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에서/어떤 분의 깨달음을 고마워하며

[새끼 나귀와 권력 풍자](2018년 종려주일 조헌정목사님 설교/믿음교회)

도덕쌤 2018. 3. 26. 17:05

2018년 3월 25일

사순절 6(종려주일) 믿음교회

[새끼 나귀와 권력 풍자]

시 118:19-24; 막 11:1-11, 


오늘은 40일 사순절의 마지막 여섯 번째 주일이며 종려주일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오늘부터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에 갇혀 있는 토요일까지를 고난주간(the Passion Week)이라 부릅니다. 마가복음을 비롯한 복음서들은 여기에 총력을 기울려 이 한주간의 삶의 이야기가 예수님의 3년간의 하느님 나라 복음 운동의 전체 이야기에 3분지 1에서 절반을 차지합니다. 분량뿐만이 아니라 각자가 전하고 있는 예수 신앙과 그리스도 신학의 절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유월절- 사회정치적 함의]


예수님은 오늘 제자들과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사람들과 함께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십니다. 이때 예수님은 한 번도 타보지 않았던 새끼 나귀를 타고 들어오시고, 사람들은 이에 겉옷을 벗어 깔아주며,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 받으소서!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가 온다. 만세! 높은 하늘에서도 호산나!” 라고 함성을 질렀습니다. 이날은 유대민족 최대 명절인 유월절로 모세의 영도 아래 자신의 조상들이 애굽의 노예로부터 해방을 받은 날을 기념하는 해방절이었습니다.


지금 예루살렘 성내와 성전에는 수많은 순례자들로 차고 넘칩니다. 보통 예루살렘 주민의 열배 이상의 참배객들이 왔다고 합니다. 대략 20만 명입니다. 그러기에 로마의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젤롯파 독립투쟁자들은 이 절기를 이용하여 31독립만세항쟁과 같은 민중운동을 일으켰고 이중 과격 시카리파들은 군중 속에 숨어 매국노들을 살해하곤 하였습니다. 


치안을 담당하는 로마 권력자들이 잔뜩 긴장할 수밖에 없는 이날 백성들로부터 신의 아들이라 혹은 세례 요한이라 혹은 예언자 엘리야로 불리던 갈릴리의 예수가 올라오는 것입니다. 점점 떠들썩한 소리가 가까워 옵니다. 드디어 그 모습이 모입니다. 새끼 나귀를 타고 들어옵니다. 흔히 목사님들은 이 새끼 나귀를 타신 장면을 설명할 때, 스가랴 예언의 성취 곧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장면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왜 이게 평화의 장면인지 새끼 나귀만 타면 평화가 오는 것입니까? 왜 사람이 한 번도 타보지 않았던 새끼 나귀라고 말할까요? 누가 한번이라도 탔으면 부정이 탄다는 의미인가요? 아닙니다. 결코 아닙니다. 이렇게 해석하는데서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건장한 사람을 태웠다면 이 새끼 나귀는 기우뚱기우뚱 넘어질 듯 비틀거리며 걸어오게 될 것입니다. 자연히 이 모습을 본 군중들은 폭소를 터트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향린교회 예배에서 이 예수님의 모습을 여러 가지 모습으로 재현하였습니다. 자전거나 어린이용 롤러보드를 타고 들어오기도 했고, 피에로 복장을 비롯한 여러 광대의 모습으로 입장을 하여 교인들의 웃음을 자아내곤 하였습니다.


우리 선조들이 일제 강점기에 해방의 영웅이 나타나기를 꿈꾸듯이 당시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이끌어 줄 새로운 영웅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갈릴리의 청년 예수에게 그런 소문이 붙었습니다. 세례요한이 다시 나타났다 말하기도 하고 엘리야 혹은 예레미야가 다시 나타났다 혹은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어떤 이는 황제의 칭호인 ‘신의 아들’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물론 예수의 적대자들은 마귀의 두목 ‘바알세불’이라고 불렀지요. 한 주간 진행되는 유월절 축제 첫날 아침 백성들은 잔뜩 들뜬 마음으로 예수의 입성을 기다렸고, 로마경비대는 긴장 속에서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뒤뚱뒤뚱 넘어질 듯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군중들은 물론이요 잔뜩 긴장했던 로마 군인들마저 웃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호산나라는 함성은 왕이 등극할 때, 혹은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이 입성할 때 부르던 백성들의 환호였습니다. 더구나 다윗왕은 유대왕국을 가장 크게 넓힌 성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얘기만으로는 이천년 전 예루살렘 성내의 모습을 다 설명하지 못합니다. 이는 절반의 얘기에 불과합니다. 제가 공부할 때는 이 반밖에 몰랐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이 예루살렘 입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2006년에 나온 역사적 예수 연구가 마르쿠스 보그와 존 도미닉 크로산이 지은 『예수의 마지막 일주일』은 이 장면을 이렇게 말합니다.


