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글/보수유투버에 귀기울이는 형님께

신탁통치 오보사건을 아십니까? (2020.01.21)

도덕쌤 2020. 1. 21. 12:07

섣달 그믐달이 하얗게 빛나는 새벽입니다.

별이 빛나는 밤에 잠못들고 깨어 일어나 형님 생각을 합니다.

일요일 저녁 세 번째 편지를 톡으로 전해드린 후, 형님 답장을 받으면서 한편으론 안도감을 한편으론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명절 차례상 앞 금기 중 하나가 '정치종교에 관한 대화'라는데 (이미 우리 형제들은 이를 일찍부터 체득하고 있었지요. ㅠㅠ) 서로 벽을 느끼면서도 어쨌든 이런 대화가 계속 이어지고, 서로 끈을 놓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 안도감의 이유였고요. 답답함은 아직도 판단의 근거가 자신의 이성적 사고가 아니라 누군가의 권위임을 드러내는 형님의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세 번째 편지에서 말씀 드린 것처럼 제가 가장 안타까워 하는 것은 형님의 생각이 어찌 그리 좁은가, 어찌 귀가 그리 얇은가 하는 것입니다. 어떤 주장, 사건을 얼마나 다양한 입장에서 얼마나 깊이 생각해보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일요일 저녁 형님의 답장을 받고 바로 대화를 잇지 못한 것은 형님이 전해준 조선일보 기사 [정교모 2차 시국선언]관련 동영상, 진중권의 페북글을 전하는 톡 등을 읽고, 제 나름대로 깊이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형님이 덧붙여 전해준 사진과 형님의 말씀들을 대하며 느끼는 나의 답답함, 내가 안타까워 하는 이 문제를 어떻게 설명해야 형님이 공감할 수 있을지, 역사적 자료들을 찾아 공부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형님은 고등학교 동문들, 제게 선배되는 분들, 형님 표현처럼 '나보다 더 훌륭한 분들'이 전하는 이야기, 그 분들이 공감하는 이야기임을 강조하며 "자네의 형인 나와만 비교하지 마라"고 하였습니다. [정교모 2차 시국선언]을 전해 준 의도도 <대학교수 6천여 명이 참여한 선언인데, 그들에게도 형님에게 말한 것처럼 "생각이 어찌 그리 좁은가, 어찌 귀가 그리 얇은가" 얘기할 수 있겠냐?>는 말씀이겠지요?

예, 형님. 그들은 대부분 똑같이 그런 얘기를 들을만한 사람들일 겁니다. 물론 모두 그런 사람인 건 아니겠지요. 조작된 뉴스, 유언비어를 가지고 대중을 선동하려는 인물들도 있기 마련입니다. 

형님 생각에는 6천명이나 되는 대학교수라는 사람들이 가짜뉴스에 속아 현정부를 비판하는 일이 가능하겠냐 싶겠지요? 한 때 이 사회의 이른바 지도층 인사라고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친구들이, 이제는 사리사욕을 벗어나 나라의 미래를 위해 걱정할 만한 나이에 이른 친구들이, 가짜뉴스에 속아 현정부를 비판하는 일이 가능하겠냐 싶겠지요?

예, 형님.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의도적으로 가짜뉴스를 만들어내고 전파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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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에게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걸 말씀드리기 위해 이틀 동안 공부한 내용을 전합니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오보사건, '역사적 오보'라고 기록된 사건이 '신탁통치 오보사건'입니다. 


일본이 패망한지 넉 달도 더 지나서야 한반도의 운명을 어떻게 결정지을 것인지 연합국이 모스크바에 모여 의논을 하였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우리는 해방이다, 독립이다, 광복절이라고 기념하고 있지만, 미국과 소련의 입장에선 조선은 일본이 다스리던 식민지, 일본이 항복했으니 아직 누가 주인이 될지 모르는 땅, 독립을 시켜줄까, 독립을 시켜준다면 어떤 정부가 들어서게 할까 고민 중인 자신들의 점령지였습니다.

