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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에서의 피정을 마치고 서울 가족들 곁으로 돌아오던 날,
전날 저녁부터 하늘이 심상치 않았다.
금성과 토성이 겹쳐 보이면서 유난히 크고 밝은 별이 낮게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UFO가 아닌가 의심스러워 나보다는 천문현상을 더 잘 알 것 같은 친구들에게 하늘을 보라고 알려주고 뭐가 어떻게 된 일인 것 같냐고 물어보았다. 결국 인터넷에서 오늘의 천문현상을 설명해 주는 곳을 찾아서 금성과 토성이 겹쳐 보인 현상임을 알게 되었다.
이삿짐을 싸야 하는데 새벽부터 하늘에 캠트레일을 뿌리며 날아가는 전투기들을 보았다. 소닉붐에 놀라 옥상에 올라가 보니 무슨 훈련을 하고 있는지 남에서 북쪽으로 날아가는 초음속 전투기들이 보였다. 저것들이 한국공군일까, 미군일까, 일본 자위대일까? 멀리 사라질 때까지도 계속되는 소닉붐이 서울 가는 길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정말 서울로 가는 길은 우울한 소식으로 가득 찼다. 극우청년들이 서울 서부지법을 습격하여 폭동을 일으켰다는 얘기였다.
짐을 내리고, 창고처럼 변했던 공간을 나의 공간으로 만들어 내느라 며칠을 보내는 동안 20-30 남성들이 왜 극우 유투버들에게 사로잡히게 되었는지 분석하는 이야기들이 SNS에 빗발치듯 올라왔다.
그런데 바로 그런 순간에 오랜만에 만난 아들내미가 극우유투버들의 논리를 그대로 전하며 묻고 있다. 부정선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야당이 국회를 장악한 후 줄탄핵에 보복성 예산삭감에 입법독재를 한 건 사실이 아니냐고, 윤석열이 잘못한 건 잘못한 건데 이재명이는 절대 반대한다며 아빠 생각을 묻는다.
시간이 없어 길게 얘기할 수 없었지만, 그 짧은 대화 속에서 약육강식 제국주의적인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 왜 나쁘냐는 질문을 끌어냈는데, 그 질문 안에 담긴 아들의 신념체계를 짐작하게 되니 너무 슬프다.
나는 아들에게도 본받을 만한 아빠가 아니었구나. 푸대접받는 독립운동가의 후손들보다 잘 먹고사는 친일파의 후손들이 더 부러운 세상, 그래서 이제 당당히 친일파의 자손임을 자랑스러워하는 세상이 되었음을 알겠다.ㅠㅠ
금산을 떠나기 전날 누님과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 대전 석교감리교회 앞 현수막이 어찌 그리 당당하게 걸려 있는지 알겠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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