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습작시

안전지대

도덕쌤 2021. 5. 2. 17:38

[안전지대]

 

    "에그, 저 지지리도 못난 녀석, 데모 한 번 못 해보고..."

    "엄니, 여태 데모하는 덴 쳐다보지도 말라시더니?"

    "인석아 대한민국 대학생들 다들 하는데 넌 끼지도 못하누?"

    "엄니, 그럼 나 데모해도 괜찮아유?"

    "그려그려 남들 다 하는 데 끼지 못하면 그것도 빙충이지

     빙신 취급 받는 거여

     다만 이것을 명심해라

     맨 앞에도 서지 말고 맨 뒤에도 서지 마라

     한 가운데도 서지 마라

     그니까 1/4선이나 3/4선쯤, 꼭 여기쯤 있어야 한다."

  1980년 서울의 봄 어디쯤에서

  어머니 하신 말씀이었네

 

  마파람에 실려온 광주의 피냄새가 섬뜩해

  계절이 거꾸로 흐르던 날

  얼어붙은 여름 한 낮에 어머닌 다시 말씀하셨네

    "막내야 서울 가거든 데모하는데는 쳐다보지도 마라 잉!"

    "전에는 끼어도 된다고 하셔놓군..."

    "인마야 이젠 계절이 거꾸로 선 시상인디

     엄니말도 바뀔 수 있는 거지..."

 

  울 어머니 신신당부에 담긴 그 의미 깨우치는데

  시간이 필요한 건 아니었네

  농활대 사전답사 어느 산골마을 늦은 봄날

  그 마을 이장님 신고를 했다네

  빨간 물든 대학생들 피냄새 풍기는 젊은이들 들어 왔다고

  마파람 불어오는 길목 출신

  선배 짐속에는 광주 피냄새 가득한 유인물이 있었지

  그 선배 대공분실 욕조 속에서 뺑뺑이 돌고 있는데

  내 고향은 남도에서 좀 더 먼 곳, 산골마을 가까운 곳

  아버지를 팔아 빠져 나왔네

  바로 그 때 울 어머니 신신당부 하셨던 거지

    "이젠 데모하는 곳은 쳐다보지도 마라 잉!"

 

  울엄니 하늘나라 가신 지 두 해만에

  세월호에 갇혀 하늘에 오른 꽃다운 아이들 만나셨네

  난 하늘에 계신 엄니에게 물었지

 

  그러나 어머니!

     ▒ "내가 어두운 데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서 말하고,

     ▒ 귀에 대고 속삭이는 말을 지붕 위에서 외쳐라.

     ▒ 그리고 육신은 죽여도

     ▒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 영혼과 육신을 아울러 지옥에 던져

     ▒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마10:27~28, 공동번역)

  엄니 말씀도 어두운 데서 하신 말씀이었지라?

  엄니 말씀 내 귀에 속삭이던 하느님 말씀 아니었소?

 

  최루탄에 맞아 죽고, 전기고문 물고문, 고문받다 죽고

  이제 바다에 빠트리고 구조를 거절한 나라 때문에

  막내 손주같은 아이들마저 당신 앞에 이르렀는데

     ▒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님을 위한 행진곡 더욱 크게 귓가에 울려오는데

  어머니!

  이제 지붕 위서 외칠 때가 아닌가요?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 옛날 엄니 말씀 따라

  안전지대를 찾고 있다네

  망가진 몸과 영혼 쉬어가자고 찾아온 마을

  2017년 4월 26일, ... ..., 2021년 4월 28일 소성리

 

  격자틀 안에서 구겨지고 밟혀지는 영혼

  목이 꺾여 토해내지 못하는 비명

  다리 찢겨 끌려나와 비틀비틀 내팽개쳐진 몸뚱아리 바라보며

  가장 안전한 기도소 컨테이너 지붕위에서

  누굴 향한 욕지거리인지

  이렇게 가득 뱉어내고 있네, 안전하게? 안전하게!

 

+++++

(참고.  https://blog.daum.net/ask2me2/128 [국가가 버린 소성리 사람들] )

2021.04.28 대각개교절. 경찰은 소성리 사람들을 도로위의 장애물로만 생각했다. 청소할 대상이었을 뿐. 미군장비를 들여보내기 위해 도로를 얼마나 빨리 깨끗이 치우느냐에만 골몰하였다. 
유독 악랄하게 진압을 지휘한 경찰이 있었다. 격자 안의 사람들을 끄집어내는데만 혈안이 된 놈.
격자 안에 사람이 이렇게 들어 있는데 격자를 접어올려 밑으로 잡아당겨 끌어내었다. 보이지 않는 아래쪽에선 다리를 무용수 다리찢기 훈련시키듯 다리를 찢어 잡아당기고, 위에선 머리를 짓눌러 사각형 틀로 쑤셔 넣었다. 목에 힘주고 버티는 사람들은 머리를 각파이프 쪽으로 밀어부치거나 앞으로 잡아당기며 목을 꺽었다. 목이 꺾인 사람들은 비명도 내지르지 못했다. 격자위로 뻗은 팔은 뒤로 꺾어 힘을 못쓰게 하였다. 죽이지만 않으면 상관없다며 빨리 치우라는 호통이 무전기를 타고 날아들었단다.
그의 이름은 서o국. 소속이 어딘지, 계급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거추장스러운 것은 다 벗어던지고 마스크는 턱스크가 된 채로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또 한 놈의 이름은 권o팔. 서o국과 맞은편에서 진두지휘 중.
얼굴이 확실하게 나온 사진을 찾기 어려웠다.
그런데 놀랍게도 대화경찰이라 이름붙이고 등장했던 경찰이었다. 그들은 이날 대화를 포기하고 있었다.
나는 이 처참한 모습들을, 국가가 소성리 사람들을 철저히 버린 모습들을, 기도소 컨테이너 지붕위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가장 안전한 곳에서 페북라이브로 중계하고 있었다. 

* 페북라이브로 중계한 영상을 다운받아서 진압하는 장면만 짧게 잘라내느라 처음쓰는 동영상편집 프로그램을 이용했더니 화면에 워터마크가 생겼다. 기기의 문제인지, 와이파이의 문제인지, 화면도 깨진 부분이 많다. 
  이 영상을 찍을 때 난 서o국이 김천 김동기의원의 목을 꺾는 모습을 보고 분노하고 있었다. 그런데 화면 왼쪽 아래 쪽에선 권o팔이 김태o님을 지목하여 진압을 지휘하고 있었고, 경찰들의 머리에 가려 보이지 않는 허리아래에서는 김해o님이 고생하고 있었다. 세 분 모두 반항하다 연행되거나, 심한 통증으로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부산 강문수님은 어디쯤 계셨는지 모르겠는데 이날 갈비뼈 통증으로 후송되었다. 성주 무강병원에선 모두 뼈에 이상없다고 진단받았으나, 부산에 가서도 통증이 계속되어 다시 병원을 간 강문수님은 갈비뼈가 두 개에 금이 간 골절상임을 확인하였다고 한다.

 

** 이 영상은 문제의 장면을 가까이서 본 다른 분이 촬영한 것인데 현장의 소리까지 잘 들린다. 진압하는 경찰들의 목소리 "목을 잡아! 목을 잡아!", 뻗어 올린 손목을 잡아 꺾고 있는 경찰들의 손도 분명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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