“서기 30년 어느 봄날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두 행렬이 있었다. 때는 유대교에서 일 년 중 가장 신성한 절기인 유월절의 첫날이었다. 첫 번째 행렬은 초라한 행렬이었으며 다른 행렬은 로마 군대의 행렬이었다. 동쪽에서는 예수가 추종자들의 환호를 받으며 새끼 나귀를 타고 감람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예수는 나사렛이라는 한 시골 마을 출신으로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농민들이었다. 그들은 갈릴리에서부터 남쪽으로 약 100마일 떨어진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시작하였던 것이다. 맞은편의 서쪽에서는 이두메와 유대와 사마리아를 다스리는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가 제국의 기병대와 보병들을 이끌고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예루살렘 성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저들은 서북쪽으로 약 100킬로 떨어진 가이사랴 해변으로부터 왔다. 예수의 행렬은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것이었으며, 빌라도의 행렬은 로마 제국의 권력을 과시하는 것이었다.”(17쪽)


빌라도의 행렬은 로마의 힘을 자랑함과 동시에 자주 일어났던 민중 폭동을 미연에 방지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당일 예수의 행진은 우연히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사전에 철저하게 계획된 ‘반대행진(counterprecession)’이었고, 일종의 ‘정치적 시위’였던 것입니다.(19쪽) 그러면 왜 이 얘기가 마가복음에 빠져 있는가? 당시 마가가 이 복음서를 기록하던 시기는 3년이나 지속된 예루살렘의 독립항쟁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 성이 완전히 초토화가 되었던 시기로 로마당국은 반로마운동에 대해 촉각을 세우고 있었던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가가 기록하지 않았지만, 당시 이 글을 읽는 동시대 사람들은 예수 행렬 반대편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다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의 고민]


예수는 이미 십자가에서 죽임당할 것을 수차례 예언했습니다. 십자가는 로마의 지배를 반대하는 저항군들을 처형하는 수단이었습니다. 단순히 유대교 내부의 문제라면 예수는 스데반마냥 돌에 맞아 죽습니다. 제자들은 입성 전 예수가 입성한 다음 왕위에 오르면 누가 예수의 오른편과 왼편에 앉을 것인지를 두고 다툰 적이 있으며 여기에는 야고보형제의 어머니까지 등장을 합니다. 자기의 아들 둘을 양편에 세워달라고. 제자들마저 예수의 입성 자체를 일종의 민중폭동을 통한 독립왕정의 계기로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환상이 아니라 이미 백여 년 전 마카비우스 형제들이 주도한 독립항쟁을 통해 로마를 물리치고 수십 년 간의 독립을 유지했던 혁혁한 과거도 있습니다. 여기에 예수의 고민이 숨어 있습니다. 


예수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 갈릴리 세포리스라는 도시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로마군은 본때를 보인다고 그 마을 사람 전체 여인과 어린아이들을 포함한 전체 2천명을 모두 십자가에 못 박아 마을 입구 양쪽에 세워 놓았던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스파르타쿠스 노예 반란이 있었을 때는(BCE 71) 로마로 들어가는 아피아가도에 무려 6천개의 십자가를 세웠다는 끔찍한 사실도.


