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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장/습작시

까망이

도덕쌤 2021. 5. 1. 11:16

까망이

  아직 두 계절도 겪지 못한 고양이가
  길고양이가
  봉정할배 발걸음을 쫓아다니며
  몸을 부빈다.

  옛끼놈!
  어따 대고 와서 몸을 부비노!

  연신 휘둘러 쫓아내는 할배의 지팡이는
  호통과 달리 
  살기를 품지 않았다.
  오히려 측은지심 가득 담긴 삿대질.

  하지만 너를 품을 순 없어.
  너에게 길들여지진 않을 거야
  팔십 평생 깨달은 삶의  지혜는  
  단호함을 보여주었다.

  까만 털, 흰 구두
  온전히 나를 바라보는 눈
  할배에게 쫓겨나 내 발치로 다가온 녀석에게
  '까망이'란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름을 지어주는 순간부터
  서로 길들이기, 길들기가 시작되었다.

  길고양이 세계에도 서열이 있다.
  자기 위해 준비된 밥상에서도
  가장 나중으로 밀려나는 녀석.
  서열에 쫓겨
  가냘픈 나뭇가지 하늘 위로 쫓겨
  생존을 위한 너의 선택은
  집냥이가 되는 것이었구나

  따로 먹이를 주기 시작하자
  강아지처럼 졸졸 따라다니며 
  몸을 부빈다.
  서열 높은 놈들에게서
  밥을 지켜달라고, 항상 같이 있어달라고.

  계절이 바뀌고 
  철없는 어미가 되어버린 까망이.

  마을에 늘어가는 길냥이가 무서워 
  중성화 시술을 고민하는 사이,
  이 녀석은
  육아 책임마저 맡기겠다고
  새끼들을 물고
  컨테이너 밑으로 숨어든다.

  더 많은 애교로 나를 길들이며
  골골송을 부른다.

  컨테이너 기도소 
  닫히지 않은 틈을 타
  나의 공간을 쳐들어 온다.

  "천국은 침노하는 것"이라더니
  네가 바로 이것을 보여주는구나.

  차마 내쫓을 수 없어
  더러운 몸을 물티슈로 씻겨준다.
  축축한 습기를 견뎌내며
  몸을 타고 오르내리며
  기분좋은 콧소리를 낸다.
  예전 같으면 울음소리로 들었을
  고양이가 부르는 노래.

  이제 너의 언어를 이해하는데 까지
  길들여졌구나.
  너의 몸짓을 이해하는데 까지
  길들여졌구나.
  꾹꾹이 안마를 받고 있다.

  하지만 까망아!
  제발!
  고맙다고 공양은 하지 마라.
  네가 사냥한 피 묻은 쥐,  
  날개죽지 찢어진 작은 새.
  댓돌 위에 올려놓지 마라.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으니"

 

기도소 컨테이너 문앞에서 나를 불러내는 까망이(2020년 6월)
기도소문앞에서 나를 기다리던 까망이(2020년 4월)
까망이가 안으로 쳐들어 온날. 하는 짓이 귀여워 털을 깨끗이 닦고 물을 먹였다. 내버려두고 하는 짓을 살펴보았다. 냥이라면 질색하는 사람들만 아니었다면 집냥이로 신분을 바꿔주었을 텐데... 냥이알러지가 심한 분들도 찾아오는 기도소라서 다시 밖으로 보냈다.ㅠㅠ  (2020년 5월 15일)
새끼를 낳은 까망이가 아직도 품을 파고드는 미달이와 박스로 만들어준 새끼들 쉼터 위에서 쉬고 있다. 미달이는 꼬리가 뭉툭 짤린 모습이었는데 그후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새끼를 잃은 까망이가 얼마나 애태웠을지... (2020년 9월)
까망이 가족의 아침식사. 깜돌이와 깜순이 두 새끼가 에미 까망이보다 덩치가 크다. (2021년 4월)
까망이의 신랑으로 생각되는 점박이가 내 눈치를 살피며 침을 삼키고 있다. 점박이는 까망이와 남매였을 것으로 추측되었던 녀석인데 발정기가 되었을 무렵 까망이를 괴롭히다가 나에게 쫓겨났다. 나만 보면 숨기 바빴다. (2021년 4월)
까망이는 신랑 점박이의 먹거리를 챙겨주느라 내게 졸라서 얻는 사료를 신랑에게 양보한다. 슬그머니 내 다리 사이로 물러 앉아 신랑이 밥그릇에 다가오더라도 혼내지말라고 나를 달랜다. 신랑에겐 괜찮다고 어서 와 먹으라고 ... (2021년 4월)
발정기에 이른 깜돌이는 이제 다른 수컷들에게 공격을 당하고 있다. 서열이 가장 낮은 녀석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높은 나무위로 도망치는 것. 까망이도 그렇게 나무위로 자주 도망치더니 깜돌이도 그렇게 나무위로 몸을 피한다. 새벽에 부엉이가 앉아 있는 줄 착각하고 깜놀.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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