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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DAUM 카페 [대한불교 조계종 충정사]에 지난해 12월 17일, [ 불교 석학 / 세상 선지식]이라는 카테고리에 올려진 글입니다. 이 카테고리에 올려진 글들은 '寶山'이라는 법명을 가진 스님이 글쓴이로 나와 있습니다.
나는 이 글을 단톡방에서 친구가 올려주어 읽게 되었습니다. 친구는 '윤석열 체포 촉구 긴급행동'을 하고 있는 한남동 초등학교 앞 집회 사진들을 보면서 이 글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이 자료의 원문은 링크를 따라가서 살펴보시고, 이 글을 읽으며 느낀 제 소감을 말씀드릴게요.
(원문 링크 : https://cafe.daum.net/choongjeongsa/DlLn/16)
1. 저는 글 제목을 "재가 되어 사라지기를 거부한 심장, 틱꽝득 스님의 심장"이라고 적고 싶었어요.
먼저 틱꽝득 스님에 대한 소개가 필요하겠네요. 스님은 베트남 사람으로 1963년 6월 11일 응오딘지엠 정권의 불교탄압에 항의하면서 미국대사관 한복판에서 자신의 몸을 불사른, 이른바 '소신공양'을 실천하신 분입니다. 물론 단순히 '불교탄압'에만 항의하신 것은 아니었겠지요. 그 시절 베트남 민중들의 모든 한을 대변하시며 소신공양을 하셨는데, 그 중에 하나가 불교탄압이었을 겁니다.
이 분이 남긴 말이 글 마지막에 소개되어 있는데요, 내용이 이렇습니다.
“눈을 감고 부처의 세계로 들어가기 전에 나는 감히 응오 딘 지엠 대통령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박애와 자비의 마음으로 국민을 위해 종교평등의 정책을 실행하고, 그리하여 영구적으로 나라를 지켜나가야 합니다.”
스님의 몸은 10분 정도 불에 탔고, 숨이 끊어지고 몸이 뒤로 넘어졌대요. 여기에도 얘깃거리가 있는데 원문을 읽어보세요.
그 후 스님의 몸은 소각장으로 옮겨져 섭씨4000도의 불길로 태워 화장을 했는데, 여섯 시간을 태우고도 심장이 타서 없어지지 않고 있어서 두 시간을 더 태웠는데도 여전히 없어지지 않았답니다. 경찰들이 황산을 뿌려도 녹아 없어지지 않았다네요.
응오딘지엠이 이 심장을 가져가려했는데 승려들이 이를 지켜내고 프랑스은행에 이 심장을 맡겼답니다. 사진의 모습이겠지요. 훗날 이분의 소신공양 장면(이 사진은 매우 유명해서 저도 본 기억이 있습니다.)과 함께 이 심장에 관한 이야기가 전 세계에 보도돼 큰 화제를 일으켰다네요.
저는 이 자료를 읽으며 놀랐어요. 큰 충격을 받았지요.
다비식을 치른 후 고승들의 사리를 수습한 이야기는 많이 들어왔고, 부처님의 진신사리에 대한 이야기는 곳곳의 유명 사찰에 전해지는 이야기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심장의 모양으로 이렇게 큰 사리가 나왔다는 얘기는 금시초문이거든요.
불교의 가르침은 해탈인데, 사리로라도 당신의 삶의 흔적을 남기는 걸 원했을까요?
이 심장은 무엇을 후세에게 교훈으로 남기기 위해 재가 되어 사라지기를 거부한 것일까요?
이렇게 재가 되어 사라지기를 거부했다는 이야기, 놀라운 이적 - 전설이나 신화같은 얘기를 남긴 이유가 무엇일까요?
오늘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이 질문을 화두로 삼기 위함입니다.
2. 두 번째 하고 싶은 이야기는 종교탄압에 관한 얘기입니다. 흔히들 종교를 탄압하고 말살시키려 한 집단을 공산주의자들이라고 말하잖아요? 그에 대한 성찰을 말하고 싶어요.
틱꽝득 스님의 소신공양은 베트남 응오딘지엠 정권의 불교탄압에 항의하는 행동이었어요.
응오딘지엠 정권은 어떤 정권이었나요?
