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에서/어떤 분의 깨달음을 고마워하며

[스크랩] 교회의 거룩함과 타락함/김홍한 (이야기신학)

도덕쌤 2017. 7. 8. 23:05
교회의 거룩함과 타락함

955년 교황 요한네스12세가 18세의 나이로 즉위하였다. 그가 어린 나이에 교황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아버지가 로마의 가장 유력한 귀족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권력을 탐했다. 그는 로마의 실질적인 지배자가 되기 위하여 독일국왕 오토 1세를 로마로 초빙하여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세우고(962년) 그와 정치적 동반자가 되고자 했다. 그러나 그의 방탕함과 권력남용은 오토1세 마저도 용납할 수가 없었다. 오토는 그를 파면하였다.

그에 대한 기록들은 하나같이 부정적이다. 특히 성적 타락이 지나쳤다. 그의 궁전은 매음굴이 되었다고 했다. 게다가 그는 성직자의 인자함은 찾을 수가 없는 호전적인 인물이었으며 사냥과 노름과 술에 절어 살았다. 그의 말은 전혀 믿을 수가 없었는데 심심찮게 위증을 했다.
그가 교황의 자리에 있었던 기간은 9년이다. 그 기간 동안 지극히 타락한 생활을 했다. 그의 죽음도 극적이다. 어떤 유부녀와 난잡한 행위를 벌이던 와중에 뇌졸중으로 사망했다고도 하고 분노한 남편의 손에 맞아 죽었다고도 한다. 교황이 이렇게 타락했으니 교회의 권위가 설 리가 없다. 세속권력자들은 그를 경멸했다.

정 반대의 경우도 있다. 1073년 그리고리우스 7세가 교황으로 등극했다. 그의 선임 교황인 알렉산더 2세의 장례가 진행되는 동안 군중들이 거의 폭동적으로 그레고리우스 7세를 성 베드로 성당으로 모셔다가 교황으로 삼은 것이다. 그만큼 그는 대중의 존경을 받았다. 그는 교회가 “세상의 올바른 질서”를 창출할 책임이 있다고 여겼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직자들이 거룩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일, 그래서 그는 교회를 개혁했다. 성직매매금지, 성직자 독신, 성직자들의 절대적인 복종과 순결을 요구했다. 그는 평신도들에게 말하기를 “간음을 저지르는 사제들의 미사집전을 거부하고 그들을 교회에서 추방하라”고 했다. 그의 교회 쇄신운동으로 유럽곳곳에서 자숙운동이 일어났다. 기독교의 이미지도 새로워졌다. 성직희망자도 급증했다.

교회타락의 큰 원인중 하나가 세속권력이 성직자를 임명하는 것이었다. 황제가 자신의 시종을 교황으로 삼기도 하고 전혀 자격이 없는 이를 교황에 임명하는 일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그래서 그는 성직임명권을 세속권력으로부터 빼앗아왔다. 그로 인한 사건이 1077년에 있었던 카놋사의 굴욕 사건이다. 황제 하인리히4세가 그에 반발하여 교황의 폐위를 선언했으나 교황은 도리어 하인리히 4세를 파문했다. 그런데 제후들이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 편을 들어 황제의 폐위하고자 하자 황제는 교황에게 무릎을 꿇은 것이다.

어찌하여 제후들은 교황 편을 들었을까?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따졌을 수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의 경건함에 머리를 숙인 것이다. 그의 경건함이 막강한 권위가 되어 황제를 무릎 꿇게 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교회가 새로워지는 길

요한네스 12세와 같이 지극히 타락한 이가 교회의 수장으로 있다고 해서 교회가 모두 타락했던 것은 아니다. 반면 그레고리우스 7세와 같이 지극히 경건하고 개혁적인 이가 교회의 수장으로 있다고 해서 교회가 모두 거룩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교회의 수장이 어떠한 사람이냐에 따라서 교회가 멸시를 받기도 하고 존경을 받기도 한다.
교회의 권위가 크게 올라가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레고리우스 7세에 의해서 막강해진 교회권력은 십자군 전쟁을 일으키는 힘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교회가 거룩하고 성직자가 경건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나 그로 인하여 부와 권력이 모이는 것은 크게 경계해야 할 일이다.

