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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역작은 무협지가 아니라 역사서이다. 필독님도 중간에 논문의 각주처럼 참고자료들을 소개하고 있는 바, 이 글을 역사소설로 착각하는 이들은 필독님을 모독하는 '나아쁜 놈'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협지독후감]이라는 카테고리에 독후감을 남기는 것은 무협지보다도 훨씬 흥미진진하게 읽었기 때문이다. [낙서장이란 카테고리를 개설하며]에서 밝혔듯이 홍대선(필독님의 진명인 듯)님이 쓴 <한국인의 탄생>이란 책을 소개하는 글에서 " ‘테무진 to the 칸’에서 보여줬던 재기 넘치는 분석과 입담"이란 표현에 낚여서(?) 읽기 시작했다. 글을 읽는 동안 그 동안 빠져 있던 무협만화, 무협소설에서 벗어나올 수 있었고, 이제는 딴지일보에서 필독님이 썼던 글들로 시간을 보내려 하고 있다. (기사 검색에서 fielddog이란 이름으로 찾아보니 무려 220편 가까운 글이 있다. 24편의 테무진 to the 칸을 읽었으니 170여 편의 글이 날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한국인의 탄생>까지 포함하면....) 얼마나 열심히 읽었냐면 버스안에서도 이걸 읽느라 버스가 어디쯤 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완독하는데 일수로는 3일이 걸렸는데 아무튼 그 동안 [오블완] 이후 날마다 글을 쓰자는 결심을 실천하지 못했다. 웬만하면 좀 보자는 부름에도 응하지 않았다.
흐미! 재미진 것!
이제 [무협지독후감]이란 카테고리도 이름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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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기 시작한 처음에는 "경제는 가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정교한 시스템에 의해 돌아가지, 가카가 가끔 시장에 출현해 군것질한다고 돌아가지 않는다. 외교는 ‘두 사람이 척 보는 순간 서로의 마음을 알아서’ 해결되지 않는다. 국민은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한다고 해서 그의 말을 따르지 않는다."는 가카를 향한 충정어린 충고에 반했다.
곧 이어 제1화의 제목 [짓밟힌 소녀]의 주된 내용, '약탈혼'의 결과로 태어난 테무진을 얘기하기 위해 테무진의 엄마 헐룬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에서 데릴사위제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오늘날 사랑이 결혼의 제일 조건이 된 문화에 길들여진 나의 생각에 또 다른 충격을 준 결혼 이야기들이었다. 흥미진진한 얘기들을 계속 읽어갈 악셀레이터가 되기에 충분했다.
헐룬은 어떻게 예수게이와의 결혼생활을 지속할 수 있었을까?  [7인의 신부]라는 제목의 영화가 떠올랐다. 테무진의 결혼 이야기도 그렇다. 데릴사위로 들어간지 1주일 만에 헤어진 테무진이 7년이 지난 뒤에 다시 보르테를 만나 맺어지는 대목에서는 "그렇지. 역시 사랑이야." 그랬다가, 제7화 [아내가 결혼했어요] 보르테를 빼앗기고, 제8화 [복수는 나의 것] 다시 되찾아오는 대목에서는 "사랑과 목숨 중에 뭐시 더 중한디?" 생각이 복잡해졌다.

필자 필독님은 어떤 이유로 테무진에 꽂혔던 것일까? 
나는 어떤 이유로 무협지에 빠져 있었던 것일까?

마지막 제24화 [에케 몽골 울루스]는 "테무진 to the 칸"이라는 역사서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는데, 테무진의 인생역정을 몇 줄로 요약해서 설명하고, 그가 성공한 이유를 복기해주면서, 그가 만들어낸 법령 '얏사'를 살펴보며 그는 어떤 사회를 만들어내려 노력했는지 설명하고 있다.
테무진의 인생역정에 대한 이야기다.

