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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편이 아닌 남의 편 - 남편?]
동영상 속의 웃음소리처럼 그렇게 웃고 넘어갈 수 있지만, 이 쇼츠 동영상을 몇 번이고 보다 보면 마음 속에 어떤 생각들이 떠오르십니까?
사람마다 떠오르는 생각들이 다 다르겠지요?
그 생각들을 어떤 질문의 형식으로 표현해 보세요.
어떤 질문에 대답하는 생각인가요?
형님의 화두는 무엇입니까?
"얌마! 그냥 웃고 넘어갈 것이지, 화두는 무슨 화두야?!"
예, 그냥 제 화두를 소개하고 말지요.
1. 나는 평생 누구 편으로 살아왔을까?
저는 이 쇼츠를 보고나면 "나는 평생 누구 편으로 살아왔을까?"란 질문에 대답하게 됩니다.
나의 정체성은 계속 변해 왔습니다.
갓난 아기로 출발했어요.
누군가의 자식이었고, 누군가의 형제였어요.
누군가의 이웃, 어느 동네의 주민, 누군가의 친구, 어느 학교의 학생, 어느 선생님의 제자로 살았습니다. 어느 나라의 국민이기도 했지요.
어느 직장의 일꾼이었고, 어느 여자의 남친이 되었고, 드디어 어느 여자의 남편이 되었고, 자녀들의 아비가 되었습니다.
직장 바깥에서도 어떤 일을 같이 하며 누군가의 동료, 동무, 동지가 되었습니다. 어떤 조직체의 일원이 되기도 했습니다.
어떤 종교에 심취하게 되면서는 어떤 신을 숭배하는 신도가 되기도 했습니다.
나는 누구 편을 들면서 살아 왔을까요?
아기에게 가장 곤란한 질문이 무엇일까요?
"넌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둘 다 좋아요!"
"에이, 그래도 둘 중에 누가 더 좋아?"
이런 질문이 가장 잔인한 질문이 되는 것은 부모가 이혼을 하는 상황에서 맞닥뜨릴 때입니다.
이런 때에 아이는 "넌 누구와 한편 먹을래?"라는 질문을 받는 느낌일 것입니다.
모두가 한편 먹고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이제는 서로 편을 갈라 살아가자고?
아이의 결정은 '어떤 질문'에 대답하느냐, 즉 그 순간에 아이의 화두가 무엇이냐에 따라, 그 아이의 행동(그 아이의 선택)은 같아도 그 의미가 달라집니다.
아이가 선택을 하면서 고민하고 있을 만한 질문들을 늘어놓아 보겠습니다.
아이가 화두로 삼을 만한 질문들은 사랑과 관계, 정체성과 생존, 그리고 윤리와 책임이라는 세 가지 큰 주제로 나눌 수 있습니다.
- 사랑과 관계
ⓐ 난 둘 중에 누구를 더 사랑하지?
ⓑ 무어라고 대답하면 둘 다 한 편으로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 정체성과 생존
ⓒ 진정한 내 편은 누구지?
ⓓ 나에게 필요한 사람은 누구지?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면, 누구를 선택할까?)
- 윤리와 책임
ⓔ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누구지?
ⓕ 누구 편을 들든, 이건 누구를 차별하는 게 아닐까? 공평하게 대한다면 누구 편이 되어야 하지?
더 많은 질문들을 늘어놓을 수 있을 겁니다. 예를 들자면, 어쩔줄 몰라하다가
ⓖ 이럴 때 누구 편이 되어야 하는지 알려 줄 이가 있을까? 그분이라면 어떤 기준으로 누구 편을 들라 하실까?
이런 화두를 가지고 나름 공부를 하거나 생판 남인 사람에게 상담을 하고, 그의 충고에 따르는 것이지요.
그래서 점집도 찾아가고, 무당도 찾아가고, 상담전문가를 찾아가기도 합니다. 신앙인이라면 신을 향해 기도라도 하겠지요.
