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고백/어쩌다 쓰는 일기

거창 갈릴리교회에 와 있습니다.(0316-0318)

도덕쌤 2017. 3. 19. 01:38

두 번째 피정을 떠났습니다.

이번에는 일정이 매우 유동적인 상태로 내려왔습니다.

박근혜가 청와대에서 내려오는 걸 보고 조금 편한 마음으로 내려올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미국이 사드무기를 막무가내 들여와서 사드반대 투쟁이 긴박해졌기 때문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피정 중에 성주로 가서 사드반대 예수살기 기도소를 책임져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마음 편하게 쉬러 간다고 할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이번에는 실상사에서 떠나는 날 유성일 목사님이 간곡하게 초청을 하여 갈릴리교회로 오게 되었는데, 유성일목사님의 상황이 마냥 편히 쉬어갈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유목사님이 지난 해 여러가지로 병고를 겪으면서 모든 활동을 내려놓을 정도였거든요. 

그러니까 피정이 아니라 상담 또는 회원심방의 성격을 띤 여행이랍니다.

아무래도 본격적인 피정은 사드 싸움이 끝난 뒤 다시 떠나야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도 어쨌든 피정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여행이니 있는 동안은 글쓰기에 몰입하려 애를 써 보렵니다.


어렵게 짐을 꾸리고 거창에 도착한 것은 3.16(목) 저녁 7:20. 출발이 예정보다 며칠 늦어졌었지요. 세월호집회(2015.4.16) 관련 집시법 위반 벌금형 받았던 것을 정식재판 청구하여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었는데, 이와 관련 형사보상 및 비용 청구를 법원에 접수하느라 늦어졌습니다.

어쨌든 거창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일단 버스시간표를 찍어두었습니다.

성주를 비롯하여 돌아다녀야 할 곳이 많을 것 같았기 때문이지요.

잠시 후 연락을 받은 유목사님이 차를 가지고 마중을 나오셨습니다.

씨알평화교회 전기호목사님과 저녁약속을 해 두셨더라고요.

씨알평화교회는 참 작은 교회였습니다. 그야말로 12제자만 들어서면 꽉찰 공간이었지요. 이렇게 작은 교회를 개척하시면서 예수살기를 실천하시는 목사님이 대단해 보였습니다.

식사를 하러 나오는 도중 거창군청 앞에서 세월호 촛불을 들고 있는 분들을 보았습니다. 전기호목사님도 거기에 함께 계실 분이었지만 오늘은 저를 접대하느라 미리 양해를 구했다고 하시네요. 전목사님이 안내하시는대로 해물순두부집으로 가서 맛있는 해물순두부를 먹었습니다.


늦은 밤 주변 풍경을 볼 수 없는 캄캄한 어둠 속을 달려 갈릴리교회로 향했습니다. 묵동마을 입구를 지나 콘크리트로 포장된 산길을 오르는데 헤드라이트에 멧돼지가보였습니다. 와우! 그렇게나 깊은 산중인가? 숙소에 도착하니 핸드폰이 통화권이탈로 표시되었습니다. 통화를 시도하니 서비스 가능 지역을 벗어났다고 하네요. 다행히 사무실의 컴퓨터 덕분에 와이파이는 가능해서 지도를 확인했습니다.

광주대구고속도로(88고속도로)와 감악산 사이에 감악산보다 낮은 대룡산이 있는데, 그 품안에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깊은 산골도 아닌데 왜 통화가 안 될까 궁금했지요. 다음날 3.17(금) 아침에 일어나 둘러보니 고속도로가 안 보이는 데다 좌우가 모두 능선으로 둘러싸고 있어서 별도의 중계기가 없으면 안 되겠더라고요.ㅠㅠ

아무튼 도착하고 보니 유목사님이 두레누리공동생활가정의 장애우들 가운데 한 분이 TV를 보다가 맞이해주었습니다.

저의 숙소는 공동생활가정의 목사님 사무실이었고, 목사님은 교회 옆 사택으로 올라가셨습니다.

밤이 깊어 곧 자려고 하는데 개들이 요란하게 짖어댔습니다. 멧돼지가 출몰하는 곳이니 밤이면 산짐승들이 가까이 내려오는지 마당에 묶여 있지 않은 어린 강아지 중에 제일 큰 놈이 여기저기 막 달려가면서 짖어대는 것이었어요. 동틀무렵 조금씩 밝아올 때까지 시간간격을 두고 개들이 짖어대는 통에 깊이 잠들 수가 없었지요.


