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고백/어쩌다 쓰는 일기

문재인이 미국의 마름에 불과함을 만천하에 드러낸 날 (2020.05.29)

도덕쌤 2020. 5. 31. 16:37

문재인이 미국의 마름에 불과함을 만천하에 드러낸 날

코로나19가 창궐하여 온 세상이 사회적 거리두기니 생활방역이니 하며 서로 밀접 접촉되지 않도록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이 때, 소성리도 모든 집회를 중단하고 소수의 인원만으로 평화행동만 이어가고 있었다. 학생들의 등교가 시작되었어도 이태원발 코로나 재확산, n차 감염을 경계하는 안전문자가 하루에도 몇 번씩 날아오고 학교가 다시 문을 닫는 상황에서, 사드철회를 기원하는 미사를 드리러 오신 신부님에게 마을회관이 열리기 전에는 오지 않는 게 좋겠다며 돌려보내기 까지 했는데 ---
K방역을 자랑하던 정부는 셀 수 없이 많은 경찰버스에 병력을 싣고 와 소성리로 통하는 모든 길목, 심지어 샛길까지 틀어막고, 겹겹이 뭉쳐서 소성리로 향하는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주민들과 상주하던 소수의 평화활동가들, 소식을 듣고 빨리 움직여 들어온 김천, 대구 시민들은 소성리 안에 고립되었다. 도로에 몇 겹으로 벽처럼 서 있는 경찰병력들. 70명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들이 진밭교에 있었는데, 동원된 경찰병력이 모두 도착하자 진밭교로 돌아 들어오는 마을안길들까지 경찰들이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28일 목요일 오후 2시. 한참 참외 따기에 바쁘실 주민대책위 위원장님이 소성리로 들어오셨다. 서울에서 수십대의 경찰버스가 소성리로 내려오는 중이라는 정보가 들어왔다는 것이다. 아무런 예고도 없었고, 코로나 방역에 몰두하고 있는 시기에 있을 수 없는 작전이라 생각한 우리들은 정보의 사실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분주해졌다.
오후 3시 박교무님과 둘이서 평화행동을 하러 올라갔다. 마치고 내려오니 아직도 비상경보를 울려야 하는 건지 판단을 못하고 있었다. 정부와 소통하던 모든 통로로 문의를 해도 모두 알지 못한다는 대답뿐, 역시 코로나 정국에 설마하는 얘기들만 오갔던 모양이었다.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경찰병력이 내려오는 중이라는 얘기를 들으면서도 그 목적이 무엇인지 확신을 할 수 없었다. 
오후 6시 경찰병력의 집결상황을 체크하기 위해 남김천IC 근처 부상삼거리로 나갔다. 7시 30분경 여경들을 태운 버스가 1대 북삼방향에서 들어왔는데 소성리로 들어오는 걸 볼 수 없다고 했다. 확인해보니 월명리 방산업체 넓은 주차장 안에 경찰버스들이 집결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마을회관 앞에는 경찰의 소음관리 방송차량이 들어왔다가 주민들의 저지로 일단 되돌아갔다고 했다. 저녁 8시 20분쯤 되어서야 텔레그램과 카톡 등 SNS로 비상상황을 공지하기 시작했다. 나도 백목사님께 연락을 드리고 가족들과 외식 중에 공지를 본 정목사님 질문에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마을에 있던 분들은 진밭교로 장소를 옮겼고 나는 방산업체에 집결한 경찰버스의 이동을 체크하며 초전정비공장앞에 여전히 머물러 있었다. 9시 50분 고개를 넘어 오는 버스 행렬이 보였다. 급히 연락을 하고 선두 버스를 추월하여 마을로 복귀했다. 마을회관 앞부터 진밭교까지는 벌써 경찰병력이 배치되고 있었다. 마을안길을 돌아 진밭교 위쪽에서 내려가니 그쪽에도 경찰병력이 대열을 갖추는 중이었다. 우리 대열 후미에 차를 세우고 진밭교에 합류했다.
10시 30분쯤 용봉삼거리가 경찰에 의해 봉쇄되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홈실 방향도 김천 방향도 모두 차단되기 시작했다. 2017년 4월 26일 황교안이 기습적으로 사드를 들여놓던 날과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겨우 뚫고 들어온 동지들도 진밭교에 합류하기까지는 거센 몸싸움을 겪어야 했다. 나중에 산을 넘어 온 분들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새벽 2시쯤 취재기자라고 기자증을 내밀고 들어온 김감독과 단아씨가 마지막으로 합류한 분들이었을 것같다.


