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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말을 타고 산길을 달리던 이들을 만난 뒤에 그들이 달리던 산길을 걸어보고 싶어 길을 나섰다. 
알고보니 그 길은 금산군이 조성중인 금산둘레길의 일부였고 7구간 (마전시장에서 수영마을까지) 대략 15km 중에 목소임도, 약 4km 되는 길이었다.
중부대학교에서 태조태실로 올라가 만인산 정상 못미쳐서 목소임도 방향으로 내려오면 민족자주통일비가 있는데, 민족자주통일비는 「 통일어머니의 설풍행려」라는 구술자서전을 남기신 정효순님이 사재를 털어 세운 비석이다.

통일비로 가는 길은 태조태실 쪽에서 둘레길을 따라가는 것보다 중부대학교를 가로질러 오르는 편이 더 편하고 쉬운데, 중부대학교 건원관과 범농관 사이에 안내표지가 서 있다.  이곳이 오늘 건강산책의 시작점이다. 

건농관 옆을 따라 올라가는 길. 사진은 내려오면서 찍은 며칠 전 사진이다. 단풍 고운 이 오르막 길은 잘 포장된 임도 수준의 길이다.

한 구비 돌아 올라가면 이렇게 차량의 진입을 막는 바리케이트를 만난다. 며칠전 만난 말 타는 이들을 생각하면 말 타고 올 수 있는 한계를 표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통일비까지 가는 길의 좌우에는 사진에서 보듯이 은행나무들이 늘어 서 있는데 아직 주변 숲의 나무들과 고만고만 어우러져 있어서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내려오는 길에 사진을 찍으면서 노란 은행잎을 보면서 훗날 아름다운 은행나무길이 되겠구나 생각했다.

통일비가 보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일지 모르겠지만 며칠전 만난 사람들이 여기서 간식을 먹고 남긴 쓰레기가 있어서 내려가는 길에 수거해서 대학교 쓰레기통에 버렸다.

민족자주통일비는 지송 정효순이란 분이 사재를 털어 세운 비석이다. 뒷면에는 1972년 분단 후 최초의 남북합의라 할 7.4남북공동성명 중 조국통일원칙과 2000년 6월 15일 남북공동선언의 요약이 새겨져 있다.
통일비를 세우는데 함께한 건립위원들의 이름이 새겨진 곳에 잘 아는 이름이 들어 있어서 더욱 관심이 생겼었다. 처음 이곳을 다녀간 뒤로 지송 정효순이란 인물이 궁금해서 그 분의 구술 자서전을 구입하여 읽는 중이다. 
조봉암 선생님의 진보당에 참여했었고, 대전의 유명한 빵집 '성심당'이 유명해지기 전부터 대전의 명소로 소문났다는 동아제과점을 경영하며 진보적인 인사들의 사랑방을 제공해 주었다 한다. 그분에 대한 인물 소개는 다음 기회에 더 자세히 하기로 하고 다시 길을 떠난다.

통일비 공원 입구에서부터 시작되는 임도로 가는 길은 중간에 갈래길을 만난다. 갈래길에서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목소임도 입구가 나오고 수영마을로 향해 둘레길이 이어진다. 위쪽으로는 가다가 막히는 길이다. 나는 오늘 수영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아니라 만인산 중턱에서 단풍을 즐기다 올 생각이기 때문에 위쪽으로 가는 길을 다녀올 것이다. 지도상에서 확인되는 길은 1.8km 왕복 3.6km에 숙소에서부터 통일비까지의 거리를 생각하면 오늘도 대략 7~8km의 길을 걷는 셈이다. 대신에 험난한 구간이 전혀 없이 편안하게 산책하듯 걸으면서 풍경을 즐기고 좋은 공기를 한껏 들이마실 뿐.

길을 출발하자마자 길에 말발굽 자국이 보인다. 말똥이 말라서 지푸라기처럼 되어버린 것도 보이고 무더기로 쌓인 아직 덜마른 말똥더미도 보인다. 말 달린 흔적을 따라 가보는 게 오늘길을 나선 시작이었으니 반가운 마음으로 나아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이 시원해지는  경치를 만났다. 파노라마로 찍고 나누어서도 찍고, 능선들이 겹겹이 파도를 이룬 장관을 즐겼다. 저멀리 보이는 봉우리들은 대체 어느 곳일까 궁금하여 돌아와 지도를 확인하니 대둔산 방향이 아닌가싶다. 금산이란 지명이 왜 비단금(錦)자를 쓰는지 알 것같다. 

갈림길이다. 왼쪽에 내려가는 길은 임도 입구로 향하는 길이고 오른쪽 길은 통일비에서 내려온 길이다. 가운데 길이 오늘 목적한 곳이다. 

도중에 어떤 건물들이 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임도를 여기까지 만들어 놓은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도중에 만난 것이 양봉장이었다. 철이 지나 벌통들은 정리되어 있었는데 아주 철수하진 않은 듯하다. 가까운 곳에 농장주인이 살면서 양봉을 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짐작해본다. 두 번째 장소에는 멧돼지 포획틀도 있고, 나뭇가지에 호롱불도 매달려 있다. 이렇게 벌을 치며 산속에서 사는 맛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봉장을 지나 얼마 안 가서 길은 차로는 지날 수 없을 만큼 좁아졌다. 그러나 말들이 다닌 흔적은 계속 이어졌고 이렇게 말똥무더기가 곳곳에 뿌려져 있었다.

드디어 다다른 임도의 끝. 말을 타고 달린 이들도 여기서 다시 되돌아갔을 테다. 이 곳을 넘어 대전둘레길과 만나는 곳까지는 험한 코스가 될 것이고 아마 입산이 통제된 곳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도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 기회에는 갈림길에서 아래로 내려가 임도가 막다른 길로 끝나는 갈래들을 더 탐색하고 싶다. 수영마을로 내려가는 길까지 마치고 나면 금산둘레길을 모두 걸어볼까나.
내친 김에 금산둘레길을 인터넷에서 더 검색해 보려 했다. 아쉽게도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길이라서 금산군청의 홈페이지에서조차 전모를 알 수가 없다. 부엉산터널 근처 월영산 출렁다리와 부리면적벽강 근처의 길은 대단한 관광지가 되어 있지만 나머지 길들은 알 수가 없다. 오늘 걸은 7구간도 지도에서 금산둘레길이란 이름으로는 검색이 안된다.
하지만 덕분에 이 길은 금산을 떠나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호젓한 나만의 산책로가 되어 줄 것이다.

다시 돌아오늘 길 갈림길에서 통일비로 향하는 길목에서 내 모습을 그림자로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