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고백/어쩌다 쓰는 일기

여섯 시간의 산행(2017.02.17)

도덕쌤 2017. 2. 18. 02:08


이것을 보려고 산에 올라간 것이었다.(⇪)


실상사 템플스테이 숙소에서 담벼락을 등지고 바라보면 왼쪽부터 중기마을 백일마을, 그 위로 하황마을 중황마을 상황마을이 있다. 상황마을을 가로질러 둘레길 인월-금계 구간 중 3코스가 지나가는데, 그 위로 백운산-삼봉산-투구봉-서룡산 능선이 병풍처럼 분지를 감싸고 있다.

실상사작은학교와 실상사작은마을이 중황마을 왼쪽에 자리잡고 있어서 늘 관심있게 바라보곤 했는데, 그 뒤에 병풍처럼 둘러싼 산위에까지 올라가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다만 워낙 높고 위에 눈이 덮인데다 산행 거리가 길어서 엄두를 못내고 있었을 뿐.


그런데 지난 14일 큰누님과 등구재-백운산-금대산-금대암에 이르는 코스를 밟아본 뒤로 욕심이 생겼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조금 생긴 것. 산위에 눈은 며칠 새 거의 다 녹았겠다. 남아 있어야 약간의 잔설 뿐이겠지.

더구나 오늘 아침 꿈에는 이름붙이기를 거부하는 그분께서 나타나셨다. 

그분의 진한 향기에 놀라 깨었는데 아무래도 당신의 사랑을 확인시켜주시려고 나타나신 것이 아닐까? 

아마도 그분이 나를 지켜주실 것이라는 자신감도 생겼다.


그래서 점심공양을 마치고 보온병에 오차를 가득채운 뒤, 슈퍼에서 구운달걀 2세트를 사서 등구재를 향해 나아갔다.

등구재 직전에 있는 집에서 '호피'라는 개를 다시 만났다. 14일 산행에서 길을 안내해주던 개. 고맙다고 인사하고 길을 떠났다.

처음 등구재에서 삼봉산까지는 3.1km 구간인데, 오르막이지만 작은 봉우리로 이어지는 능선길.

오르락내리락하며 숨가쁘게 가는데 저만치 삼봉산이 보인다. 아래서 보던 모습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

등구재에서부터 생각하면 거의 두시간 만에 도착한 듯. 인증샷부터 찍고, 주변 풍경을 담기 시작했다. 파노라마로 찍는 걸 좋아해서 몇장 찍어보았는데 천왕봉쪽 능선은 수목에 가리고 오른쪽 능선은 태양의 방해가 심하다. 함양쪽 창원마을 촉동마을, 더멀리 함양읍내, 남원방향으로 가는 도로, 그 너머로 멀리 남원 운봉, 더 너머로는 이름모를 산들이 멀리까지 보였으나, 지리산 연봉은 뿌옇게 윤곽만 보일 뿐 계곡이 선명하지 않았다. 

삼봉산 정상에서 위에 있는 사진들까지 찍고 하산길을 고민했다. 백장암까지 가고 싶은데 6km 이상의 거리였기에 3.1km에 두시간 걸렸으니, 네 시간은 잡아야할까? 그럼 7시? 너무 늦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능선을 타야 올라온 보람이 있잖아? 고민을 하다가 오르막길이 아니니까 시간을 더 단축할 수 있지 않을까 우기면서 그분의 보호하심을 믿고 투구봉 방향으로 발을 옮겼다. 물 한모금, 군계란 하나, 그렇게 세 개의 계란으로 영양을 보충하고 출발!

삼봉산을 출발하자마자 극심한 경사의 내리막길이었다. 눈은 거의 다 녹아 있는데 조금 더 가니 길이 얼어 있었다. 다만 낙엽으로 살짝 덮힌 구간이 있었지. 거기서 엉덩방아를 찧고말았다. 

그래도 투구봉까지는 2.5km정도 되는 거린데 상당히 양호하게 갈 수 있었다. 거의 한시간 정도. 

나머지 4km 정도는 두 시간 잡아도 여섯시 전에는 백장암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는 중간에 시야가 좋다고 생각되는 곳에서 사진을 찍어가며 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1시간만에 주파했으니 자신감이 생겼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투구봉 직전에서 잠깐 함양쪽으로 내려가는 길로 리본들이 줄을 이어서 길을 잠시 헤맨 것. 50여 미터 내려갔다가 아무래도 아닌 듯해서 다시 올라왔더니 에너지 소비가 극심했다. 

다시 올라와서 오르막길을 걸어 올라가자 마자 곧바로 나타난 투구봉. 투구봉에는 송신탑이 태양광발전패널과 함께 서 있었다.

인증사진을 찍었는데 너무 무리하고 있다는 증거가 입가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여기서 본 지리산이 가장 보기 좋았다는 것.

파노라마 사진도 무리없이 찍었다. 그래 바로 이것을 보기 위해 올라온 거지!!!



