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고백/어쩌다 쓰는 일기

삼정산에 오르다(2017.02.21) + 서울로(2012.02.22)

도덕쌤 2017. 2. 23. 14:22


서울로 올라가기 전 약수암 뒷편 삼정산에 오르고 싶었다. 

처음 실상사에 와서 약수암을 다녀간 그날부터 약수암 뒷편으로 이어지는 삼불사-문수암-영원암 등으로 이어진다는 지리산 암자순례 코스를 걸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해강스님이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코스라 길이 어떨지 모르겠다며 단단히 준비하지 않으면 힘들 거라고 살짝 겁을 주는 바람에 매일 밑에서 바라보기만 했었지.

등구재-삼봉산-투구봉-서룡산-백장암입구 그 긴 코스를 소화해 낸 덕에 자신감을 가지고 도전하게 되었다. 

이번엔 아예 오전에 출발하여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자. 손전등도 가지고 가자. 스틱과 지팡이도 준비하자. 간식거리도 미리 싸 두어야지.


그런데 전날 마음이 설레어선지 잠이 안 왔다. 결국 두 세시까지 잠을 못자고 글을 쓰면서 미리 싸 둔 간식거리를 먹어버렸다. 남은 건 구운계란 두 세트.

그마저도 새벽에 결국 못 일어나고 아침 공양시간을 넘겨 아홉시쯤 기상하게 되면서 구운계란도 네 개를 먹어버렸네.

이러다가 아예 못가지 싶어, 대충 씻고 공양간에 가서 따듯한 오차부터 보온병에 담아가야지 서둘러 나왔다.


공양간 보살님들이 보시더니 아침도 못먹고 점심도 안 챙기고 어딜 가느냐고 걱정하시더니 주먹밥이라도 싸주시겠다고 하셨다. 죄송해서 어쩌냐며 고맙다고 인사를 드리며 오차를 병에 담는데 너무 서두르다 보온병의 속마개를 빠트리고 온 걸 발견했다. 이런! 정신 없는 놈!

숙소까지 갔다오니 그 사이에 공양간 보살님들이 주먹밥에, 고구마에, 요거트에 단무지까지 싸 주셨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있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약수암으로 향했다. 출발시간은 결국 10:30. 예정보다 조금 늦었다.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해강스님께 인사를 드리려 했는데 해강스님은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내려가셨나 체념하고 좀더 일찍 산으로 오를 수 있게 된 걸 다행으로 생각하자 하고는 해우소 옆 오솔길로 나아갔다. (11:20)

오솔길을 따라가는 길은 왠지 편안한 둘레길 같은 기분이었다. 너무 편했다. 왼쪽으로 마천가는 차도와 나란히 가는 중이었다. 느낌이 이게 아닌가보다 싶어 지도앱을 켜서 들여다 확인해보니 등산로가 아니었다. 다시 약수암쪽으로 되돌아가는데 시간을 허비한 게 아깝지는 않았다. 솔잎이 쿠션처럼 깔린 오솔길의 느낌이 너무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등산로로 오르는 길을 찾아 길을 제대로 들어선 것이 11:40. 약수암에서 경내를 정숙하게 유지하고, 주변에 심은 장뇌삼을 보호하고자 등산객들은 약수암을 돌아 가도록 만들었는데, 오솔길이 너무 좋아서 옆으로 올라가야 할 길을 놓쳤던 것이었음을 확인했다.

산길을 천천히 오르며 인드라망의 세계에 대해 묵상하였다. 

그 동안 실상사에서 만난 분들과, 산행 중에 만났던 개들과 새와, 지난 야하나수련회에서 만난 분들, 나를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분들을 떠올리며 걷는 중에 느닷없이 가슴에 묻어둔 첫아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럼 나 그냥 오줌싸고 말거야!"

항암주사를 못견뎌하며 주사를 안 맞겠다는 아들에게 억지로 주사를 맞게 했을 때, 기껏 자신의 분노를 표현한다고 했던 아들의 말이었다. 대항할 수 없는 힘에 비폭력저항의 정신으로 내뱉은 항의였을 것.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통곡이 쏟아졌다.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미안하다. 미안하다" 소리높여 사과했다.

5분이 채 안되어 가슴이 좀 시원해지면서, 왜 이런 일이 생긴건가 되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오늘 실상사에서의 마지막 산행도 그분이 인도하고 계시다는 믿음이 생겼다.  

12시를 넘기자 슬쩍 배가 고파왔다. 마침 먼저 간 등산팀들이 매어놓은 리본이 가득한 쉼터를 발견했다. 짐을 풀어놓고 먼저 고마운 마음으로 기억을 해 두어야지, 사진을 찍었다. 공양보살님들이 싸주신 점심, 오차가 담김 보온병, 실상사의 대나무에 등구재-백운산 구간에서 주운 공구를 조합하여 만들어 낸 지팡이.