모스크바삼상회의는 "한국의 독립국가 건설을 위한 임시정부를 수립하며 이를 준비하기 위하여 미소 공동위원회를 설치한다. 또 임시정부를 통해 미국, 영국, 소련, 중국의 4개국이 최장 5년간 신탁통치를 하고, 그 후 총선거를 실시하여 완전한 독립국가를 수립한다."고 결정하였습니다.

이미 연합국의 승전을 내다보고 있던 1943년 카이로회담에서도 전후처리를 어찌할 것인가 의논하던 중에 조선의 장래에 대해서도 "한국 인민의 노예 상태를 유념해 적절한 시기에 한국이 자유와 독립 상태가 될 것을 결의한다."고 결정하였던 바, 이 카이로 회담에서 조선 독립에 대한 각국의 입장은 영국은 독립 반대, 미국은 신탁통치 실시, 중국은 즉시 독립이었고, 서로 다른 이 입장들이 '적절한 시기'에 독립시켜준다는 말로 봉합된 것입니다. 카이로회담에 이어진 얄타회담에서는 중국 대신에 소련이 참가하였고, 여기서 조선의 독립과 관련 미국은 신탁통치 50년을 제안했지요.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도 미국은 '한반도 신탁통치 30년안'을 제안했습니다. 소련은 '즉시 독립'을 주장했고 결국 소련의 강한 반대 논리에 밀린 미국은 10년으로 양보했다가 5년에 합의했습니다. 통치의 주체를 임시정부로 둘 것이냐, 4대국의 협의체로 둘 것이냐에 대한 논의에서도 역시 소련의 논리가 승리해 임시정부를 통치 주체로 정했습니다. 

역사적 오보는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으로 삼상회의를 왜곡하여 전달했습니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것은 통치 주체가 임시정부라거나, 최장 5년의 기간을 거쳐 자유 총선거에 의해 통일독립국가 건설을 보장한다는 합의 내용에 방점이 찍히지 않고, 새로운 식민통치가 시작되는 것처럼만 인식되도록 전했습니다.

(나무위키 신탁통치 오보사건 항목에서 갈무리)

형님, 신탁통치 오보사건이 이후 어떻게 이 나라를 이끌었는지는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우리에게는 반탁만이 애국이었고, 처음 반탁을 하다 찬탁으로 돌아선 좌익은 소련의 꼭두각시로 짓밟아야 할 대상이 되었습니다. 친일파들은 반탁을 외치며 애국자 코스프레를 하면서 친일파 숙청을 좌절시켰습니다. 


그런데 이게 오보라는 건 언제쯤 알려지기 시작했을까요? 오보라는 게 알려졌을 때, 찬탁반탁의 대립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모스크바 삼상회의의 결정문이 전문 그대로 우리에게 전해진 것은 오보가 전해진 며칠 뒤였습니다. 12월 30일자 <동아일보> 한 귀퉁이에 '미 육군성 코뮈니케'라고 들어 있었답니다. 그러나 이미 찬탁이냐 반탁이냐의 프레임에 갇힌 사람들 눈에 이런 기사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요. 진실을 알게 된 이들이 삼상회의의 결정대로 일단 국제사회(연합국들)가 인정하는 한반도 임시정부를 세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삼상회의의 결정을 수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을 때, 그들은 찬탁진영으로 몰렸습니다. 심지어 소련의 사주로 하루아침에 입장을 바꾸었다고 모략을 받았습니다. 건준도 부정되고 상해임시정부도 부정되고, 대표할만한 조직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정부조직도 없이 신탁통치반대 즉각 독립을 외쳤습니다.

한반도를 휩쓸고 있는 가짜뉴스의 광풍에 가장 억울했던 것은 소련이었습니다. 소련은 삼상회의의 토론과정을 상세하게 알려왔습니다. 한달이 지난 뒤의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찬탁=매국, 반탁=애국"이라는 프레임에 갇힌 한반도의 현실은 바뀌지 않았지요.


형님, 바로 이 시기에 그 시대의 '권위있는 훌륭한 지도층 인사'라고 할만한 사람들은 제대로 된 현실인식을 하고 있었을까요? 삼상회의의 결정문 전문을 입수하고 난 뒤에, 그 전말을 다 알고 난 뒤에, 자신들의 판단과 행동을 수정했을까요? 

