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고백/어쩌다 쓰는 일기

난데없이 웬 계엄? (어젯밤부터 오늘 새벽까지 일기)

도덕쌤 2024. 12. 4. 11:23

5일 합병증 검사 예약이 있어서 금산 피정지를 떠나 서울 집으로 올라가기로 한 것이 오늘(4일)이었다.
전기보일러 차단기가 자꾸 떨어져서 수리하고 잘 작동하는지 확인한 후 오늘 새벽쯤 출발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밤 10시40분쯤 카톡이 울렸다. 카톡 알림은 기본설정을 중지로 해 놓고 가족들만 켜 둔 상태라서 뭔일인가 들여다보니 막내아들이 "윤석열이 비상계엄 선포했어요. 속보들 보셔요. ... 긴급 긴급"이라고 알렸고, 이어서 온가족이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서로 위치를 확인하고 빨리 집으로 돌아오라고 당부하느라 카톡 메시지가 빗발치듯 쏟아졌다. 
단톡방마다 카톡이나 텔레그램이나 메시지가 쌓이기 시작했다.
11시 이후 통행금지라는 가짜뉴스도 나돌고, 국회앞으로 당장 모이자는 얘기들도 보이고... 
금산에서 출발하면 너무 늦은 것 아니가? 계획대로 새벽4,5시쯤 출발하자 하고 누웠는데, 공수부대가 국회로 진입하고 유리창을 깨고 있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계엄해제 요구할 권리를 가진 국회를 아예 마비시키려는 움직임에 국회앞으로 모이자는 사람들 걱정이 되었다. 45년전 광주와 같은 유혈사태가 다시 생긴다고?

답답한 마음에 일단 당장 출발하기로 했다. 부랴부랴 짐을 싣고 서울로 향했다. 자정이 막 넘어가는 시간. 잠시 후에 눈팅만 하던 고교동창들의 단톡방에 여의도로 출발한다는 메시지가 보였다. 수원에서, 군포에서 택시타고 여의도까지 달려가는 친구들이 있었다. 서울 톨게이트를 들어선 후 오랜만에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순복음교회 앞에 주차하고 국회앞으로 갔다.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 중간에 쌓인 소식들을 확인하느라 시간이 많이 지났는지, 국회앞에 도착한 것이 새벽 3시가 조금 안되었다.
그 사이에 공수부대는 물러났고, 여의도로 몰려든 시민들도 하나둘 돌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국회앞에 도착, 친구들을 만나고 현장을 지켜보다 최헌국 목사님도 만났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공수부대가 돌아갔어도 계엄이 해제되기 전까진 자리를 지켜야 한다며 떠날 줄을 몰랐다.
차량소통을 시키는 교통경찰들을 향해 항의하며 국회정문 왼쪽 도로에 있던 사람들이 정문앞으로 이동했다. 그 행진을 어? 지금 용산으로 가려는 건가? 잠깐 착각했는데, 지금 용산 상황은 어떤가 궁금해졌다. 친구들이 오뎅 한 꼬치로 몸을 녹이고 용산앞으로 가보자고 하여 순복음교회 앞에 주차한 차를 향해 걸어갔다. 
앞서 가서 차에 실린 짐들을 뒷트렁크에 넣고 자리를 확보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친구들이 바로 다시 택시타고 집으로 들어간댄다. 이젠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된 것 같다고. (집에 와 확인하니 윤석열이 국회의 계엄해제를 받아들였고, 계엄사는 해산했다고...)

여전히 또 어떤 꼼수를 부릴지 모르는 상황이라 불안하지만 한 시간도 안 되어 달려온 시민들을 믿고 나도 용산을 거쳐 집으로 향했다. 

국회앞에서 만난 사람들 가운데는 그 동안의 집회현장에서보다 젊은 사람들이 많았다. 춤을 추며 축제의 현장처럼 만들어 가는 청년들도 있었고, 대학교 과 단체복을 입고 온 학생들도 있었다. 어디서 왔냐고 물으니 청주에서 달려 왔다는 청년들도 있었다. 불안했던 밤이었지만, 우리 사회가 달라질 수 있겠구나 희망이 생긴 밤이었다. 
민주열사가 되어볼까하고 달려왔다는 66년생 친구의 후배처럼, '광주의 피'가 다시 흘러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다시는 산 자의 고통을, 살아난 자의 부끄러움을 반복하지 않으리. 다짐하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