응오딘지엠은 로마 카톨릭 신자였답니다.
로마 카톨릭 신자들은 응오딘지엠처럼 생각하고 행동했을까요? 예, 과거에 그런 적이 있습니다. 마녀사냥을 하면서 초대교회 신도들을 죽여나갔던 로마황제들이 저지른 죄악상을 이교도들에게, 이단으로 매도된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똑같이 반복했어요.
종교탄압은 무신론자들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광신도들에 의해서도 수행된 죄악인 것입니다.
이러한 죄악은 로마 카톨릭 만이 아니라 종교개혁을 통해 일어난 개신교도들에 의해서도 일어났어요. 칼빈이라는 장로교의 아버지라고 할까요, 엄마라고 해야 할까요, 아무튼 칼빈이라는 종교개혁가도 똑같은 죄악을 저질렀대요.
저는 공산주의를 반대한다는 사람들이 핑계로 삼는 것들을 다시 한 번 성찰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반공을 넘어서서 멸공을 부르짖으며 공산주의자 숙청을 부르짖을 때마다 몸서리가 쳐집니다.
그 핑계로 얼마나 많은 순진한 사람들이 학살되었습니까?
저는 그들이 폭력을 증오한다고, 신앙의 자유를 지키고 싶다고만 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폭력을 증오하는 것과 신앙의 자유를 지키고 싶다는 것은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되지 못합니다.
폭력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더 극렬하게 행사했고, 신앙의 자유를 억압한 것은 어느 한 종교에 빠진 광신도들에 의해 더 광적으로 이루어진 일이거든요. 지금 기독교우익을 자처하는 이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확실하잖아요?
그들은 제게 묻습니다.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너의 태도는 무엇이냐고.
공산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를 분류하자면 - 공산주의자, 친공(親共), 용공(容共), 무념무상(無念無想), 반공(反共), 멸공(滅共) 이라는 스펙트럼을 가지고 분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공산주의를 잘 몰라요. 우리가 대한민국에서 배워 온 내용을 생각하면 공산주의를 아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다만 반공교육을 한다는 사람들이 전해준 공산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제가 아는 전부입니다. 그 가운데 반공주의자들이 덧칠한 얘기 빼고 핵심만 간추리면, 그들은 사유재산을 부정하고 공동생산 공동분배, 기계적인 평등을 주장했다는 것이 전부 아닙니까?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그들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얘기했고, 세계 공산화 혁명을 주장했으며, 폭력의 사용도 불사했다는 얘기지요.
공산주의자들이 흔히 하는 얘기가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얘기였던가요? 저는 이 점에서 확실히 공산주의자들과 다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놀고 먹자"는 주의 이거든요. 표현을 공산주의자들이 저와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바꾸자면, "모든 사람들이 노는 기분으로 일하는 세상을 만들자" 정도지요.
위 스펙트럼으로 저를 판단하자면 저는 확실하게 용공(容共)분자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불안해요. 저 꼴통보수우익들이 용공분자까지도 박멸하자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더욱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외칩니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소리높여 외칩니다.
사상이 다르다고, 신앙이 다르다고, 누군가를 박멸해야 할 해충으로 여기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이유로 공산주의 사회에는 사상의 자유가 없어서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신앙의 자유가 없어서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어째서 똑같은 이유로 그렇게 자유를 압살하는가 말입니다.
당신들이야말로 누군가의 꼭두각시가 되어 그들의 이익을 지켜주는 총알받이가 아니냐고요!!!
왜 공산주의자들을 없애고 싶어 하는지, 왜 친공도 아니고 용공에 머무르고 있는자들 까지, 어떤 경우에는 무념무상인 채로 있는 자들까지 죽여 없애려 했는지, 그 속사정을 낱낱이 풀어보시라고요!!!
3. 사족(뱀발)
오늘도 여러분에게 이 글에 대한 비평이나 소감을 부탁했어요.
AI에게도 물어보았지요. ChatGPT에게 똑같이 부탁했어요.
처음엔 제게 공감하는 말로만 늘어놓더니, 문학적인 비평, 다듬어야 할 것들을 물었더니, AI가 하는 말이 원글을 전해준 친구의 생각에 대한 공감이 부족하지 않냐는 것이었어요. (물론 이 말은 AI의 말을 제 나름대로 해석한 거예요.)
