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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문


오랜만에 형님과 다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쉽게 진전되는 대화는 아니지만, 그냥 "정치적인 이념과 관련된 이야기는 이제 그만!", 포기하고 싶지만, 그래도 형제를 서로 이해는 해보자고 어려운 중에도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블로그에 [보수 유투버에 귀 기울이는 형님께]라는 이름의 카테고리를 개설하고 글을 올렸었습니다. 2020년 1월부터 고작 7개의 글을 공개적으로 올렸고, 오늘 이 편지글까지 8개째입니다.
형님은 이렇게 글을 써보냈다는 것을 알지도 못했습니다. 나는 글을 쓰면 카톡으로 링크를 보내드렸던 것 같은데, 지금 남아 있는 카톡의 기록은 2020년 11월 말의 기록이 최초이니 확인할 수가 없네요.
어쨌든 [비공개편지]라는 카테고리를 개설하고 편지를 읽을 사람에게만 비번을 알려주어 편지를 전하는 방식으로 엊그제 편지를 보냈더니, 오늘 형님이 그동안 하나도 읽어보지 못했다면서, 7개의 글을 모두 인쇄하여 사진으로 보내주셨습니다. 
정독을 해보겠다며 프린트로 출력하신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눈물겹게 고맙습니다.

저도 다시 한 번 7개의 글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실질적인 대화는 처음 네 개의 글이었습니다. 
①형님께 유투버들이 전하는 이야기에만 귀 기울이지 말고 형님이 스스로 자료를 찾고 사실 확인을 해보시라, 역지사지하는 마음으로 우리가 비난하는 사람들은 왜 그런 비난받을 짓들을 했을까 생각해 보시라 당부하는 내용.
②이념대결이 우리에게 매우 심각한 문제가 된 출발점, 남한 사회가 반공이념으로 똘똘 뭉치게 된 출발점이 신탁통치 오보사건이었다는 역사 정보의 전달.
이 두 가지가 지금까지 이야기의 전부였습니다.
형님과의 대화는 지금 신탁통치 오보사건에 대한 이야기에서 멈추어 있고, 저는 이 문제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얘기하고 있는 중인 거지요.

세번째 편지 [중풍병자의 친구 같은 마음으로 (2020.01.17)]에서 다음 편지부터는 “적화통일 될까봐 걱정되세요?”라는 제목으로 이어가겠다고 말씀드렸는데, 이 약속을 지키지 못했던 것입니다.
어쩌면 집회현장에서 만나는 태극기 부대, 전광훈 부류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이 이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 나라가 적화통일이 되면 어쩌려고?" 그 분들이 묻고 싶어하는 가장 핵심적인 질문일텐데, 여지껏 답하지 못하고 있었네요. 형님도 그 질문에 대한 제 대답이 궁금했던 거지요?
오늘 편지의 주제는 그래서 바로 이 질문입니다. “적화통일 될까봐 걱정되세요?”


2. 탈이념의 시대

우리는 이미 1970년대에 세계적으로 탈이념의 시대에 들어섰다고 알고 있습니다. 중공이라 부르던 나라가 중국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핑퐁외교를 통해 미국과 중국이 수교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대한민국 - 남한 정부도 공산주의 국가들과 교류의 길을 넓혀 왔습니다. 1990년대는 탈냉전의 시대라고 불렀지요. 소련이 해체하여 러시아를 비롯한 몇 개의 나라로 변화했습니다. 세계 유일의 냉전이 지속되는 지역, 한반도에서도 적극적으로 남북관계를 개선해 나갔습니다. 노태우 정부는 분단 이래 최초로 남북한 당국이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한 공식합의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에 서명하였습니다. 
이미 우리는 이념이란 것으로 스스로를 얽매는 것이 얼마나 우매한 짓인지 잘 아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념이란 것은 우리의 필요에 따라 갈아 입을 수 있는 것, 얼마든지 변화시키고 새롭게 창조해 갈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이미 경험하였습니다. 
보수우파가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 거의 신격화 된 대통령 박정희를 생각해 보십시오. 박정희는 식민지 시대 일본군 장교였고, 해방 후에는 남로당원이었다가, 여순사건 때 변절하여 살아남은 후에,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잡으며 반공을 국시로 한다고 외친 사람입니다. 그가 반공을 국시로 한다고 했지만, 남북대화를 시작한 사람은 박정희였습니다. 
박정희는 자유민주주의를 실천하지 않았습니다. 유신이라는 이름으로 독재를 한 사람입니다. 이 나라를 먹고 살만하게 만들어 준 대통령이라고 추앙하지만, 그의 경제개발계획은 자유민주주의 방식이 아닌 계획주의, 사회주의적인 국가통제로 이루어낸 것입니다. 다만 사회주의처럼 누구나 평등하게 그 열매를 맛보게 한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희생을 국가권력으로 강요하며 이루어낸 것이었지요. 
박정희를 진실로 존경하는 사람이라면 이미 이념이라는 것, 무슨무슨 '주의'라는 것은 우리가 만들어 내는 것이지, 우리가 맹종해야 하는 것이 아니란 것을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이 땅의 사람들은 '무슨무슨 주의자들'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평화의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면서 먹고사는 걱정 없이 살아가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에게 알맞는 사회적인 시스템을 건설해 나가고, 또 그 과정에서 겪는 수많은 시행착오들을 수정해 나갈 뿐입니다. 우리가 정말 훌륭한, 세계가 부러워할만한 시스템을 만들어놓고 그것이 공산주의적인 것이냐 자유민주주의 - 아니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지요 - 자본주의적인 것이냐 이념의 잣대를 들이밀어 허물어선 안 되는 것입니다.


