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고백/어쩌다 쓰는 일기

큰누님과 함께한 지리산 등산(2017발렌타인데이)

도덕쌤 2017. 2. 14. 22:22

아침 7:04 큰누나가 실상사로 나를 만나러 오겠다고 문자가 왔다.

몸을 돌보지 않고 일만 하던 동생이 스스로 쉬겠다고 지리산으로 내려왔으니, 어떤 상태인지,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서 찾아오는 것이었다.
오시라고 하고 자고 갈 예정인지, 도착예정시간은 몇 시인지 물어보았다.
방을 하나 더 달라고 해야할 지, 공양시간에 맞추어 도착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저녁 막차로 다시 대전에 올라가겠다고, 12시쯤 도착할 거라고..

누님이 오시면 스케쥴을 어떻게 잡을까 생각하며 모처럼 방청소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밖에서 까마귀 소리가 들렸다. 마치 반가운 손님이 올 거라고 울어대는 소리로 들렸다.

시간을 보니 마침 해가 뜰 시간.

금대암 쯤에서 해가 솟았다. 일출장면을 모처럼 사진과 동영상으로 담았다.

백운산 위로 빛살이 뻗어간 모습이 서기가 충만한 장관이었는데 카메라로 담은 모습(↑)은 감동이 조금 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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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님이 11:30에 정확히 실상사입구에서 내렸다. 점심공양시간이 11:30이라 부지런히 공양간부터 갔다.

템플스테이 담당 법광보살님이 살뜰하게 떡을 챙겨주셨다. 

공양을 마치고 곧이어 숙소를 구경시켜드렸다.

템플스테이 숙소가 잘 되어 있어서 누나는 안심하는 모습이었다.

실상사 경내 안내를 시작했다. 보광전, 극락전, 증각국사부도탑, 수철화상부도탑 등등

보광전 안의 동종에 얽힌 전설을 들려주고 동종 아래에 있는 일본열도 지도를 확인하였다.

전해지는 얘기대로 너무 쳐서 일본의 중심부 혼슈는 그림이 지워져 있었다.

보광전을 나오기 전 누님은 밥값을 한다고 불전함에 작은 정성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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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내 안내를 마치고 어디를 들러볼까 누나에게 선택을 하게 했다.

아침에 대략 생각했던 코스는 세 개였는데 (약수암, 히말라야카페, 금대암) 

누나는 내가 아직 안 가본 곳인 금대암을 선택했다. 누님의 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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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황마을을 지나 둘레길로 등구재까지, 등구재에서 금대암 방향으로 산이름도 모른 채 오르기 시작했다.

산이 가파른데다 중간중간 쓰러진 나무가 길을 막고 있어서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 의심스러웠다.

가는 도중 내려오는 분이 한 분 있었는데 위쪽을 향해 "호피야 빨리 와!" 소리치고 있었다.

잠시후 검은 털이 호랑이 비슷한 무늬로 덮힌 진돗개만한 개가 위쪽에서 내려왔다.

개를 무서워하는 누나를 위해 내가 친근하게 개를 다루려 했더니 내려가던 개가 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호피'는 이후 산 정상까지 우리를 안내하고 사라졌다. 

주인의 부르는 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길을 안내해 준 호피.

낯선 개가 조금 다정히 굴었다고 길을 안내해 주는 경험을 벌써 두번째하고 있다.

실상사의 진돗개 '동이'까지 포함하면 세 마리의 안내견을 경험한 셈.

만일 누님이 아니었다면, 호피가 안내하지 않았다면, 중도에 포기했을 산행이었다.    

가까스로 정상에 올랐다. 높이 900M 정도. 이름은 백운산.

그런데 기대했던 지리산 연봉들은 수목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고, 가까이 있을 것을 기대한 금대암은 보이지도 않았다.

길은 외길. 그냥 걷는 수밖에. 실상사에서 출발한지 두시간 가까이 지났다.

저만치 바위봉우리가 두 개가 보였다.

가운데 있는 조금 낮은 바위봉우리 위에서 시야가 터져 사진을 담았다.