기온은 급격히 떨어지고 진밭교의 칼바람이 옷속으로 파고 들었다. 집회가 진행되고 원불교법회와 기독교예배가 진행되는데 굳어가는 몸을 추스르느라 나는 제 역할을 다할 수가 없었다. 백목사님과 정목사님이 목이 쉬도록 한맺힌 기도를 드리는 동안에도 나는 그저 대열속에서 앉아 있거나 경찰과 대치하고 있는 앞뒤를 오가며 몸을 추스렸다. 차에 있던 노란 우의를 꺼내 입었는데 바람은 막아 주었지만 서늘한 기운은 가시지 않았다. 누군가 비박용 은박비닐 덮개를 가져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연로하신 마을분들이 걱정되었다.
새벽 3시쯤 드디어 경찰들이 사람들을 들어내기 시작했다. 팔짱을 끼지도 못하고 의자에 앉아 오로지 목소리만 높이던 주민들이 대여섯 명씩 달라붙은 경찰들에 의해 팔다리를 붙들린 채 들려나왔다. 평화계곡 방향 컨테이너 앞 도로에 주민들을 가두어 놓은 경찰들은 컨테이너 안에 들어가 쉬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알미늄 사다리에 들어가 앉아 있던 사람들은 그 와중에도 거의 한 시간을 버텨냈다. 사다리를 붙들고 있는 팔을 꺾고 목을 비틀고 김천의 김동기 시의원을 비롯한 다섯 명의 동지가 병원으로 실려갔다. 사람들을 끌어낸 경찰들은 후미에 있던 차를 치우기 시작했다. 내 차도 견인되어 내려갔다. 내가 키를 흔들며 내가 운전하여 비켜주겠다고 소리쳤지만 묵살당했다.
고착된 할머니들이 추위에 몸을 가누지 못해 몇 번의 싸움 끝에 컨테이너로 들어가게 되었지만 컨테이너의 전기를 끊어놓았다. 차라리 집으로 내려가겠다고 내려보내 달라고 거칠게 항의해도 막무가내였다. 보다 못한 한 분이 경찰들 앞에서 용변을 보겠다고 가려달라며 싸움을 시작했다. 경찰이 화장실차를 가져왔다. 화장실차 뒤쪽 진밭교 천막교당과 컨테이너 사이의 화단에서 김성혜교무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막교당 안에 들어가 있겠다고 하는데 그걸 막고 있었다. 천막교당 앞에서 고착되어 있던 분들도 몇 있었는데, 컨테이너 쪽에 있던 노약자들이 천막교당 안에 피신하는 것조차 가로막은 것이다. 
화장실차 지붕 위로 올라가 상황을 살피며 정보과 형사를 불러 조치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끝까지 무시되었다.
새벽 5시 이제 어둠이 가시었다. 경찰차가 에스코트를 하며 미군 지휘차량이 나타났다. 그 뒤로 발전기와 레이더, 발사대 등이 행렬을 이루고 있었다. 공사장비를 들여보내기 위해 이 난리를 치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경악했다. 도로 옆에 주차한 차 안에 있던 동지들이 차문을 열고 격렬히 항의하고 경찰들은 달려가 차문을 닫고 창문밖으로 흔들어대는 팔들을 꺾었다. 고착되어 있던 곳에서도 경찰들을 밀어붙이려 안간힘을 다하고, 물병 두 개가 날아가 트레일러 운전석 앞유리를 때렸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잠시 김교무님이 경찰들 벽에 갇힌 채 실신했다. 언덕 위에 있던 이장님이 몸을 날렸으나 경찰들에게 제지당했다. 
한참 뒤 다시 2차로 공사장비와 자재들이 들어갈 때까지 진밭교 컨테이너 앞에 고착된 우리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고착을 풀고 마을회관 앞으로 내려온 건 아침 7시가 조금 못 되었다. 김동기 의원의 보호자로 함께 병원으로 실려간 백목사님을 모시러 김천의료원으로 갔다. 가는 도중에 보니 저수지 위 삼거리 근처에 홈실쪽에서부터 활깃재방향까지 경찰버스가 수십대, 경찰병력이 촘촘히 지키고 있었다. 목사님을 모시고 돌아오는 길에 소성리 주민임을 운전면허증으로, 차량등록증으로 확인시켜주었는데도 막고 들여보내주지 않았다. 홈실쪽에서 내려와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하얀 차는 어제부터 그곳에서 서 있었다고 했다. 모내기를 하려 이앙기에 모를 잔득 싣고 온 트럭도 붙들어두고 있었다. 보건소 앞 큰 길이 아니라 마을 안길로 들어가겠다고 해도 소용없었다. 기지 안에서 나오는 트레일러들이 용봉삼거리를 빠져나간 것을 확인하고서도 몇 분을 더 기다려서야 통행이 허용되었다.
김천의료원으로 출발할 무렵 주민 트럭이 난폭운전으로 경찰을 위협하듯 달려나가던 모습을 보며 걱정했었는데 그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새벽부터 내내 2차 반입행렬이 들어가기까지 길을 틀어막고 있다가 해산하고 출근하려는 동지들을 내어보낼 때 겨우 잠깐 열린 길이었으니 얼마나 화가 치밀었으랴.
마을로 돌아와보니 주민들의 안전을 무시한 일련의 경찰의 강압에 항의하며 할머니들이 진밭교쪽에서 내려오는 경찰차량들을 막고 있었다. 백목사님도 달려가 할머니들을 둘러싸고 있는 경찰들 밖에서 주저앉았다. 귀대하려 차에 오르던 여경들이 다시 불려왔다. 나머지 경찰들은 모두 장비를 챙기고 돌아가는데 경북기동대들만 남아서 지친 표정으로 무장을 풀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 작전의 현지 책임자인 성주경찰서장의 사과를 요구하며 뙤약볕 아래 대치하고 있는데 뒤에서 지켜보던 성주서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사드 장비 추가 반입 규탄 기자회견이 긴급하게 조직되어 서울 동지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뒤늦게 달려온 기자들과 인터뷰하며 회관앞은 분주하고. 찬바람에 떨며 밤을 꼬박 새운 피로에 여기저기 지쳐 쓰러진 모습으로 널부러진 사람들. 
12시가 넘어서 회관앞에서 마무리집회를 하고 간단하게 식사를 하는 동안 나는 기도소 컨테이너에서 곯아 떨어졌다. 백목사님이 대구로 돌아가는 것도 모른 채로.

