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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종교, 같은 신앙 / 새마갈노 소성리편지 08(2020.01.09)

도덕쌤 2020. 1. 20. 06:47

"나도 이제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나도 세례받았다.", "나도 예수님을 영접했다." 는 말을 듣게 되면 덜컥 겁이 납니다. 아! 또 한 영혼이 수렁에 빠진 것이 아닐까? 그가 아는 예수는 어떤 분일까? 그가 다니는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개종자 한 사람을 만들려고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하나가 생기면, 그를 너희보다 배나 더 못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마23:15)

오늘날 교회는 예수님 시대의 위선적인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로 가득차 있지 않습니까?


소성리에 내려와 가장 오래 생각했던 주제는 '하느님의 이름'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 가득찬 바리새인들은 그 이름은 오직 '여호와' 또는 '야훼'여야만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 다른 이름 '예수'는 그분의 아들로서 하느님과 동등한 분, 하느님과 삼위일체를 이루신 분, 하느님이 이 땅에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오셔서 가졌던 이름이지요. 그리고 하느님께 기도할 때,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모두 들어주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창세기 11장 1절에서 9절까지, 세상의 언어들을 혼잡하게 하여 사람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 이야기를 기억하시나요? 왜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하느님을 하나의 통일된 이름으로 부르기를 고집합니까?

우리 민족에게는 '환인'이나 '단군'으로, 인도에서는 '시바'나 '붓다'로, 그렇게 다르게 불려지면 서로 다른 존재인 것인가요?

출애굽기 3장 13-14절, 하느님의 이름을 묻는 모세에게 하느님은 "나는 곧 나다"라고 대답하십니다. 개역성경은 '스스로 있는 자'라고 번역했지요. 영어로 "I am who am I", 히브리어는 자음만 표기하여 'YHWH'로 썼고, 여기에 모음을 넣어 발음한 것이 '야훼', 여기서 파생된 또 다른 이름이 '여호와'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기독교의 하느님, 이름을 묻는 모세에게 "나는 나다"라고 말씀하시는 하느님은 노자 1장의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이라는 명제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게 아닐까요?


하느님의 이름에 대한 오랜 묵상의 결론은 "이름을 묻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름보다 중요한 것은 그 분의 가르침, 그 분께서 하신 일, 그 분이 하시고자 하는 일이란 얘기입니다. 

마태복음 11장 "오실 그 분이 당신이십니까?" 묻는 세례요한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가서 너희가 듣고 본 것을 요한에게 알려라." 대답하시며, "눈 먼 사람이 보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 환자가 깨끗하게 되며, 듣지 못하는 사람이 들으며, 죽은 사람이 살아나며,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듣는다."고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세례요한의 제자들을 보낸 후 요한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며 그 끝에 이렇게 한탄하시기도 하셨지요.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는 귀신이 들렸다' 하고, 인자는 와서,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니, 그들이 말하기를 '보아라, 저 사람은 마구 먹어대는 자요, 포도주를 마시는 자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다' 한다. 그러나 지혜는 그 한 일로 옳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그렇습니다. 그 이름이 다르더라도 같은 일을 하셨고, 같은 가르침을 주시고, 같은 일을 하시고자 하는 분이라면, 그 분들은 같은 분입니다.

우리에게 생명과 정의 평화의 길을 가르치고 같은 꿈을 꾸게 하시는 분은 그 분을 부처라고 부르든 알라라고 부르든 여호와라고 부르든 같은 이름입니다.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 자비를 베풀라고 가르치는 분들은 모두 같은 하느님입니다.

오히려 신앙의 대상을 같은 이름으로 부르면서도 서로 다른 신앙을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의 언어를 하느님께서 혼잡하게 하신 때문에 악마들은 같은 이름으로 서로 다르게 해석하게 만드는 전술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적그리스도는 빨간색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등장하는 마귀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말하기를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할 것이다.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분명히 말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물러가라.'"(마 7:21-23)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당신과 맘몬 중에 택일하라고 하십니다. 결코 "하느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고 하십니다. 

인간은 어떤 존재입니까? 이 세상이 어떤 세상입니까? 

인간을 자기가 살기 위해서는 부모형제자식도 죽일 수 있는 존재라고 가르치는 자는 악마입니다. 부모형제자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것이 사람이라고 가르치는 분은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은 예수를 통해 몸소 그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세상은 약육강식 생존경쟁의 아수라라고 가르치는 것은 악마입니다. 하느님은 약한 자를 살피시고 힘 있는자가 약한 자를 돌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1장 세례요한의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듣고 본 것을 전하라며 하신 말씀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기적이야기가 아니고 눈물 흘리는 자들의 눈물을 닦아주신 당신의 솔선수범에 대해서 전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영리추구를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제시하는 자본주의는 악마들이 제시하는 경제원리입니다. 약육강식 생존경쟁을 거쳐 제 힘으로 도달할 수 있는 제일 높은 사다리에 올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막고 있고, 노동조합을 적으로 규정합니다. 전쟁으로 먹고 사는 악마들이 전쟁을 일으키고 전쟁의 위기를 조장하며, 보다 강한 군사력을 갖추라며 수백만대의 자동차를 팔아야 벌 수 있는 돈을 전투기 한 대, 미사일 하나 갖다주고 빨아 갑니다. 


진밭교에 모여 아침마다 사드철회와 한반도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우리들은 우리의 종교가 서로 다를지라도 심지어 무신론자라고 할지라도 동일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소성리에 사드를 갖다놓은 놈들은 하느님의 이름을 도용한 악마들입니다.

우리의 기도, 우리의 투쟁에 응답해주시는 하느님께서 전쟁으로 먹고 사는 악마들로부터 세상을 구원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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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기지 공사저지 평화행동으로 몸살을 앓던 2018년 봄에 썼던 아침묵상글을 소개합니다.

"예수님을 따라 자기 십자가를 지려는 작은 예수들을 향하여 '혼합주의'라고 비난하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려는 작은 예수들을 향하여 좌익이니 종북이니 매도하면서, 작은 예수들의 특징 중 하나인 종교간 연대활동에 대해서도 '다원주의'니 '혼합주의'니 맹렬히 비난합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이 엄격하게 양자택일하라고 요구한 야훼신앙과 물신숭배 사이에서 둘을 교묘히 통합하여 둘 다 섬기고 있는 것은 바로 그 교회들이지요."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구원, 그리고 혼합주의 신앙(막 10:17-27)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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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도 달마산 정상 해맞이로 시작했습니다. 거센 찬바람 속에서도 꿋꿋이 버텨내는 사람들이 있기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습니다.



  해맞이 뿐만 아니라 새해 첫달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제835회 김천촛불 집회가 열리는 광장에도 서쪽하늘에 상현달이 걸려 있더군요. 다들 달보다는 광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시선이 가겠지만 달을 찍은 사진입니다. 아무튼 이 사진을 비롯하여 최근에 찍은 달 사진을 선물로 드립니다. 새해에도 모두 건강하시고 하느님의 부름에 응답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기도합니다.



출처 : 새마갈노(http://www.esw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