자 이제는 서룡산 방향으로! 열심히 나아가는데 서룡산 정상 조금 못미친 지점에서 새들이 떼지어 앉아 있거나 상공을 선회하며 비행하는 모습을 보았다. 삼봉산에서부터 까마귀들의 비행솜씨에 감탄하고 있었는데 카메라에 담을 절호의 찬스였다. 울음소리를 들으니 까마귀만 있는 게 아니었다. 어제 수덕사 불자들이 방생한 꿩들이 여기까지 날아왔는지 꿩!꿩! 울음소리와 함께 장끼와 까투리가 화답을 하고 있었다.(⇩) 사진과 동영상을 담느라 지체했다.



그리고 곧이어 나타난 서룡산 정상 표지.(⇩)

인증사진을 찍고 나아갈 방향을 찾는데 백장암으로 안내하는 표지가 없다. 얼마나 남았는지 거리표시도 없고.

여기서부터 또 고생이었다. 시간을 보니 네시 반 정도 되었는데, 1시간 반 이내에 내려가야 하는데, 미리 검색했던 지도에 따르면 2km 정도 되는 거리였으니, 시간은 얼추 될 것같은데, 문제는 길에는 안내표지가 없고, 핸드폰 카카오맵은 등산로까지 보여주질 않는다. 네이버지도앱을 그 추운 능선에서 다운받아 설치하고 다시 확인하는데 역시 마찬가지다. 

아침에 꿈에 나타나신 그분의 가호를 빌며 간절한 마음으로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이제 내리막길은 시작되었는데, 인월방향과 서진암 방향, 삼거리가 나왔다. 

인월쪽은 백장암 가는 길이 아니지! 서진암 방향으로 한참을 가는데, 해가 넘어가려면 2-30분 남은 것 같은 순간에, 오른쪽 계곡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보였다.

할렐루야! 한참을 내려가니 평평한 편한 오솔길이 펼쳐지는데 문제는 삼거리였다. 과연 어느쪽일까? 산내방향으로 더 나아가야 하나 인월방향으로 틀어야 하나? 현위치를 알 수가 없어 네이버지도앱을 켜니 백장암에서 이어지는 오솔길이 나타나고 그 가운데 내가 있는데 어느방향인지를 알 수가 없어 앱을 켜고는 산내방향으로 가 보았다. 한참을 가서야 지도상의 내위치가 움직이는데 아뿔사 반대방향일세.

어쨌든 방향을 찾은데다 길은 비교적 편하고, 안심하고 한참을 가다보니 이번엔 평평한 길과 계곡쪽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나왔다. 해는 떨어져 이제 잔광에 의지하여 내려가야 하는데, 평평한 길이 백장암으로 가는 길일 것같기는 했지만 도착하면 깜깜해질 것같아서 계곡길로 내려가는 게 지름길이겠다 싶었다. 그 사이에 마지막 물도 떨어지고 마음이 급했다.

서둘러 내려가는데 아직 비교적 잔광이 환한 상태인데 계곡물이 보였다. 목이 마르다. 어찌할까? 잠시 길에서 벗어나 계곡으로 내려가 보온병에 계곡물을 담았다. 물맛이 정말 좋았다. 두 컵을 연거푸 들이키고는 보온병에 가득채워 길을 떠났다.

한참을 내려오니 18:20, 드디어 백장암으로 올라가는 차가 다니는 길과 만났다. 얼마나 반가운지.

그 시간에 숲이 어떤 상태였는지 보여주고자 사진을 찍었다.(⇩)

그 길에서 남은 계란 세 개와 보온병의 물을 충분히 마시고 천천히 걸어내려왔다. 위에서 내려오는 차를 얻어탄 시간이 18:50. 그런데 불과 200m쯤 내려오니 큰길이었다. 백장암 입구.

버스로 갈아타고 장항마을에서 내려 히말라야카페에서 요기를 했다. 실상사는 공양시간이 지난지 이미 오래. 짜이와 라씨와 파운드케잌을 먹고 힘을 내어 산내면의 식당으로. 라면이라도 더 먹어볼까?

아! 그런데 현금이 없다. 겨우 있던 현금 3000원을 다리가 아파 택시비로 쓰고나니 카드밖에 없네. 

식당에서 곶감을 팔던 게 생각나서 곶감을 주문하면서 라면값도 함께 얹어 계산하려고 했는데 곶감은 진작에 매진이라네.

메뉴에도 없는 라면을 부탁하며 카드로 결제하기가 쑥스러워서 결국 그냥 포기하고 실상사까지 만수천(람천이라고도 한다)변을 걸어 실상사까지 왔다.

밤하늘의 별은 총총하고 멀리 천왕봉 능선이 그림처럼 아름다운데 핸드폰카메라로는 겨우 이 정도.(⇩)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씻고, 세탁기 돌려 빨래를 널고, 세탁기 도는 동안 카톡으로 오늘 하루를 여러곳에 보고하고 11:00쯤부터 누웠는데, 너무 피곤해서 잠이 안 오는 건지, 생각이 많아 잠이 안 오는 건지, 한 시간이 넘게 뒤척뒤척.

뒤척이고 뒤척이다 "에라 일기라도 쓰는 게 낫겠다" 싶어서 지금까지 블로그에 매달려 있다. 이제 잠이 올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