보살님들의 싸 주신 주먹밥이 아직도 따뜻했다. 네 덩이를 다먹기에는 조금 배부른 듯했는데 맛있어서 그냥 다 먹었다. 그리고 다시 출발. 12:30.


조금 올라가니 갑자기 시야가 툭 터진 곳이 나왔다. 

높이는 7-800미터 되는 곳이었는데 진주강씨 은렬공파 묘동이었다. 가문의 집단묘역을 조성하느라 주변의 수목을 모두 쳐내고 시야를 확보해 최고의 전망을 보여주는 곳이었다. 

'참전경찰 국가유공자라'는 글씨를 보니 돌아가신 아버님이 생각났다. 아버님이 지리산 빨치산토벌대로 참여하여 주둔했던 곳이 남원 산내면이었다고 알고 있다.

그 당시 받은 훈장으로 아버지가 국가유공자로 등록된 것이 막내가 대학을 졸업한 뒤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유공자 혜택을 못받고 자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함양,인월 방향으로의 시야가 너무 좋아서 며칠 전 올랐던 산능선들이 모두 시야에 들어왔다. 아! 바로 저기였구나!
다시 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생각지 못한 갈림길을 만났다.

핸드폰의 지도상으로는 삼불사방향으로 가는 길만 표시되어 있었는데, 이곳에서 삼정산 정상방향으로 화살표가 있는 표지판을 보았다. 

정상방향으로는 물론 사람의 발길이 닿은 흔적이 적었다. 

심하게 갈등을 했다. 편한 길이냐, 정상길이냐!

시간은 1:20. 지도상의 거리로 보면 삼불사까지나 삼정산까지나 거리는 비슷하게 남은 것 같았다. 500M 정도. 돌아가봐야 1km만 더 걸으면 될 것같은데, 문제는 등산로가 지도에 표시되어 있지 않은 것.

결국 정상길을 택해 올랐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거기서부터 고생이었다. 가파르기가 60도 경사처럼 느껴지는 걸 보아 실제 경사는 40도쯤 되었겠다. 암벽으로 된 봉우리를 몇 개를 감돌아 넘어야했다. 아래의 묘동에서 본 만큼 시야가 좋은 곳도 별로 없었다. 

드디어 미끌어지며 기어오르며 암벽등반하듯 해야 한 코스 앞에서는 정상을 선택한 나의 선택을 후회하기에 이르렀다. 나중에 어떻게 내려가지?

그래도 다행인 것은 오르는 도중, 오늘의 목적지 삼불사로 보이는 건물을 확인한 것이고, 암벽을 오르다 자연이 조각해놓은 마애삼불상처럼 느껴지는 암벽면을 발견한 것이었다. 크기가 작아 장갑을 벗어 크기를 비교할 수 있게 사진을 찍었는데, "자연이 조각해놓은 마애삼불상"이란 나의 표현에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삼정산 정상 가까이에 좁지만 시야가 확보된 암봉이 있어서 다시 한 번 파노라마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1112M 고지였던 것같다.

내려갈 길을 생각하면 너무 아찔해서 도로 내려갈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삼불사-문수암-상무주암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통해 내려갈 생각을 하고 그쪽으로 생각되는 곳을 눈여겨보아두었다.

아직 삼정산은 저만치 앞에 있었다.


몇 개의 작은 봉우리를 감돌아 앞으로 나아갔는데, 시야가 좋은 곳도 없고, 가도가도 앞에는 더 높은 봉우리가 계속 보였다.

삼정산은 지리산 종주능선 중 명선봉과 형제봉 사이 삼각고지에서 북쪽을 향해 갈래를 뻗은 능선 중에 있었다. 계속 더 높은 봉우리들이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 

지도를 확인하니 삼정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 1156.2M지점은 지나쳐 있었다. 

시간은 14:11. 이 능선을 따라 진행하면 상무주암-문수암-삼불사 코스까지 두 시간도 넘게 걸릴 듯 했다. 

도저히 이건 아니다 싶었다.  

"방향을 틀자. 계곡처럼 보이는 곳 있으면 무조건 길을 뚫고 내려가자. 직선코스로 내려가는데 성공하면 1시간이면 충분히 삼불사에 도착하겠지."

(위의 그림 중 지도그림은 내 위치를 지도에서 확인하여 화면캡쳐한 후, 나중에 내려와서 그림판에서 내가 진행한 길을 화살표로 표시해 본 것이다.)

요거트 하나와 구운 계란 두개를 남기고, 나머지 간식을 모두 먹었다. 물도 몇 모금만 남겨두고 다 마셨다. 일단 원기 충전 후 출발!!! 

드디어 계곡이 보이는 곳에서 길도 없는 가파른 비탈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약 50m쯤 내려가니 계곡이 시작되었다. 가능하면 바위와 바위로 이어지는 길을 택했다. 그렇지 않으면 낙엽이 두껍게 쌓여 푹푹 빠지기 때문에 얼어 있는 곳을 택했다. 덩굴이 길을 막으면 지팡이로 들어올리며 길을 뚫었다. 