지리산 연봉들을 파노라마로 찍었는데, 서쪽으로 기울어 칠선봉에서부터 반야봉 위에 떠 있는 태양이 카메라의 감각을 마비시켜서 사진이 엉망으로 나왔다. 

누님과 둘이 창원마을 방향으로 셀카를 찍었는데 삼봉산 능선만 조금 보일 뿐이네(↑)

아무튼 또 다시 200M쯤 떨어져 좀더 높이 솟아 있는 바위봉우리를 보며 설마 금대암으로 내려가는 길이 다시 저곳을 올라가야 하는 건 아니겠지? 기도하는 마음으로 다시 출발했다.

그런데 길은 기어코 다시 기어올라가야 하는 그 바위봉우리였다.

한숨을 쉬며 겨우겨우 피곤에 지친 다리를 끌고 바위봉우리에 도착!

도착하고 보니 바로 그곳이 금대산 정상이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멋모르고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산행이 삼봉산-백운산-금대산으로 이어진 종주코스 가운데 일부였던 셈.

다행인 것은 그곳이 지리산 능선들을 한눈에 다 볼 수 있는 최고의 전망을 자랑하는 곳이었다는 것.

그래서 그곳에 산불감시초소가 있었고, 마침 산불감시원이 근무중이었다.

친절한 그분의 도움으로 셀카가 아닌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금대산정상을 알리는 표지와 한 컷, 지리산 연봉을 배경으로 한 컷.

오도재 방향으로도 파노라마 사진을 담고 (창원마을, 촉동마을, 오도재, 삼봉산 등이 선명함)

천왕봉에서 반야봉까지 지리산능선을 파노라마로 담았다. 

그런데 역시 해가 문제라서 중간에 칠선봉쯤부터 노고단 방향은 아예 생략되어 버렸네.ㅠㅠ

아무튼 산불감시초소에서 둘레길안내도를 선물로 받고 이제까지보다는 비교적 편한 내리막길을 내려왔다.

하지만 누님에게나 내게나 무릎을 조심하느라 매우 무리한 코스였다.

겨우겨우 내려오니 금대암으로 가는 포장된 도로를 만났다.

금대암에서 다시 한 번 셀카를 찍고

금대암 앞의 전나무와 함께 지리산 연봉을 담았다.

다시 한 번 파노라마 도전. 그런데 여기서는 여기까지가 시야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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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잘 포장된 도로를 따라 내려왔다. 

내려오자마자 함양까지 가는 버스가 마중하듯 오고 있었다.

인월에 도착하니 대전행 직행버스가 약 1시간 뒤 출발.

누님은 그동안 단백질이 부족했을 거라며 정육점과 음식점을 함께 운영하는 집으로 나를 데려갔다.

그러나 사장님은 탑승시간이 촉박하니 탕이나 찌개로 주문할 것을 강권하였고 할 수 없이 김치찌개를 주문했다.

그래도 돼지고기가 풍부한 찌개인데다 특별한 장조림과 다른 부대반찬도 가짓수가 많았다.

게다가 미리 공기밥도 더 갖다주는 서비스 좋은 식당이었다.

거의 모든 밥과 반찬을 다 먹고, 모처럼 막걸리도 한 병 나눠 마시고, 기분 좋은 하루를 마쳤다.

이제 내 몸도 돌봐야겠다는 생각에 쉬러 왔노라고, 잠시 올라갔다가 다시 두달 정도 좋은 곳을 찾아 더 쉴 거라고 말씀드리니 누님은 다음에 갈 곳도 알려달라고, 그곳에서도 오늘처럼 멋진 여행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하였다.

걱정을 끼치는 동생에서 멋진 여행을 선물한 동생이 된 듯해서 기분이 상쾌했다.

누님을 배웅하고 돌아오니 하늘엔 별이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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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실패한 파노라마를 대신하여 낱장으로 찍은 사진들을 이어붙인 모습이라도 남겨둔다.

나중에 포토샾으로 그럴듯하게 파노라마처럼 편집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