사 참여는 신탁통치 강화하는 주한미군에 대한 부역이다
   부역행위 중단하고 다른 일자리 찾아가라! 다시는 오지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