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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자본가들의 오류 / 김경호 목사 페북에서(자유인들의 정치경제 4)

도덕쌤 2017. 7. 8. 23:28
아래의 글은 김경호목사님의 페북에서 옮겨온 글입니다.
한국자본가들의 오류에 대한 지적이 눈에 띄어 옮겨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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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들의 정치경제 4
전 세계에서 신자유주의 체제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 일본의 아베, 필리핀의 두테르트, 영국의 브랙시트, 프랑스의 새로운 선택 마크롱 등 모두 예사롭지 않은 정치개벽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것의 공통점은 기존의 어떤 정치 세력도 신뢰하지 않는 선택이다.
전 세계적인 이런 이상 정치기류는 경제적 양극화에 대한 반란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A. 다알(Roert A. Dahl)은 『경제민주주의』A preface to Economic Democracy, 1986)에서 “사회적, 경제적 심각한 불평등은 시민들을 적대적인 양극단의 진영으로 분열시키고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약화시키며 빈민층의 지도자들이 권력을 장악하게 하든 그들이 축출되게 하든 독재에 대한 지지를 발생시킨다.”고 한다.(송태경 “로버트 A. 다알의 경제민주주의에 대한 평가...”, 프레시안 기고문 중에서 인용)
우리나라의 촛불혁명도 마찬가지이나 다행인 것은 다른 나라들의 선택이 민주주의에 반하는 극우, 또는 우파적인 선택이라면 우리나라는 더 이상 극우일 수 없는 박근혜 정권의 몰락으로 새로운 선택의 기회가 왔다. 촛불혁명으로 인한 정권교체는 단지 A라는 지배그룹이 B라는 지배그룹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다. 촛불혁명에 의해서 변화의 토대가 마련되고 선거가 이루어졌다. 더 이상 정치인들이 자기들끼리의 리그로 진행될 수 없는 토대에서 판갈이가 되었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토대를 확실하게 인식해야 한다. 민생을 살리는 근본적 개혁이 아니고선 머지 않아 다시 민의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 지금 출발은 좋은 편이나 끝까지 민생을 파탄 낸 적폐구조를 확실하게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한국자본가들의 오류를 크게 두 가지만 살펴보자

첫째, 이들은 판매부진의 늪에서 벗어나와야 한다고 떠들면서도 끊임없이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유효수요를 감축시키는 정책을 써왔다. 거대한 유효수요를 형성하는 노동계급이 반실업 또는 완전실업상태이고 노동자들의 임금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판매가 늘어날 수 있겠나? 그들은 한쪽으로는 유효수요를 줄이는 정책을 폭력으로 강제하면서 다른 쪽으로는 경기를 성장시키고 판매를 활성화해야한다 외친다. 수출로 돌파구를 찾기도 힘들다. 세계 모든 나라들이 다 유사한 경쟁상황에 있기 때문이다.
역대 정부들이 자본가들의 욕심에 부합한 정책을 취해왔다. 그러면서도 기업에게 투자를 늘리고 일자리를 늘리라고 말하지만 판매 부족으로 경기가 안돌아가는 데 어떻게 기업이 투자를 늘리며 일자리를 늘리겠는가? 정부가 기업에 요구한 것은 이율배반적이며 빛 좋은 개살구이다. 국민의 눈을 의식해 립서비스하는 것에 불과하다. 기업은 정부와 합작해서 늘어난 이익을 사내유보금으로만 쌓아왔지 전혀 나라 경제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풀지 않았다 기업에 돈이 들어가면 그대로 적체되어 경기부진을 스스로 유발해왔다. 그들은 난관을 넘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판매부진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 기업과 국가가 국민의 주머니를 쥐어짜낼 궁리만 하는데 도대체 어디서 구매력이 생기겠나?
문재인 정부가 일자리를 늘리는 정책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추진하는 것은 현재의 문제를 돌파해보려는 정책으로 보인다. 야당이 일자리는 기업에 맡겨야지 세금으로 일자리를 늘린다고 비난하지만 이제까지 자기들이 한 모순을 보지 못하는 비판이다. 그렇게 해서 기업이 일자리를 늘렸나? 공무원을 늘리는 것은 걱정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매년 들어가는 비용이 자칫하면 재정부담이 될 수 있고 공무원 증가로 정부 조직이 거대해지고 관료사회로 나아가는 최악의 우려도 가능하다. 그러나 고위직 공무원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소방관 경찰관 등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돌보는 서비스직 공무원을 중심으로 늘리겠다는 것이니 우리가 안전사회 복지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필요 단계로 보인다. 이를 경제부양과 더불어 하겠다는 것이니 지금으로서는 모순 타계를 위해 당장 취해봄직한 정책이리라.

두 번째 모순은 노동자들이 최고의 노동을 낼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하는데 지금의 노동은 너무나 착취적이고 폭력적이다. 자기 자신을 망가뜨리도록 노동을 강요하는 것은 앞으로 국가 경제에 큰 활력을 상실하는 것이다.
건물을 임대했는데 사용자가 건물을 마구잡이로 훼손한다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노동자 역시 자기가 소유한 노동력이라는 상품을 자본가에게 임대한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이 노동력의 주체를 훼손하고 망가지게 하거나 가치를 하락시키는 것을 용납해서는 안된다. 우리의 노동은 생명의 재생산을 더욱 풍요롭게 해나갈 수 있는 조건이어야 한다. 우리의 상품을 마구잡이로 훼손하는 해고와 비정규직화 등에 우리는 저항하고 우리의 생명을 가장 풍성하게 재생산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노동자라는 말 조차 빼앗겨 버렸다. 노동이라는 것은 숭고하고 거룩한 이상이 담겨져 있는 말이다. 그런데 이를 근로자라고 부른다. 이것은 노동자를 단지 일하는 기계로 삼겠다는 이야기이다. 게다가 이와 상대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을 사용자라고 부른다. 사람이 물건인가? 사용하는 대상인가? 소모품인가? 이런 용어는 노동자를 단지 일하는 도구로, 계약직 노예로 여기겠다는 속셈이다. 그렇잖아도 임금을 받고 노동하는 사람은 그 계약조건 아래서 자신의 노동력을 타인에게 의탁하게 마련인데 계약 조건과 무관하게 수시로 전화하고 휴일에도 불러내는 것은 노예화하자는 것이다.
최저임금인 시급을 일만원으로 상향하는 것도 시급한 문제이다. 그러나 이것을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의 책임으로만 시행하고자 하면 상당한 부담이 될 터이니 영세한 고용의 주체들도 함께 지원하는 방안도 더불어 실시되어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지난주 들꽃향린교회의 6.25 남북화해주일 설교이다. 우리가 당면한 경제문제와 남과의 북의 각각의 체제가 가진 경제의 모순을 살펴보고 대안적인 정치경제의 큰 그림을 그려보려고 한다. 먼저 페북에 실은 자유에 대한 세편의 글에 이어지는 시리즈로 자유인들의 정치경제 4로 시작한다.
# 송태경,『자유인들의 연합체를 위한 선언』1993, 도서출판 자유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