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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시절 국민학교동창회로 모인 적이 있었다. 남학생들 이름은 다 기억나는데 여학생들 이름은 이 중에 셋밖에 기억나지 않는 이유가 뭐지?

 

나는 나의 진정한 학력을 드러내지 못했었다. 누군가 학벌이나 학력에 대해 얘기하면, 마지못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슬쩍 진실을 고백하곤 했다. 거짓말을 잘 못하는 내가 부끄러움을 감추려면 단답형 대답 대신 긴 설명을 해야 했는데, 사람들은 종종 내 대답을 오해했다.

학벌과 학력에 대해 얘기하는 게 왜 부끄러운가?
나는 대학에 들어갔었다. 그것도 재수를 해서.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 졸업할 때까지 교수들의 강의를 제대로 듣지 않았고, 전공 서적 하나 읽어본 적이 없다. (↙ ⓐ)
대학 4년 동안 배운 것이 없으니, 나의 학력은 고졸이라 해야 한다.

그러고도 대학을 졸업했다고?
그래, 졸업뿐 아니라 (↙ ⓑ)  교사 자격증도 받았고, 심지어 의무발령제 덕에 교사로 취업까지 했다. 대학 시절 아내를 만나 결혼까지 했으니, 얻을 건 다 얻은 셈이다.
그런데 뭐가 부끄럽냐고?
학력은 내가 누군가에게 배운 이력을 의미하지 않나? 나는 대학에서 교수들에게 배우지 않았다. 배운 것이 없으니 나의 학력은 고졸이다. 이건 잘난 척이나 특별한 인간인 척하려는 얘기가 아니다.
그 시절은 생각만 해도 우울할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내가 얼마나 못나게 굴었는지 깨닫는다. 아니, 사실 그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잘못 살고 있다는 걸.

어떤 사람들은 학벌을 사람을 평가하는 척도로 생각한다.
나도 그래서 기어이 최고의 명문이라 불리는 서울대에 입학했다. 사람들은 “저래 봬도 서울대 출신이래~” 하며 나에게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 덕을 가장 톡톡히 본 건 군대에서였던 것 같다. 영어 회화도 못 하고 단어조차 가물가물했던 내가 “그래도 서울대 출신인데”라는 이유로 기갑부대 육군 항공대에 배치되었다. 그곳은 대한민국 육군 사병 중 가장 널널하게 지낼 수 있는 꽃보직이었다. 불침번 근무도 없었다.
가끔 학벌을 활용하려고 나를 바지사장으로 초빙하려는 친구도 있었다. 물론 나는 거절했다. 내 능력이 부족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고, 명문 대전고등학교와 서울대를 나왔어도 사귄 친구는 극소수였기 때문에 동문이라는 이유로 뭔가를 부탁하거나 기대하는 게 자신이 없었다.

나는 학벌 사회를 비판하기도 했다.
“이건 옳지 않아. 공정한 게임이 아니야.”
그렇다고 학벌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의 한계도 인정한다. 여기서 시비를 더 가리는 건 의미 없으니 그만두겠다.

아무튼 나는 시대의 허점과 제도의 빈틈을 잘 이용한 사람이다.
무능력한 무자격자가 놀고먹으며 교사 자격증을 따고, 학교라는 일터에 배정받고, 은퇴 후에는 연금을 받으며 다른 노인 일자리를 찾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나의 학력은 확실히 고졸이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기껏해야 대학 중퇴라 할 수 있을까? 입학하자마자 공부를 포기했으니 대학 중퇴라고 하기에도 부족하다.
내 학력은 고졸이다.
그럼에도 내가 조금 똑똑해 보인다면, 그것은 오직 나의 철학적 사고 덕분이다.

보운국민학교 6학년 3반 졸업문집에 남아 있는 내 글의 내용이 뭔지 아나?


“생각하는 사람이 되자.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가?” 뭐, 그런 내용이었다.
그때 자네는 어떤 글을 썼는지 기억나는가? 내 글과 비교해 보게.

생각.
이제는 이 말이 한자어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을 만큼 익숙한 단어가 되었지만, 나는 이 말을 生覺(생각)이라는 한자로 기억한다.
‘깨달음을 낳는 것.’
깨달음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두뇌를 회전시키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한 걸음씩 깨달음을 얻어왔다.

배운다는 것은 누군가의 깨달음을 전수받아 내 지혜로 쌓아가는 일이다. 그것이 매우 중요하다.
혼자만의 노력으로 깨달음을 얻는 것은 고되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선배들이 걸어온 길을 압축해 전달받으며 약간의 사고만으로도 얻을 깨달음인데, 혼자 고생하며 시간을 낭비한다면 어리석은 일이다.

나는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그 배움의 길을 중단하고 혼자 생각의 길을 걸었다.
어리석고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 시절 계속 겸손히 배움의 길을 걸으며 홀로 우뚝 선 대학 동기들을 존경하고 부러워한다.
자네와 같은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을 존경하고 부러워했던 것처럼.

이제 더 이상 나에게 학벌을 묻지 말아달라.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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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도덕교사가 되겠다는 마음이었는데 윤리교사를 양성하려는 목적으로 개설된 학과는 없었던 시절이었다. 입학 후에 교수들과 상담했는데 모두 진로를 미국유학 다녀와서 대학교수가 되라는 충고나 데모하는 데서 멀어지라는 충고밖에 듣지 못했다. 교수들에게 실망한 후 교수들의 강의를 외면하게 되었다. 

(↙ ⓑ) : 당시에는 강의 출석확인이 엄격하지 않았었다. 계엄령으로 인한 휴교 사태가 매우 길었던 때도 있었고, 빈번한 학내 시위로 결석하더라도 웬만하면 낙제점수를 주지 않았다. 개강, 종강, 시험 때만 얼굴을 내밀면 B~C학점을 주고 넘어갔다. 덕분에 꼴찌로라도 졸업할 수 있었고, 임용고시가 없었던 시절 국립사범대학교라서 꼴찌에게도 교단으로 무조건 내보내는 덕분에 취업을 걱정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