종교가 거룩해지면 사람이 모인다. 재물도 모인다. 사람이 모이고 재물이 쌓이면 권력이 된다. 그것이 종교의 타락이다. 종교가 타락하면 사람들은 방황한다.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권력자들까지도 경건한 종교인들에게는 스스로 머리 숙이고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면 사람들은 자신들이 헌금하여 풍요로워 졌다하더라도 종교의 풍요로움을 아름답게 보지 않는다. 실제로 종교의 부와 권력은 타락이다. 일부러 타락하려 해서가 아니라 기왕에 얻은 부와 권력을 잃지 않고 유지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종교가 무엇인가를 많이 소유하게 될 때 종교는 종교적 가치관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세속적 가치관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종교적 진리를 유지하려는 것이 아니라 부와 권력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교회 재산을 지키는 것이 교회를 지키는 것으로 착각한다. 종교지도자들은 신도수가 줄고 종교의 재산이 줄고 권력과 멀어짐을 종교의 쇠퇴로 간주한다.

사람이 있고 돈이 있고 힘이 있어야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한다. 세상은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종교는 반대다. 종교가 아무것도 없을 때, 순결하고 청빈하고 열정만 있을 때 종교는 종교답다. 종교가 무엇인가 많이 갖게 되었을 때, 종교는 본질에서 벗어난다. 세상으로부터는 물론이고 하나님으로부터도 버림받는다. 다 뺏기던지 다 버리던지 해서 벌거벗었을 때 다시금 종교는 종교다워진다.

교회의 부가 곧 타락이라는 것은 교회사 속에 그대로 드러난다. 베네딕트 수도회, 클뤼니 수도원, 시토수도원, 프란체스코회, 예수회, 도미니쿠스회 등의 수도회들은 참으로 경건했다. 그들은 노동, 순종, 순결, 학문적 열정 등으로 무장했다. 그들은 참으로 존경할만한 사람들이었다. 민중들은 물론 권력자들도 머리 숙이고 존경했다.
520년 베네딕트 수도원이 설립되었다. 수도사들은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노동했고 선교했고 공부했다. 서로마가 멸망한 후 베네딕트 수도원은 새롭게 서로마의 주인이 된 게르만족들에게 신앙과 생활의 모범이 되었고 문명의 전달자들 이었다. 민중들은 물론 권력자들도 그들을 존경했다. 존경받을 만한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가 베네딕트 수도원 출신이었다. 사람들은 아낌없이 수도원에 재산을 헌납했다. 그 결과 수도원은 부요해 졌다. 그러면서 수도원은 처음의 정신이 퇴색하고 수도원은 부패하게 되었다.

그러자 910년 클뤼니 수도원이 설립되었다. 교회의 부패가 만연된 가운데 그들은 극도로 경건한 삶을 살았다. 교회의 부패를 원천적으로 막고자 모든 성직자의 독신을 표방했다. 클뤼니 수도원은 급속히 확산되었고 많은 이들이 클뤼니 수도원을 지원했다. 세력이 커진 클뤼니 수도원도 교황을 배출했다. 역시 존경받을 만한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가 클뤼니 수도원 출신이었다. 클뤼니 수도원의 위세가 극에 달했을 때 교황이 역시 클뤼니 수도원 출신 우르반 2세였다. 그는 막강해진 교회의 힘으로 성지 예루살렘을 이교도들의 손에서 구원하자고 십자군전쟁을 시작했다. 이렇게 막강해진 교회이기에 역시 타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막강해져서 타락한 것이 아니라 막강해짐이 곧 타락이다. 수도사와 수녀들은 노동하지 않고 가난한 이웃을 돌보지 않았으며 수도원에는 각종 보화들이 넘쳐났다.

그러자 1098년 새롭게 시토 수도원이 설립되었다. 21명의 수도사들이 청빈과 노동을 강조한 베네딕트의 규칙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프랑스의 시토부근에 새로운 공동체를 설립했다. 이어서 1210년에는 프란체스코 교단, 1216년에는 도미니쿠스 교단, 1540년에는 예수회가 설립되어 활동하였다. 이 수도원의 수사들도 참으로 경건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권력이 주어졌다. 이단을 박멸하고 마녀를 색출하고 고문하고 사형에 처하는 권한이다. 그들이 권한을 남용한 것인지 정말 그렇게 믿어서 그렇게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은 열성적으로 이단박멸, 마녀색출에 몰두했다. 권력이 주어진다는 것은 곧 타락이다.

교회 타락의 본질은 교회의 부와 권력이다. 윤리적 타락은 부와 권력이 주어지면 발생하는 부산물이다. 부와 권력을 지닌 교회와 성직자는 아무리 경건하려해도 경건할 수 없고 아무리 근검절약하고 겸손해도 사람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돈방석 위에서 청빈한척 하는 위선으로 본다.

그러니 한국교회가 새로워지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가난해 지는 것이다. 그래야 산다.

- 이야기 신학 164호(2016. 11. 1) 중에서 -
출처 : 평화를 만드는 교회
글쓴이 : DoDuck강형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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