아침에 일어나서는 유목사님이 내려와서 장애우들의 아침식사를 준비해주시고, 내게도 식사준비하는 요령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목사님이 네 명의 장애우들 가운데 할머니 한 분과 저만 남겨두고 세명의 장애우와 목사님 부부 다섯이 강원도로 2박3일 가족행사를 위해 여행을 떠나야 했기 때문입니다. 남아 계신 할머니와 내 식사는 나의 임무가 된 것이지요. 하지만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떠나시기 전 교회를 안내해주시고, 사모님과 인사도 나누고 사택도 구경시켜 주셨습니다. 사모님과 인사를 나누고 커피를 접대받았지요. 

교회도 아름답고, 경치도 그만인 곳인데, 목사님이 아픈 뒤로 교회에서 예배를 중단하여, 교회도 낡아가기 시작한 모습이고, 주변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모습들이 안타까웠습니다.

목사님이 떠난 후 숙소 앞의 개 여섯 마리에게 사료를 주면서 친해졌습니다.

점심때가 되어 할머니 점심을 차려드리려 했더니 어느 새 라면을 끓여 잡수셨더라고요. 라면을 드신다고는 하셨는데, 12시도 안 되어 그렇게 빨리 드실지는 몰랐습니다. 덕분에 저도 일찍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산책을 나갔습니다.


교회 뒤로 농장건물이 있고, 농장이 끝나는 곳에 이르니 숲속으로 편안하고 아늑한 산책길이 있었습니다. 산책길 끝은 아침에 둘러본 이웃길로 통해서 이웃의 네 가구들이 사는 곳으로 돌아내려오게 되어 있었지요. 그곳은 아침에 둘러 본 곳이었습니다.

아침에 통화가 가능한 곳이 있는지 찾아 교회입구 옆으로 길따라 올라가 보았거든요. 네 가구가 사는 지역까지 가서 여기선 되겠지 했는데, 안테나 막대가 한 개쯤 생겨 전화를 걸었더니, 바로 서비스 가능지역이 아니라면서 막대기 대신 불능코드가 뜨더군요.

아무튼 그길에서 만났던 새집이 생각났습니다. 나무위에 정말 멋드러지게 매달려 있더라고요. 등불을 안에 켜두면 멋있는 등불이 될 것 같았어요.

오후 숲속 산책을 하면서 또 그런 새집이 눈에 띌까 열심히 둘러보았습니다. 하지만 비슷한 것은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았답니다.


숲속 산책길까지 오르는 동안 농장의 밭들이 웃자란 잡초들이 가득한 묵정밭으로 변한 것을 보았습니다. 축사도 텅비어 있고, 교회앞 감나무도 꼭지만 달려 있는 것이 그 많은 감을 수확도 하지 않고 그대로 새들의 먹이로 내어준 게 틀림없었어요. 목사님이 병고를 겪으면서 예배만 중단한 것이 아니라 가축을 기르는 일도, 밭농사도 모두 쉬셨던 결과였습니다.

너무 안타까웠어요.ㅠㅠ


누군가 귀농을 하고 싶은데 집과 농토를 장만할 돈이 없어서 망설이는 분이 있으면 비어 있는 건물과 놀고 있는 밭이 이렇게 넓으니 와서 임대받아 농사를 시작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사님이 꿈꾸던 두레마을공동체가 그렇게 시작될 수 있겠지요?

어디 농사짓고 사는 꿈을 꾸는 분 있으면 소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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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은 할머니와 둘이 먹고 개들까지 먹이를 준 뒤, 일찍 잠을 청했습니다.

간밤에 잠을 설친 탓에 깊이 잠들었는데, 그래도 새벽 세시쯤 다시 개짖는 소리에 한 번 깼지요. 무시하고 다시 잠을 청했더니 아침에 눈을 뜬 게 일곱시 반이었답니다. 

부지런히 아침을 먹고 성주로 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지요.

성주에서 사드배치 반대 집회가 열리기 때문이었습니다.

전기호목사님이 차로 데리러 오시기로 한 장소까지 내려가는 길에 매화꽃을 보았습니다.

매화꽃 모습만 보여드리고 나머지 얘기는 다음 편에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