오보를 전했던 동아일보사 사장 송진우는 전문을 입수한 후 반탁운동에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습니다. 김구는 그런 송진우를 암살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해방 공간에서 벌어진 숱한 암살, 테러 들의 진상이 속시원히 밝혀진 바 없으니 이것도 사실로 단정하긴 어렵겠지만) (https://tanosiyononaka.tistory.com/2103 참조)

아무튼 그 시대 이 땅의 지도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해 갔는지는 자료를 통해서 살펴보십시오. (프레시안에 연재되었던 서중석의 역사이야기를 추천합니다.)

오보임이 밝혀진 오늘날에도 이와 관련된 거짓들이 버젓이 진실인 것처럼 가르쳐지는 현실이란 걸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무위키]의 신탁통치 오보사건에 관한 기록을 보면 <현재까지도 몇몇 역사교과서에는 "소련은 찬성, 미국은 반대"라는 것이 역사적 사실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남북한 대치 상황 등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신탁통치 오보사건이 지적되기 시작한 것도 최근의 일이니, 정정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사회주의 계열이 반탁에서 찬탁으로 돌아선 것이 소련의 지령에 의한 것이었다는 근거 없는 소리를 가르치는 교사들도 있다. 2018년 현재 군대 정훈교육 시험에서도 이 내용이 나온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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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이 믿는 고등학교 친구들이나, 6000여 명의 대학교수들이나, 이미 오보에 따른 프레임에 갇힌 사람들입니다. 그중에는 의도적으로 오보를 만들어 낸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누가 어떤 의도로 오보를 만들어 냈을까요?

오보라는 표현은 '실수로 잘못 전한 정확하지 않은 소식'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오보가 의도적인 것이었다면 오보가 아니라 가짜뉴스 또는 유언비어라고 하는 게 맞을 겁니다. 어쨌든 이러한 거짓 정보는 의도를 가지고 전파되는 것입니다. 증권가의 거짓정보는 주가조작을 통해 한 탕을 노리는 세력들이 퍼뜨리는 법이지요. 

신탁통치 오보사건도 <한국 반공주의의 시작은 반탁운동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신탁통치 반대는 제2의 독립운동이며, 공산당은 여기에 반대한 매국노였다"라는 주장은, 이후 많은 보수정파들이 스스로의 정통성 기반을 임시정부와 반탁운동에서 찾는 논리의 강력한 근거가 되었다. 남한 내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 세력들은 이를 악용해 자신들이 '반공투사', '애국자'라는 식으로 물타기를 시도했다. 대표적으로 친일문학 소설가 김동인이나 일제 관동군 밀정으로 독립운동가 탄압에 앞장선 이종형, 친일경찰 김창룡과 노덕술 같은 경우였다.>라는 나무위키의 평가를 역으로 생각해보세요. 누가 이런 결과를 가져올 걸 예상하고, 누가 그에 따라 춤을 췄을까요? 


형님이 전해준 [정교모 2차 시국선언] 조선일보 기사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정교모는 현 여권을 겨냥해 "우리 사회의 신(新) 이권 수탈층을 구성해 거리낌 없이 불법·탈법·비리를 자행하고 있어 국가를 심각한 공동체 위기 속으로 몰아가고 있다"며 "이들이 초래하는 ‘조로남불’, 거짓과 진실의 문제 그리고 가치관과 직업윤리의 마비 현상은 정치 영역을 넘어 한국 사회 전반을 치유하기 힘든 단계로 오염시키고 있다"고 했다.

여기서 '신(新) 이권 수탈층'이란 말은 어떻게 나온 표현일까요? 당연히 '구(舊) 이권 수탈층'이 있었음을 상상할 수 있겠지요? 현 여권이 '신(新) 이권 수탈층'이라면 '구(舊) 이권 수탈층'은 어떤 사람들이겠습니까? 그들은 이전에 어떤 방법으로 이권을 수탈했고, 지금은 신 이권수탈층의 이권수탈에 어떻게 대항하고 있겠습니까?


형님, 형님에게 SNS를 통해 온갖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냉정하게 생각해 보십시오. 