테무진은 아버지를 잃은 고아였다. 그는 지옥 같은 포로생활과 도망자 생활을 거쳤고 아내를 빼앗겼고 화살에 목이 꿰어 죽을 뻔하기도 했으며, 전쟁에서 몇 번의 결정적인 패배를 당했다. 노인이 다 된 나이에 불과 19명의 부하만 남아 흙탕물로 갈증을 푼 적도 있다. 테무진은 자무카라는, 더없이 뛰어난 친구이자 라이벌을 만나 반 평생에 걸쳐 생사를 넘나드는 대결을 펼쳐야 했다.  //  그토록 많은 절망과 실패, 불운을 겪고 결과적으로 성공한 인물은 테무진이 유일무이하다. 그 성공의 크기는 가늠키 어려울 정도로 폭발적이다.

테무진이 성공한 이유에 대한 얘기다.

그가 성공한 이유를 한 번 복기해 보자.  //  헐룬은 자기 자식인 테무진의 장점을 찾는 데 애를 먹었다. 운동에도 재능이 없고, 특별히 용감한 것도 아니다. 아이들의 최고의 친구라고 할 수 있는 개를 무서워해 부모들이 신기해 했을 정도니 말 다했다. 도대체 얘의 어디가 뛰어나다고 칭찬해야 하는 걸까? 헐룬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  테무진은 가슴에 재능이 있다.

"가슴에 재능이 있다"는 말을 설명하기 위해 필독님은 인체의 각 부위가 인격의 어떤 요소와 관련되어 있다고들 믿어 왔는지 보여주는데, 사람의 가슴 - 심장은 선과 악, 양심이 자리한 곳이라는 믿음을 얘기한다. '염통에 털난 놈'이라는 우리의 속담을 인용한다. 그리고 이렇게 정리해준다.

선과 악에 재능이 있다라... 이게 대체 뭘까. 아예 착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쁜 것도 아니고 말이다.
중세 몽골 초원엔 '보편적 도덕률' 같은 철학적인 개념이 없었다. 다시 말해 지구상 어디에서도 해서는 안 되는 보편적 악이나,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언제 어디서나 실천해야 할 옳은 일 같은 건 없었다. 중세 몽골인들에게 도덕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다. 내가 이런저런 사람들과 관계 하면서 맺는 '약속'이다. 몽골 전사들에게 다른 부족을 기습해 약탈하고 학살하는 건 죄가 아니었다. 나는 그 사람들과 아무 약속도 한 게 없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중세 초원의 도덕은 '조폭의 의리', '조폭의 도덕'이었다. 
'가슴에 재능이 있다'는 헐룬의 말은 테무진이, 자신과 관계를 맺는 사람들을 대하는 데 남다른 면모가 있다는 얘기다. 누구도 억울하게 하지 않고, 누구한테나 같은 원칙으로 대한다. 테무진은 공정하다는 뜻이다.

내가 무협지에 빠지듯이 테무진 이야기에 빠진 이유를 알겠다. '조폭의 의리', '조폭의 도덕'. 나의 ‘☉人리’라는 세계에 편입된 사람들에게는 칼같이 약속을 지키며, 그 ‘☉人리’라는 세계를 끝없이 확대해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가 세상을 살아가는 원칙은 지극히 단순하다.
" ‘☉人리’가 평화롭게 살았으면 좋겠다. 먹을 것 걱정하지 않고 살아가면 좋겠다. 그런 세상을 위해 한 알의 밀알이 되어도 좋다."
이 단순한 소망은 사실 세상을 약육강식의 원리가 지배한다고 믿는 사람들에 의하여 불가능한 유토피아를 꿈꾸는 철부지들의 생각으로 치부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내가 즐겨 읽는 무협지는, 그리고 이번에 읽은
"테무진 to the 칸"이라는 역사서는 그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문맹인 테무진이 제정한 법령 '얏사'의 몇몇 내용이다.
필독님이 소개해 준 법령의 내용에 이런 것들이 있다. 

