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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살과 피, 성찬의 이해

도덕쌤 2016. 4. 21. 22:56

* 2016.04.22. 새벽기도

찬송 : 451장 예수 영광 버리사

 

기도 :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고자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우리를 빛과 소금이라고 말씀하신 주님, 우리가 과연 빛과 소금으로 살아왔는지 돌아봅니다. 교회가 맛을 잃어버린 소금, 말 아래 놓아둔 등불처럼 여겨지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지는 오늘날, 다시 한 번 주님의 살과 언약의 피를 마시며 주님처럼 살기를 다짐해봅니다. 무겁고 무섭게 느껴지는 십자가를 가볍게 기꺼이 짊어질 수 있도록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말씀 : <요한복음 6장 44-51절>
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45  선지자의 글에 그들이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사 54:13)
46  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47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50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묵상 :

   오늘 읽은 말씀은 성만찬을 베푸시기 훨씬 전에 가버나움의 한 회당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잡혀가시던 날 저녁에 성만찬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찬식을 통하여 그 가르침을 반복해서 마음에 새깁니다.
   그런데 오늘날 성찬식에 참여하는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제대로 그 뜻을 마음에 새기고 실천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기도했던 대로 “교회가 맛을 잃어버린 소금, 말 아래 놓아둔 등불처럼 여겨지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진” 까닭은, 오늘 말씀에 이어지는 52절 말씀처럼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고 묻는 유태인과 같은 기독교인들이 많아진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성찬에 대해 공부할 때에 화체설이니 상징설이니 하는 논란을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성찬식을 할 때 꼭 포도주를 써야 하는 것인가, 포도쥬스는 안 되나, 막걸리로 하면 안 되나” 등등의 얘기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찬의 의미가 무엇인지 진정한 의미와는 거리가 먼 얘기들이지요. 저는 성만찬의 의식을 “예수의 혼으로 살아가겠다”는 다짐으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이를 더 잘 살펴보기 위해 예수살기에서 만난 김기원 목사님의 매일묵상글을 한 편 소개하고자 합니다. 네이버의 블로그 [안셀모의 글마음 나누기]에 “천국백성이란...” 이란 제목으로 실려 있는 글입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산다." (56절)
  
성찬식을 암시하는 이 표현은 결국 우리의 실존적인 결단을 요구하시는 의도가 담겨있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 신앙공동체에 속한 이들에게는 성찬식의 참된 의미를 살펴보라는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명제화시킨다면, 당신을 우리 삶의 진정한 양식으로 삼을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이 참된 것이 된다는 가르침입니다. 당신이 양식(糧食)이라는 말씀은 당신이 보여주신 삶의 양식(樣式)대로 우리가 살 때 참된 생을 영위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우리가 당신 삶의 양식(樣式)을 따를 수 있노라 말씀하십니다.
유대인들에게 살이라는 단어는 인간관계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내 형제’를 ‘내 살’이라 부릅니다. 우리말의 ‘살붙이’ ‘피붙이’와 비슷합니다. 나와 관계 안에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오늘 복음이 예수님의 살을 먹는다고 말하는 것은 그분이 사셨던 인간관계를 우리도 산다는 뜻입니다. 또 유대인들에게 피는 생명입니다(레위 17:11). 따라서 예수님의 피를 마신다는 말은 그분의 생명, 곧 그분의 영, 그분의 혼, 그분의 정신이 우리 안에 살아있게 한다는 뜻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살을 우리가 먹고 예수님의 피를 우리가 마신다는 표현은 그분이 사람들과 가졌던 관계를 우리도 살고 그분의 영혼을 우리도 산다는 뜻입니다.

그분은 유대교 기득권층이 죄인이라며 소외시킨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그들이 실의에 빠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병자를 만나면 고쳐 주고, 죄인으로 낙인찍힌 사람을 만나면 하느님이 용서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사람을 결코 버리지 않으신다는 그분의 확신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르 2:17)는 말씀, 곧 "고통 앞에서 중립은 없다."는 명제를 낳았고, 제자들은 그 말씀을 마음에 새겼습니다. 예수께서 사람들과 가졌던 인간관계는 하느님이 사람들에게 어떤 축복이며 어떤 기쁨인지를 깨닫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먹고 마시며 나와 세계를 짓누르고 있는 거짓과 압제의 사슬을 끊습니다. 절망과 슬픔의 그늘에서 벗어납니다. 하느님 계시의 결정판이신 예수가 하시는 일이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주님은 당신의 생명을 걸고 나를 사랑하십니다. 내 모든 허물에도 불구하고 나를 살리려고 하십니다. 우리는 예수의 살을 먹고 예수의 피를 마실 때마다, 예수를 기억할 때마다, 이 사랑의 열정을 되살릴 수 있습니다.

 

   김기원 목사님은 이렇게 예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의미를 설명하신 후에, 좀 더 구체적인 이해를 위해, 바로 전날에 거리에서 했던 설교를 덧붙여주었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다 읽어드릴 수는 없지만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일년 가까이 아슬아슬한 고공 광고탑 위에서 농성 중인 기아차 노동자들을 나사로로, 또한 그들을 거리로 내 몬 현대기아차의 정몽구 회장을 부자로 대비시켜서, 누가복음 16장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해, 주님의 음성을 전하는 얘기였습니다. 목사님은 주님을 대신해서 이렇게 외치셨지요. “부자야, 몽구야! 너는 어찌 모르느냐. 너는 이미 스스로를 심판하여 지옥불 속을 헤매고 있구나. 네가 저들을 외면할 때마다 너는 네 무덤을 더 깊이 파고 있는 줄 모르느냐! 그리고 나사로야, 오늘의 나사로들아! 네가 이미 이겼다. 너는 내 나라 안에 있다. 아무 걱정하지 마라. 저들은 이미 망했다. 진실의 거울을 보며 힘을 내거라.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시간이 없습니다만 성찬의 참된 의미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듯해서 국악찬송 하나를 더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지난 4월 11일 세월호대책기독교원탁회의가 주관한 ‘304인을 추모하는 기독인 기도회’에서 성찬식을 할 때 함께 부른 찬양입니다.

 

 

   호스피스 봉사활동만 하고 있던 제가 지난해부터 예수살기라는 단체의 사무국장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세월호 사건의 충격으로 이제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기로 결단한 후에, 성경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예수살기라는 단체를 만났습니다. 저는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예수살기를 실천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저는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하신 (마 7:22-23)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주님은 수시로 주님이 하신 일을 본받고 이처럼 행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살아가신 삶의 방식을, 그 길을 따라 걸으라는 말씀이었지요.
   성찬은 이러한 주님의 명령을 생생하게 각인시키는 마지막 의식이었다고 믿습니다. 성찬은 “이제 너희가 떡이 되고 잔이 되어 너희 몸을 나누어주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명령을 내 몸안에 받아들이는 의식인 것입니다.
   잠시 침묵 속에서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주기도문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