저는 고등학교 동문들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명문고등학교 출신들이 사회에서 어떤 길을 걸어갔을까 생각하면, 지금의 나이에 이른 우리들은, 대체로 소위 성공한 삶을 살아간 사람들은, 이 사회의 기득권층('구(舊) 이권 수탈층')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먹고사는 문제에 여유를 가지고 이제 아름다운 젊은 날을 추억하며 모인 동창회에는 소위 실패한 삶을 살아간 친구들은 나오지 않습니다. 저처럼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친구들도 찾아보기 힘들지요. 따라서 이권을 두고 경쟁할 만한 위치에 이른 사람들만 제자랑하거나 학연이란 연줄을 붙들기 위해 동창회로 모이는 것이지요. 동문회에 모인 사람들이 각자의 신념을 존중하고 서로 격려하는 꼴을 보기 힘들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고등학교만이 아닙니다. 초등학교 동문들도 마찬가지였어요. 형님은 형님 기수와 나의 기수 간에 차이가 있는 것처럼 말씀하셨지만, 이러한 현상은 모든 기수에 공통적인 사항입니다.

이 사회의 공정성을 해쳐 온 학연-지연의 고리는 이 사회의 기득권을 지키는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고, 지금은 거짓 정보를 퍼뜨리는 주요한 통로로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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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제가 형님께 간곡하게 말씀드리고 싶은 말씀은 형님 자신의 이성으로 생각해보시라는 겁니다. 국수급 실력을 갖춘 형님이기에 형님도 저 못지않게 넓고 깊게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어 왔습니다. 어떤 정보를 전달받더라도 일단 다양하게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의도로 무엇을 전하는 정보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객관적인 진실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들을 되물어야 합니다. 내 입에서 나온 말로 나의 행실을 정당화할 수 있는지, 그들의 말로 그들의 행실을 판단해야 합니다. 

저는 항상 나를 가르치는 사람들에게 질문해 왔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나의 질문을 받아주셨던 선생님들을 존경합니다. 질문을 묵살하거나 모욕적으로 받아들였던 선생님들을 경멸합니다. 나는 심지어 성경을 읽을 때에도 질문을 합니다. 일점일획도 고칠 수 없는 문자 그대로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나는 미친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권위를 가지고 하는 이야기일지라도,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전문분야에 대한 얘기조차도, 저는 의심하고 따지는 질문들을 통해서 받아들여야 하는 법이라는 게 평소 나의 신념입니다.

나의 이런 신념이 생활화되어 있었기 때문 저는 형님보다 더 깊고 넓은 판단력을 가졌다고 자부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졸업한 대학을 결코 자랑스럽게 내세운 적이 없습니다. 저는 책과 담을 쌓고 살았습니다. 대학시절 전공 필수교재인 책들조차도 읽지 않고 졸업했습니다. 이념서클의 일원으로 있었던 1년 반 동안에도 독서토론 교재로 제시된 책을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책을 살 돈이 없었고, 도서관에서 책에 파묻혀 있는 것을 못 견뎌 했지요. 저는 대중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자료들을 가지고 나의 사상과 실천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제 출발점은 형님과 마찬가지로 고교시절까지 쌓여진 기본 상식과 신문잡지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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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의 질문, “6천명이 넘는 정의를 외치는 교수들도 다 정신나간 친구들일까?”, 형님의 자조적인 한탄, “나보다 더 훌륭한 분들인데~~ 자네와 兄인 나와만 비교하지 말고 말여!” 라는 말들이 너무 답답했습니다. 그 답답함을 해소하느라 엄청나게 긴 편지를 쓰게 되었네요. 신탁통치 오보사건을 곁들이느라 더욱 긴 편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질문하나 던집니다. 형님에게 SNS를 통해 온갖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들에게도 제 질문을 전해주시 바랍니다.

신탁통치 결사반대를 외치며 이 나라는 각각 단독정부를 구성하고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래서 반탁을 외치던 자들이 세운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은 70여년 이상 미국의 신탁통치, 미국의 후견통치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 아닙니까? 지금도 중요한 국가적 결정을 ‘한미워킹그룹을 통해 사전 조율 해야만 하는 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