따라서 예수님은 성전을 깨끗케 하고 잔혹하기 짝이 없는 로마의 식민지배 체제에 저항하는 행동을 해야 했지만, 동시에 군중 반란이 일어나지 않는 평화 시위가 되도록 해야 했던 것입니다. 이는 예수의 중요한 관심이었을 뿐만 아니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의 관심이기도 했습니다. 마가복음 14장 2절에 보면 저들은 몰래 예수를 잡아 죽일 것을 궁리하면서 백성들의 소동을 두려워하여 축제 기간만은 피하자고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러한 예수의 고민을 이해하고 새끼 나귀 속에 담겨 있는 정치적 함의(含意)를 읽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권력 풍자와 민중 카타르시스]


권력자들을 정면으로 비판하면 세례요한이나 예레미야와 같이 감옥행입니다. 그래서 민중들은 권력자들을 풍자하여 비틀어 말합니다. 개그로도 표현되고 패러디로도 표현됩니다. 그런데 권력의 너무 폭력화되면 풍자도 할 수 없습니다. 70년대 박정희시대에는 살인적인 폭력이 너무 횡횡했던지라 그저 유언비어 형태의 언어만 조심스럽게 돌아다녔습니다. 김지하의 오적이란 풍자시는 매우 유명했습니다. 제가 다니던 신학대학에서 70년대 대학축제 명칭을 ‘바보제’라고 바꾸었는데, 이를 본 담당형사가 벽보를 마구 찢더군요. 우리 스스로를 바보라 부르는데 그는 왜 화를 냈을까요? 그게 우리들 자신을 일컫는 말이 아니라 자신들을 비웃는 풍자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80년대에 풍자가 매우 유행했습니다. 전두환과 노태우를 ‘돌통령’로, ‘물통령’으로 불렀습니다. 이승만으로부터 역대 대통령이 방구를 뀌었을 때, 아첨하는 부하의 각기 다른 반응을 통해 권력의 실체를 풍자하였고, 고스톱 게임에 저들의 독재 행태를 패러디한 새로운 룰을 계속해서 만들어내기도 했던 것입니다.(싹쓸이, 설사, 오공비리 등) 예수님 또한 풍자의 대가였습니다. 당시 사회의 권력자들과 부자들을 향해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찾아내면서 자신의 눈 안에 있는 들보를 발견하지 못한다’든가 혹은 ‘하루살이는 걸러내면서 낙타는 삼킨다’고 예수가 말했을 때, 사람들은 폭소를 자아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어제도 평통사가 주관하는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촛불집회가 광화문광장에서 있었는데, 거기서도 박근혜와 이명박을 희화한 그림과 쥐틀을 길게 끈으로 묶어 왔다갔다하는 풍자 시위꾼이 있었습니다.


엊그제 이명박씨가 구속이 되자 이런 시가 돌아다녔습니다. 제목은 ‘쥐틀’입니다.


나는 보았다. 

