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에서/어떤 분의 깨달음을 고마워하며

迷信(미신)<김홍한목사님의 [이야기신학 145호]에서 옮김>

도덕쌤 2015. 11. 16. 13:15

迷信(미신)

 

비과학적인 것이 미신인가? 그렇다면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등 세상의 모든 종교가 다 미신이다. 성서 속에도 비과학적인 내용이 무수하다. 오늘날 성경이 과학적으로 참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어리석은 짓이다. 오히려 불신앙의 짓이다. 성경이 과학적이기 때문에 참이라면 성경보다 과학을 더 신뢰한다는 이야기다.

 

미신이란 비과학적, 비합리적인 것이 아니라 비인간적인 것이다. 사람은 마땅히 사람다워야 하는데 사람을 사람답지 못하게 하는 것이 미신이다.

 

예로부터 백성들은 먹거리를 하늘로 섬긴다. 먹거리를 하늘로 섬기는 것이 迷信이다. 자는 쌀()로 간다()의 합자다.

 

절대빈곤의 상황에서 오로지 먹을 것을 바라는 것을 미신이라고 비난할 수는 없다. 어떤 심오한 신학적 고뇌도 절대빈곤의 상황에서는 사치일 수 있다. 오히려 신학은 그러한 상황을 방관하시는 신을 비판해야 할 것인지도 모르겠다.

 

인간 세상에 절대빈곤의 때는 너무도 자주 있었다. 가뭄과 홍수로 인한 흉년, 전쟁으로 인한 흉년, 지력이 고갈되어 흉년 등등이 있다. 그런데 그러한 절대빈곤의 상황이 과연 신이 내리신 재앙일까?

 

조선 후기, 천주교가 조선에서 극심한 박해를 당할 때였다.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산속으로 숨어들어 화전을 일구고 옹기를 구워 삶의 방편으로 삼았다. 그 때는 조선의 많은 백성들이 가혹한 관리들의 가렴주구로 인하여 굶어 죽는 이들이 속출할 때였다. 그런데 그들보다 더 어려운 형편에 있었던 천주교 신자들에게는 굶어 죽는 이들이 없었다. 이유는 나누어 먹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굶주리는 것은 식량이 없어서가 아니라 나눔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30, 60, 100배의 결실을 주시는 분 아니신가? 그러니 신을 탓할 것이 아니다. 나누지 않는 인간들의 이기심과 탐욕이 문제다. 먹을 것을 독점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쌀()로 가는() 迷信이다. 내 이웃은 굶주리는데 나는 쌀을 감추어 두고 배불리 먹는 것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아는 것이 迷信이다. 남보다 잘 먹고 잘살게 해달라는 것이 迷信이다.

 

平和는 공평하게() () 먹는() 것이다. 미신은 나 혼자 먹겠다는 것이니 평화를 해치는 주범이다. 경제를 제일로 삼는 자본주의가 미신이다. 시장경제가 미신이다. 재벌경제, 제국주의 경제가 미신이다.

 

사람들은 남보다 많이 갖는 상대적 부를 성공이고 행복으로 안다. 미신이란 상대적 부를 하나님이 주신 복이라 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것이 고등종교의 틀 안에 있더라도, 체계화된 경전과 교리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러하다. 이를 극복하고 더불어 행복하고자 하는 것이 바른 신앙일 것이다.

내 가족이 다 불행한데 나 혼자 행복할 수는 없다. 내 이웃이 다 불행한데 우리 가족만 행복할 수는 없다.

 

종교의 역할이 온갖 욕망, 특히 쌀로 가는 미신을 극복하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평화의 세상을 만드는 것 일 텐데 소위 성직자라는 사람들 중에는 욕망을 극복하기는커녕 욕망의 덩어리인 자들이 있다. 物慾性慾을 극복하지 못함은 물론이거니와 거기에 名譽慾權力慾까지 더한 이들이 있으니 과연 욕망의 덩어리다. 그러면서도 시대의 스승노릇을 하려하니 한심한 노릇이다. 이것이 종교가 정치의 통제를 받는 가장 큰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