거의 40분만에 만난 삼불사로 넘어가는 등산로! 

오, 전신주에 전선이 이어져 달리고 있는 등산로에 닿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삼불사로 가는데 그 사이 얼마나 몸이 긴장했었는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물을 보온병으로 두 병이나 들이키고 삼불사 앞으로 펼쳐진 풍경을 담기 시작했다. 오른쪽으로는 천왕봉, 왼쪽으로는 백운산이 시야의 한계였으나, 맑고 깨끗한 시야에 아담한 요사채, 현대에 이르러 조성된 것이긴 하지만 운치있는 탑 등, 이곳에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15:00쯤 삼불사를 떠나 약수암으로 다시 돌아가는 방향을 선택했다. 처음 길을 떠날 때는 도마마을로 내려갈 생각이었으나, 해강스님께 인사드리지 못한 것이 아쉬웠기 때문이었다.

오늘 고생이 시작되었던 갈림길까지 오니 15:30. 아까 긴장속에 무리가 갔는지 오른쪽 무릎에 통증이 오기 시작해서 걷는 속도가 늦어졌다.

오르면서 보았던 모습들을 다시 확인하며 내려가는 길이라 그래도 마음은 편해졌다. 올라갈 때 까투리를 만난 곳이 어디였는지 기억을 더듬으니 헷갈리긴 했지만 다시 솔잎이 쿠션처럼 깔린 길에 이르르니 마음이 놓였다.

오르던 길에 통곡을 쏟아낸 기억이 떠오르며 다시 눈물이 배어 나왔다.

차라리 소리내 통곡을 하라는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다시 한 번 소리쳐 사과하며 눈물을 쏟아냈다.

가슴이 시원해질 때까지 그렇게 쏟아내고 나니 왜 지리산을 어머니같은 산이라고들 하는지 새삼스럽게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16:30쯤 약수암에 도착. 다시 약수암 약수를 보온병으로 한병 가득 마시고 또 한병을 담은 후, 해강스님을 찾았다.

한참만에 부엌쪽에서 나오시는 해강스님께 시간이 없어 인사만 드리고 간다고 말씀드리니 입구까지 배웅을 나오셨다.

약수암을 떠나 이제 실상사까지는 차가 다닐 수 있는 큰 길.

약수암을 출발한지 3분도 안 되어 거창의 유성일목사님이 전화를 걸어오셨다.

서울 올라가는 길에 함양에서 만나 점심을 먹기로 약속하고 오늘은 일단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겨우 저녁 공양시간에 맞춰 공양간에 들어갈 수 있었다.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리고 공양을 받은 후, 씻고 세탁, 정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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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오던 길도 이야기를 덧붙이고 마무리해야겠다.


아침에 일어나니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졌다.

새벽예불 드리고 세월호기도단도 참배하고 아침공양하고, 짐싸고 청소하고 --

주지스님, 종무소 골고루 인사드리고 출발하려는데 쌀알 반쪽 크기의 얼음조각이 빗방울처럼 쏟아졌다. 싸래기라고 해야할지 우박이라고 해야할지.


오른쪽 무릎통증이 심했다. 가방의 무게는 너무 무거워 꿀 작은 것 한병을 사서 넣었더니 완전히 멜빵끈 고리가 깨져버렸다. 그 무거운 가방을 들고 버스를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겁났다. 그래도 어쩌랴. 그냥 가야지.

저만치 산을 감고 오르는 비안개를 찍고 있는데 정류장에 안내된 시간표보다 8분 일찍 버스가 왔다. 허겁지겁 버스에 올라 함양으로 향했다.

함양에서 유목사님을 만났다.

목사님은 흑돼지떡갈비를 사주셨다. 

다음 두달간의 피정은 목사님에게로 오라고 권해주셨다. 

목사님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죽암휴게소에서 잠시 쉬는 도중에 갑자기 운전할 때 고충을 느꼈던 선글라스 문제를 간단히 해결해줄 제품을 보았다.

반가운 마음으로 구입했다. 날도 흐린데 선글라스를 끼고 어떤 모습인지 궁금해 찍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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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서울 도착. 가족들의 환영을 받으며 조촐하게 환영파티를 하고 바로 잠들었다. 무릎의 통증이 심하게 느껴져 자정쯤 일어나 홍삼파스 세개로 무릎을 감싸주고 다시 취침. 아침을 먹은 뒤에도 손주가 깨울 때까지 계속 잠만 잤다.


때맞춰 구글포토가 한달간의 지리산실상사 피정기간을 동영상으로 자동편집해서 보여준다. 잠시 전주 야하나수련회에 갔던 일도 생각나는 장면이 들어 있다. 전주에서 찍은 하모를 닮은 강아지! 고마운 구글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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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촛불교회에 나갈 시간이다.

무릎 통증이 빨리 가라앉기를 기도한다.

무릎이 내 사과를 받아들이고 용서를 해줘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