대판에서 태어나

포항에서 학교 다닐 때

네 가방모찌 한 것 자랑하는 

반편이도 보았다

네 쪼잔한 붓질

보물단지처럼 교장실에 걸어두고

자유민주주의 수호

대통령 이명박 휘호라고 받아 

멀대 같은 학생들 등굣길에 세운 

거대한 오석 빗돌도 보았다

박정희가 연 무신정권

전두환 노태우 이어 받은 

무법천지 개발독재 시대에

쥐 눈에 대그빡 자갈밭에 굴리며

오로지 출세의 한 길로 달려오며 

간신히 뚫린 콧구멍으로 숨이 가빠서

무슨 통찰력에 영성 따위 길렀겠나

장로가 되어 무엇을 소망했나

금송아지 하늘 타고 

금수강산 거친 삽질 공구리질로 

무리 지어 쥐구녕 파고 노닐더니

십 년 묵은 체증이 쑤욱 내려간다

늙은 쥐 한 마리 밤늦게

녹슨 쥐틀에 갇힌 날

나무문수보살마하살


이명박 한 개인이 갖는 부와 권력에 대한 욕망을 비웃는 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가 교회 장로였기에 오늘의 개신교회를 비웃는 글이기도 합니다. 여성신학자 샐리 맥페이그는 은유 곧 풍자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좋은 은유(풍자)는 충격을 던지고 서로 다른 것을 결합시키며, 관습을 뒤집고 긴장되게 하며, 함축적으로 혁명적이다. 이러한 면에서 상징적이고 성례전적인 사유는 제사장적 특징을. 은유(풍자)적인 사유는 예언자적 특성을 지닌다. 전자가 이미 현존하는 질서의 통일성과 완성을 기다린다면, 후자는 앞으로 실현되어야 할 변화의 가능성 질서와 통일성을 시험적으로 투사한다.”(재인용 『함석헌의 종교시 탐구』 김경재 저 2012. 29쪽, 괄호는 필자의 첨가) 예수가 새끼 나귀를 타고 행진하는 모습 속에서 힘없는 민중들은 현 체제의 억압으로 벗어나는 카타르시스를 느꼈으며 이 카타르시스는 저들에게 새로운 하느님 나라를 대망토록 하는 예언자적인 열정과 혁명성을 품게 하였던 것입니다.


[성전숙청- 종교행위인가? 정치행위인가?]


그리고 그 다음날 예루살렘 성전에서 매우 의미 있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채찍을 들어 비둘기와 양을 파는 상인들을 내어 쫓고, 환전상들의 상을 뒤엎는 일종의 폭력 시위를 일으킨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가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종의 종교개혁운동으로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이는 단순한 성전정화운동이 아니었습니다. 성전 뜰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이란 오늘날의 시장 상인들이 아닌 제사장의 검증 도장이 찍힌 희생제물을 파는 관리들이었고, 황제의 얼굴이 새겨진 로마 화폐를 얼굴이 들어가지 않은 성전 전용 화폐로 바꾸어 주는 관리자들이었습니다. 독점제였기에 이들은 엄청난 폭리를 취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성전에 들어갈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비난하였습니다. 그리고 십일조를 비롯한 성전세 징수는 예루살렘의 경제를 좌지우지 하는 금융의 본산이 되었고, 동시에 대제사장을 로마가 임명하였기에 로마정부에 바치는 뇌물로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곧 성전은 가난한 자를 짓밟고 로마의 식민지지배 체제를 대신하는 거짓 헤롯권력의 본산이 되었던 것입니다.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종교와 정치, 사회, 경제 모든 부문에 있어 권력의 중심이라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예수가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 채찍을 들었다는 말은 단순히 교회를 개혁했다는 말이 아니라 오늘날로 말하면 교회는 물론 권력의 중심인 청와대와 국회의사당과 검찰과 법원과 금융가를 모두 숙청하고, 나아가서 로마제국을 대신하여 오늘의 한반도 문제를 좌지우지하는 미국에 저항한다고 하는 대혁명이 상징성을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87년 민중항쟁 혹은 2017년 촛불시민혁명 그 이상의 혁명적 사건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네 개의 복음서는 성전 숙청을 설명함에 각기 다른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우선, 가장 먼저 쓰인 마가복음은 ‘성전 뜰을 제사용 기구를 들고 지나가지 못하도록 했다.’는 구절을 첨가하고 있는데, 이는 매우 의미심장한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성전 뜰의 크기는 축구장 5개를 합한 크기에 해당하는 매우 넓은 장소였고 당시 성전 안팎에는 수 백 명의 로마 경비대를 비롯한 레위지파 성전종사자들과 최소 200여명의 대제사장들이 있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이는 단지 하나의 희망사항인가? 아니면 실제 이야기인가? 우리는 여기에 대해 정확한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다만, 이것이 꾸며낸 얘기가 아니라면, 최소 몇 시간 이상 성전 뜰에 있던 순례자들이 예수에 동조하여 곧 민중폭동을 통해 잠시나마 성전을 장악하였다는 의미가 됩니다. 여기에 예수는 유대 율법에 따라 돌에 맞아 죽지 않고 정치범이 되어 로마에 의해 십자가에 처형당한 것입니다. 성전숙청은 예수 사건의 핵심 사건입니다.


