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고백/어쩌다 쓰는 일기

허 찔린 경찰들, 본성을 드러낸 날 (2021.09.02)

도덕쌤 2021. 9. 7. 10:15

[소성리 할매들의 투지에 경의를!!!]

지난주 목요일 9월 2일 소성리는 올해 36번 째 국가폭력에 신음한 날이었습니다. 주 2회 상시적으로 당하기로는 33번 째였지요.

요즘은 매주 화, 목 아침마다, 우리는 기도회로 모여 도로에 앉고, 경찰들은 저항하면 체포한다며 협박을 퍼부으며 우리를 들어내고. 그 모양새가 서로 하나의 퍼포먼스를 수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익숙해 졌습니다.
그런데 지난주 목요일은 이렇게 타성이 붙은 우리들에게 다시 새롭게 각오를 다지게하는 그런 날이었습니다.

9.2 소성리 아침기도회

도로위에서 아침기도회를 시작하는데 늘 앞자리에 앉아 계시던 할매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기도회를 진행하는 동안 경찰들이 마을 아래쪽으로 일부가 내려가고 심상치 않았습니다. 
할매들은 그동안 유류를 숨겨 들여오는 것으로 의심된 롱바디 윙카를 검색하겠다고 보건소 아래 한참 밑에서 목표가 된 차량을 막아섰던 것이었습니다. 

무엇을 싣고 들어가는지 늘 궁금했던 윙카

'병참선 확보'라는 이름으로 대규모 경찰병력이 동원된 5월부터 항공유(미군장비들은 모두 항공유를 연료로 쓰고 있음)를 실어나르던 헬기들이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할매들은 탑차나 윙카, 군용 트럭, 물차 등에 몰래 기름을 들여가고 있다고 의심하였지요. 생활용수를 실어나르는 물차는 꼭지를 틀어 물이라는 걸 확인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탑차, 윙카, 트럭은 한번도 내용물을 보여준 적이 없었지요. 
2주전 8.19(목)에는 아침 기도회로 시작된 평화행동을 마무리하고 모두가 돌아간 시간에 번호판 대신 폭발물이란 표지를 붙인 군용 트럭이 마을로 들어오다가 폭발물이란 표지에 놀란 주민들에 의해 진입이 저지 당했습니다. 확인해보니 트럭에는 대여섯개의 드럼통이 실려 있었지요. 국방부에서는 경유라고 알려왔지만 결국 돌려세웠습니다.

경유를 싣고 들어가던 군용트럭. 유류를 유조차가 아닌 트럭에 싣고 갈 때는 이렇게 폭발물(위험물) 표지를 붙이지 않으면 안된단다. 

아무튼 이런 일들을 배경으로 할매들은 어떻게든 윙카를 붙들어 내용물을 검색해보자고 계획을 세웠나 봅니다.
이른 새벽 5시부터 비가 오는 가운데, 용봉삼거리에 들어오는 차량을 미리 알려줄 척후를 세우고, 경찰들의 눈을 피해 몸을 숨기느라 도롱이를 만들어 길가에 숨어 있다가, 기습적으로 도로에 나와 차를 막아섰으니, 할매들이 얼마나 지극정성으로 사드를 반대하고 있는지, 눈물겹지 않습니까?
우리는 할매들의 투쟁에 다시 한 번 우리의 투쟁의지를 다잡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9.2 오후평화행동

하루를 마감하는 오후평화행동은 할매들의 오늘 소감을 듣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최선을 다해 싸웠으니 평소보다 조금 후련하다는 얘기가 나올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할매들 말씀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애를 썼지만 윙카의 내용물은 확인하지 못하고, 결국 내려온 경찰들에 의해 강제로 들려나와 고착당하면서 당한 경찰의 폭력에 치를 떠는 분들이었습니다. 

이날 확실히 경찰들은 허를 찔려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본질적인 모습을 확연하게 드러냈습니다.
아침기도회 시간 마지막에 할매들을 설득하여 도로밖으로 나오게 하던 경찰들이 이날은 할매들의 사지를 들어 끌어내고 고착시켰답니다.
나는 기도회 순서를 원불교 교무님께 넘겨드린 후 페북라이브와 진입차량 감시를 하다가 할매들의 소식들 듣고 차를 타고 내려갔습니다.
내려가서 본 모습은 할매들은 내려가는 차선 쪽에 고착되어 있고, 올라오는 차선 쪽에는 경찰 승합차와 승용차 한 대, 그 뒤로 문제의 윙카가 서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차를 돌려 적당한 곳에 세우고 할매들에게 가야 했는데, 내려가는 차선에서 차를 돌리려니 올라오는 차선으로 방향을 꺾을 수밖에. 방향을 꺾고보니 윙카를 막아선 꼴이 되었고, 바로 경찰들이 차를 에워싸고 차를 움직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창문을 내리라고 손짓하고, 나도 비키라고 말하기 위해 창문을 내렸는데, 이런저런 얘기할 틈도 없이 경찰은 창문안으로 팔을 집어넣어 잠금장치를 해제하기에 바빴습니다. 잠금장치가 해제되자마자 조수석쪽 문으로 경찰 한 명이 탔습니다. 물론 나에게 양해를 구하는 과정은 없었지요.
운전석쪽 잠금장치를 해제한 경찰은 차문을 열었습니다. 차를 뒤로 빼라고 요구하면서 문을 여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문을 닫아야 운전할 거 아니냐고 말하면서 문을 도로 닫았습니다. 후진하면서 방향을 바꾸려면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야겠기에 조금 전진을 했습니다. 조수석에 탄 경찰이 기어를 D에 두자 바로 내 손을 밀치고 스틱을 앞으로 밀어서N을 지나 R에 위치시켰습니다. 깜짝 놀라 브레이크를 밟고 뭐하는 짓이냐고 하자, 앞으로 가지 말고 후진하라고 했습니다. 차 주변에 경찰들이나 비키게 하라고 얘기하고 차를 돌렸습니다.
이런 사이에 조수석 경찰이 낀 이어폰을 통해 무전으로 전달되는 지시사항이 들렸는데, 차를 빼지 않을 것같으면 키를 뽑고 긴급체포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차를 돌려 원불교 대각전 입구 근처 주택 앞에 차를 세웠습니다. 그 동안에도 조수석의 경찰은 내리지 않고 "강장로가 허튼짓하지 못하도록 옆에서 지키고 있겠다"고 무전으로 보고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국방부 연락장교를 발견하고 가서 오늘 상황에 대해 항의할 때에야 경찰은 내 차를 떠났습니다.

