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고백/어쩌다 쓰는 일기

사랑은 시간낭비? (인도영화 "PK" 이야기)

도덕쌤 2020. 5. 17.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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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성리에서 함께 볼 영화를 소개합니다.
제가 그 영화에서 캐낸 질문들, 자가발전한 질문들을 몇 차례에 걸쳐 나누고자 합니다.
관심이 생기시면 소성리로 오세요. 함께 봅시다.

[사랑은 시간낭비]

♣ PK가 자구를 향한 사랑의 감정을 깨달으며 부르는 노래

#1. 종일 당신을 훔쳐보고 / 말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이고 / 다른 일들은 미뤄둔 채 / 당신의 발걸음만 졸졸 따라 다니죠 / 시간이 아깝다 생각지 말아요 / 사랑은 시간 낭비니까 / 사랑은 그저 시간 낭비죠 
<후렴> 하지만 내 심장이 말하네요 /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시간을 낭비하라고 / 사랑은 시간 낭비 / 기꺼이 그럴게요 / 그러고 싶은 걸요
#2. 시도 때도 없이 거울을 들여다보고 / 시도 때도 없이 헤어스타일을 고치죠 / 하루에도 몇 번씩 옷을 갈아입고 / 향수도 아낌없이 뿌려요 / 바보 같다 욕해도 좋아요 / 이제 알 것만 같아요 / 사랑은 시간 낭비죠 
#3. 사랑에 빠진다는 게 바로 이런 기분일까 / 심장은 콩닥콩닥 가슴은 간질간질 / 그냥 웃음만 나오죠 / 그냥 자꾸만 웃음만 나오죠 /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 하늘높이 붕 떠올라서 소리치고 싶어요 / 사랑은 시간 낭비라고

 

♣ 사랑이 시간낭비란다.
  사랑을 해 본 경험자에게 물어보았다. 사랑이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냐고.
  대답이 돌아왔다. 낭비라니요? 그렇게 경제적인 판단을 적용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게 정상적인 반응일 거라 생각한다. 비록 함께하지 못할 운명일지라도, 추억으로만 남겨질 사랑이라 할지라도, 영화의 PK처럼 혼자만 간직해야 할 사랑일지라도, 사랑을 시간 낭비라고 표현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시간 낭비라는 영화의 표현이 왜 이리 마음을 흔드는 걸까?
  자구와 사파라즈가 서로에게 빠져드는 영화 초반부에서는 국경이나 종교의 장벽을 초월한 사랑에 감동했다. 그런데 절정부에서 자구의 전화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던 사파라즈를 확인하는 장면에서나, 대단원 - 지구를 떠나는 PK의 가방을 가득 채운 건전지의 의미를 깨닫는 장면에서는 전율을 느꼈다. 그래 사랑은 시간낭비야!
  사랑은 시간 낭비라는 말이 '사실을 설명하는 말'이 아니라 '실행할 때 지켜야 할 계율'처럼 받아들여졌다. 사랑한다면 그를 위해 시간을 낭비하라! 
  내가 영화에 설득당한 걸까?

  사랑의 종교라고 말해도 좋을 기독교의 시작점, 예수의 사랑에 대해서도 그렇게 얘기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아! 정말 그렇다. 예수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가? 2천년이란 시간이 낭비되었다. 아직도 전인류를 구원하기까지에는 몇 천 년을 더 낭비할지... 끝내 가라지들은 불태워버려야 할 것을 알면서도, 끝내 염소들은 내쫓아야 할 거라고 당신도 생각했으면서, 여전히 어지러운 세상 더 어지러워지는 걸 방치하신 채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있으니, 지금도 시간을 낭비하고 계신 게 아닐까?

 

  나는 내가 사랑한다고 고백했던 이들을 위해 얼마나 시간을 낭비했던가 반성해본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시간을 시간낭비라고 표현하는 순간 그건 상대방에 대한 실례가 될 것이다. 그러나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단지 어쩔 수 없는 도리나 의무에 불과한 적은 없었나? 그러면서 속으로는 이렇게 시간 낭비할 때가 아닌데... 생각한 적은 없었나? 그렇게 시간 낭비하기 싫어서 스스로 외로울 때만, 심심할 때만, 도움이 필요할 때만, 그 사람과 시간을 함께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불평등한 세상, 불의한 세상이 달라지기를 소망하며 살아왔다. 좀더 도덕적인 사회가 되기를 꿈꾸며 살아왔다. 그런 내게 불가능한 꿈을 꾼다고,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인정하라고 충고를 뱉어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가운데 몇몇은 "시간 낭비하지 마라"고 내게 비웃듯이 말했지. 이제와 생각하니 그들의 충고는 "사랑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영원한 사랑은 없다"며 언젠가는 홀로 남겨지는 게 사람의 운명이며, 사랑이란 추억으로만 간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니, 사랑한다고 시간 낭비하지 말라는 충고인 셈이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오히려 "하지만 내 심장이 말하네요 /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시간을 낭비하라고 / 사랑은 시간 낭비 / 기꺼이 그럴게요 / 그러고 싶은 걸요" 노랫말이 더욱 반갑다.

 

  누구 소성리까지 와서 영화 PK를 보고 이런 문제들을 화제 삼아 얘기하는 데 시간을 낭비해 줄 사람이 있을까? 그럼 나도 모처럼 낭비라고 생각해서 잘 가지 않는 카페라도 함께 가 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