   그런데 마태와 누가는 이 구절이 로마의 심기를 자극하는 위험한 얘기로 보아 이 구절을 삭제하고 맙니다. 그럴뿐더러 마태는 예수가 채찍을 들어 상을 엎었다는 구절을 쓰고 있지만, 누가는 이 구절마저 위험한 발언으로 여겨 삭제합니다. 내쫓았다는 얘기만 하지, 어떤 방식으로 예수가 저들을 내쫓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습니다. 데오빌로라는 로마관헌에게 보내는 보고서 형식으로 복음서를 쓰고 있는 누가는 이런 이슈에 대해서는 더욱 예민한 것 같습니다. 반면 가장 늦게 기록된 요한은 이 성전 숙청 이야기야 말로 예수 운동의 핵심이라고 생각하여 이를 자신의 복음서 맨 앞으로 가져갑니다. 그리고 예수의 입을 통해 폭탄선언이 나옵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짓겠다.’ 이는 예수를 음해하는 자들의 입에서 나온 소리였지만, 요한에게서는 이것이 예수의 입에서 직접 나옵니다. 곧 보이는 건물로서의 성전파괴를 주장하고 보이지 않는 성전 곧 예수 이름으로 함께 하는 사람들 가운데 함께 하는 ‘부활의 몸’ 곧 살아 움직이는 ‘민중 성전’을 주장한 것입니다. 결론으로 성전 숙청에 대한 4복음서 저자들의 신학적 입장을 비교 정리하면 누가는 ‘성전 정화’ 마태는 ‘성전 숙청’ 마가는 ‘성전 장악’ 요한은 ‘성전 파괴’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대제사장 가야바는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이 (예수)를 그대로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요 11장 48절) 유대는 당시 예루살렘 외의 지역에서는 정치와 군사를 제외한 모든 부분에서 자치를 허용 받고 있었는데, 만약 예수를 그대로 둔다면 로마가 자치권을 빼앗고 직접 통치를 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곧 대제사장 가야바는 예수님의 성전 숙청 행동을 종교적 행위로 간주한 것이 아니라 로마 정부를 적대하는 정치적 행위로 간주했던 것입니다. 


[성찰의 한 주]


전통적으로 고난주간에는 매일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서는 그간 날짜나 요일에 별 관계없이 예수님의 행적을 말하였는데, 마지막 주간에는 요일별로 자세히 서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루하루 일어난 사건 하나하나가 신앙적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요즘은 보통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처형당하시는 성금요일에 한번 모여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분부하신 성찬예식을 행하여 왔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서와는 달리 성찬 예식 대신에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세족예식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족식을 시행하려면 여러 가지로 번거롭기에 대체로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말로만 언급하고 지나갑니다. 그런데 세족식은 성찬예식 못지않은 중요한 신앙적 교훈이 담겨 있고 이는 말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행해야 하는 예전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성목요일의 세족식과 성금요일의 십자가묵상기도를 함께 진행하여 왔습니다. 단식은 물론 비아돌로레사라는 십자가 14처 예전을 교회 안에서 혹은 밖에서 진행하곤 하였습니다. 


믿음교회는 제가 일요일에만 오기에 주중에 이런 순서를 진행하기가 어려운데, 다음 주 부활주일에 세족식과 성찬식을 함께 병행하면 어떻게나 생각합니다. 세족식은 두 사람이 서로 발을 씻어주면 되는데, 해보면 신앙의 깊은 뜻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즘 개신교회들이 매주 성찬식을 행하는 교회들이 늘고 있는데, 오래 전에 들었는데, 미국의 어느 교회는 매주 세족식을 행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이번 주 성금요일 우리가 성찰해야 할 중요한 첫 번째 말씀은 이것입니다. 그건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그 곁에는 여인 몇 명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3년간을 동고동락했던 제자들은 모두 도망을 갔고 며칠 전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환호했던 군중들은 돌변하여 예수에게 침을 뱉고 십자가에 매달라고 소리를 쳤던 것입니다. 세 번이나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한 베드로의 이야기는 오늘 우리 자신의 나약함과 신앙의 배반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종려나무 가지는 예수를 향한 환호가 담겨 있긴 하지만, 거기에는 군중심리에 따른 배반도 숨어 있습니다. 