이날 경찰이 내게 보여준 행동은 운전을 고의로 방해하고 구속하는 인권침해 행위였습니다. 아무런 법적 근거도 제시하지 않았고, 양해를 구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런 행동을 한 경찰들은 평소에 사근사근 대화가 비교적 통하던 경찰이었습니다. 이들이 이렇게까지 몰지각한 행동을 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지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결론은 허를 찔렸을 때 드러나는 경찰의 발가벗은 모습이 이런 것이라는 얘깁니다.
이제는 경찰들도 이골이 나서 새벽부터 모여드는 것은 500명 수준으로 숫자가 줄었습니다. 그나마도 오전 10시쯤이면 대부분 돌아가고 오후 4시쯤 오후평화행동을 할 때쯤에는 1개중대 정도밖에 안 되는 인원만 남아서 우리가 평화행동을 마무리하는 걸 지켜보다 돌아갑니다. 
경찰은 이날도 이런 정도의 작전계획을 가지고 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할매들이 어디서 무슨 일을 벌이는지 기도회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부지런히 여기저기 탐색을 해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차량들도 무난히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저멀리 윙카가 들어오는 그 앞을 갑자기 할매들이 막았섰습니다. 뜻밖의 기습을 당했다고 생각한 경찰은 일단 작전 실패의 책임 추궁에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에 빠져들지 않았을까요? 어떻게든 빨리 작전대로 일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무리한 강경진압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골밀도가 낮아 골절의 위험이 높은 8-90세 할머니들과 그저 움켜쥐기만해도 피멍이 들게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젊은 경찰들의 대치. 할매들을 대상으로 사지를 들어 이동 후 격리 고착시키는 방식의 진압작전을 펼친 경찰들에게 할매들이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고생하신 할매들을 차로 모시려고 다시 내려갔을 때, 할매들이 걸어올라 가시겠다며 경찰들에 의해 둘러싸인 채로 천천히 걸어올라 오셨던 그 마음을 깊이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윙카의 화물을 확인하지 못하고 경찰들에 둘러쌓여 걸어올라오시는 할머님들


부디 사드가 떠나는 그날, 덩실덩실 춤을 추며 한바탕 잔치를 치를 그날을 소성리 할매들이 꼭 볼 수 있도록, 하느님 역사해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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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개의 소식을 추가합니다.

* 할매들의 투지에 놀랐는지, '병참선 확보' 작전을 시작한 이후 눈에 띄지 않던 유류수송 헬기를 이날 모처럼 다시 볼 수 있었습니다. 유류는 이렇게 들여보내고 있으니 화물차 검색하지 말아달라는 무언의 요구이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외칩니다. "수송 물자 공개하라! 폭탄이냐? 기름이냐?"


* 경찰들의 무분별한 인권침해는 진밭교위 마을안길로 들어가는 길을 차단하는 행위로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점차 동원되는 병력을 줄이면서 진밭교위로는 소수의 병력만 대기시키고 자바라형 도로차단설비를 가져다 놓았습니다. 작전이 진행되는 날은 새벽부터 저녁까지 도로를 차단합니다.

도로차단 질서유지선(photo by 열매-페북에서 옮김))


* 9월 4일 토요일에는 [사드 추가배치 4년 문재인정부 규탄 제11차 범국민평화행동]이 열렸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4곳에서 분산해 진행했는데 저는 진밭교에서 페북라이브로 중계를 했습니다. 네 곳 모두 집회제한인원 99명을 초과하여 멀찌감치 떨어져 바라보거나 인원이 적은 곳이 있을까 찾아다니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 범국민평화행동에 참여하러 오신 분들 중 반가운 분이 있었습니다. 예수살기 회원으로 활동하시는데 자주 뵙지 못한 이영욱 장로님. 2-3년전 향린교우들과 다녀가신 뒤 오랜만에 뵈었습니다. 늘 건강하시길 기도합니다.



 

출처 : 새마갈노(http://www.esw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