혹시나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다면, 형님은 어떤 화두에 대답하면서 누구편에 서겠다는 선택을 해 왔는지 들려주십시오.
2. "넌 누구 편이냐?"라는 질문의 함정을 어떻게 피해갈까?
모두가 한 편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에게는 이 같은 질문은 진퇴양난의 함정입니다.
저는 그래서 쇼츠동영상을 보고나면 "이런 함정을 어떻게 피해가야 하나?" 란 질문에 대답하게 됩니다.
위 쇼츠동영상처럼 웃어넘기도록 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얌마! 그냥 웃고 넘어가라니까!" 이게 정답 아닙니까?
저는 그렇게 "넌 누구편이냐?"라는 질문의 함정, 그 질문이 요구하는 진영논리의 함정을 피해 가는 게 정답이라 생각합니다. 쇼츠가 개그, 우스개로 분류되어 있는데, 그것이 정답인 것이지요.
"넌 누구 편이냐?"라는 질문에 매달리는 것은 진영논리에 빠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넌 누구 편이냐?"라는 질문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 전체가 겪고 있는 현상입니다.
형제간에 갈등이 생긴 이유도 어떤 사회적인 문제에서 "너는 누구 편이냐?" 묻고 있었던 것 아닙니까?
그래서 '진영논리'란 것에 대한 제 생각을 또 한바탕 길게 늘어놓으려 했어요.
그러다가 챗GPT에게 물어보았지요.
챗GPT의 대답으로 하고픈 이야기를 대신합니다.
3. 뱀발(사족) - 귀찮으면 그냥 넘어가도 좋은 이야기.
카톡으로 대화를 나누면서 저는 형님의 말씀이 제게 던지는 질문처럼 들렸어요.
"넌 누구편이냐? 북한이 러시아와 중국을 등에 업고 호시탐탐 우리 대한민국을 쳐들어오려 하고 있는데, 넌 누구 편을 들거냐?"
"넌 누구편이냐? 윤석열과 이재명이 싸우고 있는데, 넌 누구 편을 들고 있냐?"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이슈들마다, 그것을 누구와 누구의 싸움판으로 이해하면서, 그 중에 어느 편을 들거냐고 묻고 있는 거죠?
그리고 형님은 대한민국을 사랑한다며, 애국시민이라면 어느 편을 들어야겠냐고 설득을 하십니다.
이미 대한민국 국민들이 편을 나누어 싸우는 중이라면, 그 싸움을 말리거나 중재를 하는 것이 옳을 텐데, 어느 한 편에 서서 '상대방 씨를 말리는 게 대한민국을 위해 옳다'고 말하면서, 극단에 치우치는 겁니다.
그래서 어떤 언론인은 이렇게 말했대요. “내가 종교처럼 숭상하는 건 국가가 아니야. 소위 애국 이런 게 아니야. 진실이야.”
그런데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아기에게 물었더니, 아기가 "내가 좋아하는 건 엄마도, 아빠도 아니야! 내가 좋아하는 건 진실이야!" 이렇게 대답했다고 생각해보세요. 엄마, 아빠는 어떻게 반응하겠어요?
지금까지 형님과의 대화에서, 형님이 제게 묻고 싶어한 질문에 제 대답이 바로 이와같은 대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편을 나누어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설득하여 그 싸움을 중재하고픈 사람"입니다.
에이~, 거짓말이라도 엄마에게는 "난 엄마편이야"라고, 아빠에게는 "난 아빠편이야"라고 말해야 했을까요?
설득과 중재의 도구가 무엇일까요?
우리는 때로 진영을 나누는 대신, 웃고 넘어가며 중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아기처럼 솔직하게, '난 진실이 좋아'라고 말할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형님을 사랑하는가? 예! 라고 대답하게 만든 나의 경험]
어릴 때 나는 형님께 이런 질문을 하고 싶었어요.
"형님은 부모형제가 더 좋아, 아내와 자녀들이 더 좋아?"
형님은 형수와 조카들 편이었고, 부모형제 편이라고 보기 어려웠어요.