   

예수는 금요일 정오부터 오후 3시까지 십자가 위에 매달려 있다 돌아가십니다. 십자가 처형은 본래 페르시아의 사형법으로 죄수에게 최대한의 고통을 주기 위해 고안한 방식입니다. 로마는 이를 도용할뿐더러 마을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는 언덕 위에서 처형함으로 극도의 공포감을 갖도록 하였습니다. 보통은 3일동안 낮에는 뜨거운 태양열, 밤에는 차가운 광야바람 속에서 서서히 피를 흘리며 목마름과 기아의 고통 속에서 서서히 죽어갑니다. 사람들은 그 처절한 모습을 보지 않기 위해 눈을 감지만, 들려오는 고통의 소리마저 외면하기는 힘듭니다. 더구나 한밤중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저 신음소리는 온 동네사람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습니다. 어떤 경우는 일주일씩 가기도 하였다고 하니 저들이 경험하는 공포의 크기는 상상하기 힘들 것입니다. 게다가 저들은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엊그제까지 한 마을에서 함께 울고 웃고 지내던 가족이요 친척이요 지인들이었던 것입니다. 결국은 모든 힘이 빠져 고개가 앞으로 풀썩 꺾이면 공중을 선회하던 까마귀들은 그 머리에 앉아 눈을 쪼아 먹고, 들개들은 그 몸의 살점을 뜯어먹습니다.


[‘짜박흐타니’]


예수는 다행히 3시간 만에 돌아가셨고, 그리고 그의 시체를 안장하고자 하는 숨은 제자들의 도움으로 그런 비참한 상태는 모면하십니다. 사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부활로 빨리 건너 띠고 싶지만, 부활이 정말 부활다우려면 우리가 좀 더 예수님의 죽음과 그 고통에 다가설 필요가 있습니다. 4복음서 전체에서 십자가 위의 예수께서는 일곱 마디를 외치시지만, 그중 마가가 전하는 한마디가 가장 처절합니다. “엘로이 엘로이 라마 사박흐타니” 저자는 이 대목에서 그 죽음의 처절함과 외로움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헬라어 대신 예수께서 사용하셨던 아람어로 전합니다. 마르코는 가끔 사건의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아람어를 그대로 사용합니다. 탈리타 쿰(소녀야 어서 일어나라) 에파타(열려라). 


“엘로이 엘로이 라마 사바크타니”를 희랍어로 읽는다면 이렇게 됩니다. “오 떼오스 무 오 떼오스 무, 에시스 티 에그카데리페스 메” 십자가 외마디의 외침을 전하기에는 좀 길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리고 우리말 번역에는 ‘사박타니’로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보다 정확하게 읽으면 ‘짜팍흐타니’입니다. 우리는 지금 글을 문자의 내용으로만 이해하는데, 사실 글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소리입니다. 시를 소리 내어 읽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시편은 소리 내어 읽는 글이지 눈으로 읽는 글이 아닙니다. 저는 여기서 마가가 아람어로 굳이 표기하면서 강조하고자 했던 소리는 ‘크’에 가까운 ‘흐’라고 믿습니다. 중동의 언어에는 우리말에는 없을뿐더러 흉내내기도 쉽지 않은 뱃속 저 깊은 곳에서 나오는 거친 음이 있습니다. 사막지역에서 멀리 있는 사람에게 외치는 발음입니다. 사실 세종대왕이 발표했던 훈민정음에는 이런 굵은 소리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아래아(ㆍ) 소리입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일제의 식민지 지배 아래에서 이 소리가 사라졌습니다. 어쩌면 뱃속 깊은 뿌리에서 나오는 소리를 없앰으로 저항의 뿌리를 제거하고자 하는 일제의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 나름대로 추측을 해봅니다. 


