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까망이 】
아직 태어나서 두 계절도 겪지 못한 고양이가
길고양이가
봉정할배 발걸음을 쫓아다니며
몸을 부비고 있었다
옛끼놈!
어따 대고 와서 몸을 부비노!
연신 휘둘러 쫓아내는 할배의 지팡이는
호통소리와 달리
살기를 품진 않았다
오히려 측은지심 가득 담긴 삿대질
그러나 너를 품을 순 없어
너에게 길들여지진 않을 거야
팔십 평생 깨달은 지혜가 보여주는
단호함 뿐이었지
까만 털, 흰 구두
온전히 나를 바라보는 눈
할배에게 쫓겨나 내 발치로 다가온 녀석에게
'까망이'란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름을 지어주는 순간부터
서로 길들이기, 길들기가 시작되는 것
길고양이 세계에도 서열이 있어
자기 위해 진설된 밥상에서도 가장 나중으로 밀려난 녀석
서열에 쫓겨, 가냘픈 나뭇가지 하늘 위로 쫓겨
네가 택한 생존전략이
집냥이가 되는 것이었구나
따로 먹이를 줄 때부터
강아지처럼 졸졸 따라다니며
몸을 부벼댔다
따로 준 밥그릇을 노리는 서열 높은 놈들로부터
지켜달라고, 항상 같이 있어달라고
계절이 바뀌고
철없는 에미가 되어버린 까망이
마을에 늘어가는 길냥이가 무서워
중성화 시술을 어떻게 해주냐 고민하는데
이 뻔뻔한 놈은
육아 책임마저 맡아달라고
새끼들 물어 컨테이너 밑으로 숨어든다
더 많은 애교로 나를 길들이며
골골골 골골송을 부른다
컨테이너 기도소
채 닫지 못한 틈을 타서
나의 공간을 쳐들어 온다
아하! 천국은 침노하는 것이라더니
네가 바로 이것을 보여주는구나
차마 내쫓지 못하고 더러운 몸 물티슈로 씻겨준다
얌전히 축축한 습기를 견뎌내더니
몸을 타고 오르내리며 기분좋은 콧소리를 낸다
예전 같으면 울어댄다 표현했을 고양이가 부르는 노래
이제 너의 언어를 이해하는데 까지 길들여졌구나
너의 몸짓을 이해하는데 까지 길들여졌구나
꾹꾹이 안마를 받고 있다
그런데 까망아! 제발!
공양은 하지 마라
네가 사냥한 피말라 붙은 쥐
날개죽지 찢어진 작은 새
댓돌 우에 올려놓지 마라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