입장 바꿔서 내가 형님과 같은 처지였다 하더라도, 누가 내게 "형님은 부모형제가 더 좋아, 아내와 자녀들이 더 좋아?"라고 묻는다면, 저도 제 아내와 제 자식들 편이 될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그러나, 어쨌든 편가르기 할 수 없는 공동체를 억지로 편을 가르고 나면, 서운함이 쌓이지 않겠어요?
저는 그 모든 서운함에도 불구하고, "너는 형님을 사랑하니? 형님도 너를 사랑한다고 믿니?" 라는 질문에 "예." 라고 대답할 수 있는 추억이 있어요.
아들이 죽었다고 의사들이 사망선고를 내린 다음이었어요.
갓 태어난 딸과 딸을 출산한 아내를 생각하며 의연하게 버티려 애쓰던 순간이었어요.
내 절망과 슬픔을 어떻게 터뜨리지 않으면 미쳐 돌아버릴 것 같은 그 때, 형님이 오셨어요.
형님 품안에서 엉엉 울었지요. 형님이 울지말라고 다독 거릴 때, 내가 지금 형님 앞에서가 아니면 언제 울겠냐고 소리쳤지요. 그때 형님은 아무 말 없이 저를 품에 안고 제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기다려 주셨어요.
형님, 그 후 저는 형님이 어떻게 하더라도 형님을 사랑하는 동생이 되었어요.(물론 그렇다고 형님의 판단에 제 생각을 맞춰가는 형님의 광신도가 된 것은 아니고요.)
이런 추억을 더듬어 보니, 마침 어제 무안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비행기 사고가 생각나네요.
이런 참사에서 우리가 취할 자세는 어떤 것일까요?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음모론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어요. 음모론은 어떤 의심을 제기하기 마련이지요. "이거 의심스럽지 않아? 진실을 밝혀야 해!"라고 떠들면서, 그 음모의 주인공이 상대편이라고 몰아세우는 겁니다. 진실을 밝혀내기 어려워 "하느님은 대체 왜?"라고 묻게 되는 상황에서도, 어쨌든 음모의 주인공은 아니었을지라도, 사고의 책임은 악의 편이라고 몰아세운 상대방 편 때문이라고 몰아 세우지요.
그러나 비극의 한 가운데 서 있는 유족들은 어떤 마음일까요?
유족들의 마음을 헤아린다면, 우리는 어떤 말을 해야 할까요?
저는 첫아들을 보내고 "그 녀석이 왜 죽어가야 했을까? 그 과정에 녀석이 겪은 고통은 누구 책임이었을까?", 오래도록 "내 탓이오! 내 탓이오!" 스스로를 탓했습니다. 나도 따라 죽고 싶었지요.
유족들에게는 사고의 원인이 무엇인지, 사고를 피할 수 있었는데 기어이 사고가 일어났다면, 일어날 수밖에 없게 되어간 사정이 무엇인지 낱낱이 밝혀지길 원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음모론이 기승을 떨면 떨수록, 우리는 그들이 제기하는 어느 한 가지 의혹에도 대답할 의무를 지게 됩니다.
그러나 유족들의 입장에선 음모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미워하게 됩니다. 그들의 관심은 나의 슬픔이 아니라 자기들 편의 승리에만 집중되어 있으니까요. 세상 모든 것이 허무해진 마당에, 내 시신을 붙들고 이빨을 들이대는 하이에나 같다고 느끼지 않겠어요?
저는 제주항공사건에서도 제발 유족들의 심정을 헤아려 주었으면 좋겠어요. 세월호 사건의 유족들이 경험자로서 하는 말에 귀기울이면 좋겠어요.
형님, 형님과 제가 진정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형님과 제가 서로 사랑하는 관계라는 것을 느끼며 얼싸안고 기뻐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각자가 느끼는 그 외로움을 진정으로 감싸줄 수 있는 사이가 되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번 오래오래 건강하시기를 빌며 이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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