실존주의 철학자 쇠렌 키엘케가르 Kierkegaard는 시인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시인이란 누구인가? 격렬한 고통을 가슴 속에 품고 있으나 탄식과 비명이 입술을 빠져나올 때는 아름다운 음악으로 들리는 불행한 사람이다.' 저는 이 마가야 말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탄식과 비명을 아름다운 음악으로 들은 불행한 시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헬라어로 이를 전했을 때 생겨나는 글의 번잡함을 피해 하나의 하늘 메아리 울림의 시상어로 들려지는 아람어로 전하고 있습니다. 마태 또한 아람어로 이 외침을 전하지만, 이어 다시 한 번 큰 소리를 외쳤다는 말을 덧붙임으로 마가의 의도를 희석화시켰고, 누가는 지혜를 찾는 이방인들에게는 이 고통의 외침이 걸림돌이 되겠다 싶어 이를 아예 빼버렸고, 요한 또한 이 외침을 로고스의 신적 언어 곧 ‘다 이루었다’는 승리의 선언으로 바꿔 버립니다. 이점에서 본다면 예수를 인자(人子) 곧 ‘사람의 아들’로 말해온 마가복음서가 역사적 예수에 가장 가까운 복음서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는 복음서에서 두 개의 외침 소리를 듣습니다. 하나는 축제 첫날에 울려 퍼진 군중들의 환호 소리 ‘호산나’이고 다른 하나는 ‘짜팍흐타니’입니다. ‘호산나’는 인간 집단의 승리와 희망을 노래하고 '짜팍흐타니'는 인간 개인의 실존적 고통을 대변합니다. 우리는 호산나와 짜퍅흐타니라는 이 두 소리 사이에서 살아갑니다. 십년 전 그리고 오년 전 많은 사람들은 이명박과 박근혜에게 호산나를 외쳤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앞에서 저들이 돌아섰듯이 지금 그 수많은 지지자들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어쩌면 우리 또한 세상에 관심을 두다 보면 우리 또한 그런 덫에 쉽게 빠질 수 있는 연약한 사람들임을 깨닫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호산나를 외치며 환호하다 끝내 예수를 배반하고 폭도 바라바를 풀어주고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쳤던 그 민중들을 일반 백성을 뜻하는 무자각적인 단어 ‘라오스(laos)’로 표기하지 않고 예수와 항상 함께 했던 ‘오흘로스(ochlos)’로 말하는 마가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도망친 제자들은 다름 아닌 예수살기를 다짐하고 있는 우리 자신들이라고. 


오늘의 시편 기자가 노래한대로 한주가 지나면 우리는 건축자의 버린 돌이 모퉁이돌이 되는 하늘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역사의 부활을 제대로 경험하기 위하여 ‘호산나’로 시작하여 ‘라마 짜퍅흐타니’로 끝나는 마가의 수난이야기 속에 숨어 있는 하늘 음성을 찾아내야 할 것입니다.


함석헌 선생의 ‘흰손’이란 장편시의 일부분을 인용함으로 오늘의 하늘뜻을 마치겠습니다.


이놈들아 갈보리에 흘렸던 피

그 피 내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 위해 네 몸 위에, 네 혼 위에, 흘려

네 피 된 산 피 말이지

네 만일 그 피 마셨다면야,

(왜, 내 살 먹어라 내 피 마셔라 않더냐?)

그러면야 지금 그 피 네 속에 있을 것 아니냐?

네 살에, 뼈에, 혼에, 얼에 뱄을 것 아니냐?

피는 한 방울 아니 묻고 표지만 든 흰 손,

아니 흘려서 아니 묻었구나

네 피 흘릴 맘 한 방울 없어

그저 남더러 대신 흘려 달래 살고 싶더냐?

대속(代贖)이라!

둘도 없는 네 인격에 대신을 뉘 하느냐?

내게 진 빚 나 모르게 너 혼자 줄치면

그 청장(淸帳)을 내 안다더냐?

힘은 아니 들이고 빌어 삶,

생각은 아니하고 ‘더라’만 이는 빎,

이름을 빌망정

삶을 어찌 빌 수 있느냐?

너 살고 싶으냐?

대들어라, 부닥쳐라.

인격의 부닥침 있기 전에

대속이 무슨 대속이냐?

그의 죽음 네 죽음 되고

그의 삶 네 삶이 되기 위해

부닥쳐라, 알몸으로 알몸에 대들어라!

벌거벗은 영으로 그 바위에 돌격을 해라!

네가 나를 믿거든 내 뜻을 온전히 이루라.

내 내 뜻을 ‘그’의 안에 말해 세상에 보냈노라.

네 내 아들 믿거든 그가 되라. 그가 죽었으면 너도 죽어라. 


다 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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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목사님의 설교 덕분에 함석헌님의 시를 찾아 [씨알소리넷(http://ssialsori.net)]까지 방문하였습니다. 「흰손」원문을 읽고 싶으신 분은 아래 링크를 따라 가십시오.
http://ssialsori.net/bbs/board.php?bo_table=0306&wr_id=116&sfl=wr_subject&stx=%ED%9D%B0%EC%86%90&sop=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