그래서 얼른 수정 모드로 돌아와 사족을 덧붙입니다.
친구는 왜 한남동 앞 눈발을 뒤집어쓴, 이 엄동설한 강추위를 은박지로 감싸고 아스팔트 위에서 (그곳 바람이 얼마나 추운지는 제가 그 넘어 약수동 고개 근처에서 살면서 다녀본 곳이라 잘 알아요) 윤석열 체포를 외치는 젊은 영혼들을 보고 틱꽝득 스님의 재가 되지 않은 심장을 떠올렸을까요?
저는 친구의 마음을 상상하며 100% 공감합니다.
그 젊은 영혼들과 함께하지 못하고 있는 제 자신을 부끄러워 하고 있습니다.
소성리에서 7년을 버티던 마음이라면 얼마든지 함께할 수 있을 것인데...
오늘 그곳에서 올라온 사진들 중에 소성리에서 함께한 동지들의 모습을 보며 그분들을 향한 나의 마음이 더욱 뜨거워졌습니다. 투쟁!
+++++
이 글이 근거로 삼은 '寶山'이라는 법명을 가진 스님의 글이 사실을 말하고 있는가? 라는 문제제기를 받고 검색을 해 봤습니다. AI가 답변해 준 내용에 출처로 나무위키와 위키백과가 있었어요.
①재가 되어 버리지 않은 심장에 대해서는 그런 말이 있다는 정도로만 나와 있고요, 사실 여부는 확인해주지 않았습니다. 누군가는 지어낸 이야기라고 말하고 있는데, 사진까지 돌아다니고, 이러한 일이 널리 보도까지 되었었다는 것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요즘 화장장의 소각로가 몇 도까지 온도가 올라가나 확인해보니 서울시립승화원의 경우 도시가스만 태우면 900도까지 시신을 넣으면 1200~1300도 까지 올라간답니다. 소각로든 다비식이든 4000도 까지 고온을 만들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얘기지요. 제철소의 용광로도 보통 1500~2000도 이하인가봐요. 그러니 4000도로 스님의 시신을 태우려 했다는 이야기는 지어낸 이야기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누구도 그런 말이 있더라 정도로 소개하지, 실제 그랬대라고 전하지 않는 거지요. 혹시 섭씨가 아니고 화씨온도일까 해서 확인하니 화씨 4000도는 섭씨 2200도 정도 되네요. 그러나 보산 스님의 글은 ' 4천 도 씨'라고 말하고 있어요. 누군가를 우상화, 신격화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전설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겠습니다.
②스님이 숨이 끊어진 후 몸이 뒤로 넘어갔다는 얘기에 대해서도 믿기 힘든 일이라고 하더군요. 고열로 신체조직들이 오그라들면서 앞으로 쓰러질 가능성이 거의 99%는 되는가봐요. 그러나 이것은 목격자들이 한둘이 아니고 그 장면을 사진으로 전한 기자까지 있어서, 이 부분은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나 봅니다. 이런 장면이 전설을 만드는 출발점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③또 한 가지 소신공양 장소에 관한 얘기인데요. 나무위키에는소신공양 장소가 사이공이라고만 나와 있고, 위키백과에는 사이공의 캄보디아 대사관 앞이라고 나와 있네요. 그런데 보산스님은 미국대사관 한복판에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었다고 말합니다. 보산스님은 글 끝에 출처를 MBC서프라이즈라고 밝혔는데 제가 확인은 하지 않았어요.
1.에서 왜 틱꽝득 스님은 미국대사관 한복판에서 소신공양을 올렸을까? 라는 질문을 올렸다가 삭제했습니다.
어쨌든 제가 하고자 했던 얘기의 촛점은 1.에서나 2.에서나 이러한 사실여부의 시비가 하등 영향을 미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전체적으로는 이 글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보산 스님의 글을 전해준 친구도 한남동 그 추운 겨울밤을 지샌 젊은이들의 모습을 감동적으로 바라보며 이 전설을 떠올린 것뿐, 정말 4000도에서 타지 않았다고 믿은 건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시체를 소각해도 재가 되지 않았다는 얘기는 믿는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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