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시

몽돌해변에서

도덕쌤 2021. 4. 20. 11:50

[몽돌해변에서]

 

  첫 교실, 첫 수업
  130개의 눈동자가 모두 나를 바라보고 있던 
  그날의 감격은 오래가지 못했다.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 차라리 배부른 돼지가 되겠다고
  모두가 꿀꿀 거리는 교실에서
  '쇠 귀에 경읽기'로 지쳐가다가
  끝내 나는 돌멩이가 되었다.

  사람이 되자고
  사람답게 살자고
  사람이라고 다 사람이냐 사람다워야 사람이지
  라고 말할 때

  10개의 눈동자는 본드에 취해 눈이 풀려버렸고
  20개의 눈동자는 가수들의 뒷모습을 쫓아가고 있었지.
  40개의 눈동자는 사다리 디딜 자리 찾느라 분주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떨어질 사다리.

  50개의 눈동자가 내게 물었지
  사람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나면 사람인 게지
  사람답다는 게 뭔 얘기여?
  당신은 독재자라 소리치며 귀를 닫았다.

  모든 욕망이 똘똘 뭉쳐 바위가 되고
  바위들이 모여 견고한 성채가 되어가는 그곳에서
  "예언하는 입들이 모두 닫히면 이제 돌들이 말하리라"
  바위가 되어버린 수만의 눈들을 향해
  돌멩이가 쏟아내는 예언, 그 한숨과 고함과 신음을 토해냈다.

  우이독경이 바위벽을 향한 설법으로 진화해 갈 때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어느 유치한 시인의 노래를 유치하게 따라 부르다가
  나는 차라리 골리앗 이마에 꽂히는 물맷돌을 꿈꿨다.

  그래. 130개의 눈동자 중 남은 10개는 어찌 되었냐고?
  남은 10개의 눈동자는 길을 떠났다.
  사람-사랑-삶, 그 길을 찾아 떠났다.
  그 후의 일은 나도 모르지.

  사람을 깨뜨려 자갈로,
  그 자갈 시멘트에 부벼넣어 콘크리트 속에 가두는 세상
  바위가 깨어져 자갈도 되고 짱돌도 되고
  10개의 눈동자도 그렇게 돌이 되어 가고 있을까?

  강산이 너댓 번 바뀔만한 세월 흘러갔는데
  너희도 날아가고 부딪치고 깨지고 던져져서 
  구르고 굴러 이 바닷가에 다다를 수 있을까?

  오! 상처투성이가 된 아이들아
  오너라! 몽돌들 노래하는 바닷가로 모이자.

  그 아수라 지옥에 빠지지 않고
  평화의 바다에 도달한 이들 있으니
  그들이 들려주는 노래에 귀기울여보자.
  시인의 경 읽는 소리 자장가 삼아 
  달고 깊은 잠을 자 보자.

  초롱초롱 빛나던 눈 다시 만나서
  첫교실 첫수업의 감격을 되살려
  너희가 만났을 사람닮은 짐승들에 대해 얘기하자.
  우리 차라리 몽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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