3. '적화통일'이라는 게 무엇을 뜻하는 말입니까?

남북한이 모두 공산주의를 좋게 생각하고 하나의 공산주의 국가를 만들어 가는 겁니까? 
그렇다면 반대할 이유가 무엇이죠? 모두가 좋게 생각한다는데.

공산주의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을텐데 하나의 공산주의 국가가 된다구요? 
그렇다면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는 공산주의 국가를 만들면 되지 않겠어요?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는 공산주의 국가라는 것은 없다구요? 예, 그렇다면 공산주의적인 경제 시스템에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는 민주주의적인 정치 시스템을 갖추면 되겠네요. 
그게 가능하냐구요? 말장난하지 말라구요? 
저는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만 이념에 맞춰 우리의 가능한 꿈들을 재단하지 말고, 우리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필요한 시스템들을 구체화해 보자는 것입니다.

적화통일을 두렵게 생각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과학적 공산주의를 말하는 이들이 계급투쟁을 얘기하고 폭력으로 혁명을 일으킨다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반대할 것은 폭력이지 적화가 아니지요. 반대할 것은 전쟁이지 적화가 아니지요.
전쟁, 폭력을 적화와 뗄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저는 적화통일이라는 게 무엇을 의미하느냐에 따라 좋은 것일 수도 있고 나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목숨 걸고 반대할 수도 있으며, 목숨 걸고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탈이념의 시대에 걸맞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기독교인이라면 주기도문을 드릴 때 외우는 말씀처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온 세상이 아버지를 하느님으로 받들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땅에서 이루어진 아버지의 뜻, 그런 사회는 어떤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사회일까를 생각해 보십시오.
유토피아는 이루어질 수 없는 환상이라고 포기하지 말고, 우선 그 유토피아는 어떤 시스템에 의해 움직여지는 사회일까, 그 사회의 운영 원리를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운영원리에, 그 시스템에 공산주의적인 것이냐, 자본주의적인 것이냐 잣대를 들이밀겠습니까?


4. 탈이념, 탈냉전의 시대에 왜 아직도 우리는 이념전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까요?

시대의 변화라는 것이 칼로 자르듯이 명확하게 금을 그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시대의 유물을 간직하고 여전히 그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습니다. 21세기 초현대사회에서도 석기시대 모습으로 살아가는 세상과 격리된 지역에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 사회의 경우는 이런 식으로만 설명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여전히 냉전시대에 갇혀 있는 것은 우리를 그렇게 묶어두려는 세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왜 박정희의 남북대화는 벽에 막혔던 것일까요?
왜 노태우의 남북합의서는 실천되지 못했습니까?
오늘날 남북관계가 파탄에 이른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우리를 그렇게 콘트롤하고 있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다음 편지에서는 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오늘 "적화통일 될까봐 걱정되세요?"에 대한 제 대답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런 걱정 하지 마시고 여러분은 어떤 아이디어로 세상을 더 긍정적인 세상으로 만들어 갈 것인지 생각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