언론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국방부는 ‘시민 반대로 장비 교체가 미뤄지는 상황에 대한 미국 쪽의 강력한 불만 제기 때문’에 한밤의 기습작전을 펼쳤다. 작전을 실행하기 전에 중국 쪽에 설명을 미리하고 양해를 충분히 구했다. 자기 나라 국민들은 작전대상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코로나 방역을 위해 적극 협조해 온 국민들을 향해 코로나 방역을 위해 지키라고 했던 원칙들은 모두 무시되었다. “코로나19 확산 상황을 고려해 인적 접촉을 줄이고자 야간에 추진”했다는 얘기야말로 얼마나 가소로운 이야기인가? 동원된 경찰병력과 진압대상으로 삼은 주민들은 작전수행 중이니 코로나에 감염되더라도 괜찮다는 얘긴가? 
이 나라는 여전히 미군을 위한 군사작전에 제 나라 국민들의 희생은 당연한 것이라 여기고 있다. 중국이든 미국이든 세균실험실에서 빠져나온 코로나가 팬데믹의 원인이라고 보도되고 있는 상황인데, 전국 곳곳에서 미군의 세균실험이 진행되어도 아무런 항의도 못하고 있다. 사드배치과정에서부터 운용교범을 어기고 위험지역 안에 주민들이 살고 있는데 강제 배치했다.
사드를 핑계로 엄청난 분담금을 요구해도 그들을 달래기 위해 13% 인상으로 달래고 있다. 방위분담금이라고 퍼준 돈이 주일미군을 위해 사용되어도, 사용하지 못한 돈이 남아돌아 이자놀이를 하고 있어도 끽소리 못하는 정부.
사드는 우리 등에 꽂힌 빨대다. 
우리 등에 꽂힌 빨대를 더욱 깊이 박아넣은 문재인. 
미국의 요구는 그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들어주고야 마는 문재인. 
문재인은 미국의 마름에 불과하다는 자기정체성을 오늘 만천하에 드러냈다.

영혼없는 문재인 정부에게 사망선고를 내리며 하루종일 장송곡을 틀었다. 
하지만 이미 시체나 다름없는 너희들. 영혼없는 너희들. 지옥으로 잘 가라고 들려주는 노래인데.... 아무리 찾아봐도 죽음의 이별을 슬퍼하고 남은 자들의 슬픔을 위로하는 노래들뿐이다. 극락왕생, 천국, 하느님의 품에 안식하기를 기원하는 노래들뿐이다.
지옥으로 돌아가라고 저주하고픈 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