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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가까이 있어도 투쟁대열에 함께하지 않는 투명인간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는 동안 우울증이 깊어진 상태라고 걱정해 주던 목사님이 상담전문가를 소개해주고 상담비용을 감당해줄 테니 상담을 받아보라고 권유하였다. 

덕분에 두 차례에 걸쳐 은퇴한 노교수님과 대화를 나누었다. 

3주 전의 이야기다.

광주의 모대학에서 은퇴했다는 노교수님은 또 나름 세상이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알아주는 듯했다.

그러나 내 인생역정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전교조, 세월호, 사드...로 이어지는 이 단어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노교수의 모습에서 대단한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이 사회의 지성인이라고 불릴 만한 사람이 그 시절의 화두로 떠오른 문제들에 대해 그토록 무관심할 수 있었을까? 이런 사람이 나의 고민과 갈등에 대해 조언을 해 줄 수 있을까?

미국과 일본을 향한 그의 애정어린 표현을 들으며 극우기독교 세력이 얼마나 신도들을 세뇌시켜 왔는지 다시 절감했다.

그에게 난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전했다.

상담하러 갔다가 내담자에서 상담자가 되어버린 심정으로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은 공산주의를 "사유 재산제 대신에 재산의 공유를 실현시킴으로써 계급 없는 평등 사회를 이룩하려는 사상 및 운동"이라고 풀이하고 있고 인터넷 포털 DAUM사전에서도 이 풀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이 풀이야말로 가장 근본적인 공산주의에 대한 설명이라고 생각한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바로 이렇게 하고 있었다고 사도행전 2장 43~47절 말씀이 전하고 있다.
기독교인이라면 공산주의를 반대해선 안 되는 것 아닌가?
오히려 이른바 과학적 공산주의를 부르짖는 혁명가들과 어떤 방법으로 공산주의를 실현하는 것이 좋은지 경쟁해야 하는 것 아닌가?
공산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필수적이라거나 공산주의를 실현하려면 폭력혁명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그런 주장에 대해 비판하며 기독교적인 방법론은 무엇인지를 설파하는 것이 반공을 주장하는 것보다 타당하지 않은가?

"나도 이제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나도 세례받았다.", "나도 예수님을 영접했다." 는 말을 듣게 되면 덜컥 겁이 납니다. 아! 또 한 영혼이 수렁에 빠진 것이 아닐까? 그가 아는 예수는 어떤 분일까? 그가 다니는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개종자 한 사람을 만들려고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하나가 생기면, 그를 너희보다 배나 더 못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마23:15)
오늘날 교회는 예수님 시대의 위선적인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로 가득차 있지 않습니까?

<새마갈노 소성리편지 08(2020.01.09)>에서

이런 얘기까지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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