- 어떤 몽골인도 다른 몽골인을 노예로 삼을 수 없고, 어떤 몽골인도 다른 몽골인의 노예가 될 수 없다.
- 전면적이고 완전한 종교의 자유를 선포한다.
- 여성을 빼앗거나 재물을 주고 사와 결혼할 수 없다. 즉 약탈혼과 매매혼을 강력 금지한다.
- 살인, 강도, 절도, 폭행, 강간, 간음 등 동서고금의 보편적인 상식에 반하는 행동은 당연히 금지되었다.
- 가축을 훔치는 것은 당연히 불법이다. 남이 잃어버린 가축을 발견하면 반드시 주인을 찾아 돌려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절도로 간주된다.
- 초원의 모든 야생 동물을 백성이 공동 소유한다.
- 지금부터 몽골에 서자, 사생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각각에 대한 필독님의 해설까지 인용해야 했으나, 자세한 내용은 직접 찾아가 읽어보기 바란다. 얼마나 감동적인 내용이었는지 그 당시의 사회상에 비추어 보아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굶는 사람이 있어선 안 된다. 백성의 생존은 국가가 책임진다.>는 정책이 실재로 추진되고 실현되었다며, 필독님은 "
글타. '계약의 인간' 테무진은 약속과 의리를 개인과 국가로까지 확장시켰다. 그 결과 수백 년 진보의 역사를 훌쩍 건너뛰어, 13세기 초원에 난데없이 복지국가가 출현해버렸다."고 덧붙이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
하나라도 법령에 저촉되면 저지르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사형>"이라는 조항이 있었는데, 이런 무시무시한 조항이 왜 생겨난 것이며,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를 설명하는데, 원나라 백 년간 집행한 사형 건수는 송나라 시절에 1년 간 처형된 숫자보다 적었다고 한다.

이 글을 쓰면서 필독님의 글에서 그림 하나를 골랐다. 테무진은 초원을 통일한 후 "예케 몽골 울루스"라는 이름의 나라를 세우는 잔치에서 '영기 교체식'을 하는데, 검은 색 영기를 흰색의 영기로 교체했다. 
영기란 게 무엇인가? 필독님의 설명이다. "
영기는 영어로는 보통 'war banner', 즉 '군기'로 번역된다. 물론 군기로 쓰기도 한다. 하지만 몽골에서 영기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영기는 사령관이나 칸 등의 지도자들이 쓰는 물건으로, 그 사람의 지위와 위치를 나타낸다. 즉 '군대'나 '가문'보다는 어떤 '한 사람'을 상징하는 경향이 있는데, 여기엔 일종의 무속신앙이 녹아들어있다. 영기는 그 사람의 영혼과 인격을 대변한다. 영기의 소유자가 죽으면, 그 사람의 혼을 머금는다."
"
백마의 말총으로 만든, 흰 영기. 지금껏 있었던 검은 영기가 전쟁과 증오를 뜻한다면, 전통을 뒤바꾼 흰 영기는 평화와 화합을 상징한다. 흰 영기는 테무진의 초원통일 목표가 폭력의 종식이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물증이기도 하다."
이 백색의 영기는 3년 후에 다시 검은 색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초원을 통일한 테무진이 이제 세계를 정복하는 걸음을 걷게 된 것이다. 그 이야기는 딴지일보에 연재되지 않았다. 700개의 선플(몇몇 사람의 댓글은 100개, 200개의 댓글로 쳐준다 했으니, 실제로는 3-400개의 선플)이 달리면
시즌2 <칸to the월드>를 써나갈 수도 있다고 했는데 테무진에 관한 딴지일보의 연재는 여기서 멈췄다. 아쉽다.
아무튼,
나는 전쟁에서 졌는데 이긴 편에 있던 사람들이 진 편으로 곧바로 넘어갔다는 얘기에 놀랐다. 징기스칸, 세계를 정복한 그 사나이는 무시무시한 첨단 군사력으로 정복한 것이 아니었다. 정복당한 지역의 지배자들과는 달리 오히려 정복당하길 고대하던 민중들이 있어서 그의 세계정복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사실에 찌릿찌릿 감동을 먹었다. 이럴 때 전율이란 표현을 쓰는 건가? 
그 나라는 어떻게 또 망해갔을까? 역사서에 눈을 돌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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